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으로 드리는 기도, 기독교 미술
| 정교회 예배당에서 마주한 질문 |
목사들이 다 그렇겠지만, 주일에 다른 교회에 가보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한 번 꼭 가고 싶은 교회가 있었는데, 아현동에 있는 니콜라스 대성당(한국정교회)이었습니다. 얼마 전 드디어 버킷리스트 한 줄을 지웠습니다. 아현동 정교회 대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압도적인 시각적 경험이 저를 맞이했습니다. 수많은 성화와 황금빛 이콘들, 둥근 천장 돔과 벽면을 가득 채운 벽화들이 예배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각 예술 속에서 울려 퍼지는 예배 찬트 소리는 신비롭다 못해 몽환적이었습니다.
예배는 그 교회의 역사와 신학의 총합입니다. 정교회 예배의 순서와 행동 하나하나가 이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예배당을 가득 채운 미술품들은 이 교회가 어떤 공동체인지 웅변합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보며 경외감을 느끼고, 누군가는 우상숭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기도 합니다. 심지어 같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한다는 기독교 안에서도 이런 차이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성스러운 이미지들은 어떤 의미를 지녀 왔고, 어떤 논쟁을 불러일으켰을까요?
| 이콘, 성상, 도상, 도상학 |
먼저 용어를 정리해 봅시다. '이콘-성상-도상-도상학', 흔히 혼용하는 개념이지만, 사실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이콘(Icon, εἰκών)'은 그리스어로 '형상' 또는 '이미지'를 뜻하지만, 특별히 동방정교회에선 엄격한 규범에 따라 제작된 성화를 가리킵니다. 이콘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들여다보는 '창문' 같은 역할을 합니다.
'성상(聖像)'이나 '성화(聖畫)'는 더 넓은 의미로 서방 교회의 종교 미술까지 포함합니다. 조각상, 제단화,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는 종교 예술품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도상(圖像, icon)은 특정한 상징적 의미를 전달하는 시각적 형상입니다. 종교, 문화, 예술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특정한 신념이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 미술에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순결과 모성, 신앙을 상징하고, 불교에서는 연꽃 위에 앉은 부처가 깨달음과 평온을 나타내는 도상입니다.
도상은 보는 이에게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하지만, 같은 도상이라도 그 시대와 문화 맥락에 따라 메시지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구원과 희생을 의미하지만, 같은 십자가라도 고대 이집트의 안크(ankh) 십자가는 기독교적 맥락과 상관없는 생명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그려진 도상은 문화와 시대정신을 담아 후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하며, 공동체의 가치를 공유하는 매개체로 기능합니다.
도상학(圖像學, iconography)은 앞서 설명한 도상의 표면 너머 숨은 의미를 체계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단순히 그림을 감각적으로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미지가 어떤 문화·역사적 맥락에서 탄생했고 어떤 상징적 의미가 있는지 탐구합니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대의 성모 마리아가 푸른 망토를 두른 걸 두고, 도상학은 푸른색은 순결과 하늘을 상징한다는 점을 밝히며, 당시의 신학적·철학적 배경을 조명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예술 작품을 단순한 미적 대상이 아닌, 한 시대의 사상과 가치를 담은 기록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다시 정교회로 돌아가 볼까요. 정교회에서 "이콘은 기도다. 그것은 색채와 선으로 표현된 기도이며, 침묵의 설교다"라는 말을 즐겨 합니다. 이는 이콘이 단순한 장식품이나 교육 도구를 넘어서는 존재라는 걸 보여 주는 '무언가'라는 걸 알리는 매체라는 소리입니다. 이를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디 정교회의 이콘뿐일까요? 오늘의 교회는 이콘 대신 다양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심지어 예배당 전면에 거대한 LED 모니터를 설치하고 쉴 새 없이 이미지와 영상을 쏘아댑니다. 그것의 옳고 그름, 성과 속의 판단은 제쳐놓더라도, 이미지가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사실만큼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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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의 가르침 |
기독교가 성스러운 이미지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가장 우선적인 신학적 근거는 성육신 교리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라는 요한복음의 선언은 기독교 미술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 십계명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형상)을 만들지 말고"(출 20:4)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보통, 형상 금지 계명, 더 나아가서는 우상 금지 계명이라고도 부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가시적인 형상으로 만드는 것은 유대교와 초기 교회에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이런 이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8세기의 다마스쿠스의 요한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전에 나는 형체가 없으신 하나님을 결코 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셔서 사람들과 함께 사셨으므로, 나는 하나님의 보이는 모습을 그린다."
| 성상 파괴의 격렬한 역사 |
기독교 역사에서 성스러운 이미지들은 늘 논쟁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특히 8-9세기 비잔틴 제국에서 일어난 성상파괴 운동(Iconoclasm)은 이 문제를 둘러싼 대표적인 갈등입니다. 이 시기, 성상 사용에 대한 의견 차이로 문제로 교회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726년, 레오 3세 황제는 성상 공경을 금지하는 칙령을 발표했고, 이로 인해 수많은 이콘과 성화가 파괴되었습니다.
성상파괴주의자들은 십계명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며, 이콘과 성화를 공경하는 행위가 우상숭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성상 옹호자들은 이콘을 통해 드러나는 거룩한 실재(예: 예수님, 성모 마리아, 성인들)를 공경하는 것이지, 나무와 물감으로 만들어진 물체 자체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즉, 이콘은 하나님과 성인들에게 다가가는 매개체일 뿐이라는 논리였습니다.
