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들이 기독교계 말고 맘카페에도 이런 카드 뉴스를 퍼 나르고 있어요. 내용을 보면 누구라도 뜨악합니다. 저는 교회가 세상의 약자 편이 되어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반대하는 엄마들이 내 아이들의 미래라며 여기에 연대하는 모습이 좀 당황스럽네요. 차별금지법 관련 팩트 체크가 필요해요."

제보자는 <뉴스앤조이>에 보낸 메시지에 '포차법(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폐해와 문제점'이라는 전단을 첨부했다. 이번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기 위해 교계 반동성애 진영이 주축이 돼 결성한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전국연합(진평연)이 제작한 것이다.

전단의 큰 글자만 대충 훑어봐도 충격적이다. △가정 파괴 △교육(자녀) 파괴 △종교(신앙) 파괴 △직업 파괴 △성별 파괴로 카테고리를 나눴다. 제목은 차별금지법의 문제점인데, 나열한 사례가 차별금지법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자세한 설명은 없다.

반동성애 진영의 이런 운동 방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어 현실을 왜곡하고,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여론을 선동한다. 읽는 이에게 충격을 줄 수 있도록 해외의 극단적 사례를 소개하고, 이것이 한국에서도 곧 일어날 일인 것처럼 공포심을 조장한다.

지난 '한겨레가짜뉴스피해자모임 동성애 관련 해명 자료 분석' 시리즈처럼, <뉴스앤조이>는 진평연이 제시한 사례들을 팩트 체크해 봤다. 해당 사건들이 어떤 맥락에서 진행됐는지,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이 사건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보고, 누군가의 의도대로 해석하고 오염된 내용이 아닌 정확한 사실 그대로를 전달한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진평연이 주장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폐해와 문제점' 마지막 카테고리는 '성별 파괴'다. 대략적 취지는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여성과 남성 간 차이가 모호해진다는 이야기다. 이 역시 부정확한 정보가 많다.

우선,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동성 결혼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은 2020년 한국에서도 법적 성별 전환은 가능하다는 사실을 염두해야 한다. 트랜스젠더는 차별금지법과 무관하게 한국에서도 인정되고 있다. 그런데도 진평연은 '성별 파괴'로 분류한 5개 중 3개에서 '여성으로 인식하는(주장하는) 남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트랜스젠더 존재를 부정하는 표현이다.

물론 보수 성향 개신교인들은 신념을 이유로 트랜스젠더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개신교인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에서도 인정되지 않는 건 아니다. 개인의 신념 영역과 공적 사회 영역을 구분해 생각해야 한다.

1. 여성으로 인식하는 남성이 여성 격투기 경기에 출전하여 상대방 여성 선수에게 뇌진탕과 두개골 골절상을 입힘 <CGN투데이> 2019. 2. 14.

이 뉴스는 사실이다. 미국 여성 격투기계에서 유명했던 트랜스젠더 팰런 폭스(Fallon Fox) 이야기다.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난 폭스는, 어렸을 때 자기 자신을 게이로 생각했을 뿐 트랜스젠더 개념이 있는지 몰랐다. 해군에 복무하고 여자 친구와 결혼해 아이도 낳은 그는 뒤늦게야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았다. 결국 수술비를 모아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했고, 이후 격투기에 도전한다.

폭스가 여성 격투기 세계에 뛰어들자 논란이 일었다. 격투기 해설가와 선수들은 이미 폭스가 남성으로서 2차 성징까지 거쳤고, 뼈 밀도 등 신체 구조가 생물학적 남성의 형태이라서 불공정한 게임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문제가 된 사건은 2014년 타미카 브렌츠라는 선수와의 시합이었다. 브렌츠는 이 경기에서 두개골 골절상을 입고 이마를 7바늘 꿰매는 등 부상을 입었다. 이후 폭스는 다른 여성 선수와의 싸움에서 패한 후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은퇴 후에도 TERF(트랜스젠더를 인정하지 않는 페미니즘의 한 부류) 진영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트랜스젠더 경기 출전 여부는 차별금지법이 아닌 각 협회와 스포츠 기구 심사에 따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04년 트랜스젠더의 경기 참여를 허용한 데 이어, 2016년에는 성전환 수술 여부와 상관없이 트랜스젠더로서 경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했다. 여성에서 남성(FTM)으로 전환한 경우에는 아무 제약이 없다. 남성에서 여성(MTF)으로 전환한 경우에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수치를 일정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2. 여성이라고 주장하는 남성이 여성 교도소로 이감되어 네 명의 여성을 성추행 <연합뉴스> 2018. 9. 10.

