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13년 전부터 보수 개신교계는 반동성애 진영과 함께 계속해서 새로운 반대 논리를 개발해 왔다. 온갖 극단적인 해외 사례를 가져와 차별금지법(평등법)이 제정되면 한국도 곧 이렇게 될 거라고 주장한다. 일부 극렬 반동성애 운동가들이 만들어 낸 허위·왜곡 정보는 교회를 넘어 국회에까지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일부 법조인이 '차별금지법은 위헌적'이라며 이론적 토대를 깔아 준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이 과도하게 평등을 보장한 나머지 개인의 종교·사상·양심의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하니, 차별금지법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교인들도 반대하는 쪽으로 치우친다.

<뉴스앤조이>는 정말 차별금지법이 헌법에 위배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김형태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를 만났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창립 회원이기도 한 김 변호사는 1980~1990년 주요 시국 사건 변론을 맡았다. 리영희·송두율 등 진보 지식인들이 국가보안법으로 고통받을 때 김 변호사는 그들의 법률 대리인으로 함께했다. 과거 공안 검사를 '공안통'으로 불렀다면, 서슬 퍼런 시절부터 국민 인권을 변호해 온 그는 '기본권통'이다. 현재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사형제 폐지 운동에도 오랜 기간 투신해 왔다.

김형태 변호사는 차별금지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에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7월 24일 법무법인 덕수 사무실에서 만난 김 변호사는 "양심의자유는 어떤 경우에도 보장받아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그런 걸 규제하는 법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그는 종교인들이 조금만 더 이성적으로 사안을 판단하고 분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은 김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형태 변호사는 국가가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한 사례들을 변호해 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형태 변호사는 국가가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한 사례들을 변호해 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개신교인을 자처하는 보수 성향 법조인들이 반동성애 진영에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최근에는 헌법 11조 1항 '평등권'이 차별금지법 입법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평등권은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이지, 국가가 개인과 개인 사이까지 개입해 평등을 강제할 수 없다는 논리다.

헌법 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행복추구권'이 먼저 나온다. 이어 11조 1항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평등권'이 나온다. 여기에 신체의자유(12조)까지, 이 세 가지 조항은 헌법이 명시한 다양한 기본권 중에서도 '기본적인 기본권'이다. 설령 실정법이 없더라도 이 세 가지는 보장돼야 한다. 모든 것에 적용되는 기본 질서라고 보면 된다.

헌법 10조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뒤에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나와 있다.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국가가 적극 노력할 의무를 명시한 것이다. 국가는 이를 침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입법·행정·사법을 통해 실현해야 할 의무도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의무 차원에서 봐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헌법이 국가기관만 구속하고 사인私人 간에 적용되지 않는 경우는… 글쎄, 찾아보기 힘들다.(웃음) 물론 헌법에 나오는 기본권은 개인이 국가에 요구하는 권리로 출발했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서 개인과 개인, 즉 기업주와 노동자, 건물주와 세입자 등 사인 간 영역에서 기본권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도 논의되기 시작했다.

우리 민법에서도 신의성실의원칙을 위반하거나 반사회질서 법률행위라고 판단하면 국가가 브레이크를 건다. 사인 간 계약이라고 해도 기본권은 보장돼야 한다고 국가가 법률로 근거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인 간 발생하는 일이니 국가는 이와 무관한 게 아니라, 사인 간 관계에서도 헌법에 명시한 기본권이 침해받으면 법을 통해 규율한다. 그러니 수많은 법이 존재하는 게 아니겠나.

국가의 존재 의무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다.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회에서 법을 만들고, 잘못하면 사법부가 처벌하고, 행정부는 복지를 구현한다. 이게 헌법이 국가에게 명령한 의무다. 그런데 왜 국가가 개인과 개인 관계에 개입하느냐고 하는 건 법적으로 논리가 맞지 않는 말이다.

- 그런데도 차별금지법이 양심의자유·종교의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 소원을 준비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양심의자유·종교의자유의 핵심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을 침해해서는 안 되고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동성 간 성행위를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를 인정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가톨릭 교리서에도 보면, 가톨릭교회는 동성애나 동성 결혼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추가로 이런 걸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고도 나와 있다. 일부 가톨릭 성직자도 가톨릭교회는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차별금지법을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개인이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과 차별금지법 제정은 완전 다른 이야기다.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실제 생활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자는 게 이 법안의 논지다.

- 이번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에 포함된 "특정 개인 및 집단에 대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광고 행위의 금지"가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목사의 설교가 '광고 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에, 결국 이 차별금지법에 의해 처벌받게 된다는 주장이다.

