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권조례 대표 발의·제정한 인천 부평구의회 유경희 의원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2020년, 한국에서는 기초 자치단체 8곳이 인권조례를 제정하는 데 성공했다. 올해라고 해서 반동성애 진영의 압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초 단체 의원과 단체장들은 이들의 압력을 견디며 인권조례를 제정해 냈다.

그 가운데 하나인 인천 부평구는 반동성애 진영의 방해나 보수 정당의 반대 없이 무난하게 조례를 만들었다. 2020년 6월 인권조례를 대표 발의하고 제정에 앞장선 더불어민주당 유경희 의원은 "사회적 약자도 직접 목소리를 내고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작은 변화가 가진 힘을 보여 주고자 인권조례를 발의했다"고 말했다.

유경희 의원은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부터 성가대를 할 정도로 오래 신앙생활했다. 유 의원은 올해 8월 인권조례가 구의회에서 제정된 이후, 한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크리스천이고, 모든 사람의 인권이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말하신 사랑의 다른 형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천투데이> 8월 11일 자)이라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인천광역시는 전국 광역 자치단체 중에서도 가장 늦은 2019년에야 인권조례를 만들었다. 아직도 인천에는 인권조례가 없는 자치구가 더 많은 상황이다. 이런 불모지에서 인권조례를 신앙의 언어로도 설명하는 구의원이 있다는 건 특별한 일이었다. <뉴스앤조이>는 12월 7일 부평구의회에서 유경희 의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주일예배 때마다 성가대를 하는 기독교인 구의원이 인권조례를 대표 발의해 제정하는 데 성공했다. 부평구의회 유경희 의원은 인권조례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의 가치와 통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주일예배 때마다 성가대를 하는 기독교인 구의원이 인권조례를 대표 발의해 제정하는 데 성공했다. 부평구의회 유경희 의원은 인권조례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의 가치와 통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 인권조례를 발의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제가 왼손잡이예요.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이런저런 차별과 편견이 분명히 있었어요. 선생님께 '왼손은 쓰면 안 된다'고 배워서 지금도 글쓰기나 젓가락질은 오른손으로 해요. 과일 깎을 때도 왼손으로 깎으면 복 달아난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인권 감수성이 낮았던 그때는 그게 편견이나 차별인지 전혀 몰랐어요.

마찬가지로, 지금 시대는 성 인지 감수성이 낮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민뿐 아니라 의원들도 이런 게 부족해요. 여성 구의원들을 대하는 태도도 보면 "여자가 왜 이렇게 목소리가 크냐", "여자가 왜 이렇게 말이 많냐"는 식이죠. 이런 걸 보면서 인권 교육, 성 인지 감수성에 대한 교육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어요.

빨리 발의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직접적인 계기는, 아파트 경비원들이 폭행당하고 사망하는 사례가 계속 뉴스에 나왔기 때문이에요. 우리 부평구에 인권 기본 조례 정도는 있어야겠다고 강하게 마음먹게 됐어요.

민주당 동료 의원들에게 "이거 통과되기 쉽지 않을 텐데", "목사님들 단체에서 엄청나게 찾아오고 난리 날 텐데 이겨 낼 수 있겠어?" 같은 얘기를 들었어요. 이미 부천 같은 인근 기초 단체 사례를 다 알고 있는 거죠. 저도 입법 예고 기간 동안 조마조마했어요. 뭔가가 있지는 않을까 했는데, 감사하게도(?) 반대 민원이 하나도 없었어요.

- 신앙인 관점에서 인권조례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는 6살 때부터 교회를 다녔어요. 뜨거운 믿음은 없는데 강한 중심은 있어서 주일을 절대 어기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성가대를 하고 있고요.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긍휼한 마음이 많았어요. 저도 어릴 때 어렵게 살았는데, 저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못 지나가고 한동안 쳐다보고 그랬어요.

인권조례는 힘이 없는 자, 약자를 위한 조례예요. 그분들은 자기 목소리를 거의 내지 못하잖아요. 부평구의 경우에도, 마을협의회나 주민자치회 사업비는 잘 나와요. 그런데 장애인 부모, 재활용 수거 어르신, 아동 복지시설에 써야 하는 예산은 잘 나오지도 않고 신경도 안 써요. 정치인 입장에서 그들 표가 얼마 안 되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가슴이 아팠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0월 27일에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부평구 어르신 한 분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그분들은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우리는 측은하게만 바라볼 뿐 실제로 무언가 하는 게 없죠.

얼마 전에는 장애인부모연대 회원 몇 분을 만났는데요. 극심한 스트레스로 비만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계시더라고요. 그분들은 이런 문제를 자녀 문제 때문에 드러내지도 못해요. 그들도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있는데.

부평구에 아동 양육 시설이 3곳이나 있는데, 여기에 있는 아동과 사회복지사도 방치되고 있어요. 코로나19가 심하니까 시설에서 꼼짝 말고 있으라고만 하는 거죠. 추가 지원이나 대책도 없어요. 그들의 인권이 외면받는 모습들을 긍휼의 관점에서 보게 됐어요.

유 의원은 조례 제정 과정에서 보수 정당 구의원들의 반대를 받지 않았다. 구민을 위해 제정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도 전했다. 사진 출처 부평구의회 홈페이지
유 의원은 조례 제정 과정에서 보수 정당 구의원들의 반대를 받지 않았다. 구민을 위해 제정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도 전했다. 사진 출처 부평구의회 홈페이지

- 의회에서 인권조례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위기는 없었나요?

