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권인숙 의원(더불어민주당) 이름 앞에는 늘 '부천 성 고문 사건 피해자'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권 의원은 성폭력 피해자의 삶을 받아들이고 이를 승화해 평생의 과제로 삼는 길을 선택했다. 미국에서 여성학을 공부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2003년부터 명지대학교에서 여성학을 가르쳤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으로 활동하다가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영입돼 여의도에 발을 들였다.

권인숙 의원은 자타 공인 여성·아동 정책 전문가다. 그의 의정 활동은 일관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국회여성아동인권포럼 대표로 활동하며 여성·아동 인권을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연구하고 법률 마련에 힘쓴다. 국회의원 취임 후 1호로 발의한 법안도 '온라인 그루밍'을 처벌하는 내용이었다. 정보 통신망을 이용해 △19세 이상의 사람이 아동·청소년에게 성적 목적의 대화를 하거나 해당 대화에 참여시키는 행위 △성교·자위행위 등을 하도록 아동·청소년을 유인·권유하는 행위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기 위해서 유인하거나 성을 팔도록 권유하는 행위를 한 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이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담푸스)를 문제 삼으며 유은혜 교육부장관을 질책할 때, 권인숙 의원도 그 자리에 있었다. 당시 상황을 묻자 권 의원은 "김 의원이 발언하는데 '제발 그 얘기는 하지 마시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여성가족부가 한 사업들을 극보수 시각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야기가 불편했다. 또 아이들 앞에서 늘 보이던 구태의연한 그 모습을 현장에서 재연하는 상황이 싫었다. 그런데 다음 날, 여성가족부가 책 회수를 결정하면서 일이 더 커져 버렸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을 9월 22일 인터뷰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을 9월 22일 인터뷰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권인숙 의원을 9월 22일 의원실에서 만났다. 그는 개신교인은 아니지만, 이번 '나다움어린이책' 사태와 포괄적 성교육에 대해 객관적·전문적 시각에서 설명해 줄 수 있는 적임자다. 권 의원은 금욕주의에 기반한 성교육이 아닌 포괄적 성교육이 어떻게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지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설명했다.

"인터넷 보급으로 성적 장면 일찍 접해
어릴 때부터 정확한 정보 갖게 해야
또래 문화, 디지털 성폭력 등 고려하면
선택적 성교육 좋지 않아"

- 소위 '성경적 성교육' 강사들은 어렸을 때 생물학적으로 정확한 성기 모양 혹은 성기 결합 장면을 보여 주는 방식의 성교육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이 성적으로 필요 없는 상상을 하게 되며 '조기 성애화'된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의 조기 성애화 주장은 지금 현실에서는 난센스다. 한국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1위다. 아이들이 접근할 수 있는 매체 종류가 다양하다. 어렸을 때부터 성적인 장면을 어떻게든 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성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중요하다. 어렸을 때부터 성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오히려 조기 성애화를 걱정하는 분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방법이다.

자기 욕구를 죄책감으로 바라보지 않고, 정확한 정보를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 가정에서 부모가 성과 관련해 아이들과 대화할 때, 정직하게 시작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부모와 성과 관련한 대화를 이어 가지 않는다. 부모가 성을 꺼림칙하게 여기고, 속이고, 부담스러워한다는 걸 알면 아이들도 이를 대화 주제로 떠올리지 못한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지, 부모에게 부담을 주는 이상한 아이처럼 취급받고 싶어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직하고 정확하게 대화해야 한다.

- '성경적 성교육' 강사들은 공교육에서의 성교육이 불필요하다고까지 주장한다. 가정마다 성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부모가 원하지 않는 방식의 성교육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교육학적으로 성교육은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기본 지침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성교육을 해야 하는 건, 부모가 성교와 관련해 객관적이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다. 부모도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게 필요하긴 하지만, 막상 아이와 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부담스럽지 않나. 자기 아이가 성을 안다는 것에 놀라고, 내 아이는 몰랐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과거도 그랬지만 지금 부모 세대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침착하게 성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래서 공교육에서 성교육을 시행해야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되면 남녀가 완전 분리된 채로 생활한다. 여자·남자로 나뉘어 또래 그룹을 형성한다. 특히 남자아이들 안에서는 때로 성이 놀이 주제가 되기도 한다. 디지털 성폭력에 어린 나이부터 노출되기 시작한다. 또래 문화 속에서 같이 하지 않으면 서열에서 밀리거나 뒤처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6학년 정도가 되면 완전히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적으로 성교육을 행하는 건 좋지 않다. 정보 수위를 조절할 수는 있겠으나, 성교육 자체는 보편적으로 하는 게 맞다.

