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기독교텔레비전(CTS)은 8월 31일 페이스북 페이지에 '가정·교회·국가를 무너뜨리는 10가지 숨겨진 실체와 동성애'라는 카드 뉴스를 포스팅했다. 카드 뉴스는 앨리스 베일리(Alice A. Bailey, 1880~1949)라는 '사탄 숭배자'가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10가지 전략을 만들었다고 소개한다.

이 카드 뉴스는 2017년 6월, CTS에서 방영한 '동성애 STOP - 톡톡포유'에 출연한 반동성애 활동가 염안섭 원장(수동연세요양병원)이 말한 내용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염 원장은 앨리스 베일리를 '최고위급 사탄 숭배자'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40년 전 출생한 앨리스 베일리라는 사탄 숭배자 중에 최고위 성직자였던 한 여성. 영매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무당이다. 그 여성이 주신급의 세 마리 마귀로부터 계시를 받아서 기독교를 무너뜨리는 전략 10가지를 받은 게 있다. 이 10가지 전략대로 반기독교 세력, 사실 반기독교 세력이라기보다는 적그리스도 세력이다. 맹목적으로 기독교를 무너뜨리겠다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 정도가 아니라 맹목적 증오와 기독교 와해를 획책하는 안티 기독교 세력이다. 거기에 10가지 지침이 지금까지 내려오면서 이대로 실행이 되고 있다."

염안섭 원장은 앨리스 베일리의 10가지 전략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 교육 시스템으로부터 하나님과 기도를 제거하라.
2. 아동들에 대한 부모의 권위를 축소시켜라.
3. 기독교 가정 구조, 전통적 기독교 가정 구조를 파괴하라.
4. 프리 섹스 사회를 만들라 - 낙태를 합법화하고 낙태를 하기 쉽게 하라.
5. 이혼하기 쉽게 만들고 이혼을 합법화하라. 평생 결혼의 개념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켜라.
6. 동성연애를 대체 생활 방식으로 만들라.
7. 예술의 품격을 떨어뜨려라. 미친 예술이 되게 하라.
8. 미디어를 활용하고 선전하고 인간의 사고방식을 바꿔라.
9. 종교 통합 운동을 일으키라.
10. 각국 정부로 하여금 위의 사항들을 법제화하도록 하고 교회가 이러한 변화를 추인하도록 하라.

특히 염안섭 원장은 6번을 설명하며 "기독교를 파괴하려는 10가지 사탄의 핵심 전략 중 6번째가 '동성연애를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대체 생활 방법으로 인식시키라'는 거다. 140년 전 태어난 여자가 이 말을 했다는 것이 놀랍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를 10번과 결부해 차별금지법 제정의 근거가 된다고도 했다.

이 내용을 담은 CTS 방송과 카드 뉴스는 지금도 온라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일부 반동성애 활동가에 의해 반복·재생산되고 있다.

염안섭 원장은 앨리스 베일리를 '사탄 숭배자'라고 소개했다. CTS 갈무리

'앨리스 베일리의 10가지 전략'은 사실 오래전부터 해외에서 떠돌았다. 우간다 부흥사 존 물린디(John Mulinde) 목사가 1999년 유럽 강연 도중 앨리스 베일리를 뉴에이지 시초(mother of the New Age)로 소개하며, 앨리스 베일리 플랜들을 소개했다는 해외 기사들이 있다. 이 내용은 'Alice Bailey's 10 point plan to destroy christianity'라는 제목을 달고 재생산됐다. 이것이 번역돼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앨리스 베일리는 영국 출신 여성으로, 생전 인도 선교와 YWCA 활동 등에 매진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신비한 지혜'神智를 탐구한다는 '신지학'(Theosophy) 연구가로 활동했다. 드왈 쿨(Djwal Khul)로 알려진 티베트인과 함께, 명상·치유·심리학 등에 관한 책을 20여 권 남겼다. 오컬트의 일부로 볼 여지가 있긴 하지만, CTS나 염안섭 원장이 말한 것처럼 '사탄 숭배자'는 아니다.

게다가 CTS 카드 뉴스는 앨리스 베일리 사진부터 틀렸다. 카드 뉴스에 나오는 인물은 러시아의 오컬트 연구자이자 신지학협회를 창설한 헬레나 블라바츠키(Helena Blavatsky, 1831~1891)라는 사람이다.

앨리스 베일리가 '10가지 전략'을 체계화한 적도 없다. 앨리스 베일리와 남편 포스터 베일리가 설립한 단체 'Lucis Trust'에서 소개하는 앨리스 베일리의 저서 중에는 '10가지 플랜' 혹은 유사한 제목의 저작이 존재하지 않는다.

