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해 보자. 신천지 사태 때 우리가 겪은 방역 비협조는 지금의 전광훈 사태와 비교하면 차라리 순진한 수준이었다. 그들은 이단이라는 인식으로부터 자기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몸부림쳤고, 낙인찍기가 두려워 소극적 비협조로 일관했다. 노란빛 가득 머금은 명품 넥타이를 매고 자신의 아방궁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무릎 꿇던 노인 이만희의 모습을 보라. 가식과 위선, 자기변명의 극치였을지라도 저들은 형식상 사과와 유감으로 일관했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 마녀사냥하지 말아 달라고, 자신들 역시 전대미문의 감염병 코로나19의 피해자라는 점을 호소했다.

이번 전광훈 사태는 전개 국면이 다르다. 보수 색채가 짙게 느껴져도 '한국 기독교가 반공 이데올로기에 기반하니까 저 정도야 봐줄 만하지', '남북 대치 국면에서 나름 일리도 있지' 하는 묵인하에 위세를 근근이 이어오다가 박근혜 탄핵 이후부터 아예 십자군 전쟁의 은자 피에르1)가 되기를 자처한 전광훈 목사. 그가 볼모로 잡은 스톡홀름증후군(Stockholm Syndrome)2)의 도가니가 되어 버린 사랑제일교회는, 신천지하고는 저항의 무모함과 획기성 측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이들은 코로나19 자체를 무시하거나 조롱한다. 이조차 좌파 정부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가짜 뉴스'라며 몰아붙인다.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라 할 수 있는 방역 베이스 자체도 불신한다. 감염 예방의 기본인 역학조사조차도 자기네 집단에 대한 종교 탄압으로 간주하며 비협조를 넘어 광기에 가까운 행태를 일삼는다. 실체도 없는 북한을 끌고 와 북한이 뿌린 '바이러스 테러'라는 식으로 무더기 양성 판정을 왜곡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 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요즘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는 사회 전체의 셧다운(shutdown)이다. 말 그대로 경제 기반의 일시적 정지를 각오한 조치로 봐야 한다. 정부도 3단계 도입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셧다운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기업이 받게 될 타격은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이렇듯 사랑제일교회가 기폭제가 되어 발발한 2차 대유행 징후는 한국 사회의 경제·정치적 안전망을 근본부터 흔들 수 있는 중차대한 위기다. 만약 한국교회가 이 위기 상황 초래에 사랑제일교회를 비롯해 교회가 집단감염의 화약고가 된 사실을 인정한다면, 지금이라도 자숙을 넘어 사회 안전망에 혼란을 끼친 것에 사과 이상의 행동을 옮겼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더 나아가 한국교회는 마냥 고요하기만 하다. 곳곳에서 사과와 자성의 메시지가 나오기는 하지만 산발적 외침뿐이고 오히려 기독교를 탄압한다며 볼멘소리를 내는 곳이 적지 않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너무 단순하고 담백해서 치가 떨린다. 맹신 때문이다.

반정부 집회를 계속해서 이끌어 온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 자신이 주도한 8·15 집회 직후 17일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반정부 집회를 계속해서 이끌어 온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 자신이 주도한 8·15 집회 직후 17일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전광훈의 맹신

절대 옹호하는 말은 아니다. 오해하지 말자. 전광훈은 어떤 의미에서는 행동대장에 불과하다. 한국교회가 낳은 반공 이데올로기, 목회자 중심주의, 정치와 결탁하면서도 정치와 무관하다는 내로남불 극우 이념의 세례를 받은 전광훈은, 생각하고 저지르기보다 저지르면서 신의 뜻을 찾는 십자군 시대 피에르를 꼭 빼닮았다.

냉정히 짚어 보자.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정부 탄생이 정말 적그리스도의 출현인가. 일단 이 구도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진보의 가치로 보면 현재의 헌법에 대해서도 메스를 들어야 한다는 입장이 적지 않다. 다수의 전문가는 이념 대립,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공동체 질서의 합목적성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구조로 태동한 것이, 안타깝지만 대한민국 헌법의 현주소라 말한다. 여기에 군사독재를 거쳐 헌법에 독소 조항으로 불릴 법한 조항들까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데, 박하게 평가해 무늬뿐인 헌법조차도 비호할 수 없는 게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었다. 이에 대해 온갖 음모론이 나돌았지만 구체적으로 입증된 사례는 아무것도 없다. 음모론자들의 그럴싸한 주장일 뿐이다. 더욱이 그때는 보수 세력이 창궐할 때였다. 그럼에도 탄핵이었다.

