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총연합이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와 전혀 다른 여론조사 결과를 내놨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한국교회총연합이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와 전혀 다른 여론조사 결과를 내놨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공동대표회장 김태영·류정호·문수석)은 9월 2일 '차별금지법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응답자 비율은 40%에 그치고, 반대 의견이 48%, 무응답이 12%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가 나오자 <국민일보>·<한국기독공보>·<크리스천투데이> 등 보수 교계 언론들은 여론조사를 '제대로' 하니 역시 반대 의견이 더 높게 나왔다며 일제히 한교총 발표 내용을 받아썼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최영애 위원장)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와 확연히 다른 결과다. 인권위는 지난 6월 '차별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에서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에 국민 88% 이상이 동의했다며 국민 다수가 필요에 공감하는 차별 금지 법안 제정을 촉구하고, 국회에 '평등 및 차별 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 시안을 제시했다. 이 조사에서는 '정부 차원의 종합적 대책 수립'(87.2%)과 '악의적 차별에 대한 형사처벌'(86.5%)에도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교총은 자신들의 조사 결과를 내세우며, 인권위가 잘못된 조사로 부정직하게 국민 여론을 호도했다고 주장했다. 인권위가 차별금지법 세부 사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차별 금지'라는 사회 보편 가치에 호소해 누구나 찬성할 수밖에 없는 조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한교총은 인권위 조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법안에 대한 찬반 의견을 모두 제시하고 응답자가 법안 내용을 인지하게 한 후 찬반을 묻는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한교총은 인권위가 잘못된 조사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한교총은 인권위가 잘못된 조사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한교총, 설문 전 찬반 의견 제시
반대 의견은 허위·왜곡·추측
"형식상 공정성 갖췄지만
찬반 균형 있게 제시했는지 의문"

한교총이 형식상 찬반양론에 관한 사전 지식을 응답자에게 제공한 상태에서 설문을 진행한 것은 맞다. 문제는 찬반 의견의 균형이 적절한지, 제시한 반대 의견이 타당한지에 있다. 아래는 한교총이 질문지에 명시한 찬반 주장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주장>

1.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2. 차별을 정한 개별법이 존재하나, 개별법만으로는 다양한 차별 현실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

3. 모든 차별의 문제를 규율하기 위한 개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4. 성별, 나이, 성적 지향 등 모든 차별에 대한 일관되고 통일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5.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인 우리나라는 인권이사회 권고인 차별금지법 제정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주장>

1. '차별'의 판단 기준이 모호하고 주관적이어서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자유, 표현의자유, 영업의 자유가 침해되고 위축된다.

2. 현행 33개 이상의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충분히 있는 상태이다.

3. 국민적 합의가 미흡한 상황에서 동성애자와 성전환자 등 소수자의 평등권을 우위에 둠으로 역차별과 건전한 가족 체계의 파괴가 우려된다.

4. 피해자가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면, 가해자는 그러한 차별 행위가 없었다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점 등을 증명하지 못하면 거액의 손해배상, 벌금, 형사처벌을 받게 되므로 '묻지 마 고발'이 남발되어 사회적 갈등이 초래될 위험이 크다.

5. 다양한 인종과 종교들이 혼재해 있는 유럽의 경우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이 높지만,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도 연방법 차원에서 이 법률이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한교총 조사가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구색은 갖췄다는 데 동의했지만, 그 내용이 균형 있는지에는 의문을 표했다. 한 여론조사 기관 A 처장은 9월 10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조사에 앞서 찬반을 묻는 것은 질문지를 구성하는 하나의 형식상 좋은 예다. 그러나 한교총이 제시한 찬반 양측 주장에 등가성이 존재하는지는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같은 사안에 대한 찬반 주장을 제시해야 하는데, 서로 다른 말을 하는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B 교수는 "구성 자체가 찬성 입장은 비교적 짧고 무미건조하게 제시한 반면, 반대 입장은 설득하려는 듯이 장황하게 늘여 썼다"고 말했다. 그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경우의 악영향을 어필하는 질문이 대다수고, 차별금지법이 없어서 발생하고 있는 실제 만연한 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질문이 전반적으로 법안 제정을 반대하는 한교총의 의중을 반영하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한교총이 제시한 찬성 주장은 객관적 사실이거나 합리적 의견인 데 반해, 반대 주장은 대부분 법안 취지에 대한 몰이해와 억측에 기반해 있다. '소수자의 평등권을 우위에 둬 역차별이 발생한다'는 왜곡된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쓰거나, 법안에 있는 시정 절차를 생략한 채 '거액의 벌금', '묻지 마 고발' 등과 같은 자극적인 표현을 써 공포심을 조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한교총 조사에는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남성의 여성 시설 이용(반대 77%) △자녀 학교에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성전환자 담임교사 배정(반대 59%) △유치원 및 초·중·고 학생에게 성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반대 65%) 등 반대 응답을 부추기는 자극적 상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교계 언론이 이 조사를 아무 비판 없이 보도한 데 반해, <연합뉴스>·<뉴시스> 등은 이 조사를 '극단성 질의 논란'이라고 보도했다.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총무 민김종훈(자캐오) 신부는 9월 3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한교총이 '의도가 분명한 질문'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가령 '한국 개신교 행태에 대한 설문 조사'를 하면서 "당신은 부자지간이라는 이유로 그리스도교 정신에 어긋나는 세습을 '하나님 뜻'으로 여기는 교회에 출석하고 싶나요? 당신은 '다양한 유형의 성폭력'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자는 교회에 출석하고 싶나요? 당신은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안전 대책 없이 대규모 밀집 집회를 추진한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꼬집었다.

