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라는 책을 보면 성교육 책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초등학생 애들에게 조기 성애화 이런 우려까지 있는 내용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교 자체를 '재밌는 일이야', '신나고 멋진 일이야', '하고 싶어지거든'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그림도 보기가 상당히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들어가 있고.
 

이런 책들을 초등학교 10개 학교에 보급했다는 것이고, 앞으로 확산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요. 어린이 성교육을 당연히 하긴 해야 하는데, 어디까지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성적 소수자나 동성애자분들의 개인적 취향이나 결정을 존중하고 차별하지 않아야 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런 동성애나 성적 소수자들을 조장하고 미화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 않나 싶은데요."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 국회의원의 말 하나로 정부가 추진하던 포괄적 성교육 사업 하나가 공중분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포항남·울릉군)은 8월 25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여성가족부가 진행하는 '나다움 어린이책 교육 문화 사업'(나다움어린이책)의 몇몇 책을 문제 삼았다.

언론 보도로 김병욱 의원의 발언이 일파만파 퍼지자, 여성가족부는 하루 만에 꼬리를 내렸다. 이정옥 여가부장관은 다음 날, 김 의원이 문제 삼은 책들을 모두 회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장관의 '백기 투항'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보수 언론에서는 김 의원이 언급한 책들 중 자극적인 그림을 캡처한 후 '19금 소설', '외설 동화책', '외설적 책'이라고 표현해, 마치 이 책들이 불온서적인 양 보도했다.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이 문제를 제기한 나다움어린이책에 선정된 책들. 여기에 '가족 인권 선언' 시리즈 4권을 더해 총 10권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이 문제를 제기한 나다움어린이책에 선정된 책들. 여기에 '가족 인권 선언' 시리즈 4권을 더해 총 10권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여가부가 정말 '외설 동화책'을 학교에 보급한 것은 아닐 텐데,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2020년에 금서禁書가 됐을까. 책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전, 이 사건 기저에 흐르는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의 문제 제기와 여가부의 회수 결정이라는 표면 밑에는 개신교계 반동성애 진영의 주장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반동성애 가짜 뉴스들이 마치 정당한 의견인 양 국회에서 이야기된 데 이어, 반동성애 강사들이 주장하는 '성경적 성교육'까지 국회로 가게 된 꼴이다.

반동성애 '성경적 성교육' 강사들
지난해부터 나다움책 저격
극우 성향 매체와 합작해 공포심 조장

나다움어린이책은 여가부가 롯데지주,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진행한다. 아동·청소년 문학 평론가, 초등학교 교사, 그림책 작가, 어린이책 기획자 등으로 구성된 도서위원회가 그동안 발간된 어린이용 도서들 중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개선하고, 남자다움·여자다움이 아닌 '나다움'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책을 선정해 학교·도서관에 보급하는 문화 사업이다.

지난해에는 134권을 선정해 학교 5개에 보급했고, 올해는 65권을 학교 10개에 전달할 예정이었다. 자기 긍정 22종, 다양성 23종, 공존 20종이다. 김병욱 의원이 문제를 제기한 책은 7종 총 10권으로 △'우리 가족 인권 시리즈'(노란돼지) 4권 △<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놀랍고도 진실한 이야기>(고래가숨쉬는도서관) △<걸스 토크, 사춘기라면서 정작 말해 주지 않는 것들>(주니어시공사)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담푸스)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시금치) △<여자 남자, 할 일이 따로 정해져 있을까요?>(고래이야기) △<엄마는 토끼 아빠는 펭귄 나는 토펭이!>(키즈엠)다.

나다움어린이책에 선정된 책들을 처음으로 문제 삼은 건 개신교계 반동성애 강사들이었다. 몇몇 '성경적 성교육' 강사는 이미 작년부터 나다움어린이책을 저격했다. 김 의원이 예로 든 <아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는 대표적인 반동성애 강사 김지연 대표(한국가족보건협회)가 지난해부터 교회에서 문제를 삼은 책이다.

"이게 어떤 장면이냐면요, 한국에도 들어와 있는 책인데. 여자 성기에 남자 성기가 들어가 있는 것을 엑스레이 찍은 것처럼 속이 다 보이게, 근데 성기 끝으로 발사되는 것까지 다 나오게 (묘사한 것). 이걸 코흘리개 아이들에게 가르치라는 거예요. 이걸 본 아이들 중에 막 연습을 하는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한 거죠. 정확한 성기 명칭과 기능과 섹스 방법을 가르쳐 주라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중략)

 

각종 야한 게 막 나오다가 아기는 어떻게 나오는지 다 나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출산 놀이, 산부인과 놀이를 하고 난리가 난 거예요. 이게 성애화되는 거예요. '내 질에는 지우개도 안 들어가는데, 선생님 질에서는 정말 아기가 나와요?' 아이들이 안 하던 생각을 하게 되죠. 이게 성애화입니다. 아이들을 고도로 성애화시키고 싶으면 적나라한 성교육 하시면 됩니다." - 2019년 5월 31일 제자광성교회(박한수 목사) 강연 중

이 책이 결국 아이들의 '조기 성애화'를 일으킨다는 내용이 김병욱 의원 논리와 같다. 반동성애 '성경적 성교육' 강사들은 자신들 주장과 다른 성교육에 '나쁜 성교육'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동반연)은 올해 2월 홈페이지에 '나쁜 성교육 및 나쁜 성평등 도서 신고 센터를 운영합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나다움어린이책 같은 도서를 신고해 달라고 공지했다.

