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신학자 모임 '대구와카레'가 발행하는 신학 잡지 <타우>에서 진행한 기획 토론 '차별금지법과 한국교회' 토론회 내용입니다. 토론회는 새길기독사회문화원에서 2020년 8월 14일 열렸으며, 토론자로는 이동환 목사(수원영광제일교회), 이은혜 기자(<뉴스앤조이>),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 자캐오 신부(길찾는교회), 정경일 원장(새길기독사회문화원), 정혜진 연구실장(기독여민회)이 참여했습니다. 이 글은 <타우> 3호에도 실렸습니다. - 편집자 주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어제와 오늘의 노력

정혜진 / 모두 바쁘실 텐데 흔쾌히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한자리에서 뵈니 참 좋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차별금지법과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려고 모셨습니다. 우선, 각 토론자에게 첫 질문을 드릴 텐데, 각자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활동으로 운을 떼며 이야기를 시작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이동환 목사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곧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에서 재판을 받으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차별금지법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사건인데, 목사님의 심경을 들으면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이동환 / 작년 8월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 임보라 목사님, 김돈희 신부님과 함께 축복식을 했는데, 두 분은 아직 무사하시고,(웃음) 저는 제가 속한 교단에서 고발을 당했습니다. 6월에 재판에 회부된 후 지금 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8월 21일)에 첫 재판이 있습니다. 처음엔 굉장히 당황스럽고 무서웠는데, 함께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어요.

대책위원회 분들과 '이동환의 구명'을 넘어 감리회 내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목회적/신학적 논의를 시작하고, 소위 '동성애 처벌법'을 고쳐 내야겠다는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어요. 재판을 앞두고 많은 분들이 성명서에 연서명도 해 주시고, 변호인단에도 합류해 주셨고요. 자기 이름 걸고 그렇게 해 주기가 쉽지 않은데, 변호사 아홉 분, 목사 서른네 분으로 공동변호인단이 꾸려졌어요. 감사한 마음으로 재판을 차분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혜진 /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도 감리회 본부 앞에서 이동환 목사님이 기자회견을 하실 때 함께했는데, 그날 발언이 굉장히 진솔해서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 후에도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하셨는데, 계속해서 차별금지법 지지 입장을 밝히셨어요. 그 기자회견이 있고 며칠 후에 정의당 장혜영 의원의 차별금지법 발의가 있었잖아요? 목사님의 기자회견이 이 국면을 열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시다시피 6월 28일에 장 의원이 발의했고, 그 다음 주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의견 표명으로 힘을 실어 주면서 차별금지법 논의가 우리 사회에서 급물살을 타고 있어요. 사실, 이것이 처음은 아니고, 노무현 정권 때부터 추진되어 오던 건데, 계속 실패해 오다가, 이번에는, 제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에너지가 모인 것 같아요. 이번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이런 마음, 이런 에너지로 활동하는 느낌이 들어요. 지금까지의 과정을 어느 분이 간단하게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자캐오 / 임보라 목사님이 산증인이시죠.

임보라 / 말씀하신 것처럼, 노무현 정부 때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가 있었는데, 그때도 부침이 많았어요. 재계와 교계에서 논란이 많았고, 결국 일곱 개 조항을 삭제하고 '~ 등등'으로 표기한 채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성소수자 인권 단체에서 우리는 ‘~등’이냐고 반발하면서 무산되었죠. 그 후에는 잘 아시다시피 법무부 발의, 국회의원 발의 움직임만 있으면 난리가 났죠. 홍성수 교수가 쓴 <말이 칼이 될 때>(어크로스) 중 혐오 표현, 정치의 역할 부분에 잘 정리되어 있어요.

2007년 당시 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조직에는 참여하지 않았고, 그리스도교 내에서 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문제 되는 거고 교회가 반대하는 거냐는 질문을 가졌던 분들과 함께 활동했어요. 2008년부터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차세기연)를 시작했고, 1월에 국회에서 차세기연 주관으로 '차별금지법의 올바른 제정을 위한 범기독교 토론회'를 열었어요. 그 후 지금껏 "어떻게 목사가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냐?"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어요.

2010년, 법무부에서 차별금지법 특별분과위원회를 출범시켰을 때, 반대 팩스, 문자, 전화가 폭주하면서 결국 발의는 무산되었죠. 그 후 인권조례 등의 무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반동성애 그룹이 얼마나 진화했는지 보면서 답답해요. 가장 가슴 아프고 여전히 속상한 것은, 2010년 어간에 다들 화들짝 놀라 손을 놓아 버리면서 이렇게 10여 년을 흘려보냈다는 거예요. 어떤 분들은 '무르익어야' 했다고 하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생각이 더 커요. 그렇지만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꾸준히 활동했고, 그렇게 준비해온 것이 지금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 제공 새길기독사회문화원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혜진 실장, 임보라 목사, 이동환 목사, 자캐오 신부, 정경일 원장. 사진 제공 새길기독사회문화원
차별금지법 제정의 가장 큰 장벽은
개신교 교회다

정혜진 / 2007년 국면에서 학력, 병력을 차별 금지 사유에 넣는 것을 두고 재계의 반대가 있었지만,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과 관련해서는 교회의 반발이 가장 거셌죠. 현재까지 보수 개신교가 차별금지법의 가장 강력한 장벽이 되어 온 과정을 이은혜 기자님께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은혜 / 보수 개신교의 조직적 대응은 2010년부터였어요. 그때 동성애와 에이즈를 연결하는 각종 논리로 공포를 조장하면서 법 제정을 한 번 무산시켰죠. 2013년에도 동일한 방식이었는데, 그때는 반대하는 세력이 훨씬 커졌고 더 조직적이었죠. 임보라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문자나 팩스로 압박을 했어요.

저는 지금 2020년이 더 우려스러워요. 물론 사회적 분위기는 무르익었지만, 미디어의 발전과 함께 반대 집단의 공세가 더 강화되고 있어서예요. 전에는 그냥 밖에 모여 기자회견 하고, 반대 논리를 전파할 인터넷 신문 이런 것도 많지 않았는데요, 지금은 반대 집단이 만드는 콘텐츠가 유튜브, 밴드, 카카오톡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 나가요. 2013년에는 반대 서명을 교회에서 받았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요. 이미 25만 명 넘게 반대 서명했잖아요. 그것도 기술적으로 훨씬 더 발전해서, 지역별로 정리가 다 되어 있어요. 지역구에서 몇 명 서명, 목회자, 평신도, 법률가 숫자까지요. 몇천 표로 당선이 결정되는 지역의 국회의원이 그걸 보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죠.

게다가, 코로나19로 교회의 다른 활동이 없어지면서, 반동성애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성서한국을 본떠 복음한국을, 기독법률가회를 본떠 복음법률가회를 만들고, 여름에 대회도 하고, 차별금지법 반대 영상을 만들어요. 거기에 들어가는 사람과 재원은 대형 교회에서 나와요. 여름에 하던 해외 선교가 반동성애로 몰리고 있어 지금 상황이 더 비관적이라는 거예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사회 분위기는 무르익었지만, 교회는 오히려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어요.

