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선지자로 혼돈했던 바벨론 포로 시대와 다르지 않아…죄를 회개하고 겸손한 교회로 돌아가야

지난 수요일 오전에 나는 텅 빈 예배당에서 내 얼굴이 나오는 화면을 보며 설교했다. 교회에 모인 사람은 반주자, 온라인 송출을 위해 영상 촬영을 하는 부목사, 설교자인 나. 이렇게 세 사람이었다. 현재 많은 교회 목회자가 온라인 예배를 송출하기 위해 텅 빈 예배당에서 찬양하고 설교하고 있을 것이다.

처음 온라인 예배를 했을 때는 코로나19 사태를 처음 경험하는 입장에서 겪는 당혹스러운 마음, 신천지로 인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분노, 이단인 신천지와 우리 정통 교회는 다르다는 자부심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이끈 8·15 광화문 집회와 사랑제일교회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교회가 사랑의 통로가 아닌 감염의 통로로 인식되면서 사람들의 엄청난 질타를 받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빈 예배당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심정은 아마도 참담함 그 자체이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기독교인 수가 점점 감소하고 청년 세대가 교회에서 사라지고 있는 이때, 이번 사태는 한국교회의 쇠락을 가속화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우리가 왜 신천지보다 못한 취급을 받게 되었을까. 이런 질문을 수없이 하며 현재의 교회 상황과 미래를 생각하며 힘든 시기를 보내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전광훈 목사와 같은 극우 기독교 세력과는 다르다고 선 긋기를 하며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있겠지만, 교회 안팎의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사랑제일교회나 전광훈 목사와 일반 교회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간 정통이라고 자부하는 교회와 목회자들이 그를 이단으로 판정되거나 출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동조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는 이런 거짓 선지자가 활동하고 지도자로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정통 교회의 문제이다. 그렇기에 일부 극우 기독교의 문제라고 꼬리 자르기를 한다고 해서 교회를 향한 불신과 비난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구약의 역사를 통해 이런 전광훈 목사 사태가 일어난 이유와 이후 시대 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왜 우리는 이렇게 되었을까
- 거짓 선지자와 혼돈의 시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하기 직전에도 현재 한국교회 상황과 비슷하게 거짓 선지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하기 직전의 혼돈스럽고 어려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예레미야 26~29장은 참선지자인 예레미야와 거짓 선지자들의 대결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유다가 바벨론의 계속된 공격으로 망하기 직전, 예레미야는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성전에서 성전의 멸망을 예언하며 유다의 회개를 촉구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주신 기회였다. 회개하고 심판을 돌이킬 마지막 기회. 하지만 유다의 왕과 제사장들은 이런 예레미야의 예언에 회개하지 않았다. 도리어 예레미야를 성전 모독죄로 재판에 넘겼고 죽이라고 요구했다.

다행히 장로들과 아히감에게 도움을 받아 여호야김 손에서 벗어난 예레미야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동일하게 예언했던 우리야는 애굽으로 도망갔다가 잡혀 와서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된다. 사람들은 지금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망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참선지자의 말로 듣지 않고 오히려 핍박하며 죽이려 했다. 하지만 결국 유다는 참선지자 예언대로 바벨론의 공격을 받고, 많은 사람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

이렇게 바벨론의 계속되는 공격으로 유다의 운명이 위태위태한 상황 속에서 유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반바벨론 정서를 기반으로 한 애국심이 팽배해졌다. 거짓 선지자들은 이런 정서를 이용해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곧 멸망시키실 것이고 2년 안에 포로도 돌아오고 빼앗겼던 성전 기명도 되찾아 올 것이라는 거짓 예언을 퍼뜨리고 다녔다. 그들은 그 시대에 정말 필요한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했다. 대단한 선지자처럼 행세하며 오히려 예레미야를 거짓 선지자로 몰아갔다.

또한, 유다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공격하며 거짓 예언을 했던 하나냐가 죽음으로 그의 예언이 사실이라고 증명되었는데도, 예루살렘성전이 무너지고 많은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지 않았다. 그들은 증명된 참선지자 예레미야의 말보다는 그들이 믿고 싶고 듣고 싶은 말을 이야기해 주는 거짓 선지자들 말을 더 신뢰했다. 거짓 예언을 널리 널리 전파하기까지 했다.

바벨론에서 정착해 농사짓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살며 바벨론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렘 29:4-7). 그들은 조만간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거짓 예언을 믿고 싶어 했고, 이런 말을 퍼뜨리는 거짓 선지자들을 추종했다. 이런 거짓 선지자들의 폐해가 심각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듣고 믿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렘 29:8-9)라고 경고하셔야 할 지경이었다.