나다움어린이책과 관련한 첫 기사는 반동성애 진영의 의견을 그대로 게재해 온 <크리스천투데이>에서 나왔다. <크리스천투데이>는 익명의 학부모가 쓴 블로그 글을 인용하며 "나다움어린이책에 선정된 책들이 덴마크의 그림책이랑 똑같은 내용이다. '조기 성애화 빼박'"이라고 5월 26일 보도했다.

극우 성향 매체 <펜앤드마이크>는 성교육 서적의 맥락을 제거하고 선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만 언급하면서 '외설적'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극우 성향 매체 <펜앤드마이크>는 성교육 서적의 맥락을 제거하고 선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만 언급하면서 '외설적'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이후 반동성애 진영과 일부 보수 개신교 학부모를 중심으로 '나쁜교육에분노한학부모연합'(분학연)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나다움어린이책에 대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극우 성향 매체 <펜앤드마이크>는 8월 12일, 분학연과 공동 조사한 결과라며 나다움어린이책에 대한 허위·왜곡, 확대해석한 정보를 보도했다.

<펜앤드마이크> 역시 이 도서들이 동성애를 미화·조장하고 아동들의 조기 성애화를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전체 내용을 보지 않고 선정적인 부분만 짜깁기해 보도했다. 가장 황당한 내용은 <엄마는 토끼 아빠는 펭귄 나는 토펭이>라는 동화책이 종이 다른 동물의 결합을 인정해 수간을 정상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고 보도한 것이다. 

이후 김병욱 의원이 8월 25일 국회에서 유은혜 교육부장관을 질책하는 발언을 했고, 26일 여가부가 책의 회수를 발표한 사건이 벌어졌다. 개신교 중에서도 일부 극단 성향의 반동성애 강사들이 주장해 왔던 내용이 국회의원의 입을 통해 나와, 정부가 추진하던 성교육 사업 하나가 엎어진 것이다.

논란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여가부가 회수하겠다고 밝힌 책 10권은 서울시 구립 도서관 및 서울시교육청 부설 도서관에서도 잠깐 사라진 적이 있다. 일시적으로 책을 검색 불가로 처리했다가 복구한 것이다. 도서관 관계자는 9월 14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똑같은 민원이 주기적으로 오기 때문에 우선 검색에 잡히지 않도록 조치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논의한 결과 원상 복귀했다"고 말했다. 기준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답을 피했다.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은 <엄마는 토끼 아빠는 펭귄 나는 토펭이>가 수간을 정상적으로 인정하게 만든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은 <엄마는 토끼 아빠는 펭귄 나는 토펭이>가 수간을 정상적으로 인정하게 만든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책 회수뿐 아니라 전시회·토론회 모두 무산
"공무원들, 민원 시끄러우니까 받아 줘
공론화 통해 의미 있는 결과 도출해야"

여가부의 회수 결정과 함께 나다움어린이책 사업은 일시 정지됐다. 나다움어린이책 사업에는 책을 보급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문화 사업이 있다. 원래는 올해 선정한 학교 10곳에 책을 보급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실과 연계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북 콘서트, 전시회, 토론회 등 연관 사업 모두 기약 없이 미뤄졌다.

나다움어린이책 사업 관계자들은 9월 8일 기자와 만나, 이번 논란은 허위·왜곡 정보에 기반한 문제 제기로 시작된 일이라고 말했다. 씽투창작소 남윤정 대표는 "개신교계 반동성애 진영이 책의 의도와 맥락을 모두 자르고 일부 선정적인 그림만 편집했다. 이어 이를 그들 입맛에 맞는 우파 매체가 이를 편파 보도하면서 일부를 허위로 보도했다. 특히 5개 학교에만 배포한 것을 마치 전국 초등학교에서 진행하는 것처럼 매도했고 이것이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고 토로했다.

출판사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가족 인권 시리즈'를 편집한 출판사 노란돼지 김성은 편집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조직적으로 민원을 제기하니 여가부는 회수를 결정하고 도서관은 블라인드 처리한다. 시대착오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노이즈 마케팅과 같은 네거티브 방식에 공무원들이 공감해서라기보다, 그냥 시끄러우니까 그렇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은 편집장은 "찬성과 반대 의견을 듣는 자리가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교육 현장에서는 성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 이런 논란이 있을 때 공론화해서 조금 더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면 좋았을 텐데, 별다른 논의도 없이 회수를 발표한 여가부 결정이 아쉽다"고 말했다.

나다움어린이책 사업이 엎어진 사건이 심각한 것은, 이런 후퇴가 결국에는 아이들 성교육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반동성애 진영과 보수 언론이 '포르노 성교육'이라고 공격한 이 책들은 사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내놓은 '포괄적 성교육' 가이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설명이 적나라하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한다면, 이미 국제사회에서 실효성을 잃은 성기 결합 중심의 혼전 순결 지키기식 성교육에 매일 수밖에 없다.

포괄적 성교육이란 무엇일까. 일부 개신교인 학부모들은 정말 제대로 알고 반대하는 걸까. 다음 기사에서는 반동성애 강사들이 그토록 경계하고 공포심을 조장하는 포괄적 성교육이란 무엇인지, 그 실체가 정말 가정과 교회, 사회를 파괴하는 것인지 자세히 살펴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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