반대의 뿌리에는 혐오가 있다

정혜진 / 보수 개신교 교회는 "죄는 미워하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깊은 뿌리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성소수자 목회를 직접 하고 계시는 임보라 목사님, 자캐오 신부님께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임보라 / 교회의 혐오 발언 때문에 상처를 입는 이는 부지기수예요. "죄는 미워하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얼토당토않은 말이에요. 패트릭 챙 신부의 <죄로부터 놀라운 은혜로>(무지개신학연구소)를 보면, 죄와 은혜에 대해 범죄에 기초했느냐,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었냐를 대조한 부분이 있는데요. 챙 신부는 착취·무관심·순응·수치·고립 등을 죄로 지목하면서 마치 이성애자가 되어야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그리스도교의 인식을 비판해요.

그리스도교에서 성과 관련된 혐오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어요. 작금의 기독교는 성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는 옹호하면서 성소수자는 혐오하니,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탈출하는 거예요. 제 주변을 보더라도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절대로 교회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이들이 있어요.

정혜진 / 자캐오 신부님은 '돈이 되는 혐오'를 비판적으로 지적해 주셨는데, 보수 그리스도교가 혐오를 통해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까요?

자캐오 / 작년에 한국성소수자연구회 선생님들과 공저한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창비) 출간 기자간담회 때에 한 이야기인데요. 상대적 약자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라는 게 무척 '입체적'이에요. 저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혐의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어요. 그래서 '상호 식별과 견제'가 중요하죠. 그런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작동을 전제로 살펴보면, 혐오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첫째, 돈이 되는 혐오예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돈과 영향력이 되는 혐오인데요. 혐오 세력은 유튜브 등을 통해 허위·과장·왜곡·선동을 일삼아요. 그러면서 후원을 요청하고, 교회나 교회 관련 단체 강연을 통해 강사료나 후원을 받죠. 최근 그들은 성평등 의식이나 젠더 감수성에 기초한 성평등 교육이나 성교육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반대 여론을 형성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자신들이 '근본주의적 개신교 세계관'에 근거해 구성한 교육을 '기독교 성교육'이나 '성경적 성교육'이라고 부르며, 성교육 센터 등을 직접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어요. 그 과정을 연구소나 법인 등으로 조직화하고 대형 교회 등에 후원을 요청하죠. 그러면 돈과 사람들이 붙게 되고요. 이런 일에 앞장서는 이들에게 혐오와 차별 선동은 돈이나 영향력과 직결되어 있어요.

둘째, 세련되고 싶은 혐오예요.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에 앞장서는 대형 교회나 일부 반동성애 단체들은 '세련된 반대 세력'으로 보이고 싶어 해요. 자신들은 혐오나 차별을 하는 게 아니라,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세련된 개념과 언어로 반론하는 거라고 굳게 믿죠. 제가 놀란 건, 그런 곳과 함께하는 엘리트 개신교 그룹인데요. 그런 분들은 나름대로 한국 사회의 엘리트 집단이어서 자신들의 주장이 이상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것 같은데, 자신들의 근거나 논리가 잘못되었고 메시지에 문제가 많다는 걸 별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대형 교회에 다니는 몇몇 변호사, 교수분들에게 교회에서 그런 설교를 들을 때 어떠냐고 물어봤는데, "교회는 다르잖아요"라고 이야기해요. '목사님 말씀이 사회적 논리에는 맞지 않지만 신앙적으로는 고민해 볼 수 있지 않냐'는 거죠. 기본적으로 세련된 것처럼 보이는 개념과 언어를 가져와 포장하지만, 결국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적극 공모하며 앞장서는 사람들이에요.

셋째, 인정받고 싶어 하는 혐오예요. 이런 혐오는 '카톡교' 신자들이 주로 하는데, 정말 무비판적으로 열심히 혐오 메시지를 퍼 날라요.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덧붙이기도 하죠. 이때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되는 차별이나 혐오로 강화되기도 해요. 이분들은 이런 일에 적극 참여하며, 자신들이 얼마나 능력 있고 열성적인 신자인지 인정받고 싶어 해요.

저와도 가깝게 지내는 분들 가운데 장로님들, 권사님들이 계신데, 그분들은 혐오 메시지를 열심히 공유하고 저를 만나 자랑해요. "내가 이만큼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 정말 그렇게 말해요. 이분들은 그런 행위를 통해 자신들이 인정하는 영적 지도자나 목사님들한테 인정받는다고 생각하죠.

넷째, 침묵하는 혐오예요.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하죠. 많은 보수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이 침묵으로 혐오에 동조하고 있어요. 동성애 혐오나 차별을 비판하는 입장을 밝히는 순간, 바로 '동성애 옹호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에, 혐오나 차별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어도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죠. 교회에서 형성한 관계가 내게 안전하고 유리한 또 하나의 사회 안전망으로 작동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일상에 영향을 주니, 거기에서 배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거죠.

제가 어떤 분에게 솔직한 속내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도 교회 사람들이고, 경조사 때 가장 많이 찾아가는 사람들도 교회 사람들이라고 하더라고요. 교회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순간 그런 관계망을 잃는 게 뻔한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고 이야기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화가 났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한국교회가 불안과 공포에 근거한 역동을 작동시켜 혐오를 입체적으로 강화하고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되었죠.

정혜진 / 혐오가 입체적이고, 또 혐오를 통해 돈을 벌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있다는 말씀이 중요하게 다가오네요. 이은혜 기자님은 그런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계실 것 같은데요.

이은혜 / <뉴스앤조이>에서 '반동성애 진영'이라는 말을 처음 썼는데, 사실 그 말은 되게 모호하거든요. 그래도 그 말을 쓰기로 한 이유는, 그들은 목회자는 아니고, 나름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자기의 전문 분야와 동성애 반대를 결합해 스스로 동성애 전문가라고 해요. 그래서 그 사람들을 구분하려고 '반동성애 진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어요.

그들은 2014년 이전부터 조금씩 목소리를 내다가, 2014년 신촌 퀴어 문화 축제 이후 토론이나 포럼에서 발언하기 시작하고, 2015년부터는 우후죽순으로 나오고 있어요. 몇 명 꼽을 수 있는데, 약사·의사·교수·변호사 그런 이들이에요. 그들이 만들어 낸 나름의 '반동성애' 논리가, 아까 자캐오 신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돈이 되는 혐오이기 때문에, 교회를 돌아다니며 퍼트려요. 그래서 목사들과 신자들이 그 논리를 체화해 추가로 퍼트리고 다녀요. 어떻게 보면, 반지성주의인데, 이걸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퍼트리는 거예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기관을 잃을 사람들이 이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공교육에도 갈 수 없어요. 그러니까 아까 이야기하신 것처럼 성교육 강사 양성 과정을 교회를 중심으로 전국에서 하고 있어요. 단체 이름에는 전혀 기독교적 색채가 들어 있지 않아요. 유치원 같은 데서 성교육한다면서 반동성애 교육을 해요. 그런데,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당연히 제재받을 테니, 더 극렬해지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집회하면서 내뱉는 발언들이 너무 위험한 수준이에요. 증오를 선동해요.

