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and Biphobia, 아이다호데이)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혐오에 가장 앞장서는 집단은 보수 개신교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혐오가 아닌 정당한 의견 개진이며, 한국 사회에는 성소수자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에는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이 정말 존재하지 않을까요. 최근 코로나19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성소수자는 언제든 공격받을 수 있고 차별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정치인들이 보수 개신교계에 번번이 무릎 꿇으면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성소수자는 차별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흘려 보냈습니다.

문제는 일부 보수 개신교계의 집요한 공격들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바탕으로 계속됐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2007년부터 지금까지 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간 언론과 시민단체, 법원 등에서 계속 팩트를 체크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뉴스앤조이>는 아이다호데이를 맞아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교계의 상반된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① 반동성애 진영과 보수 교계는 어떻게 차별금지법을 반대해 왔는지 정리하고 ② 반대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힘을 실어 왔던 개신교인도 있다는 점을 소개합니다. 마지막으로 ③ <선랑한 차별주의자>(창비) 저자 김지혜 교수(강릉원주대)에게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들어 봅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4월 22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앞. "교회의 가면을 쓰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NCCK=적그리스도'를 주님께 상소합니다"는 현수막을 든 개신교인 3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한 시간 넘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이홍정 총무)를 '종북 단체', '적그리스도 단체', '반성경적 단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교회협이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이렇게 열을 올리는 걸까.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올바른인권세우기 등 극우 개신교 단체들은, 교회협 정의평화위원회(최형묵 위원장)가 4월 16일 발표한 '제21대 국회의원 총 선거 결과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문제 삼았다. 교회협은 21대 국회가 △경제적 약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공정 국회' △기후 변화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생태 국회' △ 합리적이지 않은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을 조속히 제정·시행하는 '평등 국회'가 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동성애를 외치는 개신교 단체들은 벌써 두 차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입주해 있는 한국기독교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반동성애를 외치는 개신교 단체들은 벌써 두 차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입주해 있는 한국기독교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문제는 '차별금지법'이었다. 한 집회 참석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기독교 말살 악법이다. 교회협 정체가 반기독교·반성경적인 것에 대해 철저히 회개하고 차별금지법 제정 성명서를 철회하기를 촉구한다"고 외쳤다. 또 다른 참석자는 "교회협은 교회와 기독교라는 이름을 붙인 사기 집단이며 사악한 이단 중 이단이다. 성경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며 거짓의 앞잡이 노릇하는 게 교회협"이라고 말했다.

'차별 금지'는 단순 명료한 원칙
민주화 운동 앞장선 교계 단체들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찬성

앞선 기사에서 살펴본 것처럼, 보수 개신교계는 '기독교인이라면' 무조건 차별금지법을 반대해야 하는 것처럼 설파한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곳에는 '기독교'라는 이름을 떼라고 압박한다. 하지만 이는 그리스도교의 다양성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한국 사회 차별금지법 제정 역사에서는 소수지만 꾸준히 법안의 필요성을 주장해 온 개신교인들도 있었다.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차세기연)는 2007년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을 당시 '반차별기독인연대'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반대 일색인 교계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찬성하는 기독교인도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조직됐다. 2008년 차세기연으로 이름을 바꾸고, LGBT 인권 포럼에 참여하거나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연대하는 등 활동을 이어 왔다.

차세기연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찬성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누군가를 부당하게 대우하면 안 된다는 것. 개인의 특성을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민주 국가가 추구하는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

또 하나는 신학적인 이유다. 동성애가 창조 질서에 위배된다고 보는 보수 개신교의 시각과 다르게, 차세기연은 성서 전체에 흐르는 포용과 사랑의 관점으로 동성애를 받아들였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 등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 같아 보이는 본문도, 당시 시대 배경을 이해하면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차세기연은 예수님의 발자취 역시 낮은 자와의 연대였다며,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동참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참하는 개신교 단체들도 있다. 이들은 2018년 성탄절을 맞아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거리 기도회를 개최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참하는 개신교 단체들도 있다. 이들은 2018년 성탄절을 맞아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거리 기도회를 개최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교계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에 목소리를 내 온 또 다른 단체들은 흔히 '에큐메니컬' 진영으로 분류되는 곳이다. 에큐메니컬은 교회 일치와 진보적인 신학, 사회 변혁을 추구한다. 교회협을 비롯해 한국여신학자협의회·기독여민회 등 1970~1980년대부터 한국 사회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 온 단체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해 왔다.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2007년부터 기독여민회는 성경적으로 봐도 동성애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해 12월 기독여민회가 공동 개최한 토론회에서, 최영실 교수(성공회대)는 기독교인이라면 예수 시대 당시의 위선적인 율법자들처럼 성서와 율법의 잣대로 정죄하고 차별하는 자들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각종 이유로 차별받고 정죄 당하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라고 했다.

