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이번 차별금지법 제정 국면에서 소위 반동성애 운동가들은 유독 '표현의자유'에 민감하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를 죄라고 말했을 때 처벌당한다고 주장한다. 성경에 나오는 진리를 말하지 못하게 되며, 표현의자유 나아가 양심의자유, 종교의자유를 억압할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이는 기본적으로 왜곡된 정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에는 단순히 '표현'했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조항이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최영애 위원장)가 권고한 평등법 시안에서는 '괴롭힘'을 차별로 분류하고 여기에 '혐오적 표현'도 포함됐지만, 이 역시 개신교 교리적으로 동성애는 죄라고 말하는 것을 처벌하고자 하는 취지가 아니다.

학자들은 소수자의 특성을 이유로 공격하는 발화를 '혐오 표현'이라 이름 붙여 왔다. 어떤 발언이 혐오 표현에 해당하는지는 맥락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인종·민족·성별·종교 등을 근거로 대상에 대한 증오를 표명하는 것으로, 집단적 특징을 근거로 그 집단이 열등하다는 편견을 퍼트리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단순히 교회 예배에서 '동성애는 죄'라거나 '성경에는 동성애가 죄라고 나온다'고 표현했다고 해서 '혐오 표현'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차별금지법이나 평등법을 시행하는 서구 국가들을 봐도, 같은 신념과 교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인 종교 집회에서 나오는 표현은 규제하지 않는다.

이번 차별금지법 제정 국면에서는 '표현의자유'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번 차별금지법 제정 국면에서는 '표현의자유'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차별금지법 없는 지금도
반동성애 혐오 선동 강의는
때와 장소 따라 규제 대상

하지만 누구나 접근 가능한 소셜미디어나 공공 기관 및 장소에서 사실과 다른 극단적 내용으로 소위 '반동성애 강연'을 하는 일은 경우가 다르다. 반동성애 운동가들은 자신들의 발언이 혐오 표현이라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지만, 이들의 강의 내용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일부 사실을 왜곡·과장하는 것은 물론, 관련 없는 내용을 가져와 끼워 맞추기도 한다. 이를 비판 의식 없이 듣는 사람들은 성소수자를 향해 편견과 혐오감을 품게 된다.

차별금지법이 없는 지금도 이런 혐오 선동 강의는 때와 장소에 따라 규제 대상이 됐다.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은 2019년 6월, 초등학생들에게 반동성애 강연을 보여 준 게 정서적 아동 학대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구의 한 어린이집 교사 2명은 자원봉사 활동을 위해 방문한 초등학생 6학년(11세~12세) 6명에게 염안섭 원장(수동연세요양병원)의 반동성애 강연을 보여 줬다.

이 강연에는 염 원장이 주로 하는 레퍼토리가 담겨 있었다. 동성애자를 소아 성애자, 동물 성애자, 기계 성애자, 시체 성애자 등과 나란히 비교하고, 남성 동성애자가 항문성교를 위해 관장하는 일명 '센조이' 등에 대한 적나라한 설명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법원은 이 행위가 아동복지법에서 규정하는 '아동의 정신 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영상이 구체적인 성행위 방법에 대해 자세한 설명과 함께 사진까지 제시하고 있고 △동영상 내용을 사전 고지하지 않아 학생들이 거부 의사를 표현할 기회도 없었으며 △처음 접하거나 쉽게 접하기 어렵거나 또는 접하기 싫은 동영상 내용 및 장면들을 회피할 틈도 없이 갑자기 시청하게 돼 심리적·정신적 충격을 받아 정신 건강 및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영상을 보여 준 어린이집 교사 2명은 모두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교사 측은 "이 동영상은 전문 의사가 에이즈에 대한 권위자로서 동성애를 통한 에이즈 감염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강연한 내용이고, 교사들은 아동들이 건전한 가치관을 가지길 바라는 선한 마음에서 이 동영상을 시청하게 했다"고 항소했다. 하지만 고등법원·대법원 모두 교사들 상소를 기각했다.

대구MBC 등 지역 언론도 이 사건을 주목할 정도로 해당 사건은 지역사회에서 논란이 됐다. 해당 뉴스 영상 갈무리
대구MBC 등 지역 언론도 이 사건을 주목할 정도로 해당 사건은 지역사회에서 논란이 됐다. 대구MBC 영상 갈무리

이처럼 편견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반동성애 강연은 학교에서도 제재받을 수 있다. 서울시 한 중학교 교사는 2016년 12월, 학생들에게 반동성애 강의 영상을 틀어 줬다. △성소수자를 수간 및 소아 성애에 비교 △남자 청소년이 남자 동성애자에게 '바텀 알바'를 한다는 내용 △남성 간 항문성교를 막지 않으면 에이즈 걸린 남성이 여성과 결혼해 아이에게 유전된다는 내용 등 전형적인 반동성애 강사들 강의였다.