그들의 너무 말이 안 되는 강연들은 법원에서 아동 학대로 판결이 났어요. 서울시 학생 인권조례에서도 차별과 혐오 발언은 학교에서 금지하는 것이 맞다고 해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인정하는 표현의 자유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차별금지법을 뭉뚱그려서 찬성하는 쪽에서도 "설교는 괜찮다",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명확하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으로 이야기해야 해요.

자캐오 / 법 제정에 반대하는 보수 개신교 그룹에서 종립 학교 문제를 꺼냈을 때, 한국성소수자연구회 선생님들과 나눈 첫 마디는 "학교에서 다루는 공적 교육과정에서는 당연히 안 되죠"였어요. 공적 자금이 지원되는 공적 영역에서 다루는 공적 과정이라면 당연히 안 되는 거죠. 저도 그런 부분은 명확히 짚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수 개신교계는 반동성애 운동에 힘을 쏟고 있다. 차별금지법 반대도 이런 흐름의 일환이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보수 개신교계는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에 힘을 쏟고 있다. 사진은 7월 30일 국회 앞에서 열린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 반대 기자회견 및 집회'로, 당시 교인 수백 명이 전국에서 전세 버스를 이용해 올라와 집결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정혜진 / 지난 100여 년의 역사 동안 한국교회는 혐오할 대상, 적대 세력이 있어야만 자기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어 온 것 같아요. 혐오와 적대가 차별금지법이나 성소수자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거죠. 이에 대해 정경일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정경일 / 자캐오 신부님께서 혐오는 '입체적'이라고 하셨는데, 덧붙인다면 한국교회의 혐오는 '역사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한국 개신교 100여 년 역사 전체가 혐오의 역사는 아니에요. 그리스도교 수용 초기나 일제강점기 때는 그리스도인들 자신이 사회적 소수자였고, 의료와 교육 활동, 3·1 운동 참여 등 사회적 공공성과 책임 윤리도 강했어요. 역사적으로 개신교에서 혐오가 등장한 시기는 한국전쟁 전후예요. 분단과 전쟁 과정에서 공산주의 세력과 충돌했던 월남 그리스도인들이 한국교회의 중심 세력이 되었어요. 그들이 남한 정치권력과 결탁하면서 그리스도교 교회는 전투적 반공 집단이 되었고, 신앙의 이름으로 소위 '빨갱이' 혐오가 시작되었어요.

반공 이념을 그리스도교 신앙 가치로 내면화하면서 한국교회는 급성장했어요. 1970년대에 군대 내 종교 시설에 가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쓴 붓글씨 두 개가 걸려 있었어요. 하나는 '신앙信仰 전력화戰力化'였고 다른 하나는 '전군全軍의 신자화信者化'였어요. 유신 정권은 신앙을 전력으로 삼으려 했고, 교회는 그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대가로 전군을 신자로 만들고 싶어 했어요. 이념을 신앙화하고 신앙을 이념화하면서 정치권력과 교회 권력이 서로를 지지하고 지원해 준 거죠.

주목할 것은, 군부독재 시기의 교회는 아직 '길거리 우파'는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럴 필요가 없었죠. 역대 군부 정권이 모두 반공 정권이었으니까요. 김대중 정권 이후 남북 정상회담 등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전개되면서 지반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 교회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극우 반공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어요. 2003년 '반핵 반김 자유 통일 3·1절 국민대회'는 우파 정치와 교회가 만난 징후적 사건이었어요. 보수 개신교의 이런 경험이 노무현 정권 때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의 행동성으로 진화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21세기 이후 격화된 한국교회의 극우 행동성은 개신교의 성장 둔화, 정치적 영향력 약화, 평신도의 비판 의식과 민주 의식 심화와 같은 내적 위기와 관련이 있어요. 교권 세력이 내적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외부의 타자를 적으로 지목하고 공격하는 거예요. 냉전 시대에는 '빨갱이'에 대한 적대와 혐오만으로 충분했어요. 이념도 신앙도 기승전-반공이었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로 힘을 잃은 반공 바이러스는 한국교회의 몸을 숙주 삼아 '혐오 바이러스'로 변이되고 있어요. 우파 교회의 정치적 욕망을 나타내는 기독 정당들과 단체들의 공동 목표는 공산주의자, 동성애자, 무슬림이 없는 '그리스도교 국가'를 건설하는 거예요. 특히, '빨갱이' 이후 가장 심하게 죄인화한 타자가 바로 성소수자예요. 이념적 반공 바이러스가 사회적 혐오 바이러스로 변이한 거예요. 요즘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은혜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보수 교회의 내적 위기가 심해질수록 외부의 적인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더 거세질 거라는 점이에요.

이 모든 역사적 현상은 한 가지 근본 물음을 갖게 해요. 그리스도교는 원수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서 시작한 '사랑의 종교' 아닌가, 하는 물음이에요. 만약 그렇다면, 원수를 사랑하기는커녕 이웃을 원수로 만들어 적대하며 혐오하는 오늘의 한국 그리스도교는 더 이상 '그리스도교'일 수 없어요. 역설적으로, 교회발 혐오의 광풍이 거세다는 것은 그만큼 제도 그리스도교의 내적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는 증거예요.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생성은 혐오가 아닌 사랑을 실천하는 선한 그리스도인들의 손에 달려 있어요. 여기 계신 목사님, 신부님, 그리스도인들이 다음 그리스도교,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미래예요.

혐오 논리를 넘어서:
그리스도교의 정신과 다른 목소리

그리스도교 복음의 정신으로 차별금지법을 지지한다

정혜진 / 지금 나타나고 있는 혐오 세력의 움직임이 실은 그들의 위기를 보여 준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네요. 도대체 왜 그리스도교 복음의 사랑이 아니라 적대 바이러스, 혐오 바이러스에 감염된 집단이 한국 개신교의 주류가 되었나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생기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사실 복음주의를 표방해온 분들이 더 열성을 내며 나서야 하는 것 같은데, 어떤가요? 이은혜 기자님.

이은혜 / 보수 개신교 목소리가 이렇게 커진 데는 복음주의 진영에서 그동안 너무 침묵해 왔기 때문이에요. 사실, 제가 여러 경로로 연락을 취해 봤어요. 이번에는 같이하셔야 하지 않겠냐, 함께 목소리를 내셔야 하지 않겠냐…. 하지만 여전히 침묵해요. 다들 이제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는 건 동의하시는데, 여전히 관계가 걸려 있어요. 게다가 개신교에서는 조금만 다른 목소리를 내도 이동환 목사님 경우처럼 찍어 누르는 것도 있어서 더욱 그래요.