기독여민회는 지난해에도 차별금지법을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차별금지법을 개신교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이 아닌, 이웃의 다양한 차별을 해소하는 법안으로 새롭게 해석하자고 했다. 발제자 백소영 교수는 소수자였던 히브리 민족이 만든 '차별을 고착화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현대사회에 대입해 본다면 차별금지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함께 발제를 맡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미류 공동위원장은 "차별을 금지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교회가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차원으로 차별금지법을 이해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 이슈에서 가장 진보적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보수 교계의 좋은 먹잇감이다. 사진은 지난 2016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김조광수 감독 초청해 이야기 마당을 개최한다고 하자 몰려든 개신교인들. 뉴스앤조이 이은혜
차별금지법 이슈에서 가장 진보적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보수 교계의 좋은 먹잇감이다. 사진은 지난 2016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김조광수 감독 초청해 이야기 마당을 개최한다고 하자 몰려든 개신교인들. 뉴스앤조이 이은혜

교회협은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가 있을 때마다 성명서 등을 통해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교계 반대로 차별금지법에서 '성적 지향'을 빼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논란이 한창이던 2007년 12월, 교회협은 "차별금지법은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안'대로 제정되어야 합니다"는 성명을 발표해 누구도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교회협은 이 성명에서 "'성적 지향'을 포함한 7개 항목에 '고용, 교육기관, 법집행 등'에서 차별을 받고 괴롭힘을 받는다는 것은 문명사회에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기독교의 이름으로도 차별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교회협은 인권은 하나님이 주신 지상의 가치라고 외쳤다. 지금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 교회의 선교 사명임을 확신한다"며 원안대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의평화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차별금지법 관련 성명은 뜬금없는 의견 표명이 아니다. 최형묵 위원장은 4월 22일 추가로 발표한 입장문에서 "차별금지법은 보편적 인권에 기초한 평등 사회로 가는 첫 걸음"이라고 정의했다. 최 위원장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과 법 앞에서 평등하며, 또 반드시 평등해야만 한다'는 것이 교회협의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차별은 그리스도 정신 아니야"
"폭주하는 보수 개신교 보며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참여"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연대하는 시민단체 연합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에는 감리교퀴어함께·무지개예수·기독여민회·섬돌향린교회·믿는페미 등 개신교 단체도 포함돼 있다. 개신교가 차별금지법 제정의 가장 큰 걸림돌인 상황에서 그렇지 않은 개신교인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연대를 결심했다.

감리교퀴어함께 이름으로 활동하는 A는 5월 1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차별은 그리스도의 정신에 맞지 않기 때문에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A는 "상한 갈대라고 꺾지 않고 모두를 사랑하고 포용하는 게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십계명에는 이웃을 해하지 말라고도 써 있다. 차별과 배제는 인간에게 살인과 같은데, 교회가 오히려 그것을 막기 위해 몸을 던져서라도 평화의 사역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A는 "복음의 본질을 고민해 본다면 차별금지법을 찬성해야 할지, 반대해야 할지 답은 명확하다"고도 덧붙였다.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 초창기부터 함께 활동한 기독여민회는 차제연에는 불과 몇 년 전 이름을 올렸다. 기독여민회는 2018년 9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103회 총회가 반동성애 일색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아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동참하게 됐다.

