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종교의 종말
[뉴스앤조이-구권효 편집국장]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이 아니다. 어떤 말은 배설물보다 못하다. 모두가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시대, 코로나19 재확산에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든다. 분노와 안타까움, 공감과 조롱 속에서 한마디 더 얹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어 칼럼 쓰기는 자제했다. 그런데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글을 만나서 책상에 앉았다. 그런 말이 목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자에게서 나오는 현실이 지금 한국교회 위치를 말해 준다.
실체나 있을까 모를 소위 '보수 단체' 수십 개가 모여 정부가 방역 실패 책임을 교회에 뒤집어씌운다고 성명도 내고 기자회견도 한 모양이다. 그걸 주도하는 한 목사는 성명 내용을 자랑이랍시고 자기 페이스북에 올려놨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감염자 수도 적고 사망률도 적은데 정부가 공포심을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나라님 욕이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결국 정부가 방역을 잘했다는 말인데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으니 어째 처음부터 앞뒤가 안 맞는다.
내가 특히 참담하게 느낀 건 그다음 문구다. 그는 "확진자 중 사망자 비율도 전 세계 3.53%인 반면, 국내는 1.91%인 306명에 불과함에도 지나치게 공포심을 유발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썼다. 사망자가 "306명에 불과"하다니. 내 눈을 의심했다. 제정신으로 쓴 게 맞나 싶은데, 이 목사가 혼자 페이스북에 휘갈긴 것도 아니고 단체 수십 개가 연명한 성명이다. 다들 306명이 죽은 정도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사람이 얼마나 더 죽어야 '불과하다'는 표현을 쓰지 않을까.
이 목사는 평소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며 1인 시위와 기자회견을 업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전광훈과 같은 또 한 명의 극우 정치 목사의 몰상식한 표현이라 여겼다. 그런데 이런 자들과는 선을 그으면서도, 현장 예배를 강행하겠다는 교회들 태도에 다시 내 눈을 의심했다. 교회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폭발적으로 확산하는 게 매일 수치로 드러나는 상황에서, 대면 예배를 불사하겠다는 태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극우 목사들과 다르다고 말하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모습은 본질적으로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면에서 그들과 같다. 지금 상황에서 방역 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직접 위협하는 행동이다. 코로나19는 젊을수록 사망률이 낮은 편이기는 하나, 80대 이상은 감염자 4명 중 1명이 죽는다. 이번 재확산으로 자영업자들은 또다시 생존의 갈림길에 섰다.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등 사회 취약 계층도 직격타를 맞는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은 누군가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처지가 됐다. 위협은 하루아침에 우리 삶을 바꿔 놓을 정도로 실제다.
고통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했다면 '현장 예배를 목숨 걸고 사수하겠다'는 말 같은 건 할 수 없었으리라. 전광훈과 사랑제일교회는 자기 교회에 누군가 바이러스를 붓고 갔다며 테러라고 주장하지만 - 코로나19가 밀가루도 아니고 어떻게 부었는지는 모르겠으나 - 지금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바이러스 테러는 현장 예배를 강행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죽어도 예배는 포기 못 하겠다'는 개신교인들의 신념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당신들만 죽는다면 상관하지 않겠는데, 다른 사람들까지 같이 죽게 되는 상황이니 하지 말라는 거다.
"사망자가 306명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목사는 그 숫자에 자기 가족이 포함돼도 '불과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코로나19에 감염돼 격리되거나 직장을 잃어 생계가 막막해진 사람이 내 가족이라면, 그래도 나는 내 신앙을 위해 현장 예배를 사수해야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죽어 나가야 이런 배설을 그칠까. 사람을 숫자로 계산하는, 생명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목사와 교회는 왜 이 땅에 존재하는가.
국민은 교회에 분노하고 있다. 이번에 코로나19가 재확산한 이유가 교회만은 아니라고 얘기해 봐야 헛수고다. 생각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다시 교회가 전도나 할 수 있을까 걱정한다. 이런 와중에 불행하게도 공감 능력이 마비된 많은 교회가 지난 주일 현장 예배를 강행했다. 사람들은 이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종교는 필요 없다. 다른 사람을 위협하는 종교는 사라져야 한다.
이번 코로나19 재확산은 한국에서 개신교가 몰락한 결정적 이유로 역사에 기록될 것 같다. 역사학자 최종원 교수(벤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는 <텍스트를 넘어 콘텍스트로>(비아토르)에서 이렇게 말했다. "종교적으로 용서와 구원의 주체는 신이겠지만, 역사에서 제도 교회가 살아남거나 사라진 것은 오롯이 대중의 선택이었다. 즉, 제도 교회의 죄 용서와 구원, 혹은 심판의 주체는 대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