전주에서 목회하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목사님이 한 분 계신데, 그분은 '동성애를 죄로 간주하는 나는 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지 않는가'라는 글을 쓰신 적이 있어요. 아마 이게 보수적인 신학을 공부하신 분들이 가질 수 있는 최후의 스탠스일 거예요.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을 별개로 보는 거죠. 복음주의자들도 그 글에는 대부분 동의해요. 저희가 요구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차별금지법은 한국교회가 한국 사회에서 소통하고 공존하는 최소한의 상식선이라는 것인데, 그것마저도 안 되고 있고, 그것에 동조하는 목소리를 내는 걸 두려워하는 상황이 안타깝죠.

정혜진 / 신앙인으로서 동성애가 죄라는 생각은 포기하지 않아도 시민으로서 차별금지법은 동의한다는 논리는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저는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요.

정경일 / 미국 복음주의자들 중에는 진지한 성서 연구와 합리적 토론을 통해 동성애에 대한 사고와 태도를 반대에서 포용으로 바꾼 이들이 꽤 있어요. 그런 모델이 있으니 복음주의 신앙을 간직한 채 안심하면서 같이 갈 수 있는데, 한국 복음주의에는 그런 모델이 많지 않아 아쉬워요. 아, 순복음교회 출신 자캐오 신부님이 계시네요.(웃음)

자캐오 / 최근에는 개신교 복음주의 그룹에서도 꽤 의미 있는 균열과 변화의 흐름이 있었어요. 복음주의 목사들 중에 성소수자 당사자나 연대하는 목회자들을 비공식적으로 만나 보고 싶다는 분들도 있었거든요. 코로나19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지만, 저는 그런 움직임이 굉장히 유의미하다고 봐요. 사실, 더 근본적으로 보면, 한국교회에 진정한 의미의 '복음주의자'가 얼마나 될까 질문해 보게 되죠.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분명한 스탠스를 취하기 부담스러운 분들이 복음주의라는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그분들도 입장을 정해야 할 때예요. 다행인 것은 보수 개신교 주류의 일방적인 목소리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들어보고 결정하겠다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거예요.

정혜진 / 이동환 목사님은 어떠신가요?

이동환 / 저도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자랐지만, 딱히 동성애에 관심은 없었어요. 그러다 신학교에 들어가고 사회생활을 하며 동성애자에 대해 인지하게 된 거죠. 성령 운동을 하는 그룹에 있으면서, 동성애는 지옥에 갈 죄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런 인식이 깨지게 된 것은 실제 동성애자를 만나면서예요. 많은 분이 경험하셨겠지만, 막연히 이상한 존재라고 여겼던 사람이 실제 내 앞에 나타났을 때, 사실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똑같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조금씩 제 안의 편견을 깨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주 다이내믹한 스토리가 있는 건 아니에요. 어떤 드라마틱한 일을 겪어야 성소수자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은데, 그저 열린 마음과 일상적인 만남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임보라 / 저는 예장통합 교회를 다녔지만 집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고 있지 않아서, 동성애는 죄라는 이야기를 따로 들었던 적은 없어요. 전에는 모태신앙을 부러워했는데, 성소수자 혐오를 경험하면서 모태신앙이 아닌 게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이단 시비에 휘말리면서, 그리스도교 관련 방송국에서 복음주의 목사님들과 찬반 토론도 했는데, 그분들도 동성애는 반대하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면서 차별금지법은 찬성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다시 차별금지법 논의가 나올 때 찬성해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그런 이야기를 일절 안 하시네요. 교단의 억압이 너무 심해서 공개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은혜 / 이번에 신학교 교수들이 연서명해서 차별금지법 반대 발표를 했잖아요. 그런데, 참여하지 않은 분들의 리스트가 돌아다녀요.

이동환 / 서명했다고 명단이 도는 게 아니라 서명 안 했다고 명단이 돈다니, 참 답답하네요.

임보라 / 명단에 없던데, 차별금지법 찬성하는 건가요? 그런 거죠.

새로운 시대에 맞는 복음의 해석

정혜진 / 다행인 것은, 개신교의 목소리가 차별금지법 반대만이 아니라는 거죠. 이번에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 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으로 성명서가 나왔는데,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찬성한다는 분명한 목소리를 냈어요. 단 며칠 만에 많은 단체와 개인이 연서명을 하면서 참여해 놀랍고, 감동적이었는데, 이 성명서를 내게 된 과정을 자캐오 신부님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죠.

자캐오 / 그리스도인으로서 다양한 사회 참여나 인권 운동에 함께해 오던 분들이 있었고, 거리와 현장에서 자주 만나다 보니 비공식적인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었어요. 그런 가운데 정의당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준비하면서, 뜻을 함께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이게 되었어요. 늘 거리에서 뵈던 너무 반가운 분들, 각자의 자리에서 대안적 이론을 제시하며 목소리를 내주시던 분들이 함께했는데, 자연스럽게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입장 표명이 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죠. 그래서 몇 분이 초안 작업을 했어요.

감동적이었던 건, 어떤 힘 있는 교단이나 기관의 주도 없이 알음알음 참여해 주셨다는 거예요. 주말을 포함해 단 이삼일 만에 81개 단체와 천몇백 명의 사람들이 함께해 준 걸 보고 크게 감동했어요. 저희가 연명을 준비하며, 마지막까지 개인 이름 공개 여부를 고민했잖아요. 공격받을 것을 감수하며 개인적으로 서명을 할까, 걱정하면서요. 하지만, 이름 공개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이 함께해 주셨어요.

듣자 하니, 함께한 단체들을 보고 이름 없는 단체들이라며 비난하는 이들도 있던데, 대부분의 단체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이유로 고통받는 이들과 연대하며, 우리 이웃들이 흘리는 눈물의 자리를 지켜 온 단체들이에요. 그 단체들의 이름을 모르는 이들이야말로 '교회 안에 갇혀 살고 있는 사람들'이죠.

우리 성명서가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전해졌을 때, 여러 기자와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들도 너무 감동했다며 주변에 공유하곤 했어요. 제게 가장 찡한 경험은, 교회를 떠난 시민사회 단체 활동가가 자기 가족에게 "그리스도교 신앙 중에도 이런 게 있어", "그리스도교는 이런 거여야 하지 않아?"라며 성명서를 공유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어요. 애써 준 우리 모두에게 참 감사해요.

정혜진 / 정경일 선생님도 성명서 작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는데, 작성 과정에서 의도하셨던 것, 느끼셨던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정경일 /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신학자와 목회자가 함께 성명서를 작성하기로 하고 첫 회의를 하면서 함께 정한 원칙이 있어요. 성명서의 내용과 분위기를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보다는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의 목적을 드러내자는 것이었어요.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라는 관점도 같은 원칙이었어요.

성명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었는데, 첫째, 서론에서는 현 상황에 대한 시대적 인식을 제시했어요. 국가인권위원회 최근 설문 조사가 말해 주듯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미 이루어진 것이니, 이제는 교회의 전향적 응답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어요. 둘째, 본론에서는 성서와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혐오의 역사가 아니라 사랑의 역사임을 주장했어요. 그리스도교 자체가 소수자의 종교운동으로 시작했으며, 따라서 차별받고 혐오당하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삶의 기본이라는 것도 강조했고요. 셋째, 결론에서는 국회와 교회를 향해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데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어요.

