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전주시 덕진동 하가4길에는 옛 정취가 묻어나는 작은 동네가 있다. 빌라·아파트 대신 연식 있는 주택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한적한 동네의 좁은 골목은 나뭇가지처럼 뻗었고, 강아지·새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홍승현 목사(38)는 4년 전 전주를 여행하던 중 우연히 이 마을을 보고 반했다. 마침 교회 개척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자리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홍 목사는 '영끌'해 모은 돈으로 마을 중앙에 있는 낡은 건물을 샀다. 책을 좋아하는 홍 목사는 건물을 리모델링한 후 2017년 7월 '살림책방'을 열었다. 정육점, 쌀집, 세탁소, 방앗간뿐인 동네에 책방이 들어서자 지역사회에서 관심이 쏟아졌다. 주민들은 연고도 없는 동네에 젊은 부부가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면서 주목했다.

관광의 도시 전주에서 살림책방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입소문을 탔다. 지역 언론들도 관심을 가지고 보도했다. 12월 11일 살림책방에서 만난 홍 목사는 "시작부터 방송과 소셜미디어 혜택을 누렸다. 전주와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이 사양 직종인 책방을 외진 마을에 여니까 관심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살림책방은 문자 그대로 '살리다'는 뜻을 품고 있다. 홍 목사는 "요한일서를 묵상하던 중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는 구절을 보고 책방 이름을 '살림'으로 정했다. 책을 통해 사람의 생각과 정신을 살리고, 더 나아가 마을과 시대를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책방은 20평 규모로 비교적 아담하다. 2000권이 있는데 대부분 인문학·예술 서적이다. 홍 목사는 "인문학책은 사람의 정신을 살리고, 예술책은 윤기 있는 삶을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한때 종교 서적도 들여놓기도 했지만, 사는 사람이 없어서 지금은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주로 오기 전 홍승현 목사는 기성 교회에서 사역했다. 보통의 부교역자처럼 행정·기획, 심방 등을 담당했다. 그러던 중 '예수원'을 세운 대천덕 신부 책을 읽고 '실험 정신'을 갖기로 마음먹었다. 개척에 앞서 △기존 교회를 왜 나가야 하는지 △개척한다면 뭐가 달라야 하는지 △지금 시대가 필요로 하는 교회는 어떤 모습인지 등을 꾸준히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찾아가는 목회'였다.

책방은 찾아가는 목회를 하는 데 최적의 수단이라고 했다. 홍 목사는 "책방은 사랑방이라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교회 밖 사람들을 만나기 유용했다. 책방의 장점은 오래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책을 사러 오는 손님보다 대화하기 위해 오는 손님이 더 많다. 책방에서 만난 사람은 목회 대상이라 생각하고 임했다"고 말했다.

일요일에는 예배당으로
"다른 교회 나가도 좋다" 장려
외부 지원 및 후원도 헌금으로 생각
살림책방은 주로 인문학, 예술, 동화 관련 서적을 취급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살림책방은 주로 인문학, 예술, 동화 관련 서적을 취급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살림책방은 일요일이 되면 '살림교회'가 된다. 책방은 시작부터 인지도를 쌓아 올렸지만, 교회는 정반대였다. 2년 넘게 단 한 명도 교회를 방문하지 않았다. 홍 목사는 "2년 반 동안 우리 가족을 제외한 다른 교인은 없었다. 성도가 없으니까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나' 부정적인 생각이 들더라. 한계에 이를 정도로 힘들었는데, 스스로 약속한 최소 3년은 버티기 위해 애썼다"고 말했다.

'진짜 문을 닫아야 하나' 걱정하고 있을 때 첫 교인이 등록했다. 이어서 거짓말처럼 한 주 간격으로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 중에는 책방 손님으로 왔다가 교인이 된 이도 있었다. 현재 살림교회에는 10명 넘게 모인다. 대부분 30대다.

"성도가 안 오면 다시 기성 교회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아직 젊으니까 해 보고 안 되면 포기하자는 마인드였다. 우리의 길이 아니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막힐 거고,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뚫릴 거라고 생각했다. 교인이 하나둘 생기는 걸 보고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한때 홍 목사는 토요일 저녁이 되면 의자를 배치하고 강대상을 놓고 음향 기기 등을 세팅했다. 어느 순간 기성 교회에서 해 오던 대로 준비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회의를 느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관성대로 예배를 준비해 왔기 때문이다. 기존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교인들과 동그랗게 둘러앉아 중앙에 상을 펴고 그 위에 십자가와 초를 놓고 예배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예배를 온전하게 드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살림교회 특징 중 하나는 개교회주의를 앞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홍 목사는 "교인들에게 '우리 교회에만 와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 교회만 고집하지 말고, 할 수 있다면 다른 교회 가서 선한 영향력을 미쳐 달라, 교회는 하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굳이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교인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기에 집착하지 않으려 한다"고 답했다.

헌금을 꼭 교회에 내야 한다고 강조하지도 않는다. 만일 주중에 누군가를 돕거나 후원했을 경우 헌금 봉투에 영수증 또는 내역을 첨부하도록 했다. 홍 목사는 "헌금 봉투에 있는 후원 내역을 볼 때마다 뿌듯하고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목회자 사례비도 따로 없다. 홍 목사는 "할 수 있다면 사도 바울처럼 텐트 메이킹 사역을 하는 게 낫다고 본다. 목회자가 성도들 헌금에 기댈 경우 성도 수와 교회 규모에 집착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살림책방은 '살리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일요일에는 예배당으로 사용한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살림책방은 '살리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일요일에는 예배당으로 사용한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가끔씩 자비량을 생각하는 목회자들이 홍승현 목사를 찾아 책방과 관련한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홍 목사는 "책방은 대안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생각만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홍 목사는 "사람들이 책과 책방이라는 공간에 로망이 있는데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나는 아내가 일하고 있고, 일정 정도의 수익과 후원이 있어서 버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 목사는 전주에 책방 여러 개가 생겨 인구수에 비하면 포화 상태라고 했다.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보니,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홍 목사는 "책방에 오는 손님 중 커피를 찾는 분도 적지 않아서, 카페를 전문적으로 하는 목사님과 컬래버레이션하면 어떨까 고민 중이다. 내가 카페까지 하는 것보다는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과 협업을 하면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버티기 위해서는 계속 고민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승현 목사는 기성 교회 사역도 좋지만 젊은 목회자들이 다양한 도전을 시도하기를 바란다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나와 같은 목회자는 교회를 물려받는 것도 아니고, 큰 교회에 몸담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면서 지치지 않는 일을 목회와 접목하면 좋을 것 같다. 30~40대는 아직 젊다. 도전할 기회가 충분하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실패해도 다른 걸 생각할 수 있는 나이다.

 

바라기는, 교회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으면 한다. 장의자 깔고 강대상이 있어야만 교회라고 생각해서 안 된다. 비본질과 본질의 차이를 구분하고, 공간과 형식의 자유로움을 고민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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