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들이 기독교계 말고 맘카페에도 이런 카드 뉴스를 퍼 나르고 있어요. 내용을 보면 누구라도 뜨악합니다. 저는 교회가 세상의 약자 편이 되어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반대하는 엄마들이 내 아이들의 미래라며 여기에 연대하는 모습이 좀 당황스럽네요. 차별금지법 관련 팩트 체크가 필요해요."

제보자는 <뉴스앤조이>에 보낸 메시지에 '포차법(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폐해와 문제점'이라는 전단을 첨부했다. 이번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기 위해 교계 반동성애 진영이 주축이 돼 결성한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전국연합(진평연)이 제작한 것이다.

전단의 큰 글자만 대충 훑어봐도 충격적이다. △가정 파괴 △교육(자녀) 파괴 △종교(신앙) 파괴 △직업 파괴 △성별 파괴로 카테고리를 나눴다. 제목은 차별금지법의 문제점인데, 나열한 사례가 차별금지법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자세한 설명은 없다.

반동성애 진영의 이런 운동 방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어 현실을 왜곡하고,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여론을 선동한다. 읽는 이에게 충격을 줄 수 있도록 해외의 극단적 사례를 소개하고, 이것이 한국에서도 곧 일어날 일인 것처럼 공포심을 조장한다.

지난 '한겨레가짜뉴스피해자모임 동성애 관련 해명 자료 분석' 시리즈처럼, <뉴스앤조이>는 진평연이 제시한 사례들을 팩트 체크해 봤다. 해당 사건들이 어떤 맥락에서 진행됐는지,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이 사건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보고, 누군가의 의도대로 해석하고 오염된 내용이 아닌 정확한 사실 그대로를 전달한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차별금지법 통과되면 동성애를 죄라고 설교했을 때 처벌된다'와 함께 차별금지법 관련 가장 유명한 가짜 뉴스 중 하나는 '동성 결혼 주례 거부하면 감옥 간다'는 말이다. 반동성애 진영 몇몇 강사가 이 허위 정보를 퍼뜨리자,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은 앞다투어 동성 결혼 주례 못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김종준 총회장)은 2018년 102회 총회에서 "동성애자가 요청하는 집례를 거부할 수 있다"는 조항을 헌법에 추가했다.

이들이 근거로 삼은 미국 사례들은 모두 사실과 다르다. 동성 결혼 주례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간 사람도 없고 벌금을 낸 사람도 없다. 누구나 '종교적 신념'을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 영역에서 차별 문제가 이슈화했을 뿐이다. 게다가 차별금지법과 동성 결혼 합법화는 별개 문제다. 지금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이 통과된다 해도 동성 결혼이 가능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진평연은 '포차법의 폐해와 문제점' 전단에서 '직업 파괴' 부분에 이 사례를 넣어 또다시 공포심을 조장했다. <뉴스앤조이>는 진평연이 '직업 파괴' 사례로 내세운 뉴스 5개의 사실관계를 따져 봤다.

1. 미국 보스턴 의사가 동성애의 위험성을 병원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해고 <Lifesite> 2015. 9. 14.

이 사건은 보스턴 Beth Israel Deaconess Medical Center(BIDMC) 병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진평연이 써 놓은 것만 보면 단순히 글을 하나 써서 곧바로 해고된 것 같지만, 10년 넘게 논쟁이 지속된 사건이다. BIDMC는 1970년대부터 LGBT 기념행사를 열어 왔다. 병원은 매년 봄철 전 직원에게 행사 안내 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이 병원 비뇨기과 전문의 폴 처치(Paul Church)는 이 행사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는 2004년부터 병원이 안내 메일을 보낼 때마다 병원장을 비롯한 병원 이사진에게 행사를 재고해 달라는 메일을 보냈다. 동성애에 관해 의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사를 표했다.

