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and Biphobia, 아이다호데이)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혐오에 가장 앞장서는 집단은 보수 개신교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혐오가 아닌 정당한 의견 개진이며, 한국 사회에는 성소수자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에는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이 정말 존재하지 않을까요. 최근 코로나19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성소수자는 언제든 공격받을 수 있고 차별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정치인들이 보수 개신교계에 번번이 무릎 꿇으면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성소수자는 차별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흘려 보냈습니다.

문제는 일부 보수 개신교계의 집요한 공격들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바탕으로 계속됐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2007년부터 지금까지 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간 언론과 시민단체, 법원 등에서 계속 팩트를 체크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뉴스앤조이>는 아이다호데이를 맞아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교계의 상반된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① 반동성애 진영과 보수 교계는 어떻게 차별금지법을 반대해 왔는지 정리하고 ② 반대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힘을 실어 왔던 개신교인도 있다는 점을 소개합니다. 마지막으로 ③ <선랑한 차별주의자>(창비) 저자 김지혜 교수(강릉원주대)에게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들어 봅니다. - 기자 주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서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압박이 심하게 일어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하며, 정의당도 제1호 법안으로 차별금지법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보기에, 조금 전에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성명서를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성명서에 동참할 수 있는 단체 이름들을 저에게 문자로 보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동성애동성혼반대전국교수연합 대표 길원평 교수(부산대)는 선거가 끝난 후 개신교인들에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길 교수를 비롯한 반동성애 진영은 벌써부터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발의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퍼 나르고 있다.

2007년부터 시작된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는 보수 개신교의 조직적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반동성애 활동가들 주장에 부화뇌동한 일부 개신교인은 차별금지법은 물론 '성별', '성평등' 같은 표현이 담긴 다른 법안에도 반대 시위, 항의 전화, 기자회견 등으로 집요하게 발의자들을 압박했다.

거리에서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개신교인들은 늘 "차별금지법은 악법"이라고 주장한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거리에서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개신교인들은 늘 "차별금지법은 악법"이라고 주장한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지금까지 발의된 차별금지법 취지는 '어떤 사람이 교육·고용·서비스 등 공적 영역에서 차별받으면 안 된다'는 간단명료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속적이고 집요한 반동성애 진영의 혐오 선동은 차별금지법에서 말하는 '차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섬세하게 짚지 않는다. 공포와 두려움을 부추기는 방식을 극대화할 수만 있다면 일어나지도 않은 일,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을 모두 뒤섞는다.

차별금지법을 향한 시민사회 시각은 진일보했다. KBS가 2019년 초 실시한 신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1000명 중 64%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한국교회언론회가 2013년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52.3%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44.3%가 찬성이라고 응답했다. 불과 6년 사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이들이 20%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사회는 진일보하는데 개신교인들은 여전히 차별금지법을 "동성애자만 옹호하고 동성애를 창궐하게 만드는 법", "교회 파괴하는 법"이라고 부르며 혐오 프레임을 씌운다. 그동안 이들이 사용해 온 차별금지법 반대 논리는 그야말로 가짜 뉴스로 범벅이 된 '반대하기 위한 억지 부리기'에 지나지 않았다.

혐오에 굴복한 차별금지법 13년사
공포심 조장하는 악의적 선동
가짜 뉴스 유포하면서도
여전히 교계에 강한 영향력 행사

교계의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운동이 처음부터 격렬했던 것은 아니다. 법무부가 2007년 10월 처음 차별금지법을 입법 예고했을 때, 교계는 동성애차별금지법안저지의회선교연합(의회선교연합)을 중심으로 황우여·강성종 등 일부 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의원이 함께 국회 안에서 목소리를 냈다. 법안에 열거한 차별 금지 사유 중 '성적 지향'을 빼 달라는 게 주된 요구 사항이었다.

당시 의회선교연합은 "차별금지법은 교회를 파괴하는 법" 같은 주장은 하지 않았다. 대신 "차별 금지 사유에 '성적 지향'을 넣으면 동성애를 정상으로 인정하게 되고, 이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정도로 주장을 펼쳤다. 개신교인 12만 명에게 동의 서명을 받아 법무부에 제출했다. 법무부는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차별 금지 사유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한 법안을 입법 예고했다가, 이번에는 반대로 인권 단체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 법안은 17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18대 국회에서는 2008년 1월 故 노회찬 의원이, 2011년 12월 권영길 의원이 대표로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개신교계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이 활발해진 것은 이즈음이다. 2010년 10월 에스더기도운동본부 이용희 교수(가천대)가 대표로 있던 '바른교육을위한교수연합'(바교연)은 <국민일보>에 '교회가 침묵하면, 동성애 차별금지법이 통과됩니다'라는 광고를 실었다.

국회가 차별금지법을 외면하는 동안, 지방 곳곳에서는 각종 인권조례 반대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지역 개신교인들은 경남 학생 인권조례 공청회를 무산시켰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국회가 차별금지법을 외면하는 동안, 지방 곳곳에서는 각종 인권조례 반대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지역 개신교인들은 경남 학생 인권조례 공청회를 무산시켰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동성애차별금지법반대국민연합·나라사랑학부모회 등과 함께 게재한 이 광고에는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동성애자 목사가 교회에서 설교하게 될 것", "이 땅의 수많은 청소년들이 동성애자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때부터 "동성애를 죄라고 설교하면 2년 이하의 징역,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가짜 뉴스'가 유포되기 시작했다. 18대 국회에서 발의한 차별금지법들도 찬반 공방을 거듭하다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가짜 뉴스는 19대 국회에서 더 거세졌다. 19대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총 세 차례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김한길·최원식 의원은 2013년 2월, 각각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때 교계는 그동안 해 온 점잖은(?) 반대 운동에서 방향을 바꿔 구호를 외치고 시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이 통과하면 △초·중·고등학교 성교육 시간에 동성 간 성행위를 가르쳐야 하고 △성범죄를 저지른 전과자를 비판할 수 없고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을 처벌하지 못하게 되며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설교하면 교회와 목사가 처벌받는다고 주장했다. 말도 안 되는 억측이지만, 이 같은 보수 교계 반발로 두 의원은 발의를 철회했다.

