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이들이 기독교계 말고 맘카페에도 이런 카드 뉴스를 퍼 나르고 있어요. 내용을 보면 누구라도 뜨악합니다. 저는 교회가 세상의 약자 편이 되어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반대하는 엄마들이 내 아이들의 미래라며 여기에 연대하는 모습이 좀 당황스럽네요. 차별금지법 관련 팩트 체크가 필요해요."

제보자는 <뉴스앤조이>에 보낸 메시지에 '포차법(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폐해와 문제점'이라는 전단을 첨부했다. 이번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기 위해 교계 반동성애 진영이 주축이 돼 결성한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전국연합(진평연)이 제작한 것이다.

전단의 큰 글자만 대충 훑어봐도 충격적이다. △가정 파괴 △교육(자녀) 파괴 △종교(신앙) 파괴 △직업 파괴 △성별 파괴로 카테고리를 나눴다. 제목은 차별금지법의 문제점인데, 나열한 사례가 차별금지법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자세한 설명은 없다.

반동성애 진영의 이런 운동 방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어 현실을 왜곡하고,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여론을 선동한다. 읽는 이에게 충격을 줄 수 있도록 해외의 극단적 사례를 소개하고, 이것이 한국에서도 곧 일어날 일인 것처럼 공포심을 조장한다.

지난 '한겨레가짜뉴스피해자모임 동성애 관련 해명 자료 분석' 시리즈처럼, <뉴스앤조이>는 진평연이 제시한 사례들을 팩트 체크해 봤다. 해당 사건들이 어떤 맥락에서 진행됐는지,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이 사건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보고, 누군가의 의도대로 해석하고 오염된 내용이 아닌 정확한 사실 그대로를 전달한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과 국가인권위원회(최영애 위원장)가 제시한 평등법은 교육기관 및 직업훈련 기관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제재한다. 크게 △교육 기회의 차별 금지 △교육 내용의 차별 금지로 나뉜다.

'교육 기회의 차별 금지'는 말 그대로 모든 이가 평등하게 교육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인종, 성별,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신분을 이유로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반동성애 진영과 보수 교계도 이걸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교육 내용의 차별 금지' 부분에는 크게 반발한다. "성별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나 편견을 교육 내용으로 편성하거나 이를 교육하는 행위", "그밖에 교육 내용에 있어 성별 등을 이유로 불리하게 대우하거나 현존하는 차별을 유지·심화하는 행위"(인권위 시안에는 없음)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앞으로 학교에서 반동성애 강연을 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한다.

진평연이 '교육 파괴'로 언급한 사례도 사건의 맥락을 제거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내세운 경우가 많았다. 사건들이 어떤 맥락에서 진행됐는지,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이를 한국의 차별금지법과 엮는 건 무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하나 짚어 보자.

1. 최근 10년간 영국에서 트랜스젠더라고 인식하는 청소년이 40배 증가했고, 여자 청소년이 남성이 되려고 유방 절제 수술 받은 비율이 2배 증가 CBN 2018. 9. 19.

법적 성별과 자신이 느끼는 성별이 다르다는 '성별 위화감'(Gender Dysphoria) 진단을 받은 사람은, 호르몬 투여, 성별 정정 수술 등을 통한 성별 정정 과정을 거친다. 개신교 신념에 맞는지 틀린지를 떠나, 현재 전 세계 정신과학회에서 통용되는 기준이다. 차별금지법이 아직 제정되지 않은 한국에서도 이 기준에 따라 성별을 정정할 수 있다.

미국소아과학회(AAP) 역시 '성별 위화감'을 겪는 아동·청소년이 의료적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했다. AAP는 미국과 영국에서 실제 상담 사례, 성별 전환 수술 등을 종합해 만든 것이다. 성별 위화감을 겪는 아동은 자살·우울증을 겪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를 완화하기 위해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정리했다. 이 정책은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진평연이 인용한 CBN(Christian Broadcasting Network)은 미국 복음주의 개신교 계열 방송사다. CBN은 이 정책을 수립하기까지 근거가 된 통계를 가지고 최근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증가한 것이 문제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진평연은 40배 증가라고 했지만, 원문은 '4000% 증가'라고 더 자극적으로 표현했다.

수치로만 따지면 사실이다. 영국에서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인식하는 청소년이 2009년에 97명이었고 2017~2018년에는 2510명이 됐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트랜스젠더리즘'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성 정체성에 의문을 갖는 아이들이 트랜스젠더가 존재함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호르몬 요법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는 논리다.