이 사건은 '가짜 트랜스젠더' 사건으로 영국에 알려졌다. 20년 전 아동 성추행, 2003년 여성 강간 전과를 지닌 남성 스티븐 우드는 2017년 노인을 칼로 찔러 교도소에 들어갔다. 그는 수감 직후 자신이 트렌스젠더 정체성을 가진 여성 캐런 화이트라면서 여성 교도소에 수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52세이던 그는 2017년 수감 당시 법적으로 남성이었으나 여성 전용 교도소에 수감됐다.

교도소 수감 석 달간 그는 최소 재소자 두 명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15년 전 자신이 성폭력을 저질렀던 여성에게도 편지를 보내는 등 기행을 일삼다 결국 정체성을 의심받게 됐다. BBC 보도에 따르면, 영국 법원은 화이트가 '정체성 가면'(transgender persona)을 이용해 다른 재소자들을 괴롭혔다고 판단했다. 화이트는 현재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 사례 역시 대부분 사실이지만 차별금지법과는 관련이 없고, 오히려 법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허점을 드러낸 계기가 됐다. 영국 법무부는 재소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신경 써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했다고 사과하고, 2019년 트랜스젠더 전용 교도소를 만들었다.

뉴욕시는 각 나라 언어로 된 차별 방지 브로슈어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31개 중 하나의 성별을 '고르라'는 게 아니라,  그만큼 다양한 성 정체성이 있다는 점을 알리고 이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뉴욕시인권위원회 브로슈어 갈무리
뉴욕시는 각 나라 언어로 된 차별 방지 브로슈어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31개 중 하나의 성별을 '고르라'는 게 아니라,  그만큼 다양한 성 정체성이 있다는 점을 알리고 이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뉴욕시인권위원회 브로슈어 갈무리

3. 뉴욕, 31개 젠더 중 원하는 성별을 선택하고, 고의로 트랜스젠더가 선호하는 대명사를 사용하지 않을 시 벌금에 처할 수 있음 <Lifesite> 2016. 5. 27.

진평연이 써 놓은 내용만 보면 뉴욕시에서 31개 젠더 중 원하는 성별을 선택하라고 하는 것 같지만, 사실과 다르다. 뉴욕시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성별 정체성·표현에 대한 시행 가이드'를 찾아봐도 31개 중 하나를 고르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가이드 2조 '정의'에는 이와 관련한 예시가 다양하게 나오는데, 꼭 31개를 명시한 것도 아니다. 뉴욕시는 시스 젠더, 젠더, 젠더 표현, 젠더 정체성, 논 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카테고리를 설명하며 예시로 MTF(male to female), 안드로진(남성과 여성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 사람) 같은 사례들을 나열했을 뿐, 1번부터 31번까지 번호를 붙이고 이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고 하지는 않았다.

뉴욕시인권위원회는 전통적인 호칭인 He/She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은 'Ze'로 부를 수 있다는 점도 안내했다. 이는 트랜스젠더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별도 호칭으로 불러 주기를 원하는데도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거부하면 인권법에 따라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뉴욕시는 '고의적이거나 반복적으로 거절하는 경우'라고 명시하고, 단순 실수는 벌금 부과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뉴욕시인권법(NYCHRL)이라 불리는 이 법 취지는 고용과 서비스 이용 등의 영역에서 인종, 장애,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등 개인의 사정과 환경을 이유로 불합리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과 취지는 비슷하지만, 한국 차별금지법안에는 트랜스젠더를 별도 호칭으로 불러야 한다든지 하는 조항 자체가 없다.

4. 미국 워싱턴 D.C., 여자 화장실 들어간 남자에게 신분증 요구하자 7000달러 벌금 <The Daily Signal> 2019. 1. 24.