이런 구성과 함께 저희가 강조했던 것은 차별금지법의 '포괄적' 성격이었어요. 현재 가장 핵심적인 이슈가 포괄적 차별 금지와 선택적 차별 금지인데,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은 선택적 차별을 계속하겠다는 거예요. 이는 인권 현실에도 맞지 않고 복음 이상에도 맞지 않지요. 그래서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그 누구도 주님의 은혜로부터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우리 시대의 '포괄적 복음'"이라고 주장했던 거예요.

예수와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소수자성'을 강조한 것은, 소수자는 단순히 수적으로 소수가 아니라 권력과 자원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사람이라는 의미였어요. 인류의 절반인 여성이 소수자인 것처럼요. 또한, 누구나 인생의 어느 굽잇길에서 소수자의 처지에 놓일 수 있으니, 차별금지법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려고 했고요.

개인적으로, 성명서 작성 과정에서 함께했던 임보라 목사님, 자캐오 신부님으로부터 젠더 감수성과 소수자 감수성을 더 깊이 배웠어요. 임보라 목사님은 성서의 소수자 경험을 이야기한 대목에서 '여성'의 경험이 부재한 것을 지적해 주셨어요. 그래서 서로를 환대한 여성 소수자의 이야기로 한 문단을 추가했어요. 자캐오 신부님은 소수자는 "남이 아니라 우리의 '일부'"라는 문구를 "남이 아니라 우리"라는, 보다 일치된 공동체의 관점으로 수정해주셨고요. 성소수자와 함께 살아온 현장 목회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감수성이었어요. 소수자와 약자의 아픔을 공감하는 신학자와 목회자의 공동 작업이었던 것이 의미 있었어요.

정혜진 / 말씀을 들어 보니까 정말 여러 마음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거네요. 혹시, 더 첨언하고 싶으신 것이 있을까요?

이은혜 / 성명서가 나오고 동성애 반대 운동 단체들의 반응이 보였어요. 개신교의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을 느낀 거죠. 게다가 성명서 내용이 일간지에 연달아 나갔잖아요. 개신교는 무조건 차별금지법 반대로 확 밀고 가야 하는데, 다른 목소리가 나오니까, 불편했던 거죠. 그러니까, 작더라도 이런 목소리를 꾸준히 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캐오 / 중요한 순간에 꼭 필요한 '프레임 전환'을 이루는데 적절한 기여를 한 것 같아요. 저희가 경계했던 게 '종교 대 시민사회'의 대립 프레임이었는데, 저희 성명서를 전후해서 실상은 개신교 내에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적극 찬성을 비롯해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중요한 계기였던 것 같아요.

정경일 / 언론이 대체로 호의적 입장을 취한 게 느껴졌어요. 그만큼 사회적 여론이 차별금지법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거겠죠.

정혜진 / JTBC에서 차별금지법 팩트 체크도 해 주었는데, 이는 사실 사회적 합의는 이미 끝났다는 걸 보여 주는 지표였어요.

뉴스앤조이 이은혜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개신교인들의 목소리도 있다. 7월 22일 열린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 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들'의 국회 앞 기자회견. 뉴스앤조이 이은혜

차별금지법에 대한 교단의 반응

정혜진 /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면 정치권을 움직여야 하는데, 정치권은 교단이나 대형교회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교단의 입장이 중요한데, 감리회나 예장통합은 교단 차원에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고 하니, 참 걱정입니다. 각 교단에서 다른 목소리를 모아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까요?

임보라 /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는 교회와사회위원회 이름으로 차별금지법 제정 지지 성명을 냈어요. 하지만 우리 총회 게시판을 보시면, 성명을 취소하라는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어요. 이번에 처음 나온 목소리가 아니에요. 저와 관련된 사안이 불거졌을 때도 그랬어요. 특히 지역에서는 목회자들이 힘들어해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타까워요. 기장 안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 거예요.

이번에 교단 총무 선거가 있는데, 얼마 전 온라인으로 공청회가 있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마지막에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교회와사회위원회 성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두 분은 시기상조였다며 살짝 빠져나가려고 하셨고, 한 분은 창조질서에 맞지 않다고 하셔서 무척 실망스러웠어요. 다들 합리적으로 사고하시는 분들인데, 표를 의식하셔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속상했어요.

교단에 성소수자목회연구위원회를 어렵사리 만들었지만, 그 위원회를 맡은 교단 내 신학연구소가 별로 움직이지 않아요. 이런 때 교육을 하거나 좌담회를 하면 좋을 텐데, 기장 신학 대회에서 한 꼭지 발표하는 것 이상의 활발한 활동이 없어요. 밖으로 비치는 것에 비해 속은 너무 부족하죠.

정혜진 / 감리회는 어떤가요? 이동환 목사님.

이동환 / 기장 게시판을 보시고 감리회 게시판을 보세요. 공개 저격이에요. 이동환을 비토하는 글이 하루에도 수없이 올라오고 있어요. 감리회에서 총회 공식 입장으로 차별금지법에 대해 성명을 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교단 총회 산하의 이단대책위원회, 동성애대책위원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 배너를 만들어 교회에 배포하고, 차별금지법 반대 성명을 내요. 사실상 감리회의 공식 입장으로 봐도 무방해요.

감리회 어느 목사님이 대표로 있는 한 단체에서 차별금지법 찬성 성명을 냈는데, 그 목사님이 목회하는 지역의 장로들이 집단으로 집에 찾아와 권면서라는 걸 줬는데, 내용은 협박문이었어요. 입장을 철회하지 않을 시 다음 행동을 취하겠다는 거였어요. 나름 감리회에서 존경받는 중견 목사님인데도 이렇게 위협당하고 처벌하려는 분위기라 차별금지법에 대해 공개적으로 찬성 의견을 표현하는 분들이 많지 않아요.

제 사안에 대해서도, "이동환 목사의 축복 행동이 재판까지 갈 일은 아니다"라며 성명서를 낸 3040 젊은 목회자 140명이 있었는데, 이분들에 대한 대대적 색출 작업이 시작되었어요. 그래서 이미 여기저기서 연락이 와요. 자기 이름 좀 빼 달라고, 너무 힘들다고… 실제로 서명한 목사의 이름을 보고 교회 후원을 끊는 장로들도 있어요. 다 색출해 징계 조치하겠다, 고발 조치하겠다, 이런 식이에요. 그 성명서를 읽어 보면 무척 온건한데, 이렇게 소동을 일으키는 것이 광기로밖에 안 보여요. 감리회는 그런 상황이에요.