영국 반동성애 운동가들은 2010년 평등법이 제정되면서 트랜스젠더가 증가하기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고려대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2015년 <보건사회연구>에 발표한 논문 '한국 트랜스젠더 의료 접근성에 대한 시론'에 따르면, 미국에서 진행된 여러 조사 결과로 볼 때 트랜스젠더는 전체 인구 중 약 0.3%를 차지한다. 평등법 때문에 트랜스젠더가 증가한 게 아니라, 사회가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고 있기 때문에 트랜스젠더가 가시화한다고 보는 게 더 논리적이다.

진평연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교육 파괴'가 발생할 것이라 주장했다. 해외 사례를 들며 학생과 교사가 충돌할 것이라고도 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진평연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교육 파괴'가 발생할 것이라 주장했다. 해외 사례를 들며 학생과 교사가 충돌할 것이라고도 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2. 미국 캘리포니아의 낙태 및 동성애 옹호 교육을 부모가 거부할 수 없다 <Lifesite> 2018. 4. 19.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립학교 성교육 이슈는 지역 내 한인 개신교인들과도 연결돼 한국에 많이 알려진 사건 중 하나다. 현재 미국에서 진행되는 일이 한국에서도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발생할 것이라는 식으로 소개된다. 차별금지법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데 많이 사용되는 사건 중 하나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성교육 관련 법안이 나올 때마다 몸살을 겪는다. 최종적으로 2019년 통과된 'Health Education Framework'는 2016년 처음 제시됐다. 진평연이 쓴 것처럼 단순히 '낙태 및 동성애 옹호 교육'이 아니다. UNESCO가 제시하는 '포괄적 성교육'(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 내용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후 개정안이 나올 때마다 일부 복음주의 개신교인 학부모의 극렬한 반대에 시달렸다.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적나라한 성교육을 받으면 불필요한 성적 호기심·상상력을 자극해 아이들을 '조기 성애화'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반동성애 진영이 성교육을 비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법안 하나가 발표될 때마다 일부 한인 교인들은 연합해 반대 서명을 돌리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운동도 했다. 한인 교회는 예배당을 열어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을 돌봤다. 현재 한국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운동에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것처럼 미국에서는 훨씬 전부터 비슷한 방식으로 반대 운동이 전개돼 왔다.

동성애에 대해서도 가르치기는 하지만 그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08년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미국 전역에서 합법화하기 7년 전부터 동성 커플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결혼한 동성 커플은 자녀를 입양·출산할 수 있다. 당연히 유치원·학교에는 동성 부부 자녀들이 있다. 개인이 종교적 신념으로 동성애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사회에는 동성애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같은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차원에서 가르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성교육은 현재 캘리포니아주 공립학교에서 실행하고 있다. 의무 사항도 아니다. 주 교육 당국은 각 교육구 혹은 학교에 선택할 권한을 줬다. 그럼에도 일부 교인은 결국 성소수자 인권 단체 압력 때문에 학교가 이 교육안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며 반대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을 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위에서 언급했듯 "성별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나 편견을 교육 내용으로 편성하거나 이를 교육하는 행위"와 "그밖에 교육 내용에 있어 성별 등을 이유로 불리하게 대우하거나 현존하는 차별을 유지·심화하는 행위"를 금지할 뿐이다.

최근 반동성애 진영 몇몇 강사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소위 '성경적 성교육'은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공교육 현장에서 동성애를 죄라고 가르치려고 하기 때문이다. <뉴스앤조이>가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이런 성교육은 시대착오적이며 성을 더욱 음지화하는 부작용이 있다.

영국의 한 여학교는 사회의 다양한 이슈는 다 가르치면서 성소수자 이슈는 전혀 교육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영국의 한 여학교는 사회의 다양한 이슈는 다 가르치면서 성소수자 이슈는 전혀 교육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3. 영국 학교, 3세 아이에게 동성애와 성전환 가르치지 않아서 학교 폐쇄 위기 <Lifesite> 2017. 6. 28.

이 사건 역시 '아' 다르고 '어' 다른 경우다. "동성애와 성전환을 가르치지 않아서" 폐쇄 위기를 맞은 것은 아니다. 영국 교육부가 권고하는 성교육을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 감사에서 이에 대한 지적을 받은 것이다.

비시니츠여학교(Vishnitz Girls School)는 정통 유대주의 학교로, 3살부터 11살까지 아이들 200여 명을 가르친다. 학교는 이전에도 다른 문제와 관련해 시정 명령을 받았는데, 2017년에는 아이들에게 성소수자에 대해 전혀 교육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교육 당국은 학교의 이런 방침이 이미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성적 지향을 배우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기회를 박탈한다고 했다. 이것과 함께 학교가 지적받은 다른 사안들도 시정하지 않을 경우 인가를 취소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학교는 교육부 지적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학교 감사 기관 OFSTED는 2019년 비시니츠여학교가 모든 면에서 기준을 충족한다고 평가했다.

