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반동성애 진영 주장에 휩쓸린 보수 개신교계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서구 여러 나라처럼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각종 해외 사례를 끌어와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나라에서 역차별이 심해졌다거나 동성애 독재 시대가 열렸다는 말을 반복한다. 확인해 보면, 대부분 사실이 아니거나 차별금지법과 관련이 없는 사례다.

차별을 금지하는 각종 법을 이미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장이 열렸다. 국회여성아동인권포럼(권인숙 대표의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최영애 위원장), 정의당,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앰네스티)가 마련한 '주한 외국 대사관 초청 차별금지법 인권 컨퍼런스'다. 행사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나라는 지금?'을 주제로 9월 22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열렸다.

차별금지법안을 제정·시행해 온 각 나라 주한대사관의 대사·참사관·서기관(캐나다·프랑스·독일·뉴질랜드·영국)을 한자리에 초청했다. 각국이 거쳐 온 인권 증진의 역사, 차별금지법안 제정 이후 사회 변화 등을 나누고, 평등한 사회 건설을 위한 지혜를 모으는 시간이었다. 각국 대사들의 축사와 참사관·서기관들의 사례 발표 및 제언이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주한 외국 대사관(캐나다·프랑스·독일·뉴질랜드·영국) 대사들을 초청해 각 나라의 차별금지법안 제정 역사와 제정 이후 사회 변화상을 들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주한 외국 대사관(캐나다·프랑스·독일·뉴질랜드·영국) 대사들을 초청해 각 나라의 차별금지법안 제정 역사와 제정 이후 사회 변화상을 들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인권 선진국들 "처음부터 평등하진 않아
개선됐으나 아직 갈 길 멀다고 느껴"
"법안뿐 아니라 시민 의식 재고 위한 교육 필요"

인권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각국 주한대사들은, 자신의 나라도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법안을 제정했고, 이후 사회가 혼란에 빠지기보다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평등·안전 사회로 진일보했다는 공통 경험을 나눴다. 하지만 진정한 평등을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도 했다. 각국 대사들은 모두 한국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를 지지하고 응원했다.

캐나다대사관 패트릭 해버 참사관은 1977년 제정된 캐나다 인권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캐나다 인권법은 캐나다 최초의 인권법이자 차별금지법이다. 이전까지는 차별당한 이가 시정을 요구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 인권법은 기회·평등 원칙에 따라 모든 캐나다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포용 사회로 나아가는 비전을 제공한다. 인권법에 따라 캐나다는 1982년 헌법에 캐나다 인권 헌장을 넣었다. 1996년 차별 금지 사유에 '성적 지향'을 포함해 개정됐고, 2017년 '젠더 정체성'을 추가로 포함시켰다.

패트릭 해버 참사관은 인권법 제정 이후 여군이 남군과 동등한 기회를 보장받아 전투 요원으로 임무를 수행하거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투표소에 접근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개선한 사례 등을 소개하며 인권법이 사회에 미친 긍정적 영향을 강조했다.

그는 "캐나다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포용 국가가 된 이유는 다양성이 보장돼야 더 강력한 국가가 되기 때문"이라며 "근로 환경에 차별이 존재하면 생산성이 저하되고 GDP가 떨어진다. 이주민 차별이 있으면 인구가 증가하지 않는다. G7 국가 중 캐나다 인구 증가율이 가장 높은 이유가 이주민에 대한 차별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차별이 유지되면 사회는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현재 캐나다 내각은 36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확히 남성 18명, 여성 18명이다. 2015년에 최초로 내각 성비가 5대 5가 됐다. 성비를 왜 5대 5로 구성했느냐는 질문에, 당시 총리는 '우리는 지금 2015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고 했다.

