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그동안 "동성애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를 외치던 보수 개신교계가 이제는 '개별적 차별금지법 YES 포괄적 차별금지법 NO'라는 구호를 들고나왔다. 한국 사회에는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차별금지법이 준비돼 있기에 '성적 지향'을 차별 금지 사유로 명시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필요 없다는 논리다.

법학자로서 오랜 기간 인권 문제를 연구해 온 홍성수 교수(숙명여대 법학부)는 사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개별적 포괄금지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홍 교수는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양권석 소장)가 7월 28일 개최한 월례 포럼 '차별 금지의 사회적 의의와 윤리적 가치'에서, 차별금지법안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우리 사회에 어떤 의의를 주는지 등을 소개했다.

홍성수 교수는 7월 28일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월례 포럼에서 '차별 금지의 사회적 의의와 윤리적 가치'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홍성수 교수는 7월 28일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월례 포럼에서 '차별 금지의 사회적 의의와 윤리적 가치'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복합 차별 규제 위해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필요,
4대 영역 한해 차별 규제"

홍성수 교수는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아닌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를 사람의 복합적 정체성에서 찾았다. 홍 교수는 "개별적 차별금지법은 사유와 영역을 제한적으로 매칭한 법이기 때문에 빠르게 변화하는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한계에 부딪히고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남녀고용평등법은 '성별'이라는 차별 금지 사유를 '고용' 영역에서만 보호하고 규제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도 '장애'라는 차별 금지 사유에 한정돼 있다. 현행법 범위 내에서는 장애인이면서 여성인 사람이 받는 차별 등 복합 차별(두 가지 이상의 차별 금지 사유가 함께 작용하는 차별)을 제대로 규제·보호하기 어렵다.

홍성수 교수는 많은 민주 국가가 헌법과 차별금지법에 차별 금지 사유를 자세하게 규정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차별 사례를 발굴할 때마다 개별 법안을 계속 만들어 내는 식으로는 차별을 해소하기에 역부족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큰 우산을 하나 만들어 놓고, 필요에 따라 개별 법안을 추가해 조화를 이루는 게 가장 좋은 모델"이라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는 사전 신청한 8명의 참석자와 다수 온라인 수강자가 함께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이날 포럼에는 사전 신청한 8명의 참석자와 다수 온라인 수강자가 함께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나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에 제정하라고 권고한 평등법 시안은 △고용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 △행정 서비스 영역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규제한다. 삶의 다양한 영역 중에서도 네 가지를 특정했다. 이는 과거 발의한 모든 차별금지법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한 내용이다.

홍성수 교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에서 영역을 구체적으로 제한한 것은, 이 네 가지 영역이 인간 삶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를 다루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영역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으면 우리는 이미 감각적으로 차별이라고 인식한다. 완전히 새로운 내용을 제시하는 게 아니다. 만일 표현의자유나 종교의자유를 이유로 이 영역에서 차별이 허용되기 시작하면 섬뜩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홍 교수는 말했다.

"종교인 양성기관 특수성 요구 당연,
사회와 접점 생기는 영역에서
종교적 부분만 고집하면 안 돼"

반동성애 진영과 보수 교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교회 혹은 신학교에서 제재를 받는 일은 드물 것이라고 했다. 홍성수 교수는 일의 특성상 본질적으로 요구되는 특수성이나 자격 요건에 의거해 차등을 두는 경우는 차별이 아니라고 말했다. 따라서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한 신학 교육기관, 교목 임용, 성직자 청빙 등에서 종교적 특수성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하지만 종교가 종교 영역을 벗어나 사회와 접점이 생길 때는 종교적 부분만 고집하면 안 된다고 했다. 홍성수 교수는 "교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도 국가 지원을 받고 수능이라는 시스템에 의해 사람을 뽑고 있지 않나. 종교가 사회와 연관이 되어 혜택을 주고받고 호흡하기로 했으면 사회가 세팅한 룰에 따라야 한다. 기독교 신자만 신입생으로 받는다거나 강제로 채플을 드리지 않으면 졸업을 시키지 않는다거나 하면 안 된다. 운영 이념이 기독교적 가치인 '사랑'일 수는 있으나 세속화한 형태로 사회적 접점을 만들어 이념을 구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수 교수는 종교의 특수성은 인정·보장하지만 사회 시스템 안에 들어온 이상 사회와 함께 호흡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홍성수 교수는 종교의 특수성은 인정·보장하지만 사회 시스템 안에 들어온 이상 사회와 함께 호흡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향한 또 다른 오해 중 하나는 이를 어길 시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홍성수 교수는 이 주장에 대해서도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오히려 차별금지법은 현실적으로 무기력한 법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은 기본적으로 처벌이 아니라 권고다. 법정 처벌을 내리는 것은 차별금지법의 일반적 작동 방식이 아니다. 어찌 보면 강제력이 약한 법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 일종의 예술에 가깝다. 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당장 세상이 현저히 달라지거나 모두를 다 잡아가거나 하지 않는다."

해석에 따라 법이 악용될까 우려하는 사람들도 안심시켰다. 홍 교수는 "사실 차별이냐 아니냐는 토론의 여지가 있고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악의적이라기보다 정말 무엇이 차별인지 잘 몰라서 차별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집행 수단이 유연하고 약하다. 법안을 토대로 편견을 재고하고 반성해 보자는 것이다. 기준을 만들어 가며 서서히 사회를 평등하게 바꿔 나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수 교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 차별금지법을 처음 발의한 이래로 입법 가능성이 가장 높은 호기를 맞았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 비하면 분위기가 정말 좋은 상황이다. 국회에서 7년 만에 발의가 되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14년 만에 권고안을 냈다. 개신교계 내부에서도 많은 분이 노력해 주신 덕에 적지 않은 찬성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언론 환경도 호의적이다"라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 더 관심을 가져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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