제가 있는 지방의 단톡방이 있는데, 거기에 감리사가 차별금지법 반대 서명해 주세요, 라며 링크를 올렸어요. 그러면 그 밑에 '서명합니다', 이렇게 댓글이 달리잖아요. 그런데, 어느 목사님 한 분이 "차별금지법 반대 논리는 가짜 뉴스입니다. 저는 차별금지법 찬성합니다"라고 글을 올렸더니, 그다음부터 아무도 댓글을 안 다는 거예요. 그런 분들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정혜진 / 임보라 목사님과 이동환 목사님 말씀을 들으니, 목회자 중에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분들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목회자가 뭘 무서워할까 하면, 교인들이거든요. 목회자가 동성애자 차별하고 혐오하는 설교를 할 때, 교인들이 못 듣겠다고 나가거나 하면, 그건 정말 큰 타격이거든요. 저는 가족이 다니는 예장통합 교회에 가끔 갈 때가 있는데, 촛불 혁명 때 박근혜 탄핵을 안타까워하는 원로목사의 발언이 있자 젊은 교인 열댓 명이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정경일 / 교회를 나가기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교회 안에 남아 항의할 수도 있어야죠. 미국 뉴욕 리버사이드교회에서 있었던 일인데, 1985년, 부목사였던 채닝 필립스가 동성애는 죄라는 취지의 설교를 했어요. 이때 교회 바로 옆의 유니언신학대학원 학생이었던 휘트 허친슨이 설교 직후 일어나 필립스 목사의 입장에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했어요. 그리고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교인들은 송영 때 단상 한쪽에 모일 것을 제안했어요. 이에 필립스 목사의 동료인 조앤 카바노 목사를 비롯해 일부 교인들이 동조했어요. 그 사건 후 리버사이드교회는 전 교회 차원에서 동성애에 관한 성서 연구와 심층 토론을 전개했고, 마침내 4주 후인 1985년 6월 2일에 '동성애자에 대한 개방, 포용, 인정의 선언' 문서를 공식적으로 발표했어요.

한국교회의 평신도는, 정혜진 선생님 말씀처럼,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민주적 시민으로서 항의해요. 물론, 소수이긴 하지만요. 반면, 교회 내부의 구조적 문제나 신학적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맘에 안 들면 그냥 교회를 떠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교회 개혁이 더 어려워지죠. 교회에서 선포되고 교육되고 있는 신앙과 신학과 윤리에 대해 비판적으로 묻고 토론하는 문화가 절실해요.

자캐오 / 질문 없이 순응하는 신자가 한국교회의 표준적인 신자상이잖아요. 그것은 진보/보수를 떠나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리버사이드교회는 바로 토론으로 이어졌지만, 한국교회 같았으면 바로 "쟤네, 징계해라" 그런 상황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거대 담론만 이야기하지 말고 뭔가 구체적인 실천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정혜진 /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와 같은 연합 조직과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은데, 연합 조직 차원에서는 어떻게 지지 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나요? 자캐오 신부님과 정경일 원장님께 말씀 부탁드릴게요.

자캐오 / 성공회의 경우는 하나의 교구가 한 교회이기 때문에 서울교구 주교님이 저의 목회자죠. 그래서 제가 참여한 책이 나올 때마다 찾아뵙고 읽어봐 주십사 책도 드려요. 물론 천주교처럼 승인을 받지는 않아요.(웃음) 얼마 전에 <혐오와 한국교회>(삼인)를 낸 후 주교님을 만나 말씀드리고, 우리 교회 차원에서 재정을 마련해 세계 성공회 내 여러 교회에서 성소수자 이슈에 대한 토론에 활용된 글들을 번역해 공유하고 싶다고 했더니, 좋은 자료들은 신학위원회 등을 통해 검토하고 배포하는 방법도 고려해 보라고 말씀해 주셨죠. 현재 대한성공회는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안 하는 상태예요. 아직 공식적인 토론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주교님의 그런 조언이 매우 고마웠어요.

제가 아는 바로는 교회협도 교단 연합체라는 구성의 이유 등으로 전체적으로는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서만큼은 부정적이에요. 그럼에도 애쓰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분들을 닻 삼아 최종적으로는 백 개가 넘는 단체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성명을 함께 낼 수 있었어요. 그러니, 그리스도인들이 구체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실천 계획을 만들어 봐야 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교회를 위한 평등법 해설'을 함께 만들어 보는 등 좀 더 대중적이고 친절한 시도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해요.

정경일 / 저는 교회 연합 기관의 역할보다는, 이번 그리스도인 성명서 작업을 함께한 경험에 대해 더 생각해 보고 싶어요. 이번 성명서 공동 작업에서 독특했던 것은 '우연성'과 '자발성'이었어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파업 노동자 연대 등, 여러 사회 현장에서 만나왔던 분들이지만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서는 우연히 모였잖아요.

처음엔 별다른 활동이 없다가, 보수 개신교 집단의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이 너무 거세게 일어나자, 그리스도교 내부의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를 느껴 성명서를 내기로 했어요. 그 후 바로 성명서 TF를 만들고, 함께할 교회와 단체에 연락하고, 소셜미디어 페이지를 만들고, 언론에 알리고,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국회와 접촉하고… 그 모든 일을 특정한 대표나 총무 없이 이심전심으로 서로 제안하고 각자 자발적으로 책임을 맡으면서 진행했어요. 보통 어떤 운동을 할 때 조직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과 자원을 쓰는데, 우리는 꼭 필요한 일부터 시작했고, 그 일에 필수적인 최소 모임만 움직였어요. 이렇게 몸이 가벼운 활동 방식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줄이면 좋겠어요.

그리고, 인권의 차원에서 보면 차별금지법 제정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니, 결국 교회도 차별금지법을 기본 조건으로 수용하면서 그에 맞는 신앙과 문화의 방향을 찾아야 할 거예요. 그러니, 그리스도교 교단, 연합 기관, 연대 모임은 앞으로 차별금지법의 찬/반을 넘어 '차별금지법 이후' 시대의 선교·목회·돌봄·예배·교육·연대에 대해, 보다 선제적·진취적으로 연구하며 준비하면 좋겠어요.

차별금지법의 의미와 그리스도교

정혜진 / 차별금지법이 개신교 안에서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사실 차별 금지 19개 또는 23개 사유에서 성소수자 이슈는 부분적이에요. 사회 전 영역에서 포괄적 평등을 뿌리내리게 하자는 법인데 그리스도교 때문에 차별금지법의 가치가 훼손되는 측면도 없지 않아요. 이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면 어떨까요?

자캐오 / 우리가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그리스도인 성명을 낼 때도 강조했던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한 차별금지법"이었잖아요. 사실, 차별은 복합적이에요. 대부분의 차별은 두 가지 이상의 차별 요소를 갖죠. 차별받는 사람이 다른 구조나 권력관계에서는 또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경우도 많고요.

