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들이 기독교계 말고 맘카페에도 이런 카드 뉴스를 퍼 나르고 있어요. 내용을 보면 누구라도 뜨악합니다. 저는 교회가 세상의 약자 편이 되어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반대하는 엄마들이 내 아이들의 미래라며 여기에 연대하는 모습이 좀 당황스럽네요. 차별금지법 관련 팩트 체크가 필요해요."

제보자는 <뉴스앤조이>에 보낸 메시지에 '포차법(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폐해와 문제점'이라는 전단을 첨부했다. 이번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기 위해 교계 반동성애 진영이 주축이 돼 결성한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전국연합(진평연)이 제작한 것이다.

전단의 큰 글자만 대충 훑어봐도 충격적이다. △가정 파괴 △교육(자녀) 파괴 △종교(신앙) 파괴 △직업 파괴 △성별 파괴로 카테고리를 나눴다. 제목은 차별금지법의 문제점인데, 나열한 사례가 차별금지법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자세한 설명은 없다.

반동성애 진영의 이런 운동 방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어 현실을 왜곡하고,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여론을 선동한다. 읽는 이에게 충격을 줄 수 있도록 해외의 극단적 사례를 소개하고, 이것이 한국에서도 곧 일어날 일인 것처럼 공포심을 조장한다.

지난 '한겨레가짜뉴스피해자모임 동성애 관련 해명 자료 분석' 시리즈처럼, <뉴스앤조이>는 진평연이 제시한 사례들을 팩트 체크해 봤다. 해당 사건들이 어떤 맥락에서 진행됐는지,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이 사건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보고, 누군가의 의도대로 해석하고 오염된 내용이 아닌 정확한 사실 그대로를 전달한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는 6월 28일 설교에서 "동성애 합법화를 막지 못하면 가정이 다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가정 파괴'는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운동의 단골 레퍼토리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어떻게 가정이 파괴된다는 것일까. 진평연은 '포차법의 폐해와 문제점'이라는 전단에서, 차별금지법이 가정을 파괴한다는 근거로 다섯 가지 사례를 제시했다. 하나씩 차례대로 살펴보자.

진평연이 제작해 한국교회에 배포한 이 자료에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가정이 파괴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진평연이 제작해 한국교회에 배포한 이 자료에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가정이 파괴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1. 캐나다 온타리오, 자녀 성전환 반대하는 부모 양육권 빼앗는 법안 통과시킴 <크리스천투데이> 2017. 6. 8.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는 2017년 6월 1일부터 법안89(Bill 89)의 효력이 발생했다. 법안에는 친부모라 하더라도 의도적이고 지속적으로 자녀에게 신체·언어·감정 학대를 가하는 경우, 일시적으로 부모와 자녀를 다른 공간에 머물게 하며 자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법안이 통과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캐나다가 아니라 미국에서 논란이 일었다. 미국 복음주의 근본주의자들이 더 많이 반대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미국에는 한국 반동성애 진영과 비슷한 주장을 펼치는 근본주의 계열 뉴스 사이트가 많다. 이런 곳들 위주로 "생물학적 성별 정정을 원하는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온타리오 주정부가 자녀를 빼앗는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퍼져 나갔다. 법안을 가리켜 "독재"라고 언급한 곳도 많았다.

가짜 뉴스가 횡행하자 <버즈피드>는 2017년 6월 13일 "노(No), 캐나다는 자녀의 젠더 정체성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를 빼앗아 가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온타리오주 관계자는 기사에서 "이 법안은 자녀의 젠더 정체성과 동의하지 않는 부모를 자녀와 떨어뜨리는 힘을 정부에 주지 않는다. 그와 비슷한 그 어떤 설명도 거짓"이라고 말했다. 캐나다에서 아동 양육권을 박탈할 수 있는 기관은 사법부다.

결론적으로 이 기사는 '거짓'이다. 게다가 이 법안은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과 아무 연관이 없다. 차별금지법은 고용, 교육 기관의 교육, 행정 서비스 이용, 재화·용역 등 공급이나 이용 등에서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누군가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법이다. 공공 영역에서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차별을 금지하자는 법이지, 가족 관계에서의 일까지 관여하는 법이 아니다.

2. 미국에서 7세 아들 성전환 반대하다 아빠 양육권 박탈당함 <크리스천월드> 2019. 11. 6.

이 사건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2019년 11월 1심에서는 아버지 제프리 영거가 양육권을 박탈당했지만, 2020년 1월 항소심에서는 공동 양육권을 인정받았다. 제프리 영거는 앤 고글러스와 2010년 결혼해 쌍둥이 아들을 얻었다. 두 사람은 2015년 이혼 소송을 시작했고, 2016년 결혼 관계가 끝났다.

엄마 앤은 7살 아들이 여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며 딸로 대해야 한다고 했고, 아빠 제프리는 종교적 신념상 동의할 수 없다고 맞섰다. 소아과 의사인 앤은 아이가 '성별 위화감'(Gender dysphoria)을 겪고 있다고 했다. 수학 교사인 제프리는 앤이 자신의 전문성을 이용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젠더 정체성'을 아이에게 주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심에서 법원은 앤의 단독 양육권을 인정했다. 법원은 아이에게 호르몬을 투여할 수 있는 권한을 앤에게 부여하고, 제프리에게는 △아이의 남성형 이름을 부르지 말 것 △'젠더 정체성'에 관한 수업을 수강할 것을 명했다.