이렇게 유다가 망할 당시의 상황은 거짓 예언이 팽배한 시대였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부지런히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유다의 죄를 지적하며 회개하라고 외치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하셨어도 유다 사람들은 이 모든 선지자 말을 무시했다. 예루살렘성전만 있으면 결코 하나님의 백성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선민의식과 성전 신학, 평안과 승리만을 외친 거짓 선지자들 말만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다가 멸망한 것은 하나님의 참선지자가 없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도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자기들이 듣고 싶은 것만을 들으며, 거짓 선지자들이 판치는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교회 상황도 유다가 멸망하던 시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교회와 극우(보수) 세력이 점점 힘을 잃어 가는 시대 상황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냉철한 현실 분석과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교회는 몇몇 선동가를 앞에 세워 거짓말을 일삼고 과격한 언어와 자극적인 언어로 선동하며 세력을 규합하고, 다시 한번 권력을 잡으려는 헛된 꿈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은 일부 교회 사람들의 극단적 생각이 아니라 한국교회 쇠락에 불안감을 느낀 주류 교회의 생각이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한국교회와 극우 세력은 서로 손을 잡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의 공의·사랑·인내·긍휼 대신 반민주·반동성애·반이슬람·반공만을 외치며 이것이 교회가 추구해야 할 유일한 진리인 것처럼 만들었다. 이를 통해 그들은 교회의 정치적 영향력을 회복하고 보수 정치 세력의 부활을 꿈꾸었다.

하지만 이런 탐욕은 숨기고, 이런 행동이 교회와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일인 것처럼 포장했으며, 맨 앞에서 외치고 있는 전광훈 목사를 참선지자인 양 떠받든 것이다. 거짓 선지자가 판을 쳤기에 유다의 멸망이 가속화한 것처럼 오늘날도 이런 거짓 선지자들의 선동으로 교회의 쇠락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8·15 광화문과 사랑제일교회 사태로 교회는 쇠락의 결정타를 맞게 된 것이다. 이제 교회는 머지않아 바벨론 포로 시기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
- 겸손한 교회를 향하여

교회가 완전히 사회적 신뢰를 잃고 있으며, 스스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회사나 사회 공동체에서 기독교인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보수 교단은 지금 전광훈 씨는 목사가 아니라느니 이단이라느니 하며 꼬리 자르기를 하려고 분주하다. 이런 행동은 전광훈 목사 한 사람의 발은 묶을 수 있겠지만 교회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미 사회는 대부분의 교회가 전광훈 목사와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았고,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교회에 대한 냉담한 시선을 견디고 비난의 말을 들으며 기독교인으로서 살아야 할 시간들이다. 마치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들이 시온의 엣 영광을 생각하며 울고, 바벨론 사람들은 그들에게 시온의 노래를 불러 보라고 조롱하던 시대를 보낸 것처럼 말이다(시 137:1-3). 교회가 뭘 그리 잘못했냐며 반박하고 싶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데 하며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도 많을 것이다. 교인이 점점 사라지고 교회가 문을 닫고 신학생도 줄며 사회적 힘이 약해지는 한국교회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힘겨운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레미야 29장 10-14절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바벨론 포로들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주신다.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정착해 살면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면 기도를 들으실 것이고, 온 마음을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을 찾고 만날 것이라는 메시지다. 궁극적으로는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시며 위로와 평안의 말씀을 주신다. 이것은 하나님은 여전히 바벨론에서도 그의 백성들과 함께하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현재 한국교회 상황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듣는다.

정부와 싸우고 시민들과 싸우면서 힘으로 세를 과시하며 억울하다고 소리 지를 게 아니다. 먼저,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교회 내부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반성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광훈 목사 같은 거짓 선지자가 아닌, 그를 끊임없이 비판하며 건전한 복음을 전해 온 참선지자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둘째로, 교회는 그동안 한국 사회와 쌓았던 담을 허물고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어떻게 하면 변화된 한국 사회에 적응하며 그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셋째로, 신앙적으로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해야 한다. 교회가 쇠락해져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을 찾는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계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하나님 대신 교회의 세력과 돈·권력을 믿고 행했던 모든 교만과 죄를 버리고 회개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 기간에 교회가 욕먹을 수도 있고, 기독교인들이 오히려 차별받으며 사람들에게 거리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고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기간에 겪은 것처럼 우리도 감내해야 할 고통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이 고통의 기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교회와 자신의 백성과 함께 계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충분히 겸손해지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을 수 있는 깨끗한 그릇이 되었을 때 다시 교회를 회복시키실 것이다. 다만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교회가 죄를 고백하고, 모든 힘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겸손히 살아간다면 희망은 있다. 바벨론에 포로로 간 유다도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도 용서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날이 꼭 올 것이라 믿는다.

박유미 / 총신대에서 구약학으로 박사 학위(Ph. D.)를 받았다. 비블로스성경인문학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내러티브로 읽는 사사기>(새물결플러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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