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다시희망',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뉴스앤조이-구권효 편집국장] 교계 기자 생활을 2년 정도 했을 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 하나님나라 신학을 바탕으로 사회 선교에도 열심이던 목회자들이 모여 복음주의 운동 단체를 하나 만들었다. 준비 모임을 여러 번 한 후 창립총회를 열었다. 총회에서는 임원도 뽑고 선언문도 채택했다.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 알 만한(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목사들이 참여했다. 개혁을 이야기하는 선언문은 그 자체로 절실함이 묻어났다.

창립총회를 취재한 나는 진정성에 감동돼 구구절절 기사를 썼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제목부터 '하나님나라 열망하는…' 이런 식으로 거창했던 것 같다. 기사를 데스크에게 가져가자 가차 없이 제목부터 바뀌었다. 아주 건조하게. 역시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취지에는 공감할 수 있어도 실효성이나 현실 가능성은 지켜봐야 한다는 식의 지적을 받았다.

생각해 보면 그런 단체는 이미 있었다.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을 뿐. 그리고 거기 참여한 사람들이 대부분 여기에도 참여했다. 이럴 거면 왜 또 하나의 단체를 만들었을까. 이 단체는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수년이 지난 지금, 그 단체는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무슨 활동을 하는지조차 잘 알 수 없게 됐다.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다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당시 데스크의 지적이 타당했던 것이다.

'2020다시희망'이라는 모임을 준비 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때 일이 떠올랐다. 존경할 만한 목사·교수들, 대부분 공감할 수 있는 선언문. 이번에는 마음이 동하지 않고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진정성이 팍팍 느껴지는 단체도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걸 경험해서일까. 취지에는 공감할 수 있어도 실효성이나 현실 가능성은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비장한 제목의 심포지엄을 보고 난 후에는 의문이 더 많아졌다.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는데, 새로운 교단이나 신학교 혹은 연합 단체를 만들면 되는 걸까. 보수 성향의 목회자·교인들도 함께해야 일부 진보 개신교 운동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도 당위가 있다. 하지만 교계에서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일은 정치권에서 하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다. 자세한 청사진을 제시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왠지 모를 불편함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생각해 봤다. 거칠게 얘기하자면, 결국 '목사' 주도 운동이라는 문제의식이다. 목사가 주도하면 안 된다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중년 남성 목사들이 주도하는 일에는 관심이 잘 가지 않았다. 개혁적인 성향을 지닌 개신교인들은 한국교회 개혁을 논할 때 자주 청년·여성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렇다면 이미 그들이 주도하는 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대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들이 주체가 될 수 있게 뒤에서 밀어주든지.

'개혁'이라는 말의 의미도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것이다. 얼마 전, 교단 개혁을 표방하는 한 단체가 <뉴스앤조이>에 사과문을 요구하는 일이 있었다. 그 단체 회원들이 성소수자 축복기도를 이유로 재판을 연 교단을 비판하는 것을 보도한 기사 때문이었다. 내용이 틀린 건 아니지만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동성애 옹호 단체'라는 오해를 받고 있으니, 교단 목사들이 많이 보는 신문에 사과문을 발표하라는 것이다. 존경할 만한 목회자들이 모인 조직인 건 알겠는데, 나는 그 단체가 하려는 개혁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됐다.

또 하나의 개혁 단체 출범을 보면서 부정적인 일들부터 떠오른 건 개인적 경험 때문일 수 있다. 기우이길, 이런 우려가 단체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교회가 이미 심하게 부패했다는 현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 단체의 등장은 언제나 박수할 일이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신중하게 접근하면 좋겠다. 당위는 있으나 현실 가능성은 없고, 포용을 말하나 누군가는 배제하는 단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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