권인숙 의원은 국회여성아동인권포럼 대표다. 인터뷰 당일 오전에도 정의당과 함께 연 차별금지법 관련 토론회에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권인숙 의원은 국회여성아동인권포럼 대표다. 인터뷰 당일 오전에도 정의당과 함께 연 차별금지법 관련 토론회에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초등학생도 디지털 성폭력
가해자 될 수 있는 세상,
성적 행동에 대한 책임과 판단력
기르는 포괄적 성교육 시행해야"

-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보수 성향이 강한 개신교인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시스템의 근본 해결을 위해 힘을 모으기보다 가정에서 아이의 행위 통제를 강조하기도 한다.

지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전부 디지털에 기반한다. 이미 그런 문화가 됐다. 포괄적 성교육에서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도 진행한다. 성욕과 생식기 중심이 아니라 인간이 성과 관련해 느끼는 점을 포괄적으로 가르치는 게 포괄적 성교육이다. 내가 누구를 좋아할 때의 느낌부터 시작해, 여러 상황을 놓고 냉정하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이 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이미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한다.

어른들이 성을 쉬쉬하면 아이들의 해석도 부정적이 된다. 성을 은밀하고 음란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에 사회가 손을 쓰지 않으면 위험한 상태까지 온 것이다. 아이들은 대개 자기 보호 수단과 판단력 없이 디지털 세계로 들어간다. 짐작할 수 없는 일이 점점 더 많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포괄적 성교육에 들어가야 한다.

12살짜리 남자아이도 디지털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현실을 좀 냉정하게 보면 좋겠다. 아이들은 장난이라면서 가장 친한 여자아이 사진을 모르는 사람에게 공급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친구 관계가 유지되지 않으니까. 무섭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N번방 같은 사건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누구나 가해자·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소수의 소위 '되바라진' 아이들에게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무조건 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말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인지 알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어떤 매뉴얼을 만든다고 해도, 또래 문화, 선후배 사이에서는 창의적인 문제들이 계속해서 발생한다. 제시한 상황과 다른 상황이 펼쳐졌을 때는 그 해결책을 따를 수 없다. 스스로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기르려면, 내가 누구인지, 나다움이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 있는 아이로 키워야 하는데, 지금 나다움어린이책에 대한 대응을 보면 정말 난센스다.

그런 면에서 여성가족부 대처가 상당히 아쉽다. 교육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동료 의원들도 이번 사건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면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예정이다. 교육 방향이 이런 식으로 갈 수 없다고 많은 의원이 생각하고 있다.

권인숙 의원은 여성가족부의 책 회수 결정이 여러 면에서 아쉽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권인숙 의원은 여성가족부의 책 회수 결정이 여러 면에서 아쉽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의원님은 정책적으로도 성평등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포괄적 성교육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그릇된 성 문화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한 정신과 전문의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자기 성적 욕망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남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자기 행동을 결정하는 데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래끼리 느끼는 성에 대한 문제를 부모나 교사 등 가장 가까운 성인과 이야기하지 못하는 문화가 사실은 성폭력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고 단호하게 얘기하더라. 개인적으로 많은 부분 동의했다. 나의 욕망을 이해하고 존중할 때, 남의 욕망에 대한 존중도 가능해진다.