현재 제안된 차별금지법에서 언급하는 차별 금지 사유에 '등'이 붙는 건, 현대사회의 특성상 앞으로 더 많은 차별 요소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죠. 해외 사례를 봐도 그래요. 반동성애 운동에 적극적인 이들은 차별금지법에 '등'을 붙이는 건, 모든 차별을 법으로 때려잡으려는 독재법이라고 하는데요. 일부분은 맞고 대부분은 틀린 말이에요. 모든 차별에 대한 '기본법'이라 '등'이 붙는 거니 '일부분은 맞다'는 거고요. 이 법은 아주 구체적인 제재와 처벌을 강조하는 법이 아닌 예방적 차원을 강조하는 기본법이라 '대부분은 틀리다'는 뜻이에요.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법이 기본법이라 구체적인 제제나 실체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효과도 떨어진다고 우려하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든 걸 때려잡는 독재법'이라고 하니 흥미로운 부분이죠.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세상이 확 바뀌지는 않을 거예요. 차별금지법은 기본적인 첫걸음이에요. 정경일 선생님이 좋은 말씀을 해 주셨는데, 우리 모두 인생을 살다 보면, 차별 금지 사유에서 몇 가지 이상을 경험할 수 있어요. 차별금지법은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모두가 한 번 이상은 경험할 수 있는 차별을 되새기고 막아 보자는 법이에요. 철학과 사고의 전환을 위한 기본법인 거죠. 자신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법을 그악스럽게 반대하시는 분들이, 차별금지법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좋겠어요.

정혜진 / 이동환 목사님은 그동안 개신교 대책위에서 재능교육, 동양시멘트, 파인텍, 삼성 해고 노동자들과 꾸준히 연대해 오셨어요. 성소수자를 축복하신 일도 이런 연대 활동과 무관하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넓은 구조 악에서 본 차별의 문제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동환 / 사실 저는 그간 노동 현장 연대 활동에 비하면 성소수자 연대 활동은 거의 못 했어요. 그래서 재판받는 게 억울합니다. (웃음) 여기 계신 분들을 비롯해 열심히 활동해 오신 분들에 비하면,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어서요.

차별이 무엇에서 비롯될까 생각해 보면 '나' 혹은 '우리'와 '저들'을 구별 짓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노동 현장에서 종종 사측을 만날 기회가 있는데요, 사측에서는 노동자들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계급이 나누어져 있달까, 이등 시민으로 취급하는 느낌이랄까. 전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웃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 같아요. 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더 나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안타까운 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교회의 태도도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는 거예요.

저는 늘 예수가 어떻게 사셨는지 생각해요.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 차별받는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 편에 서셨던 분이잖아요. 그러니 우리 시대의 차별받는 이들, 가난한 이들과 동행하려고 했고, 그 연장선에서 성소수자도 우리 시대의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뭘 했나, 생각하면, 잘 모르겠어요. 축복식에 초대받았고, 기꺼이 응했을 뿐이에요.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목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거죠.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어야 해요. 이 법을 처벌하는 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법으로 생각하면 좋겠어요.

정혜진 / 이은혜 기자님은 <뉴스앤조이>에서 차별금지법과 교회 섹션의 기사를 많이 써오셨는데, 이 때문에 항의도 많이 받으시고, <뉴스앤조이>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기자로서 자신의 이야기는 많이 안 하실 텐데, 우리 토론에서는 기자님의 이야기를 좀 듣고 싶었어요.

이은혜 / 저는 신학적으로 동성애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 줄곧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다만 친구 중에 당사자들이 있었고, 해외 특히 미국 사례를 보며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외국에서는 이렇게 누군가를 악마화하면서까지 찬반 논쟁을 하지 않고, 어느 정도 관점도 정리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찬성하는 학자들이 있는 것을 보면서, '아, 이게 복음의 핵심 진리까지 건드는 것은 아닌가 보다'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고요.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다가, 홍성수 교수 강연을 듣게 되었는데요. 차별금지법 제정되어도 동성애 반대하는 설교를 한다고 잡혀가는 게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법률들을 찾아보니, 정말 그런 내용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저희가 그동안 기사를 쓸 때, 반대 진영에서 하는 말을 그대로 썼거든요. 그래서, 이걸 왜 안 찾아보고 썼을까, 반성하게 된 거예요.

왜 그랬는지, 아무도 몰라요. 반대쪽에서는 동성애 반대하는 설교 하면 잡혀가고, 성경이 불법 서적이 된다는 논리가 굉장히 오래전부터 있었거든요. 저는 그걸 보고, 이게 뭐라고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반대 운동을 하나, 이건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뭔가 자기들의 싸움을 편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구호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뉴스앤조이 이은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전국연합(진평연)이 제작해 배포한 자료. 한국의 차별금지법과 관계없거나 사실이 왜곡된 정보를 섞어 놓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차별금지법 제정 전망과
한국교회의 방향

정혜진 / 끝으로,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말씀해 주시면서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임보라 /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서는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한데, 국회의원 중에 전향적인 입장을 표시할 수 있는 분들이 많지 않을 거예요. 민주당이 9월에 차별금지법을 발의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염려되어요. 그러니, 평등 버스도 필요하고 성명도 필요하지만, 좀 더 일대일 방식으로 국회의원들과 더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설득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까 정경일 선생님 이야기에 감명받았는데, 우연성과 자발성이 발휘되면서 변화하는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암울하기도 하고 힘겹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교회 내에서 함께해온 사람들이 있어 그나마 이만큼 변화의 계기들을 만들어 온 것 같아요. 이건 아니라며 그냥 탈출하지 않고 남아서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이 뭘 하면 좋겠냐고 연락해 오시는데, 나름대로 책 모임을 하고 소모임을 만드는 것, 그런 데 희망이 있어요. 그것이 교회가 살길이에요. 성직자가 희망이 아니에요. 교인들이 희망이에요.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자각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희망이에요. 목회자의 역할은, 그분들과의 대화가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캐오 / 저는 고등학생 때 전교조 합법화 투쟁에 참여하며, 처음으로 사회참여 운동을 경험했어요. 그런데, 교회에서는 그런 활동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자꾸 지적하며 문제시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교회와 사회의 인식 차이와, 거의 분열에 가까운 괴리감을 느꼈죠. 순복음교회 전도사로 있을 때는 앰네스티 한국지부에서 만들어진 여성 인권 그룹에서 활동했어요. 이런 저의 경험을 어떤 분들은 분열적이라고 해요. 정혜진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이를 좋은 쪽으로 '에큐메니컬'하다고 표현해 주셨죠.(웃음)

저는 그런 독특한 경험과 다양한 활동들을 해 오면서, 켈트 그리스도교가 강조했던 '만물 안에 깃드신 하느님'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됐어요. 이 말은 만물이 하느님이란 말이 아니라 만물 안에 하느님이 깃들어 계신다는 거죠. 그런 맥락에서 제가 이해하는 그리스도인은 '상징'으로 싸우는 사람들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세속적 사회운동과 그리스도교 사회운동의 차이가 거기 있어요. '만물 안에 깃든 하느님이 어떻게 상징으로 나타나는가?' 바로 우리를 통해서예요. 우리가 이 세계와 이웃을 향한 하느님의 상징이에요.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이고, 우리가 하느님의 손길이고, 우리가 하느님의 눈물이고, 우리가 하느님의 웃음이에요. 그것을 자각하는 것이 상징으로 싸우는 거죠.