수차례 자신들 힘을 확인한 보수 개신교는 2014년부터 대대적으로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집회를 열며 세를 과시했다. 이즈음부터 '반동성애 운동'이라는 말이 등장했고, '동성애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교단과 교회를 돌며 강연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온갖 허위·왜곡·과장 정보로 교인들을 호도했다. 그럼에도 교계 반동성애 운동은 더욱 많은 단체로 자가 증식하며, 지금까지도 교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경기도 성평등 기본 조례 개정을 반대하기 위해 모인 개신교인 2만 명. 차별금지법이 발의되면 개신교는 분명히 세를 과시할 것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경기도 성평등 기본 조례 개정을 반대하기 위해 모인 개신교인 2만 명. 차별금지법이 발의되면 개신교는 분명히 세를 과시할 것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20대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이 아예 발의되지 않았다. 그래도 반동성애 진영은 멈추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의 학생 인권조례, 성평등 기본 조례, 인권 기본 조례, 문화 다양성 조례 등이 제정·개정될 때마다 쫓아다니며 반대 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각종 인권조례와 '성차별·성희롱 금지법', '혐오 표현 금지법' 등에 '미니 차별금지법', '우회적 차별금지법'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반대를 위한 선동 방식은 비슷했다. 인권조례가 제정되면 △동성애 옹호·조장해 동성애가 창궐하고 △이슬람·이단을 비방할 수 없게 된다며 절대 제정하면 안 된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각 지역 교계와 연합했다. 오프라인에서는 항의 전화와 시위·기자회견을 지속하고, 온라인에서는 특정 정치인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며 집요하게 공격했다. 결국 지자체는 줄줄이 인권조례를 취소했다. 각종 법안들은 발의자들 철회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공적 영역 차별 완화하는 법이
설교 처벌하는 벌로 둔갑
법원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보수 개신교인들에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위협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교회에서 동성애를 죄라고 설교하면 처벌받게 된다", "이단을 이단이라고 하는 것도 처벌 대상이 된다"는 오해일 것이다. 언론과 시민단체가 그간 숱하게 팩트를 체크해 왔지만, 이런 유의 가짜 뉴스는 지금도 유효하며 여전히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표현을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은 말 그대로 공적 영역에서 실질적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법이지, 목회자 설교를 감시해 처벌하는 법안이 아니다. 심상정 의원(정의당)은 "성소수자 개인을 모욕하고 인격적으로 폄훼하는 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기독교가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말하는 그 자체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장예정 정책담론팀장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를 반대하는 말만 하면 구속된다는 오해가 있다. 하지만 발언만으로 잡혀가는 사회를 원하는 인권 활동가는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법원도 인정한 가짜 뉴스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올해 2월, 반동성애 운동가들이 <한겨레>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는 죄라고 말만 해도 잡혀간다"는 취지로 한 말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허위 정보가 담긴 현수막. 개신교인들은 이 같은 현수막을 들고 부산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시위에 나섰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차별금지법에 대한 허위 정보가 담긴 현수막. 개신교인들은 이 같은 현수막을 들고 부산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시위에 나섰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법원은 염안섭 원장(수동연세요양병원), 길원평 교수(부산대), 백상현 기자(<국민일보>), 한효관 대표(건강한사회를위한국민연합)의 발언을 판단했다. 이들은 각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에 대해 건전한 비판을 해도 처벌받는다", "동성애를 비윤리적이라고 표현하면 처벌받는다", "동성애 반대 발언은 금지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동성애 반대론자의 발언은 차별금지법에 따라 처벌된다", "개인이 아닌 집단에 대한 혐오 발언의 경우에도 개인의 감정에 의한 처벌이 가능하다"고 발언했다.

법원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이들의 해석이 이미 발의된 차별금지법들 내용과 다르다고 판단했다. "당시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에 따르면 단순히 동성애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백상현 기자는 이 같은 주장이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단순한 의견 표명이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그의 발언이 차별금지법의 사실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범진보 진영 낙선 운동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
시대 읽지 못하면 발목 잡는 집단으로 인식될 것

그간 반동성애 진영이 취한 전략은 개신교인이라면 동성애를 반대해야 하고, 당연히 차별금지법도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성경이 현대사회에서 말하는 동성애를 무조건 배척한다고 볼 수도 없으며, 설령 신앙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해도 차별금지법은 찬성할 수 있다. 앞서 얘기했듯, 차별금지법은 개인의 신념을 제재하는 것이 아닌 공적 영역에서 차별을 없애자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반동성애 운동은 단순한 신앙적 신념도 아니다. '차별금지법 저지'라는 정치적 행동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도 반동성애 진영 및 일부 개신교인들은 미래통합당이나 기독자유통일당을 뽑아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이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면 개신교를 억압하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총선은 진보 진영의 압승으로 끝났다. 보수 개신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21대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향한 움직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정의당은 이미 총선 전부터 21대 국회 제1호 법안으로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올해 9월 차별금지법을 국회에 상정하고 연내 제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어떻게 보면 이번 총선 결과는 보수 교계가 세를 과시하면서 의원들을 표로 압박해도, 그들의 의견을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세상은 변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변하는데 여전히 13년 전과 똑같은 가짜 뉴스를 주장하며 차별을 조장한다면, 보수 개신교는 계속해서 인권 증진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을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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