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누런 톱밥이 눈처럼 흩날렸다. 얇은 합판을 가르는 커팅기는 쉴 새 없이 윙윙거렸고, 에어실타카는 기관총처럼 핀을 팍팍 쏘아 댔다. 40평 남짓한 공간에는 소음이 끊이지 않았다. 인부 3명은 수신호와 눈빛을 주고받으며 손발을 빠르게 놀렸다. 이들에게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이 작업 현장은 '시간과공간 인테리어' 실장 최주광 목사(47)가 일주일 정도 작업해 온 곳이다. 그는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라며, 내년부터 시흥시의 한 자활 센터가 사용할 거라고 했다. 최 목사의 허리춤에는 망치·줄자·드라이버 등 각종 공구가 담긴 '못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못 주머니는 춤을 추듯 움직였다. 7년째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다는 그의 몸놀림은 능숙해 보였다.

그는 이중직 목회자다. 주중에는 인테리어 일을 하고, 주일에는 '교회, 흩어지는 사람들'이라는 예배 공동체에서 사역한다. 공동체는 최 목사가 2016년 초 만들었다. '세상에는 교회가 많은데, 왜 또 교회가 있어야 하는가', '교회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시작했다. 현재 비슷한 고민을 하는 10여 명과 매주 경기 김포시 사우동 '동네책빵 괜찮아'에서 예배하고 있다. 사례비는 받지 않는다. 공동체에 들어오는 헌금은 밖으로 흘려보내고 있다.

인테리어 일을 하는 최주광 목사가 커팅기로 합판을 자르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인테리어 일을 하는 최주광 목사가 커팅기로 합판을 자르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처음부터 이중직을 고려한 건 아니었다.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만 해도 풀타임 사역자를 기대했을 뿐, 목회하면서 다른 일을 병행하게 될 줄은 몰랐다. 가정을 이루고 아이 셋을 얻었는데, 부교역자 사례비로는 가정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같이 할 수밖에 없었다. 최 목사는 "사역도 하고, 가정 경제를 위해 200곳에 이력서를 냈는데 받아 준 곳이 없었다. 목사가 되기 위해 했던 공부가 생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목수였던 친형에게 도움을 청했고, 다행히 인테리어 현장에 일용직으로 채용됐다. 현장은 생소했다. 전혀 들어 보지 못한 용어들이 오갔고, 작업 패턴도 일정하지 않았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최 목사는 어깨너머로 일을 배워야 했다. 욕도 먹고 전혀 만만하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가족을 생각하며 버텼다고 했다.

"나의 부르심 때문에 가족의 희생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내가 아니어도 (한국교회에) 목회를 더 잘하는 분도 있고, 달란트를 가진 분도 많다. 하지만 아내의 남편,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한 가정의 생계를 꾸리는 건 내가 아니면 안 되니까… 내가 나가서 돈을 벌어야 우리 가족이 먹고살기 때문에 일을 시작하게 됐다."

보통 작업은 오전 8시에 시작해 오후 5시에 마치지만, 작업 현장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아침 일찍 출근한다. 최 목사는 "집에서 새벽 5시 반 정도에 나와야 한다. 아무래도 몸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 육체적 피로도가 높다"고 말했다.

몸이 힘든 만큼 일당은 센 편이다. 숙련도에 따라 다른데, 보통 하루에 15~20만 원을 받는다고 했다. 문제는 노동의 연속성이다. 일이 언제 끊길지 모르기 때문에 몸이 아파도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목공과 인테리어를 고민 중인 목회자는 이 점을 참고하라고 조언했다.

최 목사는 "이 현장 작업이 끝나면 다음 일이 언제 있을지 모른다. 그게 제일 힘들다. 한 달에 5일만 일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 생활이 안 되니까 대출을 받았다. 목공, 인테리어는 직업으로 분류가 안 돼서 금리가 비싼 대출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인테리어 역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인 만큼 별의별 일을 겪는다고 했다. 특히 인격적으로 모독당하는 일이 많다고 했다. 최 목사는 "제주도에 있는 한 호텔에 작업하러 갔을 때였다. 작업복을 안 입었을 때는 호텔 직원들이 깍듯하게 인사하더니, 작업복을 입고 오니까 엘리베이터도 못 타게 하더라. 겉모습만 보고 하찮게 대하는 이들을 마주하면서 속상한 적도 많았다"고 했다. 이어 "반대로 식당에 작업복 입고 가면 추가 공기밥 가격은 안 받는 곳도 있다. 같이 어렵게 사시는 분들은 서로 이해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주광 목사는 이중직을 하면서 교인들의 고단한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최주광 목사는 이중직을 하면서 교인들의 고단한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인테리어 일을 하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정직과 신뢰라고 했다. 최 목사는 간혹 인테리어 업자 중 이윤을 많이 남기려고 자재값을 '후려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당장은 이득일지 몰라도 신뢰를 잃게 된다. 지금 작업하는 곳도 소방법에 따라 굳이 방화 석고를 안 써도 되는데, 혹시 몰라 일반 석고 대신 가격이 더 비싼 방화 석고를 썼다. 우리가 (자재비를) 좀 더 부담하지만, 고객에게는 신뢰를 준다. 항상 정직하게 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주광 목사는 한국교회에 임지와 교인이 줄고 있다면서 목회자들이 이중직을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교회라는 바운더리 안에서만 오랫동안 생활한 것 같다.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목회자는) '교회 안에서 목회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는 것 같다. 현실을 보면 갈 임지도 없는 데다가 개척하려면 보증금도 있어야 한다. 설령 교회를 세워도 생계가 막막해지기 일쑤다. 그때 가서 (다른 일을) 찾으려면 굉장히 늦을 것 같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미리 찾아서 하면 좋겠다.

 

현장에서 만난 교회 다니지 않는 분들도, 목회자가 일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시더라. 목사가 교회 밖으로 나와서 땀 흘려 일한다고 칭찬해 주고 힘내라고 용기 북돋아 주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

 

대개 성도들은 주중에 일하고 주일에 봉사한다. 목회자도 주중에 일하고 교회에서 봉사하면, 성도들의 고단한 삶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다. 한 집사님은 나를 보고 '목사님이 제일 힘들어 보인다, 위로를 받는다'고 하더라. 목회만 했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일인데, 이중직을 하면서 배우며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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