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처음부터 평신도 운동이었다. 교회 역사에 있었던 교회 갱신이나 부흥은 성직자의 권력 독점에 대항해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를 되찾으려 했던 운동이었다." - <존 스토트가 말하는 목회자와 평신도>(아바서원)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봉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뉴스앤조이>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 보여 줘야 할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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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터졌을 때, 10대 청소년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10대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텔레그램이라는 보안성 강한 메신저를 이용해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가학적 성 착취물을 수없이 유포한 사건은 기성세대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악의 끝판왕"이라며 경악하는 이들과 다르게, 반성매매 운동 현장을 20년 가까이 지켜 온 조진경 대표(52·십대여성인권센터)는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여전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덧붙인다.

조진경 대표는 한국 반성매매 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2001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사회선교부 간사로 활동하면서부터 성매매 여성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어 2003년 성매매 피해자 단체 연합 '성매매근절을위한한소리회' 사무국장이 됐다. 같은 해 9월, 서울시 위탁을 받아 성매매 피해자 자활 지원 단체 다시함께센터를 설립해 소장으로 활동했다. 2012년에는 십대여성인권센터를 설립하며 10대 반성매매 운동에 뛰어들었다.

십대여성인권센터는 아동·청소년 성 착취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국내 유일한 기관이다. 성 착취 피해자 상담 및 법률·의료·심리 지원, 관련 이슈 파이팅 및 연대 활동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청소년 시기에 위기 상황을 경험한 19세~20대 초반 여성을 '사이버 또래 상담원'으로 키우고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며 양육하는 일도 한다.

조진경 대표는 올해 4월 국회를 통과한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개정 운동도 이끌었다. 성매매 피해 아동을 '대상 청소년'으로 구별해 처벌하지 말고, '피해자'로서 보호한다는 취지를 담은 개정안이다. 지난해 1월부터 전국 378개 단체와 함께 '아청법개정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국회에 법 개정을 요구했다. 올해 초 'N번방 사건'으로 국회를 향한 비난 여론이 들끓자, 국회는 그제야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반성매매 운동 현장을 늘 지키고 있던 공로를 여러 단체에서 인정받기도 했다. 조진경 대표는 2018년 제2회 길원옥 여성평화상 수상자다. 같은 해, 아쇼카한국이 선정한 두 명의 펠로우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아쇼카 펠로우는 사회적 혁신을 이끄는 '체인지 메이커'에게 주어지는 영예다. 조 대표는 10대 성매매 피해자를 처벌하기보다 보호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온 활동을 높이 평가받았다.

"이렇게 웃으면 좀 덜 무서워 보이나요?" 조진경 대표는 사진 찍히는 것도, 신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렇게 웃으면 좀 덜 무서워 보이나요?" 조진경 대표는 사진 찍히는 것도, 신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조진경 대표는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신학도였다. 이화여대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여성신학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여성신학을 공부하면서 폭력에 시달리고 억압받는 여성들이 달리 보였고, 자연스럽게 여성 인권 운동에 눈을 돌리게 됐다.

여성 인권 운동가이자 신앙인으로서 여정을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어 만남을 요청했다. 6월 10일 서울 영등포구 십대여성인권센터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사무실은 활동가들과 10대 또래 청년들로 북적였다. 사무실 구석에 있는 그의 방에는 온갖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보니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됐다고 말하는 조진경 대표와 대화는 흥미진진했다. 그는 한창 신앙 이야기를 털어놓고서도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건 맞지만, 꼭 기독교인임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며 쑥스럽다고 했다.

이유 모를 병에 아파하다 자연 치유
'내 고통 아시는 하나님' 깨달음
진보적 교회, 사회 현장 다니며
열심히 사역했지만 뜻대로 되진 않아

조진경 대표는 '뼈대 있는' 기독교인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조 대표에게 교회는 놀이터처럼 친근한 곳이었다. 할아버지는 광주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교회를 설립하는 데 참여했고, 교회는 사회참여에 열심이었다. 교회에서 만난 신앙인 중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참여했다가 모진 일을 겪은 이도 있었다.

조 대표는 운명에 이끌리듯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에 진학했다. 목회자가 되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신학을 배우고 싶었다. 그는 1987년 6월 민주 항쟁이 끝나고 대학 학생운동이 불붙던 시기에 입학했다. 운명인 줄 알고 간 학교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지역 차별도 있었고, 남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탓이기도 했다. 5·18이라는 참사를 어린 시절 직접 겪었는데, 혹시나 그게 반복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공포스러웠다. 과 활동에 적극 참여해야겠다는 마음과 혹시라도 시위 참여한 게 문제가 되면 공무원인 부모님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겹쳐 괴로웠다.

결국 한 학기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이름도 원인도 모르는 질병에 시달렸다. 매일 같이 40도 가까운 고열에 시달리는데 이유도 치료법도 찾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유 집회에도 쫓아다녔다. 죽을 것처럼 괴로웠다.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겠다고 맘먹고 떠난 휴양림에서 자연스럽게 치유가 됐다. 신비한 경험이었다.