매년 항의 메일을 보내며 반대 의사를 표현했지만, 병원은 처치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 갈등이 표면화한 것은 2011년. BIDMC가 LGBT 관련 영상 상영회를 계획한다는 메일을 보내자, 처치는 병원에 동성애의 의학적 문제점이 담긴 '반대 주장'(opposite side)도 틀어 달라고 요구했다. 병원은 이런 행위가 성소수자를 모욕하는 행위이자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보고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병원은 처치에게 사임을 권고했으나 그는 거부하고 '리버티카운셀'이라는 극우 성향 법률 단체 지원을 받아 대응했다. BIDMC는 그를 내쫓지 않고 "병원 직원이나 환자들에게 동성애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표현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처치는 이를 함구령(gag order)으로 받아들였으나 일단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2년 후 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2013년 병원이 6월 LGBT 영상 상영 안내 공지를 돌리자, 처치는 "성적 도착(sexual perversion)을 기념하는 건 매우 부적절한 짓이다. 고위험 행동이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파악해야 하는 의료 기관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행동은 (동성애에 반대하는) 병원 구성원들의 종교적 신념이나 도덕적 거부감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처사다"는 글을 써서 돌렸다. 그래도 병원은 처치에게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2014년 행사 안내 공지가 돌자 처치는 한발 더 나아가 대표적 반동성애 구절인 레위기 18장 22절과 로마서 1장 26-28절을 써서 인트라넷에 올려 응수했다. BIDMC는 조사를 재개했다. 조사는 해를 넘겼고, BIDMC는 2015년 3월 처치를 병원에서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병원은 처치가 2011년 징계를 받았는데도 2013년과 2014년에 걸쳐 사내 전자 시스템에 반동성애 의사를 표현했다는 징계 이유를 고지했다.

결과적으로 BIDMC와 처치의 오래된 논쟁은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안과 직접적 상관이 없다. 법안 취지는 고용 관계에서 사업주가 성별·인종·정체성 등을 이유로 임금을 다르게 지급하거나 해고하거나 승진시키지 않는 등의 문제를 저지를 경우 노동자가 구제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처치의 사례는 병원 정책을 무시하고 오랜 기간 논란을 일으킨 사람을 징계 절차를 밟아 내보낸 일이다. 한국에서 발의되는 차별금지법 내용과는 관계가 없다.

보스턴 지역 병원 BIDMC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행사를 펼쳐 왔고, 이를 자랑으로 삼는다. 진평연은 이 병원에서 수년간 '동성애는 의학적으로 위험하다'고 주장했을뿐 아니라 반동성애 성경 구절까지 유포한 의사를 내쫓은 것이 '차별금지법'의 폐해라고 주장한다. BIDMC 2018년 브로슈어 갈무리
보스턴 지역 병원 BIDMC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행사를 펼쳐 왔고, 이를 자랑으로 삼는다. 진평연은 이 병원에서 수년간 '동성애는 의학적으로 위험하다'고 주장했을뿐 아니라 반동성애 성경 구절까지 유포한 의사를 내쫓은 것이 '차별금지법'의 폐해라고 주장한다. BIDMC 2018년 브로슈어 갈무리

2. 미국 방송국, 동성 결혼 반대 발언으로 인해 스포츠 방송 해설자를 해고 <크리스천투데이> 2013. 9. 26.

이 뉴스 자체는 사실이다. 미국 남감리대학교(SMU) 출신 유명 풋볼선수 크레이그 제임스가 동성 결혼 반대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폭스스포츠 해설에서 해고됐다는 내용이다.

문제가 된 발언은 제임스가 2012년 텍사스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벌어졌다. 그는 "그들(동성애자들)의 행동에 대해 주님에게 대답해야 한다", "동성애는 '선택'의 문제다", "우리는 시민 결합(civil union)에 대해 혜택을 줘서는 안 된다"면서 동성애 및 동성 결혼 반대 의사를 여러 차례 표명했다.

폭스스포츠는 크레이그 제임스를 2013년 8월 30일 고용했는데, 이 발언이 알려지자 딱 한 번 방송에 출연시킨 후 9월 2일 곧바로 해고했다. 보수 성향 매체로 알려진 폭스가 이 같은 결정을 내려 미국 사회에서 화제가 됐다.

제임스는 폭스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차별해 해고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폭스스포츠 관계자는 "종교 문제와 관련 없으며 제임스를 어떤 문제로도 차별하지 않았다. 단지 방송을 개인 의견을 펼치는 곳으로 악용했다는 인식에 근거해 해고했다"고 밝혔다. 소송은 2016년 쌍방 합의 및 소송비용을 각자 부담하는 조건으로 끝났다. 세부 합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휴스턴크로니클>은 "문제가 잘 해결되어 만족한다"는 제임스 측 변호사 인터뷰를 보도했다. 폭스스포츠는 코멘트하지 않았다.

이 사건 자체는 사실이지만, 역시 현재 한국에서 추진 중인 차별금지법과는 상관이 없다. 폭스스포츠가 차별금지법을 이유로 제임스를 해고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 영국, 동성 커플에게 입양을 거부하는 가톨릭 입양 기관의 절반이 문을 닫음 <한겨레> 2010. 2. 2.