사실 발의하려는 마음은 계속 있었지만, 도전하지 못했어요. 일단 구청에서는 기본 조례를 제정하면 업무가 많아지니까 하고 싶지 않아 해요. 인권조례 같은 경우에는 자칫하면 부평구 전체가 복잡해질 수 있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고요. 보수 단체에서 와서 집회한다는 얘기도 들어서 고민이 많았어요.

위기가 있어야 기사가 재밌을 텐데.(웃음) 발의하고 나서 큰 위기는 없었어요. 부평구의회 동료 의원들은 사전에 많이 설득했죠. 국민의힘 의원들과도 평소 관계를 잘 맺어 왔던 게 잘 작용했어요. 이 조례가 구민을 위한, 동네 이웃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부딪칠 일도 크게 없었고요. 내심 반대가 심할 줄 알았는데 그냥 웃으면서 넘겨주더라고요. 단, 조건이 하나 있었어요. 인권 기본 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 예산을 세우는 건 반대할 거라고요.

일단 조례는 제정해야 하잖아요? 국민의힘 의원들이 예산을 삭감하는 대신 통과시켜 주겠다고 한 것도 저에게 직접 말한 게 아니라 구청에 내건 조건이었어요. 그래서 조례는 제정했지만, 내년 예산을 많이 세우지는 못했어요. 인권위원회 위원 수당, 인권 교육 예산 정도만 마련했는데, 내년에는 교육부터 시작하려고 해요.

2020년 8월 부평구에 이어 12월 인천 동구까지 인권조례를 제정했다. 조례 제정만이 능사는 아니고, 구청이 정책을 잘 시행하도록 돕고 지원하며 감시해야 한다. 유 의원은 2021년 인권 교육과 실태 조사에 앞장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2020년 8월 부평구에 이어 12월 인천 동구까지 인권조례를 제정했다. 조례 제정만이 능사는 아니고, 구청이 정책을 잘 시행하도록 돕고 지원하며 감시해야 한다. 유 의원은 2021년 인권 교육과 실태 조사에 앞장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 출석하시는 교회 목사님이나 교인들 눈치가 보이지는 않았나요?

많은 목사님이 인권조례에 동성애에 대한 내용이 있는 줄 알아요. 조문에 동성애를 조장하거나 반동성애를 금지하는 내용이 있는 줄 알더라고요. 담임목사님께 더욱 강하게 "인권조례안은 동성애와 전혀 상관없다. 어느 곳에도 동성애에 대한 얘기는 들어 있지 않다"고 말씀드리기도 했어요. 제정안도 목사님께 먼저 보여 드렸어요. 동성애는 반대하시는 목사님도 제정안을 보시더니 생각했던 거랑 다르다면서 너무 좋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런 게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다"고 말씀해 주시면서 제정되도록 기도해 주겠다고 하셨어요.

- 첫걸음을 뗐지만, 앞으로 조례를 어떻게 실현하느냐가 더 중요할 것 같은데요.

조례를 제정했으니 인권 기본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데, 수립을 위한 연구 용역 예산이 없잖아요? 일단 부평구지속발전위원회 예산을 통해 부평구 인권 실태 조사를 할 계획이에요. 마을 통장님들을 통해 설문지를 나눠서 조사하고 통계를 내려고 해요. 용역을 맡기는 것보다 부족할 수는 있지만, 직접 현장 민심을 듣는 게 필요하고 더 정확할 수 있다고 봐요.

인천에서 잘하고 있는 미추홀구나 이번에 기본 계획이 나오는 인천시 것도 참고할 계획이에요. 구청 감사관님도 일단은 이런 방식으로라도 기본 계획을 세워 보자고 얘기했고요. 제가 인권위원회에 들어가 적극 활동할 생각이에요.

조례를 보면 아시겠지만, 이게 정말 별 내용 아니에요. 이것이야말로 대민 정치인데 왜 반대하는지 정말… 아무튼 이렇게 인터뷰하고 인권 간담회·회의에 참석하면서 '인권 도시'를 만들어야겠다는 소신은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가 생기네요.(웃음)

- 마지막으로 의원님처럼 신앙인 관점에서 인권조례를 바라보고 있는 <뉴스앤조이> 독자들께 한 말씀 부탁할게요.

인권이라는 게 인간의 기본적 권리잖아요. 그게 바로 예수님이 보여 주신 사랑의 가치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인권은 기독교 교리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요. 인권조례가 교회와 어긋나는 게 아니라, 예수님 사랑의 가치라는 점을 꼭 기억해 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혹시라도 인권조례에 대한 가짜 뉴스를 듣더라도 현혹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 당사자의 요청으로 기사 내용 중 교회 관련 내용 일부분을 수정했습니다. (2020년 12월 16일 12시 30분 현재)

※반론 보도문(2020년 12월 17일 15시 30분 현재)

유경희 의원이 출석하는 ㅂ교회 김 아무개 담임목사는 "유경희 집사는 좋은 성품과 성실한 신앙생활로 교회 내에서 많은 분에게 사랑받는 성도이며, 나 역시 평소 그를 격려하고 기도해 주고 있다. 그러나 '동성애를 옹호하는 차별금지법을 찬성한다'거나 '차별금지법안의 밑바탕이 될 수 있는 인권조례를 지지한다'는 입장은 사실무근이다. 부평구 인권조례에 약자들을 위한 성경적인 좋은 내용이 포함돼 있고 동성애 관련 법안은 전혀 없지만, 인권조례가 차별금지법안을 통과시키는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나는 목회자로서 유경희 집사를 응원하고 격려한 것이지, 인권조례와 차별금지법을 옹호한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12월 17일 밝혀 왔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