한교총은 자신들이 진행한 여론조사가 방법론상 공정하다고 주장했으나 의도가 짙은 설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한교총은 자신들이 진행한 여론조사가 방법론상 공정하다고 주장했으나 의도가 짙은 설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인권위 설문 조사는 편향성 찾기 어려워
한교총 조사서도 '차별 금지'에는 89% 동의
"차별 금지 대원칙에 국민적 합의 이룬 셈"

한교총이 이번 설문 조사를 발표하며 내놓은 결론 중 하나는 정부 차원의 공론 조사(찬반이 뚜렷한 사안에 있어,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은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공론을 형성하는 조사 방식 - 기자 주)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80% 이상이 차별을 막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발표한 인권위 설문 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교총 관계자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공론 조사를 하면 우리가 내놓은 수치에 훨씬 근접하게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막대한 세금을 사용하는 국가기관인 인권위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조사 결과를 가지고 차별금지법 지지를 위해 해석·활용해서는 안 된다. 세부적인 법안 내용을 제공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교총 조사 자문을 맡은 여론조사 기관 C 대표는 "애초에 의도성이 없는 설문 조사는 없다지만, 인권위가 설문 조사 결과를 저렇게 사용하면 안 된다. 인권위 의뢰를 받은 여론조사 기관이 (인권위에게) 당한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렇다면 인권위 설문 조사도 편파적으로 진행됐을까. 다음은 인권위 설문 조사 질문지 중 일부다. 인권위는 문항마다 '매우 찬성한다(동의한다)'부터 '매우 반대한다(동의하지 않는다)'까지 네 단계로 응답하도록 했다.

- 귀하는 우리 사회에서 과거에 비해 차별이 심화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귀하는 다음과 같은 생각에 얼마나 동의하십니까?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과 같은 성소수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여성, 장애인, 아동, 노인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 다음은 차별에 대한 대응 정책입니다. 귀하께서는 이들 개별 정책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차별 시정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인권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

△차별에 대한 국민 인식 개선을 위해 교육과 캠페인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고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 등 차별 시정 기구의 권한을 강화하여야 한다.

△악의적 차별 행위에 대해서는 벌금형, 징역형 등 보다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

△정치인·언론·온라인미디어 등의 차별·혐오 표현이나 행위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

질문을 보면, 인권위는 한국 사회 차별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묻고 있다. 문체도 평이하며, 특정 상황을 가정해 가부 선택을 강요하는 편향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인권위는 국민 대다수가 차별을 반대하고 정부가 차별을 바로잡는 데 개입해야 한다는 결과를 기반으로 평등법을 제안했다. 인권위가 내놓은 평등법 시안 중 조사 결과와 상반된 내용이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으나 그런 내용도 없다.

인권위 조사를 진행한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 관계자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표본 등 조사 설계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는 "의뢰 기관이 제공한 질문지를 토대로 타당성을 검토하고 여론조사를 성실히 실시해 결과를 전달했다. 조사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느냐는 의뢰 기관이나 언론에서 다룰 일이지, 우리가 평가·관여할 바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교총이 실시한 조사에서도 '누구든지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보편 가치를 묻는 항목에는 응답자 89%가 동의해 인권위 조사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B교수는 "인권위나 한교총 조사 결과를 보면, 차별 금지에 대한 국민적 인식은 전반적인 합의를 이룬 셈"이라며 "인권위가 차별 금지 대원칙에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평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라고 촉구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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