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훈 목사의 명화 이야기 27건의 기사가 있습니다.

  • 고결한 가난, 강요된 헌신

    고결한 가난, 강요된 헌신

    여인의 뜰이라고 불리는 성전 동쪽 뜰입니다. 뜰에서 가장 밝은 곳은 어디일까요? 놀랍게도 그곳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눈부신 흰옷을 걸친 서기관들이 서 있는 중앙입니다. 브라질 화가 주앙 제페리노 다 코스타(João Zeferino da Costa, 1840-1915)의 1876년 작품 '과부의 헌금'은 우리가 익히 아는 '아름다운 헌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그림은 2000년 전 예루살렘 성전에서 벌어진 종교적 착취의 현장을 고발합니다. 화면 중앙을 지배하는 것은 눈부신 의복을 입은 서기관입니다. 서기관

    연재
    최주훈
    11-15 20:40
  • 성경을 든 네 사도, 우리에게 묻다

    성경을 든 네 사도, 우리에게 묻다

    한 교인이 이렇게 묻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는 정말 성경 중심 교회인가요?"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의 후예를 자처하며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외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성경보다 목사의 말이, 장로의 입김이, 교단의 정치가 더 힘을 발휘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각 교단 정기총회가 끝난 다음이라 그런지 씁쓸함은 더한 것 같습니다. 10월 종교개혁 주일을 앞두고 500년 전 이 질문에 답하려 했던 화가의 그림 한 점을 소개합니다. 독일 뮌헨의 알테피나코텍미술관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연재
    최주훈
    10-18 11:46
  • 기독교 그림 읽어 내기

    기독교 그림 읽어 내기

    목사들이 다 그렇겠지만, 주일에 다른 교회에 가보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한 번 꼭 가고 싶은 교회가 있었는데, 아현동에 있는 니콜라스 대성당(한국정교회)이었습니다. 얼마 전 드디어 버킷리스트 한 줄을 지웠습니다. 아현동 정교회 대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압도적인 시각적 경험이 저를 맞이했습니다. 수많은 성화와 황금빛 이콘들, 둥근 천장 돔과 벽면을 가득 채운 벽화들이 예배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각 예술 속에서 울려 퍼지는 예배 찬트 소리는 신비롭다 못해 몽환적이었습니다.예배는 그 교회의 역사와 신학의 총합입니다. 정교회

    연재
    최주훈
    09-13 15:19
  • 파괴와 개혁의 순간

    파괴와 개혁의 순간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네덜란드 화가 디르크 반 델렌(Dirck van Delen, 1605-1671)이 그린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 기록화가 아닙니다. 종교개혁의 격랑 속에서 일어난 성상 파괴 운동의 현장을 포착한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신앙과 예술, 파괴와 개혁이라는 모순된 가치들이 충돌하는 그 극적인 순간이 4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1630년경에 그려진 이 작품은 참 흥미롭습니다. 실제 사건으로부터 약 64년이 지난 시점에 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1566년을 중심으로

    연재
    최주훈
    08-23 10:00
  • 소소한 일상이 빚는 삶의 축제

    소소한 일상이 빚는 삶의 축제

    15-16세기 유럽 미술은 대개 왕족, 성경 속 인물, 성자들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화가들이 교회나 귀족의 후원을 받아 화려한 초상화나 종교적 장면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네덜란드 화가 피터 브뤼헐(Pieter Bruegel the Elder, 1525-1569)은 달랐습니다. 그의 대표작 '농부의 결혼식'(1567-1568)은 소박한 농부들의 삶을 생동감과 유머로 가득 채운 작품입니다. 왜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캔버스에 담았을까요? 16세기는 종교개혁으로 유럽 사회가 요동치던 시기입니

    연재
    최주훈
    08-09 08:25
  • 절규를 허용하는 공간

    절규를 허용하는 공간

    "어느 저녁,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한쪽으로는 도시가, 아래쪽으로는 피오르드가 펼쳐져 있었다. 피곤하고 몸이 아팠다. 걸음을 멈추고 피오르드 너머를 바라보았다. 해가 지면서 구름이 핏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때 자연을 관통하는 비명을 느꼈다. 실제로 그 비명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구름을 실제 피처럼 그렸다. 그 색채가 비명을 지른다. 이것이 작품 '절규'(The Scream)가 되었다."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가 남긴 1892년 1월 22일 일기의 일부입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연재
    최주훈
    07-26 10:10
  •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의 '쾌락의 정원'.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지구인이 맞나 싶습니다. 화폭에 창조한 세계는 무의식 깊은 곳에서 올라온 원형적 이미지 같아서 감상자 입장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새 머리 괴물이 인간을 삼키고, 거대한 과일 속에서 사람들이 희롱하며, 음악을 인간의 몸에 새기며 음악으로 괴롭히는 악마가 등장합니다. 이 모든 상상이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단순한 상상의 유희일까요, 아니면 더 깊은 영적 통찰이 숨어있는 것일까요?

