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집안 사람들이 무교라 종교와는 인연이 없었다. 학창 시절에는 불교에 관심이 있었다. 진지한 데다가 무언가 깨달음을 주는 듯해 마음에 들었다. 학교 선생님에게 불교 서적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기독교는 관심 밖이었다. 교실에서 성경 읽는 친구를 보고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걸 왜 믿지?'라며 의아해했다. 평생 교회에 발붙일 일 없을 거라고 생각한 남자는 10여 년 뒤 목사가 됐다. 길섶교회 김동환 목사(37) 이야기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11월 20일 만난 김 목사가 농담조로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김 목사는 제주교육대학교를 나왔다. 입학 당시만 해도 의심할 여지 없이 초등학교 교사가 되리라고 예상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학교에서 IVF(한국기독학생회)를 접하게 된 것이다. IVF 친구들을 따라 소풍 가고, 생전 처음 예배당에도 발을 들였다. 공교롭게도 학창 시절 성경을 읽던 친구의 아버지가 담임하는 교회였다. 이후로 차츰 신앙이 싹텄고, 영적 체험을 하면서 진로를 바꾸었다.

초등학교 교사가 될 줄 알았던 아들이 졸업 후 신학대학원에 가겠다고 하자,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김동환 목사는 "집에서 쫓겨났다"며 "역시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한번 먹은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지',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등 궁극적인 질문을 안고 신대원에 들어갔다. 신학을 배우면서 신학은 평생 해야 하는 학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동시에 "기독교 핵심은 '자유'라는 걸 배웠다"고 김 목사는 말했다.

기성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두 가지 감정을 느꼈다. 팀 사역을 하며 재미와 보람을 느꼈지만 불편했다. 교회 안에서는 정치·젠더 등 이슈와 관련해 침묵을 강요당했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김 목사는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2018년 길섶교회를 개척했다. 20~30대 청년 20명 정도가 함께했다.

개척해서 좋은 점이 뭐냐고 묻자 "자유로운 게 가장 크다. 우리 교회는 반드시 지켜야 할 룰 같은 게 없다. 기성 교회에서 이야기하기 힘든 젠더 이슈 등과 같은 주제로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다"고 답했다.

'길섶'은 길의 가장자리를 뜻한다. 길의 가장자리에서 친구들과 소통하고 같이 고민하자는 취지로 이같이 이름을 정했다. 길섶교회 모토도 심플하다. '교양과 상식'을 추구한다. 기독교인은 어떤 자세로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가면 좋을지 고민하면서 각자의 삶을 나눈다. 청년들의 직업과 관심 분야는 다르지만, 적어도 길섶교회 안에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나눌 수 있다.

김 목사는 "설교자는 자기 소신과 양심을 거쳐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성도들에게는 비판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 교회 안에는 비판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다만 비판할 때에는 대안을 제시하고, 공동체를 위한 실천·활동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에는 생각보다 무거운 책임이 따랐다. 기성 교회에 있을 때는 동료 부교역자들과 함께 일했는데, 지금은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했다. 재정 문제는 특히 어렵다. 길섶교회는 매주 일요일에 공간을 빌려 예배하고 있다. 수시로 거주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재정을 아끼며 돈을 모으고 있다. 김 목사는 "장기적으로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정도 하는 공간을 구하고자 한다. 보증금 모으는 데만 2~3년은 걸릴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교회에서 사례를 받지 않는다. 생활비는 자신이 직접 벌어 마련한다. 주중에는 초등학교에서 강의하고, 솜니움기독교정치사회연구소에서 간사 일을 한다.

"한 달 기초 생활비가 150만 원 정도는 돼야 살 수 있다. 지금 두 가지 일을 하는데 180만 원 정도 번다. 수입은 적지만 내가 원하는 목회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면 목소리를 뺏기지 않을 수 있다. 설교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신껏 양심껏 할 말을 하는데, 이게 목회 추동력이 되는 것 같다.

 

공부 열심히 해서 나름 인생 걸고 신학교 왔는데, 할 말은 하면서 목회해야 하지 않을까. 주위에 똑똑하고 신학적 소양도 깊은 젊은 목회자가 많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목소리를 못 낸다. 바른말을 했다가 잘린 친구들도 있다 보니 말을 못 하는 것이다. 슬픈 일이다."

김 목사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지만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교회를 개척하고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김 목사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지만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교회를 개척하고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인생을 걸고 왔는데, 할 말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김동환 목사의 말이 정곡을 찌르는 듯했다. 김 목사는 젊은 목회자뿐 아니라 20~30대 청년들도 교회를 떠나고 있다면서 머지않아 교회가 양로원이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청년들 감소 속도가 너무 빨라졌다. 그나마 청년들이 있어야 (잘못을 바로잡는) 목소리가 들어갈 텐데… 교회는 쇠퇴하면서 더 극보수로 갈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동환 목사는 생각보다 이중직이 만만하지 않다고 말했다. 신학을 공부하는 30~40대 목회자가 갑자기 다른 직업을 갖는 일은 쉽지 않다. 김 목사는 교대를 졸업해 초등교사 2급 자격증이 있어 시간강사로 뛸 수 있었다. 그는 신학대 진학을 꿈꾸는 이들에게 "생활비를 안정적으로 벌 수 있는 직업부터 미리 구했으면 한다. 어차피 신학은 평생 공부해야 한다. 뒤늦게 직업을 구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 같다"고 조언했다.

김 목사에게 당장 목표가 있다면 길섶교회를 지속 가능한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현재 실제 모이는 수는 10명 안팎이다. 어떻게 하면 청년들과 함께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만들지 고민하는 중에 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해 왔던 고민이다. 교회는 환경 단체나 정치단체와 다르다고 본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따르는 공동체다. 신앙 안에서 서로 삶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지속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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