그리스도인·활동가와 간담회…"정치인들, 중도 입장 가진 이들 향해 명료하고 일관된 메시지 전해야"

"하나님의 통치는 기독교 장로가 대통령이 되는 나라도 아니고, 대통령이 대형 교회에 참석해 머리를 조아리는 나라도 아니다. 그리스도인 유권자들의 문자 폭탄을 두려워하는 나라도 아니다.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과 모든 생명이 권리를 갖고, 이 땅에서 행복하고 존엄하게 번성하는 나라다. 그러한 하나님나라 정신은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되지 않는다." (한국여성신학회 김혜령 목사)

"변화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려면 정치인들의 명료하고 일관된 메시지가 필요하다. 얼마 전에 별세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데즈먼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불리한 상황에서 중립을 취한다는 건 압제자의 편을 선택한 것입니다.'" (대한성공회정의평화사제단 자캐오 사제)

평등법·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범그리스도교 간담회가 1월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을 만난 기독교인들은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은 그리스도인들의 뜻"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평등법·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범그리스도교 간담회가 1월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을 만난 기독교인들은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은 그리스도인들의 뜻"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뉴스앤조이-나수진] 범그리스도교 성직자·활동가들이 21대 국회에서 평등법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대전 유성을)을 만나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을 속히 추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차별과혐오없는평등세상을바라는그리스도인네트워크(평등세상)·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은 1월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 의원과 함께 간담회를 열고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은 그리스도인들의 뜻"이라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인 이상민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에서 가장 먼저 평등법을 발의했다. 이 의원은 지난해 6월 16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의 차별금지법과 골자가 유사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평등법)'을 발의했다. 이후 권인숙·박주민 의원도 유사한 법안을 내놓으면서 21대 국회에만 4개의 평등법·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은 2007년 첫 발의된 이후 올해로 15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는 지난해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요구하며 '평등길' 도보 행진, 기자회견, 시민 공청회, 토론회 등에서 법 제정을 염원하는 여론을 모아 왔다. 국회 앞 텐트 농성도 6일 기준 60일째를 맞았다. 하지만 법 제정 논의는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사유'를 문제 삼는 보수 개신교 진영의 반발에 부딪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은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에 대한 차별 금지를 법제화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보고서를 이재명 대선 후보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도인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이 민주주의 정신이자, 기독교 정신이라고 했다. 새맘교회 이수연 목사는 "교회 내부에서 법 제정 필요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는 것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그리스도인들은 차별금지법 제정이 민주주의 정신이자, 기독교 정신이라고 했다. 새맘교회 이수연 목사는 "교회 내부에서 법 제정 필요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는 것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간담회 참석자들은 많은 그리스도인이 반차별·평등·인권 등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라고 있다고 했다. 한국여성신학회 김혜령 목사(이화여대 교수)는 "현재 일부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배제와 정죄의 선교 전략'은 겉으로 볼 때 주류인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의 가르침과 근본적으로 모순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교권 세력은 이미 한국 그리스도인 다수의 신뢰와 존경을 잃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민주주의를 선도하는 많은 국가에서 이미 차별금지법이나 그와 유사한 법이 제정돼 있고, 이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이자 인간을 인간답게 여기는 휴머니즘이다. 교회의 여성 안수를 거부하고 세습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세력이 차별금지법 반대에 가장 열성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했다.

홍인식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이사장)는 기독교인의 오랜 활동과 꾸준한 실천이 개신교 내 법 제정 반대 기류를 변화시켰고, 특히 젊은 세대가 법 제정을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홍 목사는 "오늘날 상황에서 평등법·차별금지법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은 결코 개신교를 대표할 수 없는 의견"이라며 "그 어떤 이유라도 인권이 침해되거나 차별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법안의 정신이자, 기독교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이수연 목사(새맘교회)는 일부 대형 교회의 반대 목소리가 전체 기독교를 대표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실제 기독교인들 생각은 다르다고 했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은 가정과 일터에서 성소수자를 비롯한 모든 소수자가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했다. 이 목사는 "(법 제정) 반대 목소리에 동조하는 이들보다, 반대하는 이들과 함께 기독교인 정체성을 공유해야 하는 것을 괴로워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교회 내부에서 법 제정 필요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는 것을 체감한다"고 했다.

대한성공회정의평화사제단 자캐오 사제는 정치인들이 보수 개신교와 협상을 시도하기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명료하고 일관된 목소리를 내 달라고 당부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대한성공회정의평화사제단 자캐오 사제는 정치인들이 보수 개신교와 협상을 시도하기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명료하고 일관된 목소리를 내 달라고 당부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자캐오 사제(대한성공회정의평화사제단 회장)는 정치인들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향해 명료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법 제정을 반대하는 그리스도교의 보수적인 지도자들에게 국회의원들의 협상 시도는 오히려 속임수로 곡해될 때가 많다. 여러 정치학자들이 지적하듯, 오히려 중도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정확히 타깃팅해 명료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는 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 그래야 아직 자신들의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다수의 그리스도인이 입장을 드러낼 수 있다"고 했다.

가톨릭 박상훈 사제(예수회인권센터)는 "인간 존엄을 강력하게 옹호해 온 가톨릭이 전근대적 교리를 들어 성소수자에 관한 대화를 거부한다면 스스로 큰 모순에 빠질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겉으로는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가 차별을 용인하는 현상을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며, 이 의원에게 용기를 갖고 법 제정 논의를 진척해 달라고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대선을 앞둔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을  더 강력히 요구해 달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대선을 앞둔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을 더 강력히 요구해 달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상민 의원은 "차별금지법을 두고 여전히 검은 장막 뒤에 괴물이 있는 것처럼 여기는 교인들이 많다"며 법 제정을 지지하는 그리스도인이 목소리를 더 모아 달라고 했다. 이 의원은 "앞에서 완강하게 반대하는 분들이 있다 보니 정치인들은 종교계가 반대하는 것으로만 알고 공포심을 갖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종교인들이 에너지를 더 모아 검은 장막을 젖히는 수밖에 없다. 그 힘으로 법사위가 공청회를 열고 법안을 통과시키면 본회의에 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8부, 9부 능선을 상당 부분 넘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윤석열 후보는 여전히 법 제정을 할 때가 아니라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고, 이재명 후보는 왔다 갔다 하고 있다"면서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더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대선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심의하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다. 선거가 계속 있기 때문에 지금 못 하면 대선 이후에는 더 못 한다. 제정을 하려면 지금 해야 한다. 그래야 오히려 대선에 에너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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