성에 대한 행동이 어떻게 책임으로 이어지는지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현재 아이들의 성장 환경에서는 이런 교육이 필요하다. 제대로 교육하지 않으니까 성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남자는 늑대이니 여자는 몸조심해야 한다거나, 남자를 모두 잠재적 가해자로 보게 한다거나, 여성은 옷차림에 따라 성폭력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기는 등 편견이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여자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내 몸이 나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조심해야겠구나'라고 막연히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뭘 조심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남자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 막연한 공포심을 심어 준다. 정확한 교육이 아니라 부정적인 경험을 심는 것이다. 성 욕망은 음란한 것, 나를 질책하지 않는 사람들끼리만 나눠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결국 디지털 성폭력의 좋은 토양이 된다. 그렇기에 포괄적 성교육 안에서 미디어·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다움을 강조하는 교육도 결국 나의 느낌과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나의 주체성을 키우고, 그다음에는 인간, 즉 친구·동료의 소중함을 이해하게 하는 교육 방식 속에서 디지털 성폭력의 해답을 찾아갈 수 있다.

"성교육만으로 성평등 문화 확산 힘들어,
불평등 만연한 사회·경제·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함께 변화 도모해야"

-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포괄적 성교육도 중요하지만, 다른 분야도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할 것 같다.

맞다. 성평등 문화 확산의 일환으로 성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20~30대 여성은 디지털 성폭력 등 현실적으로 느끼는 공포에 대한 분노가 정말 크다. 여성들이 불안해하는 이 현실을 두고 볼 수 없다. 그렇기에 디지털 세계를 어느 정도 규제하는 게 필요하다.

동시에 청소년 여성들에게 사회가 희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성교육만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여성의 고용 불평등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한국은 OECD에서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성평등에 관심 있는 여성들의 활약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경제적 지위는 썩 좋아지지 않고 있다. 이 부분에서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여성이 소수라 할지라도 의사 결정 구조에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 여성이 참여하지 못하니까 상대적으로 여성의 안전과 관련한 이슈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받는 것 아닌가.

이런 환경이 다 연결돼 있어서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대응도 늦었던 것이고, 여성이 성매매·성착취 현실에 노출돼 있는데도 대응이 없다. 이번에 발의한 '온라인 그루밍법'은 63개 국가에서 이미 통과된 법인데, 한국은 여전히 법률 자체가 없다. 현실에서 구체적인 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디지털 성폭력 같은 이슈에 대한 대처도 늦어지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7년 주최한 공청회에 난입한 반동성애 활동가. 그는 당시 여성가족부 정현백 장관의 발언 시간에 앞으로 나와 피켓을 들었다. KHTV 영상 갈무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7년 주최한 공청회에 난입한 반동성애 활동가. 그는 당시 여성가족부 정현백 장관의 발언 시간에 앞으로 나와 피켓을 들었다. KHTV 영상 갈무리

- 차별금지법이나 포괄적 성교육 문제에서 일부 보수 개신교인의 조직적 항의를 몸소 겪었을 것 같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시민으로서 이런 행동은 어떻게 보는가.

2017년 11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양성평등 정책 기본 계획 수립을 위한 공청회'를 연 적 있다. 그때 정말 난리가 났다. '양성평등'이라고 이름만 붙여 놓고 '성평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국민의례가 끝나고 당시 여성가족부 정현백 장관이 나와 발언을 시작하자, 반동성애 활동가라는 사람이 앞으로 나와 '여자만 인권 있나? 가정 파괴 부추기는 여가부 해체하라!', '젠더 교육 결사 반대' 등 피켓을 들고 방해했다. 동시에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행사장 뒤편에 서서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이들이 중간중간 계속 소리를 지르고 방해해서 토론회 진행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결국 공청회는 무산됐다.

그분들은 종교를 근거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 같은데, 종교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회의하게 하는 행동이었다. 기독교에서도 선교가 중요한 요소일 텐데, 그런 방식으로 행동한 후에는 포교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 헌법에서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명시하고 있는데, 일부 종교인이 양성평등만이 종교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며 공론장을 파괴하는 건 옳지 않다.

정의당 차별금지법을 공동 발의했을 때도 그렇고, 비슷한 사례가 있을 때마다 연락이 온다. 문자 폭탄도 기본이다. 동료 의원들도 조직적 항의를 겪는 일이 종종 있다. 지역구 의원들은 지역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방식의 문제 제기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국회의원은 없을 것이다.(끝)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