이 판결은 유명한 사건이 됐다. 법원 판결 후 여론은 양쪽으로 갈렸다. 제프리를 지지하는 이들은 주로 기독교인이었고, 이들은 18세 미만 청소년은 미숙해서 성전환 과정을 겪게 해서는 안 된다며 관련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앤을 지지하는 쪽은 트랜스젠더를 적대하는 텍사스주에서 법원이 트랜스젠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판결을 내렸다고 지지를 표명했다.

3달 후, 항소심에서는 두 사람의 공동 양육권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가족 모두가 '젠더 아이덴티티'에 대한 강의를 듣고, 이 사건과 관련해 트라우마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또 두 사람은 자녀가 18세가 될 때까지 쌍둥이 앞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거나 언론을 통해 공론화하면 안 된다는 판결을 받았다.

진평연의 주장은 반쪽짜리다. 사건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아직 완전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사례 역시 한국의 차별금지법과 아무 관련이 없다. 차별금지법에는 자녀 양육권을 박탈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전혀 없다. 양육권은 민사소송을 통해 다툴 일이지 차별금지법은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진평연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미국에서와 같은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왜곡 정보를 유포했다.

3. 캐나다 대법원은 14살 딸이 부모 동의 없이 호르몬 주사를 맞도록 판결하고, 부모가 딸에게 여성 대명사 언급하면 가정 폭력으로 간주함 <Lifesite> 2019. 3. 1.

출처로 달아 놓은 <Lifesite> 보도만 봐도, 캐나다 법원이 '부모'가 아닌 '아빠'만 제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진평연은 뻔히 드러날 거짓말로, 자녀가 원하기만 하면 부모 동의 없이 성별 정정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오해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법원이 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는지 자세히 살펴보면 진평연 주장에 얼마나 왜곡이 심한지 알 수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대법원은 2019년 2월, 14세 아동이 공동 양육권을 소유한 아빠의 동의 없이 엄마의 동의만으로 성별 전환을 위한 호르몬 요법을 시작해도 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아빠가 아동이 원하지 않는 여성형 이름으로 계속 부르거나, 딸로 대하면 안 된다고도 판시했다.

A.B로 명명된 이 청소년은 11살 정도부터 자신을 남성이라고 인식해 학교에도 남성으로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여러 번 정신과 진료를 통해 '성별 위화감' 판정을 받고, 엄마에게 동의를 받아 테스토스테론 투여를 시작으로 성별 전환 작업을 하려 했다. 하지만 이혼해서 따로 살고 있는 아빠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됐고, 아빠는 딸이 성별 전환술의 위험성을 모르고 있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교묘하게 왜곡된 이 뉴스 역시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차별금지법에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된다고 나와 있고 차별 사유 중 하나로 괴롭힘을 언급하지만, 부모의 양육권 다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1·2·3 사례가 보여 주듯 지금 북미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젠더 정체성과 관련해 갈등이 많은 점은 사실이나, 지금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과는 상관없는 내용이다.

한국교회에서나 통용되던 차별금지법 반대 자료는 이제 맘카페 등으로 퍼지고 있다. 해당 카페 갈무리
한국교회에서나 통용되던 차별금지법 반대 자료는 이제 맘카페 등으로 퍼지고 있다. 해당 카페 갈무리

4. 콜롬비아는 남성 동성애자 3명의 결혼(중혼)도 법적으로 인정 <연합뉴스> 2017. 6. 14.

이 사례는 콜롬비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영국 BBC도 이들을 소개했다. 마누엘, 알레한드로, 빅토르는 2017년 6월 한 가족으로 인정받았다. 세 사람은 원래 알렉스라는 남성을 포함 네 사람이 한집에 살고 있었다. 모두 동성애자다. 이들은 동성 결혼이 합법화하면 두 사람씩 결혼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알렉스가 2015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세 명이 됐다.

한 지붕 아래 한 가족처럼 살던 세 사람은 한 가족으로 인정받는 일을 시도하기로 했다. 인구 70.9%가 가톨릭교인인데도 콜롬비아는 2016년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이들은 성소수자 인권 단체, 인권 변호사 등의 도움을 받아 작업을 진행했고, 결국 거주 중인 메데인시는 세 사람을 동등한 파트너 관계로 인정하는 증명서를 발급했다. 세 사람은 유산·재산 등을 공유·상속하며 만약 이 관계를 깨고 싶다면 이혼과 마찬가지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 결혼도 가능해진다는 주장은 대표적인 과장 정보다. 동성 결혼은 차별금지법과 별도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주제다. 차별금지법 제정만 해도 일부 보수 개신교계 반대 때문에 13년 넘게 지체되고 있는데, 지금 동성 결혼을 논하는 건 한국 현실과 맞지 않다.

5. 미국 60대 엄마가 동성애 아들의 대리모가 되어 손자를 직접 출산 <연합뉴스> 2019. 4. 3.

이 뉴스는 사실이다. 2019년 미국 네브래스카주에 사는 세실 엘레지는 아들 매튜와 그의 동성 남편 엘리엇의 딸을 대리출산했다. 매튜의 정자와 엘리엇 누나의 난자를 체외수정했고, 이를 세실의 자궁에 착상시켰다. 세실은 지난해 4월 건강한 손녀(?)를 낳았다. 세실은 "엄마로서 아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며 대리모가 되기로 한 이유를 밝혔다. 이 가족의 결정이 알려지자 미국 사회에서 찬반 논쟁이 일 정도였다.

진평연은 이 또한 차별금지법의 폐해로 연결시키지만, 차별금지법과는 관련이 없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처럼 차별금지법은 가족의 영역에서 일어난 일까지 제재하는 법이 아니다. 이 일은 가족들이 합의하에 결정한 사안이기 때문에 법적인 판단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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