진평연은 한국에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3세 아이'에게도 동성애와 성전환을 '가르쳐야' 할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에는 어떤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는 필수 조항이 없다. 아이들에게 이런 내용을 가르치더라도, 이는 영국 교육부가 언급한 것처럼 "이미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성적 지향을 배우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라는 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

4. 캐나다 연방대법원, 동성애 반대하는 대학에 대한 로스쿨 불허를 인정 <뉴스앤넷> 2018. 6. 18.

이 뉴스 역시 진평연이 '동성애 반대하는 대학'이라는 내용만 취사선택해 내세운 경우다. 이 사건은 학교 손을 들어 주었던 1·2심을 캐나다 연방대법원이 뒤집어 주목을 받았다. 사건 요지는 이렇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 있는 트리니티웨스턴대학교는 복음주의 개신교 학교를 표방한다. 이들은 새롭게 로스쿨을 개원하면서 입학생들에게 '언약서'에 서명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언약서는 로스쿨에 재학하는 3년 동안 학교 캠퍼스 안은 물론 사적 공간에서도 '남성과 여성이 맺은 혼인의 신성함을 훼손하는 성관계'는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는 내용이다.

로스쿨 개원 허가 권한을 갖고 있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변호사협회는 언약서 서명 의무화가 미혼과 성소수자 학생들에게 불공평한 장벽을 세우는 일이라 판단했다. 회원 투표까지 간 끝에 변호사협회는 트리니티웨스턴대학교 로스쿨을 인가할 수 없다고 결의했다.

학교는 종교의자유를 내세워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모두 학교가 이겼다. 법원은 변호사협회 결정이 학교의 종교의자유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 데 비해, 성소수자들이 변호사업에 접근할 권리에 미치는 영향은 실질적으로 미미하다며 변호사협회 결정이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캐나다 연방대법원은 종교적 행동 수칙을 따르는 기독교 환경에서 법을 공부하는 데 '의무적 언약 이행'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건 아니라고 봤다.

한국 차별금지법은 향후 기독교 종립 학교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한동대·숭실대 등 기독교계 사립대학은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해 여러 차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차별 시정 권고를 받았으나 이행하지 않았다. 두 대학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곳이기 때문에, 특정 학생을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 대우할 경우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다. 학교 지도부가 생각하는 신념을 계속 지키려면 정부 지원을 받지 않으면 된다.

'머레이'라는 이름의 학생은 학교에서 선생님과 대화하는 장면을 몰래 녹화해 온라인에 게시했다. 이 사건 이후 학교는 머레이를 다른 학교로 강제 전학시켰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머레이'라는 이름의 학생은 학교에서 선생님과 대화하는 장면을 몰래 녹화해 온라인에 게시했다. 이 사건 이후 학교는 머레이를 다른 학교로 강제 전학시켰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5. 영국에서 성별은 2개라고 말했다가 수업 중 쫓겨난 학생, 결국 퇴학당함 <Lifesite> 2019. 7. 5.

이 역시 사건의 전체 맥락보다는 일부분만 떼서 썼다. '머레이'라 불리는 학생은 학교에서 교사와 논쟁하는 장면을 촬영해 온라인에 유포했다. 머레이는 '젠더'에는 '남성'(male)과 '여성'(female)만 있다고 주장했고, 교사는 교육부 커리큘럼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고 맞섰다.

논쟁이 계속되자 머레이는 수업을 끝마치지 못하고 쫓겨나야 했다. 약 30분이 지난 후 교사가 머레이를 찾아와 대화를 시작했다. 머레이는 이 대화를 촬영했다. 머레이는 자신을 쫓아낸 것이 포용적이지 않다고 주장했고, 교사는 머레이의 주장이 포용적이지 않다고 했다. 머레이와 교사가 나눈 대화는 그대로 녹화돼 인터넷 사이트 '레딧'에 올라갔고 이후 수만 회 공유됐다.

머레이는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이후 머레이는 한 블로거와의 통화에서 자신이 "두 개의 성만 있다고 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추방됐다"고 전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학교는 비판을 받았다. 학생에게 소명의 기회도 주지 않고 추방했다는 것이다.

학교와 지역 교육청은 머레이에게 소명 기회를 줬지만 그가 응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지역 교사 노조 대표는 머레이가 처음부터 이 사건을 이슈화할 목적을 갖고 있었으며, 해당 교사는 모든 사람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의견의 다양성을 요청한 것뿐인데 이런 결과가 발생했다고 했다. 지역 교육청은 머레이가 다른 학교에서 계속 학업을 이어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맥락을 보면 머레이는 차별금지법 때문에 퇴학당한 게 아니다. 그런데도 진평연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한국에서도 이 같은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이유로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하면 안 된다는 게 주목적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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