이 역사적 결과가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 보수·진보의 이념 바탕이 아니라 사회 보편성에 대한 용인을 뜻한다. 문재인 정권은, 저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통성이 있든 없든 사회 보편성에 의해 추인된 정권이란 말이다. 그 보편성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을 통해 추인할 것을 간접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신앙은 보편성을 추인하는 와중에 존재의 신비를 조심스럽게 규명하고 살피는 섬세한 신비다. 초대교회, 수도원 운동, 종교개혁도 이 섬세한 세속적 보편성과 신성의 신비 사이에서 긴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맹신의 행동대장 전광훈은 그 보편성의 규칙을 걷어차 버렸다. 본회퍼의 문구를 가져와도, 매일·매주 광화문광장에 가서 부르짖어도, 야당 지도자나 정치 풍운아들이 찾아와 손을 들어 줘도 전광훈의 행동에는 기본이 없다. 더욱이 그의 광태는 유럽에 득세한 극우로 무장한 정치 세력과 비교해도 말이 안 된다. 기본이 없으니까 모든 게 끼워 맞추기다. 얄팍한 성경 지식을 바탕으로, 자기에게 조금만 도움이 된다 싶으면 하나님의 동역자고, 자기 마음에 조금만 안 맞으면 모든 게 사탄 마귀다. 이미 경험했지 않은가. 전광훈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나님마저도 겁박하고 무릎 꿇릴 기세니까. 이쯤 되면 자칭 보혜사 코스프레에 취한 신천지 교주 이만희보다도 더 배짱이 두둑하지 않은가.

비극적이게도 이런 전광훈의 맹신이 만천하에 발가벗겨진 사태가 바로 지금의 8·15 광복절 집회, 사랑제일교회발 코로나19 집단감염이다.

정부의 대응 차이와 행정 방향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방역은 국가의 보편적 의무다. 이때 의무를 지킬 영순위는 방역 당국, 정치집단, 의료진이 아니라 국민이다. 국민이 방역의 주체가 되지 않으면 팬데믹은 결코 종식되지 않는다. 전광훈은 이 기본 중의 기본을 무너뜨렸다. 기본 자체를 음모, 가짜 뉴스, 북한의 테러, 좌파 정권의 탄압으로 몰고 가 한순간에 교회를 국가 근간을 뒤흔드는 망국 단체로 만들어 버렸다.

이것이 바로 전광훈 맹신이 품은 재앙적 파급력이다. 이 치명적 해악인 맹신의 기원은 그의 극우 이념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을 선동하는 재주에 대한 문제도 아니다. 인간에 대한, 더욱이 하나님에 대한 최소한의 존엄도 잃어버린 근본을 망가뜨리는 욕망이다. 이 맹신을 계속 붙잡는 이상, 최소한 철회하거나 기본만큼은 지키자는 메시지로 돌아서지 않는 이상, 그는 변명할 여지 없이 이단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존엄을 조롱하고 대적한 기독교의 이단이다.

사랑제일교회의 맹신

1990년대 중반 교회가 지금의 성북구 장위동으로 들어섰을 때, 지역 사람들은 이들, 사랑제일신도들에게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따뜻하고 정 많은 이들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다. 찬송, 방언, 제법 긴 시간 이어지는 예배가 조금은 유난스럽다 여기기도 했지만, 기독교가 가진 역동성이니 봐주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조금씩 조짐이 이상해지면서 박근혜 탄핵 이후 교회는 달라졌다고 한다. 박근혜 탄핵이 곧 적화통일의 신호탄으로 인지되면서부터 괴상한 세대주의, 기형적 문자중심주의의 망령이 교회를 휘감았다.

한국교회 폐단 중 하나인 목사중심주의를 악용한 전광훈의 교설이 점점 종교에서 정치로, 정치에서 시정잡배들이나 지껄이는 음모론으로 치달을 때도 신도들은 전광훈의 퇴로 없는 폭주 기관차에 올라탄 것을 신적 운명으로 생각하고 따랐다. 그러더니 응원이 쏟아졌다. 전국 각지에서 현 정권에 불만 가득한 극우 이념으로 무장한 유투버, 극우 논객, 우경화한 기독교인들이 전광훈을 시대의 선지자로 치켜세우며 모여드니 힘이 절로 솟았다. 게다가 매체를 통해 지겹도록 얼굴도장 찍어 온 정치인들마저 '우리 목사님' 하며 손을 들어 주니, '이게 진짜 하나님나라가 아니면 뭐란 말이냐'는 식으로 집단 최면에 매몰되고 말았다.

사랑제일교회 신도들의 집단 최면은 변주된 스톡홀름증후군으로밖에는 다르게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인질이 되었다는 걸 모르고 시작한 인질극의 당사자들. 하여 모든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대부분 사람이 '당신들은 인질이었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자신들은 인질이 아니라고, 자유롭고 의로운 일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천국 백성이라 생각하는 비극이 결국 그들의 맹신인 것이다.