이 뉴스도 사실이다. 영국은 2007년부터 입양 기관이 동성 커플 입양을 거부하면 벌금을 물고 정부 지원금도 받지 못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가톨릭은 교리적 이유로 동성 결혼과 동성 커플의 입양 신청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영국 내 가톨릭 입양 기관들은 사업을 접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기관으로 알려진 '카톨릭케어'는 2012년 종교 기관으로서 법 적용을 예외로 해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BBC 보도에 따르면, 법원은 카톨릭케어가 왜 평등법에서 예외로 적용돼야 하는지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이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또 법 개정이 재정난을 심화한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뉴스 또한 한국의 차별금지법안과는 상관이 없다. 동성 커플 입양은 차별금지법이 아니라 동성 결혼에 관한 문제다. 한국은 동성 간 결혼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거리가 먼 얘기다.

4. 미국, 동성 결혼 축하 케이크 거절해서 벌금 13만 5000달러 판결받음 <Oregonian> 2018. 6. 22.

이 내용은 <뉴스앤조이>가 '한겨레가짜뉴스피해자모임 동성애 관련 해명 분석⑩' 기사에서 팩트 체크했던 것이다. 진평연 홍보물에는 '퍼시픽노스웨스트'라는 곳이 2018년 6월 22일 이 내용을 보도했다고 나와 있는데, 이런 언론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Oregonian>이라는 언론사의 지역 보도(태평양 북서부 지역)면을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단순히 동성 결혼 커플에게 케이크 판매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벌금을 물은 사례가 아니다. 게다가 2019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은 케이크 제작을 거절한 이들에게 잘못이 없다는 취지로 판결을 내리고 사건을 오리건주 항소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종교적 이유에 따른 행위가 차별에 해당하는지는 판단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케이크 제작자 부부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진평연이 말하는 '차별금지법의 폐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성소수자들에게 결혼 주례를 요청받았을 때 거부한다면 처벌받을까? 미국에서도 이런 사례는 없었지만 이 일화는 끝없이 재생산돼 한국교회에 공포심을 심었다. 
성소수자들에게 결혼 주례를 요청받았을 때 거부한다면 처벌받을까? 미국에서도 이런 사례는 없었지만 이 일화는 끝없이 재생산돼 한국교회에 공포심을 심었다. 

5. 미국, 동성 결혼 주례를 서지 않으면 차별금지법 위반으로 수개월 징역 또는 수천 달러의 벌금을 물게 될 것이라고 협박당함 Alliance Defending Freedom 2017. 10. 17.

이 사례 역시 <뉴스앤조이>가 '한겨레가짜뉴스피해자모임 동성애 관련 해명 분석⑪'에서 검증한 바 있다. 반동성애 진영 인사들은 최초 이 사건을 가리켜 '감옥에 갔다', '벌금을 냈다'고 단정적 표현을 썼다. 하지만 사실관계가 드러나자 은근슬쩍 '징역 또는 벌금을 물게 될 것이라고 협박당했다'고 표현을 바꿨다.

냅 목사 부부가 운영하던 '히칭포스트채플'은 평소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예식을 올릴 수 있는 곳이었는데, 유독 동성애자 커플에게만 '종교적 신념'을 내세워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냅 목사 부부는 동성혼이 법제화하기 직전 예식장을 종교 법인으로 전환해 동성 결혼식 신청을 거부할 수 있게 됐다.

오히려 냅 목사 부부는 동성 결혼 합법화로 예식장 운영에 피해를 봤다며, 커들레인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이들은 일부 승소해 2016년 5월, 1000달러 1센트의 손해배상을 받아 내기까지 했다. 개신교의 특수성을 내세워 승소한 사례인데도, 진평연은 마치 차별금지법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냅 목사 사례는 반동성애 진영 몇몇 강사가 자신들 말에 얼마나 무책임한지 보여 준다. 에스더기도운동본부(에스더·이용희 대표)는 <뉴스앤조이>와의 소송 중 낸 서면에서, 냅 목사가 징역·벌금형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와전돼 잘못된 내용이다"며 "앞으로는 정정된 내용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잘못된 내용이 교계 전반에 퍼져 있고, 지금도 에스더 홈페이지에는 냅 목사가 징역과 벌금을 선고받았다는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에스더는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거나 정정한 적 없다.

길원평 교수(부산대)와 김지연 약사(한국가족보건협회)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한겨레>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판결문(2020년 2월 선고)을 보면, 재판부는 두 사람이 "미국 아이다호에서 동성 결혼 주례를 거절한 목사에게 180일간의 감옥형과 매일 1000달러의 벌금을 동성 결혼 주례를 해 줄 때까지 내도록 했다"는 사례를 들었지만, 이것은 사실관계와 전혀 다르다고 판시했다. 그런데도 길 교수와 김 약사 강연은 반동성애 성향 언론 및 블로그에 계속 남아 있고, 이들 역시 자신들 발언에 대해 한 번도 공적으로 사과하거나 정정한 적 없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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