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는 어떤 목사가 될 수 있을까', '진짜 목사가 될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이곳은) 남성 중심 세계니까.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나와 같이 공부하던 여성 사역자는 설 자리가 없었다. 일부러 목사 안수를 안 받는 여성 사역자도 있었다. 두렵고 막막해서 나만의 '무기'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뉴스앤조이-이용필 편집국장] 이엄지 목사(35)는 신학대학교와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 행복했다고 말했다. 공부하면 할수록 신학이라는 학문에 매료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민도 커졌다. 수년간 배운 신학을 써먹을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었다. 교회는 여성 사역자를 기피했다. 어렵게 청빙이 돼도 차별 아닌 차별을 받았다.

이 목사는 "여성 사역자에게는 알게 모르게 역할이 주어져 있다. (남성과) 동일한 직책이어도 교회 행사가 있을 때 안내를 맡거나 교육 부서를 담당하는 정도다. 드러내 놓고 차별하지는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이엄지 목사에게 끝까지 버티라고 조언했지만 미래는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이 목사는 기성 교회에서 사역하는 것보다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평소 돌보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이 목사는 사회복지학·상담학을 뒤늦게 공부했다. 두 학문은 묘하게도 신학과 잘 어울렸고 맞닿아 있었다고 했다. 이 목사는 "예수님은 이 땅의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해 주셨다. 두 학문에서 비슷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늦게라도 공부할 수 있어 참 감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현재 이엄지 목사는 사회적 협동조합 파인트리 교육사업팀장을 맡고 있다. 심리적·정서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교육하고 상담한다. 2월 17일 이 목사가 근무하는 성남 분당구 사무실을 찾았다. 이 목사는 온라인으로 동화책을 읽어 주고 색종이를 함께 접으며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영상 속 아이들은 즐거운 듯 재잘거리며 수업에 임했다. 이 목사는 직접 교육하는 일뿐 아니라, 교육청 및 국가 기관에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함께 일하는 상담가·교사들을 이끄는 일을 7년째 해 오고 있다.

주중에는 일하고 일요일에는 경기도 양평 상심리교회 협력목사로 사역 중이다. 이엄지 목사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사역과 분리할 수 없다. 교회에서 설교하는 일만 사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수님도 메시지를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많은 이웃을 도우며 삶을 함께하시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우리 삶의 형태도 예수님의 삶을 닮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하는 목회자로 살아 보니 비로소 교인들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 목사는 "직장 생활을 직접 해 보니까 성도님들이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됐다. 한 주간 바쁘게 살고 일요일에 교회에 나와 하루 종일 봉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 부족한 나를 돌아보게 됐다. 만약 직장 생활 경험이 없었다면 그분들의 삶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이엄지 목사에게 소망이 있다면 지금 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면서 사역을 병행하는 것이다. 사회복지사·상담가로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꾸준히 만나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특별히 이 목사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데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를 낳고 키우니까 하나님 마음을 알겠더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족한 존재를 이끄시지 않나.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애타는 마음으로 키우셨구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하는 목회자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기 때문에 분명 힘들고 어려운 지점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엄지 목사는 "나 역시 '너는 왜 다르게 살아?'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이 다 하신 일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삶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나중에 분명히 알게 될 테니까, 순간순간을 즐기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아갔으면 한다. 그게 우리 몫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엄지 목사가 온라인으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이엄지 목사가 온라인으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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