한국교회와 달리 서구 주류 개신교회에서는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인정은 당연하고, 다만 '성소수자가 목회자나 주교 또는 감독이 될 수 있느냐'는 문제로 논쟁을 하고 있어요. 세계 성공회 최초로 스스로를 공개한 게이 주교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인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 Love Free or Die '을 보면, 그의 주교 취임 승인에 대한 미국 성공회 전국 의회의 투표를 앞두고 길고 첨예한 논쟁이 이뤄지죠. 그리고 팽팽한 긴장감 가운데 투표가 이뤄지는데, 부결될지도 모른다는 예측 가운데 승인이 통과돼요. 그러면 박수갈채가 막 터져 나올 것 같은데, 사회를 보던 주교가 함께 기도하자고 요청하고 회의장은 일순간 침묵으로 가득 차요. 그리고 침묵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죠.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 결정으로 인해 아파할 사람들을 생각했던 거예요. 저는 그 장면을 잊지 못해요. 저도 자주 시험에 들지만, 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보수든 진보든 그처럼 '서로를 향한 애달픈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다큐멘터리에서 기억에 남는 또 한 장면은 한 레즈비언 사제의 인터뷰였어요. 그는 성소수자 목회자들을 비난하고 반대하는 의견에 대해 묻는 질문에 '내 교회이기에, 끝까지 토론하고 싸울 것이다'라는 식으로 대답하더라고요. 진보적인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교회의 보수성과 더딘 변화에 쉽게 실망하고 떠나는 분들도 있잖아요. 저는 그 사제의 답변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총을 왜곡하는 이들이 떠나야지, 왜 사랑과 은총을 신뢰하는 이들이 떠나느냐'는 울림을 느꼈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가 '교회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들이란 누구인가'에 대해 계속 토론하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사랑하기에 떠나지 않고 남아서 계속 일관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동환 / 저는 전에는 차별금지법을 전혀 몰랐어요. 어떻게 발의되었고 어떻게 좌절되었는지 몰랐어요. 그런데도, 왜 이렇게까지 반대하는지, 심지어 장애인 운동을 하는 교회조차 반대하는지 이해가 안 돼요. 교회가 바뀔까? 교회에서 대화가 될까? 적어도 제가 겪고 있는 상황에서는 회의적이에요. 심사받으면서 제가 하고 싶었던 건 '말 걸기'였는데, 워낙 권력의 차이가 커서인지,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귀를 닫고 있는 분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나, 회의감이 많이 들어요. 아, 교회는 늘 그랬듯이, 사회가 바뀐 후 뒤늦게 멱살 잡혀서 바뀌는 건가, 그런 생각도 들어요. 미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되고 교회가 변화하는 데까지 70년이 걸렸다고 하잖아요.

지금의 상황에서 아쉬운 건 경청하는 태도의 부재예요. 서로의 입장이 다르다고 해도 그 입장을 서로 존중하면서 듣고 건전하게 토론하며 이야기를 이어 가는 마음과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한데, 그게 너무 안 되고, 나랑 다르면 너는 틀렸다, 정도가 아니라 아예 찍어내겠다는 게 너무 만연해있어요. 그런 태도가 특히 교회 안에서 더 심각해요. 어떤 신념이나 생각이 신앙화할 때 정말 무서워요. 오늘의 토론처럼, 서로 존중하며 경청하고 안전하게 대화할 수 있는 품이 교회 안에 있어야겠고, 훈련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야 앞으로 희망이 있을 테니까요. 교회가 바뀔까, 회의적이긴 한데, 저도 호모포비아에서 이렇게까지 온 거 보면, 하느님은 살아 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나처럼 누군가도 어떤 계기를 통해 변화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은총에 의지해서요.

이은혜 / 오늘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이 대전에서 큰 집회를 했는데,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반그리스도교 정서가 형성되어 교회에 위기가 올 거라고 이야기했어요. 저는 그 발언을 딱 뒤집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라요. 바로 그런 발언 때문에 교회가 위기에 빠지는 거잖아요. 교회가 이렇게까지 욕을 먹고 있는데… 차별금지법이 교회를 망하게 하는 게 아니라 반대 운동이 교회를 망하게 할 거예요.

저는 지금은 교회를 잠시 떠나 있는데, 그래서 더 교회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고 있어요. 혼자 신앙생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요. 신앙 공동체가 가지는 긍정적인 속성이 있고,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낼 좋은 에너지도 있어요. 그런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교회를 무너뜨리는 자들이 지금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 사실이 너무 안타까워요.

아까 차별금지법 이후의 교회에 관해 이야기하셨는데, 어떻게 보면 한편으로는 기회일 수도 있어요. 코로나19 때문에 교회가 굉장히 휘청거리고 있어요. 대형 교회들은 살아남고 있고, 건강한 작은 공동체들도 살아남겠지만, 애매한 교회들은 붕괴 위기예요. 그런 위기 상황에서 옛날과 똑같이 주일성수해야 한다, 교회 봉사해야 한다, 이런 말로는 더 이상 교회를 끌고 나갈 수 없어요. 차별금지법도 그렇게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소수지만,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영향을 받아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계속해서 이런 이야기를 이어 나갈 필요가 있어요.

정경일 / 종교는 생명체예요. 생명체는 시간 속의 존재지요. 그리스도교는 아브라함 신앙으로부터 시작해 예수의 복음을 거쳐, 바울과 초대교회를 지나 오늘에 이르는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 우리의 신앙과 삶을 긴 역사의 한 과정으로 봐야 해요. 처음 우리 모임을 시작할 때 자캐오 신부님이 "또 실패할 수도 있다. 어떻게 실패할지가 중요하다"고 비장하게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나요. 실패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포기나 좌절이 아니라 실천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로 들렸어요. 계속 실패한다는 것은 계속 실천한다는 것을 뜻하니까요.

노르웨이의 심층생태학자 아르네 네스가 20세기 말에 어느 저널리스트에게 한 말이 생각나요. "나는 22세기를 낙관합니다." 저널리스트가, "아, 21세기요?"라고 물으며 정정하려고 하니까, 네스가 말해요. "아니요, 22세기요." 네스는 21세기에도 인간은 안 바뀔 거라고 보았어요. 전쟁과 불평등과 생태 파괴는 계속될 거라고 본 거죠. 안타깝게도, 그의 말이 맞았어요. 하지만 21세기의 실패에도 변화를 위한 실천을 계속하다 보면, 22세기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는 것, 그것이 네스의 비관적 낙관주의였어요.

네스의 말이 오늘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줘요. 22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이 21세기 한국교회사를 공부하면서, 한국교회가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차별하던 때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놀라며 부끄러워하다가, 우연히 디지털 박물관에서 2020년 여름에 이동환, 이은혜, 임보라, 자캐오, 정경일, 정혜진, 김유미(녹취)가 모여 이런 이야기를 나눈 것을 발견한다면, 그래서 그 시대의 그리스도인 모두가 혐오 세력은 아니었구나 확인하며 안도한다면, 지금의 제가 조금은 덜 부끄러울 것 같아요. 덜 미안할 것 같아요.

정혜진 / 2020년 코로나19로 우리 삶의 근본을 유례없이 다시 보게 되는 이 시점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을 직시하고 평등의 가치를 자리 잡게 하는 기본법이 제정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목표를 위해 함께 애쓰시는 선생님들을 모시고 말씀을 나누게 되어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른 현장에서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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