맹신의 결과는 잔혹한 청구서로 돌아왔다. 서글프게도 전례가 없고 치료제와 백신의 효과조차 불확실한 인수 공통 감염병인 코로나19는 종교적 맹신을 비껴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무정한 전염력으로 맹신의 늪에 빠진 사랑제일교회 신도들을 유린했다. 온 힘을 다해 손뼉 치고 찬양하고 기도하던 우리네 어머니·아버지, 할머니·할아버지, 그들과 함께한 가족들까지 집단감염의 수렁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 극단적 맹신은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누구도 인정하지 않지만 명백한 폭탄 돌리기가 계속되는 이 인질극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인질극에 준하는 위험성은 사실 한국교회가 고질적으로 끌어안고 있는 시한폭탄과 같은 것이다. 목회자 내지는 장로 중심주의, 하나님의 대리자 중심주의가 도리어 하나님 말씀, 성경을 무기 삼아 난도질하면서 목회자가 신도를 성추행해도 용서, 가스라이팅(심리 지배, gaslighting)을 해도 용서, 신도들 헌금을 자기 가족 쌈짓돈처럼 챙겨 먹어도 용서, 자식한테 재산·교회를 다 세습해도 용서,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의 이름으로 죄다 면죄해 온 현상이 퇴적되어 버린 괴물이 오늘의 한국교회, 그 일그러진 초상이 아닌가. 어처구니없는 점은 이 괴물과 결별하는 과정이 내부로부터 온 게 아니라 외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교회를 괴물로 보고 있다.

수천 명이 전국에서 전세 버스를 이용해 8월 15일 집회에 참석했다. 버스 인솔자 중 상당수가 정통 교단 소속 목회자였다. 사진은 지난 2월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반정부 집회. 뉴스앤조이 이용필
수천 명이 전국에서 전세 버스를 이용해 8월 15일 집회에 참석했다. 버스 인솔자 중 상당수가 정통 교단 소속 목회자였다. 사진은 지난 2월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반정부 집회. 뉴스앤조이 이용필
맹신을 위한 나라는 없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더는 어디 가서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기회조차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정치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보수든 진보든 이념을 넘어서서 하나님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아무 상관이 없는 욕망과 기득권, 피해망상에 근거한 촌극이었음을 한국교회는 누구도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전광훈과 사랑제일교회가 유력 일간지에 터무니없는 음모론 광고를 하나님의 이름, 교회의 이름을 빙자해 쏟아 내도, 어느 곳 하나 선 긋기를 하거나 교회 이름 함부로 들먹거리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았다. 정치 유튜버들이 태워 주는 꽃가마에 올라타 언어의 칼춤에 중독되어 광화문을 점거하고 하나님 이름으로 청와대를 돌진하고 문재인 대통령을 하야시켜야 한다고 말해도, 이를 희대의 망언이라고 경고한 외침이나 성명서도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뒷짐만 지고 관망하다가 심지어 어떨 때는 전광훈이 외치는 사자후에 터무니없이 감동되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최악의 헛발질, 오락가락만 일삼으며 자초한 사태 앞에서 결국 한국교회는 명실상부한 한국 사회의 민폐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 자명해져 버렸다.

억울하다고 따질 시기가 아니다. 한국의 기독교인, 교회 모두가 잘못했다고 말하려는 것도 결코 아니다. 다만 냉정해지자는 이야기다. 우울하지만 국가가 교회를 바라보는 암울한 시선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자는 거다. 그래야만 최소한 출구 전략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시대, 어느 국가, 어느 공동체이든 맹신을 달래 주거나 인정하며 그 위에 성을 쌓아 올려서 존속한 나라는 없다. 독재와 광기, 억압과 전체주의로 일관한 나라는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파시즘이 그랬고, 냉전 시대가 그랬다. 로마의 그 찬란한 문명도 독선의 포화 속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세상 나라도 이러할진대 하나님나라야 오죽할까. 세속 도시와 국가마저 교회를 마지못한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는데,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뭐가 다를까. 아무리 우리를 좋게 봐주려 해도 하나님이라고 이 추한 현실을 견디실 수 있을까. 겨우내 남은, 이조차도 맹신으로 오염되어 부패해 버린 한 줌 남은 우리네 신앙, 그 신앙이 치가 떨리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주원규 / 성공회대학교에서 구약신학(Th.D)을 전공하고, 현재는 동서말씀교회를 섬기고 있다. 소설가·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JTBC·MBN·<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 출연해 세상과 기독교인의 합리적 교감을 시도하고 있다.

1) 민중 십자군을 주도하였으며 제1차 십자군 원정에도 참여해 적지 않은 역할을 한 핵심 인물. 독특한 카리스마와 열변으로 많은 사람을 선동시켜 십자군 원정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는 설교를 하고 다녔다.
2)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 현상이다. 인질이 아니더라도 일부 매 맞는 배우자나 가족의 일원, 학대받는 아이들도 이와 비슷한 심리 상태를 나타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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