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얼룩무늬 방한복에 헬멧을 쓴 남성이 오토바이를 세운 뒤 낡은 빌라 안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손에 쥔 비닐봉지에는 컵밥과 음료수가 담겨 있었다. 3층 문 앞에 음식을 놓고 한발 물러선 다음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어 배달을 완료했다는 '인증샷'을 주문 고객에게 보냈다. 11월 25일 인천 미추홀구에서 만난 배달 라이더 심명준 목사(38)는 "(음식을) 받아 놓고도 못 받았다고 하는 분이 종종 있다. 이럴 경우 라이더가 책임을 져야 해서 꼭 인증샷을 찍는다"고 말했다.

이동하면서 잠깐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심 목사 핸드폰에 또다시 '콜'이 떴다. 이번에는 아귀찜 식당에서 배달 요청이 왔다. 심 목사는 "요새 안 되는 배달이 없다"면서 서둘러 125cc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심명준 목사는 주중에 배달 일을 하고, 주일에는 교회에서 사역한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한다. 하루 평균 8~9시간 오토바이를 몰면서 40개 정도 배달한다. 많을 때는 60개가 넘는다. 예배가 끝난 일요일 저녁에도 배달한다. 심 목사는 "이제 4개월 정도 됐는데 솔직히 많이 힘들다. 교회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참아 가며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 목사는 1년 전 인천에 예수로교회를 개척했다. 교인은 10명 남짓.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전부 학생이다. 원래 심 목사는 한 교회 부목사로 있었는데, 개인 사정으로 나왔다. 잠시 다른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을 때 직전 교회에서 교제한 아이들이 심 목사와 함께 신앙생활하고 싶다며 찾아왔다. 심 목사는 "처음에는 아이들과 다른 교회를 다녔는데, 거리도 멀고 힘들어서 교회를 개척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평소 이중직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한여름 교회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교인들을 보고 자비량 사역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심 목사는 "혼자 사무실에서 에어컨 틀어 놓고 일하고 있는데, 성도들은 밖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고 있었다. 괜히 너무 죄송했다. 저분들이 땀 흘려 버는 돈으로 사례를 받는데 '이렇게 살아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담임목사가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일단 생계는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목사가 되자고 다짐했다. 교회를 나온 뒤 이중직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육체노동을 하는 이중직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심 목사는 일주일에 설교 두 편 쓰는 것도 버겁다고 했다. 일과 목회를 병행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며,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사례를 받는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인식의 변화도 있었다. 심 목사는 "처음에는 자비량이 더 옳고, 사례비를 받는 건 별로라고 생각했다. 막상 일을 해 보니까 정답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언제가 가장 힘드냐는 질문에, 심명준 목사는 비 오는 날이라고 했다. 그런데 비가 오는 날 돈이 더 들어온다고 했다. 평소보다 주문량이 많아지고, 출근하는 라이더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때 인터넷에는 배달 라이더를 하면 주급으로 400~500만 원을 번다는 소문이 떠돌았는데,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올여름 한 라이더가 보너스 등을 포함해 400만 원을 번 게 화제가 되면서 돈을 많이 번다고 잘못 알려졌다는 것이다. 심 목사는 보험비와 기름값 등을 떼고 나면 한 달에 280~300만 원 정도 들어온다고 했다.

심 목사는 라이더를 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느끼는 점이 많다고 했다. 기성 교회에 있을 때는 설교를 준비하고, 심방하고, 사무 행정을 봤다면, 지금은 '돈 버는 기계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그 긴 시간을 목사가 되기 위해 시간을 보냈을까', '지금 길바닥에서 뭘 하고 있는 건가' 등 여러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른 교회 부교역자로 들어갔으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심 목사는 배달 일이 생각보다 고되다면서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심 목사가 배달을 가기 위해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심 목사는 배달 일이 생각보다 고되다면서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심 목사가 배달을 가기 위해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육체적으로 힘들고 때로는 '길바닥 위에서 뭘 하고 있는가'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심 목사가 이 일을 포기 못 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자신을 믿고 따르는 아이들이 있어서다.

"얼마 전 아이들과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10년만 고생하겠다. 10년 지나면 다 성인이 되고 직장인이 될 테니 그때가 되면 너희가 날 먹여 살리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10년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배달이 됐든 뭐가 됐든 계속 일할 생각이다. 내 비전은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다. 나를 믿고 따르는 아이들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다. 가정도 지키고 교회도 지켜서 하루하루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이중직을 고민하는 예비 목회자들을 향해 조언해 달라고 요청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심 목사가 말했다.

"나는 목회자가 땀 흘리며 일하는 것 자체가 성도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를 반대하고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분도 있겠지만, 분명 위로받는 성도도 있다고 본다. 다만… 아내가 좋은 직장에 다니거나 본인이 모아 둔 돈이 있지 않은 이상 기성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중직은 쉽지 않다. 굉장히 힘들어서 추천하지는 않는다. 고생할 각오가 있으면 하라. 보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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