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오늘은 카페 문 안 열어요?"
"대표님, 회의실 문 좀 열어 주세요!"
"아이고, 인터뷰 중이신가 보네요?!"

[뉴스앤조이-이용필 편집국장] 아파트 동대표를 맡고 있는 조아라 목사(37)는 분주했다. 인터뷰 중간중간 여러 주민이 조 목사를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조 목사는 인터뷰를 잠시 중단하고 민원(?)부터 처리했다. 평소에도 이렇게 일이 많으냐고 묻자, 조 목사는 "유독 오늘만 그런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조아라 목사는 서울 송파구 위례신도시에 있는 임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총 2200세대가 거주하는 이곳에는 주민들을 대표하는 동대표가 9명 있는데, 조 목사도 이 중 하나다. 현재 13·15·16동 대표를 맡고 있다. 조 목사는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아파트 동대표를 맡게 됐다고 했다. 올해로 4년 차. 동대표는 단지 살림을 책임진다. 시설, 조경, 주민 커뮤니티 관리 등을 담당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아파트 장터, 축제 등을 기획해 열기도 했다.

목회 현장에 있음 직한 목사가 어쩌다가 아파트 동대표로 활동하는지 궁금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2월 25일 아파트 회의실에서 만난 조 목사는 따로 사역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 둘을 낳고 키우다 보니 목회까지 할 여력이 없다고 했다. 2018년 교회에서 사임한 직후만 해도 아이들을 돌보면서 쉴 생각이었다. 그러다 친구 제안으로 아파트 동대표가 돼 생각보다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나를 한번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그동안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빛과 소금'처럼 살아야 한다고 설교했는데, 그게 삶으로 가능한지 경험해 보고자 했다. 아이들도 돌봐야 하니까 우선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인 아파트에서 테스트해 보자고 생각했다."

동대표를 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작은 도서관' 채우기였다. 도서관 용도로 배정받은 별도의 공간이 있었는데, 이곳을 꾸미고자 하는 주민은 없었다.

조 목사는 "내가 먼저 인터넷 카페에 '작은 도서관 함께 관리할 분을 모집한다'고 공지했다. 그러자 바로 활동가 선생님 10명이 지원을 해 왔다. 선생님들과 도서관 설립 과정에 대해 배워, 책을 가져와 채우고 공간을 가꿨다"고 말했다. 현재 도서관은 활동가들이 당번제로 관리하고 있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이용하고 있다.

단지 내 국공립 유치원 개원을 위해 민원 운동을 벌이고 지역구 국회의원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위례신도시 내 송파구 아파트 단지 대표단에 참여해 임대 아파트 대표로도 활동해 왔다.

동대표인 조 목사는 아파트 살림을 담당하고 있다. 조 목사의 건의로 단지 안에 '작은 도서관'도 생겼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동대표인 조 목사는 아파트 살림을 담당하고 있다. 조 목사의 건의로 단지 안에 '작은 도서관'도 생겼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가장 최근에는 서울시가 지원하는 '같이 살림 프로젝트'를 통해 카페도 만들었다. 기자가 방문한 날에는 활동가 서너 명이 함께 모여 일을 하고 있었다. 조 목사는 "카페가 잘 정착된 다음에는 마을 학교를 해 볼 생각이다. 취미반부터 창업반까지 주민들의 요구가 다양하다"고 말했다. 소소한 재미를 느꼈다면서 교회 안에만 있었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대표를 맡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곳이 사역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에서 성도 대하듯이 주민들을 섬기며 지내고 있다. 보수는 따로 없지만, 재미도 있고 내 주변이 변화하는 걸 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다시 교회 사역 꿈꾸지만…
"여성 사역자, 구조적으로 밀려나
아파트 동대표 경험 바탕으로
나만의 목회 해 보고 싶어"

동대표는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둘 생각이다. 지난 3년 반 동안 여러 경험을 했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에서다. 선교사가 꿈이기도 한 조아라 목사는 다시 교회로 돌아가 사역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 둘을 키우는 입장에서 그게 가능할지 의구심도 든다고 했다.

"여자 동기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인데, (여성 목회자는) 교구보다 파트 내지 부서를 주로 맡는다. 육아휴직이라는 개념도 없고, 출산·육아와 관련해 전폭적인 서포트를 해 주는 교회도 보지 못했다. 특히 남편이 같은 목사인 경우 사역을 쉬는 여성 목사가 많다. 여성 사역자는 구조적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다.

 

나는 나름대로 소명 의식이 충만한 상태로 신대원을 다녔다. 당시만 해도 지금 내 나이 또래의 언니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힘들게 공부해서 커리어를 쌓았는데 결혼하면 다 그만두더라. 알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흔히 임신·출산·육아하면 경력이 단절된다고 하는데, 여성 목회자는 경력 '절단'이 맞는 표현 같다. 결혼해서 영·유아 자녀를 둔 여성 목회자는 일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조아라 목사는 사역의 끈을 놓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 조 목사는 "아이들이 크면 나중에 파트로라도 교회에서 사역하고 싶은 마음이다. 원래 작년에 카자흐스탄 선교사로 나가려고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무산됐다"고 말했다.

조 목사는 의도치 않게 아파트 동대표로 일한 것이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신학은 삶으로 증명해야 하는 학문이지 않나. 목사로서 하는 설교와 말 모두 삶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아파트 동대표를 하면서, 내가 아이들에게 설교하곤 했던 '세상의 빛과 소금,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는 게 정말로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의 작은 참여가 주변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걸 목격했다. 이와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만의 목회를 해 보고 싶다." 

조아라 목사는 아파트 동대표 경험을 살려서 자신만의 목회를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조아라 목사는 아파트 동대표 경험을 살려서 자신만의 목회를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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