'여자 화장실 들어간 남자'라는 표현부터 틀렸다. 이 사건은 미국 LGBT 인권 운동가이자 트랜스젠더 당사자인 샬럿 클라이머(Charlotte Clymer)의 일화로, 2018년 6월 Cuba Libre 식당을 이용한 클라이머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자 남성 종업원이 뒤따라와 클라이머를 제지하고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요구한 사건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이 식당 직원은 클라이머를 찾기 위해 여자 화장실을 뒤졌으며 클라이머가 나오자 계속해서 신분증을 요구했다. 클라이머는 신분증을 제시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D.C.의 인권법을 직원들에게 제시했다. D.C. 인권법에 따라 '개개인의 성별 정체성에 근거한 화장실 이용을 존중해야 한다'고까지 설명했지만, 직원들은 막무가내였다.

부당하게 차별을 받았다고 느낀 클라이머는 경찰을 불렀고, 결국 이 식당은 2019년 1월 벌금 7000달러를 부과받았다. D.C. 법무장관은 "모든 개인은 자기 자신의 성적 지향에 맞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Cuba Libre도 성소수자들에게 의미 깊은 6월(pride month)에 이런 일이 벌어져 유감이라며 사과했고, 공동대표는 문제를 일으킨 해당 직원을 해고했으며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고충을 이해하는 인식 개선 교육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남자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고 여자가 남자 화장실에 들어간다는 시각으로 볼 게 아니다.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이용하는 공중화장실을, 트랜스젠더들은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고충 차원에서 봐야 한다.

한국에서도 트랜스젠더들은 화장실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2019년 <IZE>에 기고한 글에서 "2014년 국가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41.1%가 차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화장실 이용을 포기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미국의 조사에서는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21.5%가 화장실 문제로 공공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누군가에는 너무도 당연한 화장실 이용이 누군가에게는 고심 끝에 도전해야 하거나 결국에는 포기해야 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썼다.

국가인권위원회나 장혜영 의원(정의당)이 내놓은 법안에는 공통적으로 상업·공공 시설 및 보건·의료 서비스 제공에서의 차별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성소수자들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성중립 화장실' 설치가 활성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것도 강제적인 것은 아니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는 남녀 화장실을 구분하도록 하고 있어 제도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진평연은 트랜스젠더의 공중 화장실 이용까지 '차별금지법의 폐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로 트랜스젠더들은 이러한 충돌을 우려해 화장실을 안전하게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평연은 트랜스젠더의 공중 화장실 이용까지 '차별금지법의 폐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로 트랜스젠더들은 이러한 충돌을 우려해 화장실을 안전하게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 캐나다에서 더 저렴한 차 보험료율 받기 위해 법적으로 성별 전환한 남성 <서울신문> 2018. 7. 31.

이 뉴스도 사실이지만 차별금지법과는 관계가 없다. CBC 2018년 7월 보도를 보면, 캐나다 앨버타에 사는 23세 데이빗은 25세 이하의 남성 차 보험료가 4517캐나다달러로, 또래 여성(3423캐나다달러)보다 더 비싼 데 불만을 품고 '법적 성별'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한다는 진단서를 담당 의사에게 발급받았다. "나는 나 스스로를 여성으로 느낀다고 말하기만 하면 됐다"고 자랑했다. 데이빗은 진단서를 지방 정부에 제출한 다음 법적 성별을 바꾸고, 여성에게 적용되는 보험료를 적용받았다. 그는 CBC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보험사를) 이겼다고 생각한다. 나는 100% 남자이면서 법적으로는 여자다. 나는 더 저렴한 보험료 때문에 이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차별금지법의 폐해가 아닌, 보험사에 불만을 품은 한 사람의 기행으로 봐야 한다. 데이빗 사례를 두고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도 반발했으며, 캐나다 신민당(NDP) 스테파니 맥린 의원(MLA)은 "법의 허점을 이용한 정도가 아니라 형사처벌 대상"이라며 "최대 14년 형에 처해지는 위증죄 소지가 있다"고 경고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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