각국 주한대사들은 진정한 평등 사회를 위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았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각국 주한대사들은 진정한 평등 사회를 위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았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프랑스는 1972년 최초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 프랑스대사관 산드라 코엔 정무참사관은 "프랑스가 당시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가입했고, 1960년대 NGO가 활발히 활동하면서 사회적 요구가 강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과감히 입법했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1999년 동성 간 결합을, 2013년에는 동성 결혼을 인정했다. 산드라 코엔 참사관은 "지난 7년 동안 프랑스 국민 관용도가 13% 증가했고 여성의 사회참여율도 늘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도 줄었다. 현재 프랑스에는 2000건 정도 동성 결합이 있고 7000건 정도 동성 결혼이 존재한다.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은 없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차별 해소를 위한 노력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법이 있다고 해서 완전히 집행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시민의 인식을 재고하기 위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했다. "모든 시민이 어떤 것이 차별인지 아닌지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이 그를 위한 법적 기반 마련을 위해, 현재 추진 중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조속히 만들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동성 결혼 허용해도 결혼 제도 문제없어
긍정적·포용적·낙관적 사회로 변화"
"재난의 시대, 모두의 존엄 지켜야"

뉴질랜드대사관 마이클 게스킨 일등서기관은 "뉴질랜드는 관용의 문화를 가지고 있고 다양성을 존중한다. 뉴질랜드가 늘 그래 왔다고 말하면 좋겠지만 우리도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쳤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뉴질랜드가 시행 중인 차별금지법안인 인권법과 권리장전을 소개했다.

마이클 게스킨 서기관은 "뉴질랜드에는 성문 헌법이 없다. 여러 법과 판례, 관습법이 모아져서 헌법 역할을 한다. 그래서 사회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는 1993년 인권법을 제정했지만, 여전히 '성적 지향' 논란이 있었다. 특히 기독교계 반발이 심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 동성결합법이, 2013년 동성 커플의 결혼 권리를 확장하는 법이 통과됐다.

2013년 법안 투표 당시 보수당 총리 모리스 윌리엄슨이 뉴질랜드 최대 게이 페스티벌 '빅 게이 아웃'을 긍정적으로 언급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2004년 동성결합법 투표 당시 반대표를 던졌다. 중도 우파 국가당 총리 빌 잉글리시도 2004년과 2013년 모두 반대표를 던졌으나, 2016년 총리 부임 후 "과거로 돌아갔으면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클 게스킨 서기관은 "그들도 결국 동성 결혼을 허용하더라도 결혼 제도나 사회에 부정적 영향이 없었다는 사실을 직접 느낀 것이다"고 말했다.

영국대사관 그래함 넬슨 참사관은 "한국 사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 많이 우려하고 있는데, 영국 평등법 제정 이후 발생하지 않은 일들을 말하겠다"고 했다. 그는 "표현의자유가 침해되지 않았다. 다수 집단에 악영향이 가지 않았다. 결혼 제도가 붕괴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로 영국 사회가 더 긍정적·포용적·낙관적인 사회가 됐다. 다양한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평등법이 완벽한 법은 아니라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평등법이 있기 때문에 많은 이가 차별에 대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얻었다. 법이 있기 때문에 차별 문제를 제대로 직시할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노력할 수 있다. 영국 정부도 계속 노력하고 있다. 장애인 국가 전략, 성소수자 행동 계획, 인종격차해소위원회를 추진·설립하려고 한다. 평등법과 차별금지법은 위협이 아니라 엄청난 기회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포용되고 존중받을 때 비로소 사회가 꽃피울 수 있다"고 말했다.

21대 국회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인사말을 건네고 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21대 국회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인사말을 건네고 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각 대사관 발표 전,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인사말에서 "코로나19로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지금, 차별금지법이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편견을 걷어 내고 법안 취지를 바라봐 달라. 단 한 사람의 시민이라도 차별받는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가 차별받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이 재난의 시대에 가장 먼저 바로 세워야 할 기둥은 인간의 존엄이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곧 '포괄적 존엄지킴법'"이라고 말했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외국에서도 (차별금지법안에 대한) 종교계 거센 반발이 있었다. 그럼에도 딛고 일어섰다"고 말했다. 윤지현 앰네스티 사무처장은 "국제인권법과 기준에 따라 정부는 성소수자 인권을 존중·보호할 책임이 있다. 차별금지법이 발의에서 머물지 않고 제정돼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인권 발전에 기여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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