앨리스 베일리가 쓴 책들을 찾아 본 결과, 그는 오히려 동성애에 부정적이었다. 앨리스 베일리는 저서 <에소테릭 힐링 Esoteric Healing>에서 동성애를 세 가지로 분류한다. '고대 악습의 결과'(the result of ancient evil habits), '모방성 동성애'(Imitative homosexuality), '아주 극소수의 반음양(자웅동체) 사례'(A few rare, very rare, cases of hermaphroditism).

특히 '모방성 동성애'를 설명하면서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우러러보는 사람을 모방하면서 '성적으로 악한 행동'을 학습했으며 그러한 모방이 아니었으면 그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A number of persons of all classes imitated their betters and so developed evil habits in sexual intercourse from which they might otherwise have remained free)이라고 설명한다.

같은 책에서 앨리스 베일리는 "욕망이 만연하고 통제 불가능하고 억제되지 않는 곳에서는, 매독성 질환, 동성애, 염증, 열병 등이 나타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It should be noted that where desire is rampant and uncontrolled and no inhibition is present, such diseases as the syphilitic disorders, homosexuality and inflammations and fevers appear)고도 했다.

다른 저서에서도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표현한다. <에소테릭 아스트롤로지 Esoteric Astrology>에서는 동성애를 '잘못된 성 습관에 대한 가르침', '광범위하게 퍼진 매춘' 등과 함께 설명하면서 "드물게 나타나는 생리적 형태나 성향이 아니라, 왜곡된 사고방식과 불건전한 상상력의 관점"(not in its rare physiological forms and predispositions but from the angle of a perverted mentality and an unwholesome imagination)에서 봐야 한다고 썼다.

<언피니시드 바이오그래피 The Unfinished Biography>에서는 동성애를 "오늘날 소년·소녀들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 중 하나"(one of the greatest menaces confronting the boys and girls today)라고 썼다. 이 같은 기록을 종합해 보면, 앨리스 베일리는 동성애에 대해서는 오늘날 반동성애 진영과 비슷한 사고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CTS는 앨리스 베일리 사진도 잘못 썼다. CTS가 쓴 사진은 신지학협회를 창설한 헬레나 블라바츠키였다. 오른쪽이 앨리스 베일리다. 사진 출처 왼쪽 CTS, 오른쪽 Lucis Trust

<뉴스앤조이>는 25년간 앨리스 베일리를 연구하며 그의 모든 저서를 원서로 다 읽었다는(앨리스 베일리 저작 중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없다) '마나스스쿨' 정국진 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마나스스쿨은 2001년부터 존속해 온 국내 유일 신지학 연구·강의 모임이다.

정국진 씨는 9월 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에 따르면 앨리스 베일리는 동성애 옹호자다. 그러나 앨리스 베일리는 동성애 반대론자가 맞다"고 했다. 이밖에 앨리스 베일리가 프리 섹스를 조장하고 낙태를 찬성하며 가정을 파괴시키려 했다는 등의 주장도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앨리스 베일리는 저서 곳곳에서 가정의 붕괴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남성들은 (외도 등으로) 사실상 일부다처제로 살고 있다며 이를 경계했고, 피임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정 씨에 따르면, 앨리스 베일리의 모든 저서 중에 'abortion'(낙태)라는 표현은 딱 한 번 등장하는데 그마저도 '실패'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앨리스 베일리가 "최고위급 사탄 숭배자"라거나 "주신급 마귀 세 마리의 계시를 받았다"는 내용도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정 씨는 "앨리스 베일리는 기독교 전통 집안에서 태어났고, 목사와 결혼한 사람이다. 실질적으로 기독교적 뿌리를 지닌 사람"이라고 했다. 또 "어떤 버전의 가짜 뉴스에서는 '앨리스 베일리가 3대 신지학협회 회장이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는 신지학협회를 탈퇴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정 씨는 '신지학'이라는 것이 생소하기 때문에 이를 연구하는 사람이 '사탄 숭배자'로 몰리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신지학은 '신'(테오스)과 '지혜'(소피아)가 합쳐진 말로, 말 그대로 신적인 것들의 지혜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기독교뿐 아니라 고대 이집트의 종교, 불교, 도교 등 종교 근본에 있는 영적 원리를 연구한다. 신지학은 종교다원주의나 비교종교학과는 관계가 없다. 모든 종교를 하나로 포섭한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정국진 씨는 "앨리스 베일리가 근본주의적 기독교 교리를 많이 비판했고, 무엇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인지를 강조하다 보니, 그를 비난하는 글이 생겨난 것 같다. 그러나 앨리스 베일리는 죽을 때까지 '그리스도'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멀쩡한 사람을 '사탄 숭배자'로 몰아가는 가짜 뉴스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 정정: 본문 중 "초대 신지학협회 회장을 지낸 헬레나 블라바츠키"를 "신지학협회를 창설한 헬레나 블라바츠키"로 바로잡습니다. (9월 4일 오후 9시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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