정혜진 연구실장은 "기독여민회는 처음부터 예수·여성·민중이라는 모토로 시작했다. 여성도 성서가 쓰였을 당시에는 배척당하는 존재였다. 민중도 마찬가지다. 예수의 정신으로 가장 낮은 자리로 가 여성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한 기독여민회가 성소수자를 포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데 회원들이 동의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교계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에 동감하며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참여하는 단체들도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교계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에 동감하며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참여하는 단체들도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믿는페미는 단체 구성 초기 무지개예수와 연대하면서 자연스럽게 차제연에 발을 들였다. 달밤 활동가는 "믿는페미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억압받는 자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응답하는 하나님"이라고 했다. 본래 하나님의 법, 예수가 완성하고자 했던 사랑의 법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법이었다. 이 정신으로 예수는 권력과 힘을 가진 이들의 상을 엎었다고 했다고도 설명했다.

달밤 활동가는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완성하신 사랑의 법에 따라 보다 적극적으로, 이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를 뽑아내고 하나님나라를 이뤄야 한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은 우리가 바리새인의 율법에서 떠나 죄인의 집에 가셨던 예수의 사랑에 가장 가까이 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차제연에서 활동하는 기독교인 유경 씨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람 사이의 많은 선을 없애고 더 급진적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개인 특성에 따른 구분이 뭐가 중요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유경 씨는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교회에 다니면서 연구를 진행한 인류학자다. 이 교회에 다니면서 처음에는 다른 영역의 인권 운동에 대해 잘 몰랐던 교인들도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다른 소수자 운동에  관심을 넓혀 가는 모습을 보게 됐다. 다른 소수자의 인권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돼 연대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유경 씨는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만을 위한 법이 아니며,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한다는 점에서 신앙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 외쳤던
복음주의 사회 선교 단체들의 침묵
"이제 논의 시작하는 단계
자리 만들어 활동가들 이야기 들을 것"

아쉬운 점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신학을 추구하지만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외쳐 왔던 복음주의 사회 선교 단체들이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공식 입장을 한 번도 표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성서한국 등은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참여를 촉구하며, 그간 대북 문제, 광우병 사태, 세월호 사건 등 굵직한 사회 이슈에 개신교인의 목소리를 적극 알렸다.

교회 문제는 물론 대부분 사회 이슈에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 온 이들은 유독 차별금지법에는 침묵했다. 이런 단체들의 침묵이 보수 개신교의 반동성애 운동을 활발하게 해 줬다는 분석도 있다. 문화 연구가 시우는 <퀴어 아포칼립스>(현실문화)에서 "보수 개신교회 내부에서 개혁 운동을 전개해 온 집단이 침묵하면서 자연스럽게 반퀴어 운동에 대표성과 정당성이 부여되었다"고 평가했다.

지난 부활절,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연합 예배는 성소수자부모모임의 하늘 씨를 초청해 온라인으로 현장 증언을 들었다. 현장 증언 영상 갈무리
지난 부활절,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연합 예배는 성소수자부모모임의 하늘 씨를 초청해 온라인으로 현장 증언을 들었다. 현장 증언 영상 갈무리

조금 느리긴 하지만 변화는 있다. 지난 부활절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연합 예배는 '두려움 없는 완전한 사랑, 예수 -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이들과 함께하는 예배'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 예배는 매년 부활절·성탄절, 에큐메니컬 및 복음주의 사회 선교 단체들이 함께 진행한다. 그간 KTX 승무원, 난민, 스텔라데이지호 희생자 가족 등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해 왔다. 이번 부활절 예배에서는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활동하는 하늘 씨와 미등록 이주 여성 J가 현장 증언을 맡았다.

비록 코로나19 때문에 현장에서 모이지는 못했지만, 이들은 온라인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게이 아들을 둔 하늘 씨는 현장 증언에서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지금, 저의 곁에 오신 예수님 부활은 존재를 부정 당해 온 성소수자를 비롯한 우리 사회 약자와 소수자들을 지지하고 함께하겠다는 연대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할 인권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베풀어 주신 큰 은혜이고 사랑"이라고 말했다.

복음주의 사회 선교 단체에서 일하는 한 목회자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이제 조심스럽게 논의를 시작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그는 "차별금지법 등 동성애 이슈와 관련해 복음주의 진영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 알고 있다. 이 이슈는 구성원들 생각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우리도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앞으로 자리를 만들어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계획"이라고 말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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