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21대 국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불이 붙었다. 20대 국회에서는 발의조차 되지 못한 차별금지법이 개원 한 달 만인 6월 29일 발의됐다. 하루 뒤인 6월 30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최영애 위원장)도 국회에 '평등 및 차별 금지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보수 개신교다. 대형 교단들과 교회들, 반동성애 진영은 벌써 연합 전선을 구축해 전방위적 반대 운동에 나섰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한국에서 법이 처음 발의된 2007년부터 보수 교계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최근 여론조사들에서 국민 중 90% 가까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차별금지법안을 대표 발의한 장혜영 의원(정의당)은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21대 국회 비례대표로 입성한 장 의원은 정치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 문제에 분명한 태도를 드러냈다. 2017년 대선 정국에서 '나중에'를 외치며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이들에게 "성소수자 이슈는 찬성이나 반대 문제가 아니다"고 일갈하는 영상도 제작해 올렸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너에게'라는 이 영상은 유튜브 조회 수 20만을 기록하며 회자됐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앞장선 장혜영 의원을 7월 3일 국회에서 만났다. 장 의원은 이날 인터뷰에 무지개색 시계를 차고 나왔다. 그는 '차별금지법 제정의 시간'이라는 상징이라며, 법이 제정될 때까지 시계를 차고 다니겠다고 했다. 장 의원에게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게 된 배경과 법안에 대한 오해, 취지 등을 물었다.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장혜영 의원은 보수 교계의 항의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항의 문자를 2000개 넘게 받는 등 업무도 어려울 지경이지만, 법의 취지를 최대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장혜영 의원은 보수 교계의 항의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항의 문자를 2000개 넘게 받는 등 업무도 어려울 지경이지만, 법의 취지를 최대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21대 국회 최초로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이유가 궁금하다.

내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와 관련돼 있다. 한 살 어린 동생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삶이 크게 달라졌다. 부모도 같고, 가정환경도 같고, 성별도 같다. 나이도 한 살밖에 차이 안 나니까 거의 똑같다. 그러나 나는 비장애인이기 때문에 동생이 겪는 차별을 겪을 일이 없었다. 나는 그 과정을 보면서 성장했다.

사회에서 차별당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숨 쉬듯이 차별에 노출돼 있는 상황을 보며 고민하다가 정치를 시작했다. 그랬기에 정의당에서 차별금지법을 당론으로 정하면서 "대표 발의는 누가 할래요?"라고 물었을 때 바로 자원할 수 있었다.

- 대표 발의 후 항의·공격이 상당할 것 같다. 실제로 얼마나 항의를 받고 있나.

의원실로 전화가 하루에 100통 이상 오는 것 같다. 내 전화번호도 만천하에 공개돼서 수없이 연락이 온다. 문자메시지가 2000개 넘게 와서 핸드폰을 거의 쓸 수가 없다. 전화 거는 사람도 많다. 다짜고짜 항의하는 분도 있고, 나름대로 논거를 내세우며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분도 있고, 상당히 잘못 알려진 사실을 말씀하시면서 발의하면 안 된다는 분도 있었다. 대부분 기독교인이다.

차별금지법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해 드렸다. 예를 들어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직업을 잃거나 버스와 택시를 이용할 수 없으면 안 되지 않느냐. 성소수자도 생활 필수 영역에서 차별받으면 안 된다고 규정해 놓은 법이다. 차별 행위가 있다고 바로 형사처벌하는 법이 전혀 아니다"고 말씀해 드리면, 의외로 "그러냐. 잘 몰랐다"면서 납득하시는 분도 꽤 있었다.

"체포되는 거 아니냐", "구속되는 거 아니냐" 이런 얘기를 하시지만 사실무근이다. 발언에 대한 처벌 조항은 없다. 그리고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평등권 침해는 차별로 규정돼 있고, 차별 행위에 대해 시정 권고도 할 수 있다. 우리 법안은, 권고에도 계속 시정되지 않을 경우에 시정 명령으로 한 단계 더 뭔가 해 볼 수 있는 수단을 추가한 것이다. 완전히 없었던 것을 도입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설교하면 잡아 간다"는 주장은 완전히 사실무근이다.

'왜 이렇게까지 반대할까' 의아하기는 했다. 대화를 나눠 보면, 설명을 납득하고 공감할 수 있겠다는 분도 있지만 능동적으로 공감하고 싶어 하지 않는 분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분들을 보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내적 논리가 존재할 수 있겠구나' 싶다.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없다는 건 아니니까.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7월 2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가 반드시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 제공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7월 2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가 반드시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 제공 차별금지법제정연대

- 법안을 발의하려면 의원 10명을 모아야 한다. 정의당 의원이 6명이니까 4명만 더 모으면 되는데, 이 과정이 어려웠다고 들었다. "소돔과 고모라가 의인 10명이 없어 망했는데 21대 국회도 의인 10명이 없어 망할 것"(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실제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나.

아주 수월하지는 않았다. 다만 아직 국회에서 원 구성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차별금지법에 대한 당론도 정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적으로 이 법안 발의에 참여하는 일은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그렇지만 20대 국회에 비하면 사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다. 20대 국회는 4년간 10명을 못 모아서 발의도 못 했는데, 이번 국회는 한 달 만에 10명을 모아서 발의한 것이다. 이건 분명히 엄청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 많은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 한 분도, 심지어 미래통합당 의원 중에서도 차별금지법 취지에 반대하거나 동의하지 못한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뜻은 정말 좋고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타이밍에서는 약간 어렵다' 정도로 유보적 태도를 보이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 분위기가 달라졌다면, 본회의 통과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건가.