(헛웃음을 지으며) 여기에 나오는 '광고 행위'라는 것은 단순히 '널리 알리는 행위'가 아니다. 법률에 의해 광고라고 정해진 경우에만 해당된다. 이전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에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시한 평등법에도, 어떤 경우가 이 법에서 말하는 광고에 해당하는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설교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개신교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분명히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개신교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분명히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교회에서 하는 설교가 문제 되지 않더라도, 개신교 법인이 운영하는 교육기관에서 반동성애 설교나 교육을 하면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종교의자유가 침해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생각해 보자. 초·중·고는 대부분 국가 지원으로 운영한다. 국가가 사립학교에 자금을 지원하고, 학교는 국가 대신 아이들을 교육한다. 교육기관도 법인 정체성이 있으니 종교 행위를 해야겠다면 이를 일정 부분 보장해 줘야 하는 것은 맞다. 단, 같은 종교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 이를 강요하면 안 된다. 대학 같은 경우는 더 그렇다. 기독교 재단 대학이 많은데, 학생들은 거기가 미션스쿨이기 때문에 들어가는 게 아니다. 불교 신자 혹은 무신론자에게 개신교 채플에 참석해야만 학점을 주겠다고 하는 건 사인이 사인의 양심을 침해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만약 개신교계 사립학교가 이런 부분을 강제하는 정관을 가지고 있다면, 차별금지법으로 이 같은 부분을 수정하도록 규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별금지법 때문에 채플에서도 '동성애는 죄'라고 설교하지 못하게 될까. 예를 들어,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개신교인들이 예배를 계획했다. 같은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교리를 교육하고 신념을 강화한다고 한들 제재 대상은 아니다. 왜? 제재한다면 그건 반대로 개신교인들의 종교의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 예배에 개신교인만이 아닌 재학생 전부를 '의무적으로' 참석하게 한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 교회가 운영하는 사회복지 기관, 각종 시설 등의 고용과 서비스 등에서도 종교의자유를 침해받을 것이라는 주장은 어떻게 보는가.

같은 맥락이다. 사회복지 기관이나 요양 시설 등은 같은 세계관을 갖고 같은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만 이용하는가? 예를 들어, 교회가 국가의 위탁을 받아 어린이집을 운영한다고 하자. 그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사람 중에는 비신자도 있을 수 있다. 같은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세계관·사상·양심을 지닌 사람이 섞여 있는 경우에는 내 기본권만 주장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 개신교에는 허위·왜곡 정보를 바탕으로 혐오를 선동하는 반동성애 운동 집단이 있다. 이들은 '동성애 전문가'를 자처하면서 교회나 신학교 등에서 강의하거나, 유튜브 등에 영상을 게재하기도 한다. 이런 행동은 어떻게 될까.

정의당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이나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시한 평등법이나, 사실 모든 반대 의견을 극단적으로 처벌하자는 법이 아니다. 같은 종교 내에서 동성애를 죄라고 하는 것은 종교적 신념이니까 인정하는데, 그것을 공공 영역에서 표출하거나 전달하지 말라는 절충안을 제시한 거다. 나중에 시대가 더 진보하면 지금 법안도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현재 사회 발전 단계에서는 이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는 거다.

개신교인끼리 모여서 동성애자 욕하는 거 좋다. 그러나 최소한 남들과 섞여 있는 자리에서는 자신들의 신념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과학적으로 검증이 부족한 내용을 팩트인 것처럼 가장해 유튜브, 포털 사이트 등에 퍼트리는 일도 그런 차원에서 제재해야 한다. 그들의 행동은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로 특정 집단을 공격하는 일이지 않나.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외부적 표현 행위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믿어도 좋은데, 공개적인 장소에서 남에게 모욕을 주거나 차별하거나 피해를 끼치면 안 된다.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도 피해를 끼치는 것이다. 양심의자유·종교의자유는 절대적으로 존중해야 하지만, 타인에게 해를 가하면 용인될 수 없다. 이런 원칙을 가지고 차별금지법·평등법도 조문을 더 자세하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아간 논의를 해야 하는데, 허깨비를 만들어 막 두들기고 있으니 사회 전체가 비이성적인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김형태 변호사는 개인과 개인 간 기본권이 충돌할 때 한쪽 주장만 옳다고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 기본 정신에 맞지 않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김형태 변호사는 개인과 개인 간 기본권이 충돌할 때 한쪽 주장만 옳다고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 기본 정신에 맞지 않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한국 사회는 다문화·다종교 사회인데, 일부 보수 개신교 입맛에 맞지 않는 법안은 번번이 입법이 무산되고 있다. 가톨릭교인으로서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보는가.

가톨릭에도 남북 화해를 주장하는 주교들더러 '빨갱이'라고 부르며 물러가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기독교는 '사랑' 빼면 쓰러지는 건데. 그걸 실천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사회에 증오를 퍼뜨리고 있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만든 교리들도 시대가 바뀌면서 조금씩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 입맛에 맞는 것만 취사선택해 교리 자체를 증오의 도구로 사용하며, 거기에 사랑이라는 말만 붙인다.

지금 일부 개신교인이 보여 주는 반동성애 행동은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성'에 기인한다. '동성혼', '교육', '위헌' 등 다양한 쟁점을 들고 나오는데, 결국 내 이익을 만족시키느냐 아니냐에서 갈리는 것 같다. 내 사고·세계관·양심·종교가 옳으면, 다른 사람 것도 존중하는 게 기본 아닌가. 그런데 타인은 전혀 배려하지 않으면서 자기 권리만 주장한다. 내 말만 옳고 당신은 죽으라는 형국이니 공존이 불가능하다.

종교가 예전에는 '빨갱이' 카드를 썼다. 한데 지금은 트럼프가 김정은과 만나 악수하는 세상이다. 더 이상 반공주의로 신자들을 휘어잡을 수 없으니 동성애로 눈을 돌렸다. 종교 입장에서 향후 몇 년간 동성애는 훌륭한 타깃이 될 수 있다. 당분간은 교인들을 붙잡아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사회 변화를 못 따라가면 종교는 반드시 도태되고 무시당하게 될 것이다. 종교는 가능한 자기를 낮추고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 타인을 배려하고 울타리를 열어 사회를 합치는 기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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