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개신교가 지자체 조례안을 동성애·무슬림을 조장한다고 주장하며 입법을 저지하는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인권조례 반대 집회 모습.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지역 전통을 보호하고 문화 다양성을 증진하기 위한 대전시의 조례안이 보수 개신교·시민단체 반대로 무산됐다.

대전시의회(김종천 의장)는 12월 13일 본회의에서, 조성칠 의원(더불어민주당) 등 14명이 공동 발의한 '대전광역시 문화 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조례안'(문화 다양성 조례안)을 김종천 의장(더불어민주당) 직권으로 상정하지 않았다.

문화다양성법 제정 이후
전국 지자체, 조례안 제정
대전시의회, 10월 말 입법 예고
교계 반발 "동성애·이슬람 옹호"

한국은 2010년 유네스코와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협약'을 체결했다. 각 정부가 국가·지역별 문화적 다양성과 고유성을 보호·증진하기 위해 서로 교류하며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2014년에는 '문화 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관한 법률'(문화다양성법)을 제정했다.

문화다양성법은 정부와 지자체가 문화 다양성을 위해 여러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책무를 강조하고 있다(3조 1항). 이에 따라, 전국 광역·기초 지자체들도 관련 조례를 제정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경기·충북·전남·광주·부산·제주 등 10곳이 조례를 만들었다.

대전시의회는 올해 10월 30일 문화 다양성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문화 다양성에 기초한 사회 통합과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시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취지다. 주요 내용으로 △문화 다양성 관련 시민 인식 실태 조사 △지역 실정에 맞는 실행 계획 수립·시행 △문화다양성위원회 구성 등이 있다.

문화 다양성 조례안을 만든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대전 지역 교계와 보수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조례안이 궁극적으로 동성애·무슬림을 포용한다고 봤다. 대전 지역 한 대형 교회는 홈페이지에 "동성애+젠더+이주민 지원 및 이슬람 비판 금지하는, 반드시 막아야 하는 조례다. 이는 종교의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는 글을 올리고, 교인들에게 입법 반대에 나설 것을 독려했다.

대전시기독교연합회(김철민 회장)·대전성시화운동본부(오정호 대표회장) 등은 '대전나쁜조례폐지를위한교계및시민단체연합'을 조직해 조례안 철회 운동을 펼쳤다. 대전시의회 홈페이지에 반대 의견을 올리고, 시의원들에게 문자·전화 폭탄을 돌렸다. 시의회 앞에서 1인 시위와 반대 집회를 열기도 했다.

'나쁜조례폐지를위한교계및시민단체연합'은 11월 20일 성명에서 "문화 다양성에 대한 기준과 개념이 불명확하다. 문화는 전통적 가치의 좋은 문화도 있지만 나쁜 문화도 있다. (중략) 이 조례들은 동성애 및 이슬람 문화까지 옹호할 수 있다. 동성애는 퀴어 문화로 둔갑해 대한민국 지방 도시까지 점령하고 있는 실태다"며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지역 교계가 반대 목소리만 낸 건 아니다. 대전기독교교회협의회(곽종섭 대표회장)는 12월 10일 조례안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일부 기독교 단체가 (조례안을) 이슬람과 난민을 확산시킨다고 몰아붙이며 일방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중략) 사람을 인종·국적·성별·종교·문화의 차이로 혐오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기독교 사랑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찬반 여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대전시의회는 문화 다양성 조례안을 보류했다. 상임위원회까지 거친 안건이었지만 김종천 의장이 직권으로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은 것이다. 김 의장은 12월 13일 본회의에서 "종교 단체, 시민단체 일부에서 다른 의견이 있었고 더 세심한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사료돼 의장 단독으로 안건을 상정하지 않았다. 양해해 달라"고 했다.

전국에서 학생 인권조례, 문화 다양성 조례가 보수 개신교인의 타깃이 되고 있다. 경남 학생 인권조례 반대 시위 모습. 뉴스앤조이 장명성

반대 "문화 다양성 이름으로
퀴어·이슬람 등 무분별 수용"
찬성 "억측과 과도한 편견
다양한 문화 공존, 아름다운 사회"

대전 보수 개신교 단체들은 대전시의회 결정을 환영했다. 김철민 회장(대전시기독교연합회)은 12월 13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문화 다양성 조례안은 이름만 바꾼 차별금지법이다. 문화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퀴어·이슬람 등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시민사회가 납득하지 않고 동의하지도 않는 것을 일방적으로 법제화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지역 교계가 무조건 반대만 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시에서 여러 차례 공청회와 토론회를 열었지만 전문가들만 참석한다. 일반 시민은 이런 조례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래서 교회가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거다. 반대가 목적이 아니라, 건강한 대전시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들은 앞으로도 문화 다양성 조례안 저지 운동을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오성균 사무총장(대전시기독교연합회)은 "의장이 이번에 안건을 보류했지만 언제 또 상정할지 모른다. 공청회를 열어 조례안의 문제점을 알리고, 문제가 될 만한 조항들에 대해서는 시정을 요구할 것이다"고 말했다.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조성칠 의원은 이번 결정에 아쉬움을 표했다. 조 의원은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의장이 부담을 느낀 것 같다. 대전을 둘러싸고 부정적인 여론이 만들어지니까 여러 의원들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 조례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매일 같이 150~200건의 항의 문자를 받았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조례안 반대 운동은 억측과 과도한 편견, 심지어는 혐오와 증오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조례안은 저분들이 주장하는 동성애 보호나 이슬람 양성과는 아무 관련 없다. 연상할 만한 문구나 뉘앙스도 없다. 상임위에서는 이분들의 우려를 받아들여 '양성평등 이념을 실현하고 선량한 풍속, 그밖에 사회질서를 위반하지 않도록 해석 운영한다'는 조항까지 추가했다. 그런데도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한다"고 했다.

앞으로도 조례안 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조 의원은 "이 법은 오히려 지역 마을 전통이나 문화가 사장되지 않도록 보존·증진한다는 내용이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 아닌가. 이러한 취지를 계속 알리고, 반대하는 분들과도 공개 토론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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