덮어 놓고 낙관할 수는 없겠지만, 21대 국회에서는 충분히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수 있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사회적 합의'라는 말 뒤로 숨어 왔지만, 국민들이 특히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서로의 상황, 안전이나 존엄이 연결되어 있다는 경험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이 법안은 우리 모든 국민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당론으로 결단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제정 가능하다고 본다.

미래통합당이 성적 지향을 뺀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며 아쉬운 부분을 남기기는 했지만,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나 21대 국회에서 논의하기 좋은 상황을 만든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의당이 민주당·통합당에 이 문제를 놓고 얘기해 보자고 3당 토론회를 제안한 상황이다.

- 동료 의원들을 설득할 전략이 있나.

정치하는 사람들은 회피하고 싶은 것에 대해 '현실'이라는 이유를 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치면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 과거를 돌아보면, 처음에는 굉장히 터무니없고 많은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꾸준히 이루어졌다. 인권위원회가 생겼고, 과거사를 다루는 많은 법안이 생기기도 했으며, 이제는 18세 선거권까지 만들어졌다.

자주 강조하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법이지, 완전히 새로운 것을 하자는 법도 아니다. 2020년 정도 되면 우리가 이 법안을 가질 때가 됐다는 점을 수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이 법안을 거절할 이유가 별로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소수라는 것을 보여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장혜영 의원은 법안 발의에 동참할 의원을 모으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의원들도 법 제정에 공감하고 있다며, 법안 통과를 기대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장혜영 의원은 법안 발의에 동참할 의원을 모으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의원들도 법 제정에 공감하고 있다며, 법안 통과를 기대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차별금지법안을 만들면서 어떤 부분을 특별히 신경 썼나.

'차별의 정의' 부분을 세세하게 규정했다. 성적 지향이라든가 성별 정체성, 학력 등에 대한 정의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현재의 차별을 가장 포착하기 좋은 형태로 언어를 만들고 싶었다. 차별금지법의 가장 큰 법익은 '무엇이 차별이다', '이것은 차별이다'고 정확하게 호명하는 기능이라고 생각해 공을 많이 들였다.

- "국회의원이니 양쪽 의견을 고루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테면 차별금지법 반대 논리도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라는 것이다.

정치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공통분모를 끊임없이 찾아 나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폭력을 이야기할 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 얘기도 들어 봐야 한다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명백하게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존엄한 사람이지만, 너는 어떤 사유가 있기 때문에 존엄하지 않다'는 말도 하나의 의견이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모든 사람의 존엄은 사라져 버린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존엄하다'는 원칙이 있어야 민주주의 절차와 시스템이 굴러가는데, 존엄에 예외가 생긴다면 규칙 자체가 무너진다. 그러면 우리가 이야기하는 공적 가치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아무 의미 없는 게 돼 버린다.

- 보수 개신교계는 차별금지법을 '역차별법'이라고 주장한다.

존엄에 대한 차별은 결코 역차별 문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애초에 이 법안은 어떤 불이익을 주려는 성질도 아니다. 차별이 일어나고 있을 때 그 차별을 중지하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차별을 통해 일어나고 있는 피해를 멈추라는 것이다.

이 법은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법이기도 하다. '역차별을 조장한다'는 주장을 반대로 말하면, 그들은 현재 차별 구조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이익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운 없는 사람, 가장 취약한 사람, 가장 소수인 사람도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면, 그보다 상대적으로 덜 약한 사람이나 강한 사람은 얼마나 더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모두가 존엄하지 않으면 사실은 누구도 존엄한 것이 아니고, 그냥 존엄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존엄과 일상도 분명히 차별과 불평등에 싸워 왔던 이전 세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2020년을 사는 우리는 또 우리 몫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 의원은 법안을 준비하며 무지개색 시계를 찼다. '이제는 차별금지법 제정의 시간'이라며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이 시계를 차고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장 의원은 법안을 준비하며 무지개색 시계를 찼다. '이제는 차별금지법 제정의 시간'이라며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이 시계를 차고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변화할까.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우리 사회 모든 차별이 사라지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연필 소묘, 그림 그리기와 비슷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림 주제가 '누구든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아가는 사회'라면, 스케치는 이미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어느 정도 스케치해 놨다. 차별금지법은 여기에 터치를 더해서 조금 더 구체화하는 것이다. 법이 시행된 후 차별받은 사람이 진정하면서 한번 더 터치하고, 인권위가 권고를 내리면 좀 더 구체적으로 터치하게 된다. 법원 판단도 더해질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쌓이는 사람들의 행동과 경험이 우리 사회에 차별 없는 모습, 평등을 구체화해 나갈 것이다.

- <뉴스앤조이> 독자를 비롯한 개신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제 <뉴스앤조이>에 실린 "동성애는 죄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를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하는 것도 죄라고 생각한다"는 글을 봤다. 두 가지 논리가 한 사람 안에서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써 주셨더라. 그 칼럼을 보고 '아,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차별금지법은 모든 사람의 생각을 다 똑같이 만들겠다는 법이 아니다. 고용의 영역, 교육의 영역, 삶을 위해 필수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재화나 용역 - 교통수단이나 금융 서비스 같은 것, 참정권과 관련한 행정 서비스에서 그 누구도 차별받으면 안 된다는 법이다.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당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까지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 법안에 찬성해 주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딱 그걸 하자는 법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