이 논쟁은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중요한 결론을 맞이했습니다. 공의회는 성상 공경을 정당한 것으로 선언하며, '흠숭(라트리아, latria)'과 '공경(둘리아, dulia)'을 구분했습니다. 흠숭은 오직 거룩하신 지존자께만 드려야 하는 예배이고, 공경은 성인들에게 표하는 존경의 표현입니다. 특히 마리아에게는 거룩한 분의 어머니라는 의미를 담아 '특별 공경(히페르둘리아, hyperdulia)'이라는 더 높은 존경이 허용되었습니다.
현재 한국 가톨릭에서는 이콘과 성화를 하나님과 성인들을 기리기 위한 도구로 이해하며, 이를 통해 기도와 신심을 표현합니다. 이는 공의회의 구분에 따라, 성상은 예배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라고 이해한 것이지요. 이에 비해 한국 개신교에서는 성상 사용에 대한 입장이 교파마다 다릅니다. 일부 교파는 성상을 우상숭배로 간주해 배척하지만, 다른 교파는 십자가나 성화 등을 상징적 도구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톨릭처럼 체계적인 공경의 구분은 흔히 사용되지 않습니다.
| 동방과 서방, 서로 다른 길 |
흥미롭게도 동방정교회와 서방 가톨릭은 종교 미술에 대해 서로 다른 접근을 발전시키게 됩니다. 동방정교회는 엄격한 전통과 규범 속에서 이콘을 제작했는데, 여기서 이콘은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라 교회 전통의 산물로 이해됩니다. 그 때문에 이콘 화가들은 금식과 기도로 준비한 후에야 작업에 임했고, 인물의 표현은 원근법을 사용하지 않는 평면적 구성, 황금 배경, 정형화된 묘사로 이콘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천상의 실재를 드러낸다는 신념을 반영합니다. 그래서 이콘을 '쓴다(write)'고 표현하는데, 그 정도로 정교회에서는 이콘을 일종의 신학적 텍스트로 설명하곤 합니다.
반면 서방 교회는 점차 자연주의적이고 감성적인 표현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서방의 종교 미술은 인간적인 감정과 드라마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지오토, 라파엘, 미켈란젤로 같은 거장들의 작품은 성경 이야기를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전달했지만, 동방정교회의 관점에서는 지나치게 세속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것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미술 양식의 차이라기보다는, 신의 초월성과 신비를 강조하는 동방교회의 특징과 성육신의 인간성과 구원의 드라마를 강조하는 서방 교회의 신학적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종교개혁이 가져온 변화 |
16세기 종교개혁은 기독교 역사에서 성상 논쟁을 다시 불붙인 중요한 사건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성상의 역할과 의미를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1세대 개혁가인 마르틴 루터는 성상에 대해 비교적 온건한 태도를 취한 인물입니다. 그는 성화나 이콘이 신앙 교육에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성경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데 긍정적인 가치를 지녔다고 인정했습니다. 반면, 장 칼뱅과 울리히 츠빙글리는 훨씬 급진적인 입장을 취했습니다. 특히 칼뱅은 인간의 마음을 "우상을 만드는 공장"이라 비판하며, 종교 미술이 우상숭배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강하게 경고했습니다. 그는 성상뿐 아니라 종교적 장식 자체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종교개혁자들의 영향으로 개신교 예배는 대체로 말씀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개혁교회 전통에서는 예배당의 장식을 최소화하고, 십자가조차 없는 단순한 강단과 성경 구절이 새겨진 벽면이 특징이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집중하고, 시각적 요소로 인한 신앙의 산만함을 막으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개신교가 성상을 완전히 배척한 것은 아닙니다. 루터교는 제단화와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시각 예술을 유지하며 예배 공간에 통합했고, 성공회도 전통의 많은 요소를 보존하며 성상과 장식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심지어 청교도적 전통이 강했던 교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시각 예술의 교육적 가치를 재발견한 것도 사실입니다.
| 이미지 시대의 성스러운 이미지 |
20세기 들어 기독교 미술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급격한 세속화 속에서, 교회는 다시 한번 시각적 매체의 힘을 인식하게 됩니다. 조르주 루오, 마르크 샤갈 같은 거장들의 업적이나 테제 공동체의 현대적 이콘들, 김기창 화백의 성경 이야기 화보들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오늘날 시각 미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재탄생하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적 이미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최소한 저에게 기독교 미술은 침묵과 묵상으로 초대하는 카페트 같습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디지털 이미지들과 달리, 고전적인 이콘과 성화는 우리에게 멈춤을 요구합니다. 스테인드글라스에 새겨진 성경 이야기, 프레스코화로 그려진 교회사의 사건들 앞에 멈춰 선 순간, 우리에게 전승돼 온 신앙 공동체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묵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묵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를 전달합니다. 신학이 개념과 논리로 하나님을 설명한다면, 기독교 미술은 직관과 감성으로 거룩함을 체험하게 합니다.
| 균형과 분별의 지혜 |
이콘과 성상, 종교 미술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극단적인 성상파괴주의도, 맹목적인 성상 숭배도 답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균형과 분별력입니다. 이콘이든 성화든, 그것들은 하나님이 아니며, 그 자체로 거룩한 힘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보이지 않는 영적 실재를 묵상하도록 돕는 귀중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마치 시편이 언어로 된 기도라면, 기독교 미술을 감상한다는 건, 시각으로 드리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교회사를 통해 우리가 배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시고 우리와 만나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침묵 가운데 빛나는 이콘을 통해, 어떤 이에게는 웅장한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또 어떤 이에게는 아무 장식 없는 소박한 예배당에서 말씀하십니다. 이콘이든 성화든, 말씀이든 침묵이든, 그것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하늘 뜻 앞에 서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거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과제는 이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복음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이 놀라운 사랑의 이야기를 전할 때 때로는 긴 설교의 말보다 한 폭의 그림이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최주훈 / 중앙루터교회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