    연재
    최주훈
    07-05 12:44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서

    바티칸궁전 한편에서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있을 때, 또 다른 한 방에선 서양 미술사상 가장 완벽한 작품 하나가 창조되고 있었습니다. 1508년부터 1511년까지 25세의 젊은 화가 라파엘 산치오(Raphael Sanzio, 1483-1520)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개인 서재 벽면에 '아테네 학당(School of Athens)'이라는 불멸의 걸작을 그려냅니다. 이 프레스코 벽화는 르네상스 정신의 정수를 담아낸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힙니다. 아테네 학당이 그려진 스탄차 델라 세냐투라(Stanza della

    연재
    최주훈
    06-21 07:15
  • 일상이 귀하다

    일상이 귀하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우유 따르는 여인'을 보신 적 있나요? 45.5 x 41cm의 작은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뭔지 모를 차분함이 찾아듭니다. 평범한 여인이 우유를 따르는 단순한 이 모습이 그리도 경건하게 보일 수 없습니다. 참 이상한 그림입니다. 한참을 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거룩함'을 교회 안에만 가둬 놨을까? 주일예배만 하나님 만나는 시간이라고 여기고, 나머지 6일은 왜 그리도 의미 없는 듯 스쳐 보냈을까? 베르메르의 이 작품은 저에게 이렇게 묻

    연재
    최주훈
    06-07 09:00
  • 중세 신학에 대한 루터의 혁명적 도전

    중세 신학에 대한 루터의 혁명적 도전

    책을 펼치면 그 안에 들어 있는 그림이 글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 줄 때가 있습니다. 한 장의 삽화가 시대의 숨결과 신앙의 본질을 고스란히 전해 주는 창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오늘 우리는 그런 특별한 삽화 하나를 감상해 보려고 합니다. 소개할 그림은 1534년,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 신구약성경에 실린 첫 번째 삽화입니다. 창세기의 창조와 타락 이야기가 담긴 이 작품은 단순한 장식 요소가 아니라 성경의 메시지와 종교개혁의 열망을 조화롭게 엮어 냅니다. 16세기 초, 유럽은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연재
    최주훈
    05-24 08:30
  •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이걸 본 사람은 다른 조각상을 볼 필요가 없다!" 조르조 바자리가 극찬한 작품, 그 주인공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입니다. 1501년부터 1504년까지 단 하나의 대리석 덩어리에서 탄생한 5.2미터 높이의 걸작은 성서 속 영웅 다윗을 살아 있는 듯 생생히 재현합니다. 그러나 단지 아름다운 육체미만 보고 감탄하고 있다면, 이 조각상이 꽤나 아쉬워할 것 같습니다. 왜 이 조각상이 전 세계를 매료시키는지,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작해 봅시다. 26세의 젊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이미 로마에서 피에타로 천재성을 입증한

    연재
    최주훈
    05-10 10:10
  • [최주훈 목사의 명화 이야기] 참회하는 자에게 용서를

    [최주훈 목사의 명화 이야기] 참회하는 자에게 용서를

    종교개혁의 도시 비텐베르크에 가면 두 개의 교회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면증에 관한 95개 논제'가 붙었던 성채 교회(Schlosskirche)이고, 다른 하나는 마르틴 루터가 공식 설교자로 사역했던 비텐베르크 시(市) 교회(Stadtkirche)입니다. 종종 '시립' 교회라고 설명하는 분들이 있지만, 시에서 설립한 교회가 아니라서 엄밀한 의미의 시립 교회는 아닙니다. 이 교회는 귀족과 지식인들이 다니던 성채 교회와 달리 비텐베르크의 일반인 교회입니다. 그 때문에 시립 교회보다는 '시 교회'가 더 적절한 명칭일 겁니다. 종

    연재
    최주훈
    2024-05-29
  • [최주훈 목사의 명화 이야기] 질문하는 신앙

    [최주훈 목사의 명화 이야기] 질문하는 신앙

    부활절 다음 첫 번째 주일에는 '아이처럼 새롭게 태어나는 날(Quasimodogeniti infantes)'이라는 특별한 이름이 붙습니다. 부활주일이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이라면, 이날은 그리스도인들이 새롭게 거듭나는 '작은 부활절'과 같습니다. 이날 교회력 복음서 말씀에는 의심 많은 도마의 이야기가 나오곤 하는데, 그때마다 제 머릿속에는 '거듭나는 게 뭘까'라는 질문과 함께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가 떠오릅니다. 카라바조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

    연재
    최주훈
    2024-05-15
  • [최주훈 목사의 명화 이야기] 이 사람을 보라!

    [최주훈 목사의 명화 이야기] 이 사람을 보라!