"복학 후 구약학 개론 시간이었다. 교수님이 출애굽 사건을 가리켜 '유대인의 믿음이 좋아서 출애굽한 게 아니다. 하나님은 유대인 노예들의 탄식, 분노, 슬픔의 외침을 하나님께서 다 들으시고 땅에 내려오셨다. 와서 그들을 해방으로 이끌어 내신 것'이라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마찬가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울부짖음, 눈물과 탄식을 들으신 하나님이 나를 치유하셨던 거다."

그때부터 어떤 기독교인으로 살아야 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우선 여성신학을 공부하면서 교회 내 소외된 여성 문제에 주목했다. 여성 안수도 허용하지 않는 교단이 많은데 "교회에는 차별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신학을 좀 더 공부하고 싶어 한신대 신대원에 진학했다. 여성신학 과목이 있지도 않았고, 이를 제대로 심사해 줄 교수도 없을 때였다.

공부한 내용을 현장에 접목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조진경 대표는 여러 교회를 경험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신학과 기성 교회와는 맞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 교역자로서 새로운 시도도 하고 교인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지만, 결국 벽에 부딪히는 일도 많았다.

여러 기독교 사회운동 단체에서도 활동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인권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였지만, 여성주의 시각으로 볼 때 운동계도 한계가 많았다. 점점 사람과의 관계도 힘들어졌고, 가는 곳마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와야 했다. 자괴감이 그를 엄습했다. 인생의 벼랑 끝에 몰린 느낌이었다.

그는 또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세상을 떠나고 싶었지만, 목숨은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떠오른 생각에 어이가 없었다. '살아 있어 감사하다.' 그렇게 죽고 싶었는데 살아 있어 감사하다니. 감사하는 마음 없이 살았던 과거가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웃고 산다."

조진경 대표는 2018년 아쇼카 펠로우로 선정됐다. 그는 N번방 사건이 있기 훨씬 전부터 디지털 성범죄의 위험성을 강조해 왔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조진경 대표는 2018년 아쇼카 펠로우로 선정됐다. 그는 N번방 사건이 있기 훨씬 전부터 디지털 성범죄의 위험성을 강조해 왔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한교여연 간사로 반성매매 운동 시작
한국 사회 성매매 현실에
환멸 느끼고 현장 떠났지만
"내 욕망 때문" 깨달은 후
십대여성인권센터 설립

조진경 대표가 다시 여성 인권 운동에 발을 들이게 된 건 2001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사회선교부 간사를 하면서부터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는 일본 남성들의 기생 관광 반대 운동,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 등 한국 사회 굵직한 반성매매 활동을 이어 온 단체다. 그는 간사로서 기지촌에 유입된 외국인 여성 성매매 피해자들, 성 산업에 유입된 아동·청소년을 만나게 됐다.

그렇게 조진경 대표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반성매매 운동에 뛰어들었다. 당시 여성 운동계는 성매매를 성폭력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었지만 조 대표 생각은 달랐다. 그는 성매매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성을 도구로 사용하는 폭력의 문제라 생각했다.

"만약 성매매가 단순히 성 노동에 대한 문제라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극심한 성비 불균형, 즉 성 구매자의 대부분이 남성이고, 성 판매자의 대부분이 여성인 현실을 해명할 길이 없지 않나."

그는 지금도 '성매매근절을위한한소리회' 사무국장이 되어 처음 만났던 이들을 잊지 못한다. 아버지 신고로 성매매 업소에 있던 한 여성을 구출하게 됐다. 이 여성이 업소에서 함께 지내던 여성 중 지체장애인들이 있는데, 이들이 업주에게 신체적·정신적으로 학대당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우여곡절 끝에 당시 18·19세이던 두 여성을 만났다. 이들은 처음에 "학대당한 적 없다"고 증언했다. 오히려 업주가 고마운 사람이라고까지 했다. 조진경 대표는 피해자들 앞에서 엉엉 울며 쉼터로 가자고 설득을 거듭했다. 결국 하룻밤을 함께 보낸 후에야 함께 나올 수 있었다.

"경찰서에서 세 명을 데리고 나오는데 대학교 1학년 때 깨달음을 준 출애굽 사건이 떠올랐다. 내가 이들을 구한 게 아니었다. 하나님은 이들의 처절한 외침을 들으셨고, 닫힌 문을 열고 이들을 구하시는 데 나를 도구로 쓰신 것이었다. 이제야 돌아보면, 내가 그동안 여러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열심히 살았는데도 매번 되는 일이 없다고 느꼈던 것은 이 일을 하게 만들기 위한 이끄심이었던 것 같다."

그때의 경험으로 반성매매 운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다시함께센터 소장을 맡으면서 성매매 여성들을 현장에서 구출하고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조 대표와 함께 업소를 탈출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들이 성매매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도 있었지만, 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조진경 대표는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보며 느낀 분노 때문에 현장을 지켰는데, 그 분노가 오히려 독이 됐다. 업주가 위협을 가하는 건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우려고 나선 성매매 피해 여성들에게까지 비난을 들어야 했다. 성 노동 담론을 펼치는 이들 또한 조 대표를 공격했다. 그는 이민까지 결심하고 2009년 한국을 떠났다.