영상을 보고 불편함을 느낀 학생이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 신고했다. 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에 따라 학생인권옹호관에게 사건을 배정했다. 학생인권옹호관은 학교에 질의서를 보내, 어떤 영상을 보여 줬는지, 이 같은 수업을 진행하게 된 경위와 취지는 무엇인지, 학교의 사실관계 확인 및 앞으로 조치 계획은 무엇인지 물었다.

교사 징계는 없었다. 서울시 학생인권교육센터 관계자는 8월 10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학생인권조례는 징계를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이 사건도 바람직한 학생 인권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학교장에게 교직원의 인권 교육 이수 및 재발 방지 요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7년 9월, 서울시교육청은 학교에서 차별·혐오 발언을 하면 안 된다는 내용을 학생인권조례에 추가했다. 5조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학교의 설립자·경영자, 학교의 장과 교직원, 그리고 학생은 차별 금지 사유를 이유로 차별적 언사나 행동, 혐오적 표현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미션스쿨 헌법 소원 기각한 헌재
"자유로운 토론 및 성숙한 민주주의 위해
허용되는 의사 표현 아냐"

사실을 왜곡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심어 주는 강연은 이미 공공 교육기관에서는 문제가 돼 왔다. 반동성애 진영은 이런 규제가 표현의자유·종교의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을 위반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미 헌법재판소도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것이 헌법 정신에 맞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미션스쿨 서울디지텍고등학교 곽일천 이사장과 교사, 재학생, 예비 신입생 등은 혐오 표현을 금지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위헌이라며 2017년 12월 헌법 소원을 청구했다. 이들은 반동성애 진영에서 활동하는 법조인들과 손잡고 학생인권조례가 표현의자유와 더불어 양심의자유·종교의자유·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논리를 폈다. 지금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국면에서 나오는 주장과 비슷하다.

헌법재판소는 학교에서 차별·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헌법재판소는 학교에서 차별·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9년 12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리며 청구인들 소를 기각했다. 헌법재판소는 혐오 표현이 "단순한 부정적 의견이 아닌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적대감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혐오 표현은 사회적으로도 해악을 미친다고 판단했다. "발화 즉시 표현의 상대방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 구성원에게도 영향을 미치며, 이를 통해 적대감을 유발시키고 고취시킴으로써 특정 집단의 가치를 부정한다"고 설명했다.

표현의자유가 중요한 헌법상 권리이고 보장되어야 하지만, 차별·혐오 표현까지 용인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헌법재판소는 "(차별·혐오 표현은) 자유로운 토론과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허용되는 의사 표현이 아니다. 그 경계를 넘어 '타인의 인권을 침해할 것'을 인식했거나 최소한 인식할 가능성이 있고, 또한 결과적으로 그러한 인권 침해 결과가 발생하는 표현"이라며, 민주주의 장에서 허용되는 한계를 넘는 것이므로 민주주의 의사 형성의 보호를 위해서도 제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영향받는 건
일부 반동성애 강사의 허위·왜곡 강의
"규제하니까 안 된다" 아닌
혐오 표현이 미치는 해악 파악이 우선

반동성애 운동가들은 자신들을 한국교회와 동일시해,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교회가 탄압받는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제재되는 것은 몇몇 반동성애 강사의 허위·왜곡·과장 정보로 점철된 극단적인 강의다. 소수자를 향한 혐오 표현은 지금도 규제되고 있으며, 헌법에 위배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의 강의가 규제되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면 안 된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헌법재판소 판단처럼, 혐오 표현은 단순한 부정적 의견이 아니라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언행이다. '어떤 표현이 규제되고 어떤 표현은 허용되는가'라는 방향으로 논의하기보다, 혐오 표현이 왜 문제인지, 왜 하면 안 되는지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 혐오 표현이 실제로 그 말을 듣는 당사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진리를 말하지 못하게 된다'는 반동성애 진영 프레임에 휘말릴 필요 없다. 동성애 반대가 기독교의 진리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아무리 진리라 해도 누군가의 인격을 무너뜨린다면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뉴스앤조이>는 이런 취지에서, 일부 보수 개신교의 반동성애 메시지가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당사자 3명을 직접 만나 들어 봤다. 그 내용은 다음 기사에서 소개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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