    본디오 빌라도가 군중 앞에 예수를 끌고 나와 외친 소리를 라틴어로 옮긴 말입니다. '이 사람을 보라!', 요한복음 19장 5절에서 들려오는 짧지만 강렬한 이 한마디가 사람을 얼어붙게 만듭니다. '경이로움, 놀라움, 당혹스러움은 우리의 숨겨진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고, 이 무지에서 탈출하려고 철학을 한다'고 했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Metapysics, I, 982b.)의 말이 생각납니다. 이 장면에 정확히 들어맞는 소리 같습니다. 워낙 강렬한 순간이라서 그럴까요? 예술가들은 이 하나의 장면에 매료되어 수없이 많은 작

    연재
    최주훈
    2024-05-01
  • [최주훈 목사의 명화 이야기] 식탁에서 모든 죄인을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시는

    [최주훈 목사의 명화 이야기] 식탁에서 모든 죄인을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시는

    유다에게 배신당하던 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식탁을 나누십니다. 원래 이 만찬은 가족끼리 모이는 유대인의 유월절 식사였지만, 예수님은 그 자리에 가족이 아닌 제자들을 초대하셨고, 이들이 하나님나라의 새 가족이 됩니다. 그래서 성찬을 나눌 때마다 우리는 그날 일을 기억하며 하나님나라의 가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짐합니다. 하지만 그날의 식탁은 기쁜 환대만 가득한 날이 아닙니다. 그날은 가장 가까운 이에게 배반당하는 배신의 밤, 죽음으로 가는 길목이었다고 성경이 가르칩니다. 날이 저물어 제자들이 만찬의 자리에 모두 모이자 예수님

    연재
    최주훈
    2024-04-17
  • [최주훈 목사의 명화 이야기] 모든 이를 위한 식사

    [최주훈 목사의 명화 이야기] 모든 이를 위한 식사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건 단연코 '최후의만찬'(1498, 880cm x 460cm, Tempera on gesso, Convento di Santa Maria delle Grazie, Milan)일 겁니다. 배경은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이지요(요 13:21-30).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배신할 것이라고 예수가 말하자, 이에 충격받은 제자들의 모습이 여기 담겨 있습니다. 물론, 다 빈치가 이 장면을 그린 최초의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가 '

    연재
    최주훈
    2024-04-03
  • [최주훈 목사의 명화 이야기]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환대하는 하나님 사랑

    [최주훈 목사의 명화 이야기]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환대하는 하나님 사랑

    마태복음 13장에는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이어 일곱 가지 천국 비유가 나옵니다. 첫 번째가 씨 뿌리는 비유인데, 농부가 길가, 자갈밭, 가시덤불, 옥토에 씨를 뿌린다는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이 비유를 들으면서 언제나 네 가지 땅을 구분합니다. 바로 이 지점부터 우리의 오해가 시작됩니다. 농부는 이제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지요. 수확은 먼 미래의 일입니다. 때가 이르면 농부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그런데 결산의 때도 아닌데, 땅들이 서로 자신이 옥토라고 하며 다른 토양을 구별하고 차별합니다. 신앙의 연륜이나 직분,

    연재
    최주훈
    2024-03-20
  • [최주훈 목사의 명화 이야기] 값없이 주어진 선물

    [최주훈 목사의 명화 이야기] 값없이 주어진 선물

    독특한 그림입니다. 그림 한 장에 성경 전체 사건과 메시지를 담는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요. 교회 좀 다녀 본 사람이면 누구라도 이 그림을 성경과 연결해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설명을 맡겨도 훌륭한 교육교재가 될 겁니다. 이 그림은 알브레히트 뒤러, 한스 홀바인과 더불어 16세기 독일의 3대 화가로 알려진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der Ältere, 1472~1553)의 작품, '율법과 은총'입니다. 크라나흐의 아들도 아버지를 이어 화가가 되었는데, 이름도 같아서 보통 아버지는 대(大)

    연재
    최주훈
    2024-03-06
  • [최주훈 목사의 명화 이야기] 부활을 기다리며

    [최주훈 목사의 명화 이야기] 부활을 기다리며

    도화지 한 장 던져 주고 '십자가 사건'을 그려 보라고 하면, 백의 아흔아홉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부터 그릴 게 뻔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런 예상을 비껴갑니다. 십자가와 예수님은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못 박힌 발가락만 그림 바닥 중앙에 살짝 보입니다. 그것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입니다. 게다가 더욱 당황스러운 사실은 그림 속 등장인물 모두가 감상하는 나를 응시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그림이 나를 꿰뚫어 봅니다. 도대체 무슨 그림이 이럴까요? 작품 제목을 알고는 한 번 더 놀랍니다. 작품

    연재
    최주훈
    2024-02-21
  • [최주훈 목사의 명화 이야기] 거룩한 하늘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하는 통로

    [최주훈 목사의 명화 이야기] 거룩한 하늘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하는 통로

    그림을 보다가 '왜 저 사람은 머리에 접시를 달고 다닐까'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한 적 있습니다. 그 후론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는데, 그게 '후광(halo)'이라는 걸 고교생 때 알았습니다. 종교화에서 심심치 않게 후광을 봅니다. 등장인물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나 후광을 그려 넣지 않는 걸 보면, 무언가 말하려는 특별한 장치가 분명합니다. 둥근 원형의 링이나 접시 모양이 일반적이지만, 세분하여 머리 뒤를 둘러싼 동그란 테두리는 'Gloriola(環光)', 머리를 둘러싼 속이 꽉 찬 원은 'Nimbus(輪光)', 몸 전체를 비추면 'Au

    연재
    최주훈
    2024-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