"당시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폐했다. 나를 현장에 머물게 한 원동력은 분노가 분명한데, 그 분노가 동시에 나를 태우고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욕을 달고 살았다. 이렇게 살다가는 죽겠구나 싶어 떠났다. 캐나다에 가서 잠시 내 시간을 보내면서 행동을 돌아봤다. 나는 뭐에 그렇게 화가 났을까 스스로 물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욕망'이었다. 남에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내 나름대로 기대가 있었던 거다.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 뭔가를 이뤄야 하고, 변화가 일어나는 모습을 내가 직접 보고 싶었던 거다. 스스로 쓰임 받고 있다는 게 감사하고 영광스러우면서도 그것에만 만족하지 못했다. 우리 덕분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 나는 그걸로 만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캐나다에 머물던 때, 토론토대학에서 40일 동안 전 세계 여성 운동 활동가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정말 처참한 상황에 놓인 나라도 많았다. 그런데 밝고 유쾌한 활동가들 모습을 보고 반성했다. 반성매매 운동은 어차피 될 일이다. 굳이 내 시대에 될 필요는 없다. 씨 뿌리는 사람 따로 있고 거두는 사람 따로 있는데 내가 조급히 욕심냈던 것이고, 그래서 절망하고 분노한 것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조진경 대표는 많은 성매매 여성이 10대 때부터 성매매에 유인된 현실에 착안해, 이를 예방하고자 십대여성인권센터를 세웠다. 2011년 한 청소년 쉼터에서 시작한 사이버 또래 상담 사업을 이어받아 2012년 센터를 세우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한 번 쓰러진 후 그는 이제 반드시 성과를 내 손으로 이뤄 보겠다는 집착 없이 운동에 임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십대여성인권센터는 아동·청소년 성 착취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국내 유일한 기관이다. 홈페이지 갈무리
십대여성인권센터는 아동·청소년 성 착취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국내 유일한 기관이다. 홈페이지 갈무리

조진경 대표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낸다. 지난 4월 아청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이제는 이 법안이 현장에 잘 뿌리내리고 제대로 집행될 수 있도록 시스템도 점검하고 재정비할 예정이다.

"한국 사회 건강한 발전 막는 개신교인들,
같은 개신교인으로서 부끄러워"

그는 반성매매 운동 최전선에서 싸우는 활동가로서 기독교인들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최근 이슈화한 N번방 사건 때문에 부모들 관심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처럼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범죄는 단순히 부모가 자녀를 통제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조진경 대표는 이 부분을 설명하며 "한국 기독교가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부모가 아이들 눈을 감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스마트폰을 최대한 늦게 사 주고, 행위를 통제한다? 부모 테두리 안에만 머물 아이들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인권과 성폭력 문제를 건강하게 풀어 가자는 데 가장 반대하는 게 선민의식에 절어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일부 극단적인 기독교 세력이다. 개신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부끄럽다. 어디 가서 내가 개신교인이라고 얘기도 못 하겠다. 내가 부끄러운 건 하나님이 아니라 그 기독교인들이다.
 

구약에서 진노하는 하나님이 결국 자식을 내어 주는 방식으로 인류를 구원하며 절대적 사랑을 보여 주셨다. 그런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라면 우리 사회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도 더 이상 낙인찍히지 않고 하나님 형상대로 살아갈 수 있게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누구인지 모르겠다."

조진경 대표는 단순히 청소년 행동을 제한하고 접근을 막는 것은 아동·청소년 성 착취 피해를 막는 데 실효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구조를 개선하는 운동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십대여성인권센터의 또 다른 주된 활동 중 하나는 아동·청소년이 성 착취 환경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IT 기업 역시 사회적 책임을 지고 청소년 성 착취 피해 보호 프로세스를 도입하자고 제안한다.

"부모 품 안에만 있을 아이들은 없다." 조진경 대표는 청소년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반성매매 운동에만 벌써 20년을 쏟았지만,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 아청법 개정을 계기로, 이 같은 법안이 인도·파키스탄·태국 등 성매매 관광이 성행하는 아시아 지역의 모범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알리는 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늘 하나님이 나를 쓰고 계신다는 생각으로 일을 한다. 그래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죄의 경중을 따진다 해도 하나님에게는 다 똑같다. 이 일을 하면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라는 말씀의 뜻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면서 인간의 죄를 사하셨는데, 죄가 깊은 곳에 은혜가 깊은 건 당연한 말 아닌가. 하나님은 이들을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들을 돕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다."

십대여성인권센터에 후원하면, 청소년·인터넷 성매매 피해 방지 활동과 성 인권 향상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도울 수 있다. 후원을 원하는 사람은 온라인(바로 가기) 혹은 전화(02-6348-1318)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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