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가 '명화'를 주제로 연재를 합니다. 연재는 격주 수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농부는 땅을 차별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13장에는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이어 일곱 가지 천국 비유가 나옵니다. 첫 번째가 씨 뿌리는 비유인데, 농부가 길가, 자갈밭, 가시덤불, 옥토에 씨를 뿌린다는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이 비유를 들으면서 언제나 네 가지 땅을 구분합니다. 바로 이 지점부터 우리의 오해가 시작됩니다. 

농부는 이제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지요. 수확은 먼 미래의 일입니다. 때가 이르면 농부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그런데 결산의 때도 아닌데, 땅들이 서로 자신이 옥토라고 하며 다른 토양을 구별하고 차별합니다. 신앙의 연륜이나 직분, 직장의 연봉이나 사는 지역과 집 같은 걸 열매라고 생각하면서 자기는 옥토고,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길가의 땅, 자갈밭, 가시덤불이라고 업신여깁니다. 이게 우리의 본성입니다. 

이 비유를 씨앗 뿌리는 농부에게 초점을 맞춰 읽어 봅시다. 예수님은 농부가 씨를 뿌리러 나간다는 말로 입을 떼십니다(마 13:3). 농부는 가만히 앉아 소출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씨앗을 들고 땅으로 걸어 나갑니다. 거기서 옥토만 골라 씨를 뿌리지 않는데,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합니다. 

복음서의 이 비유와 연결된 그림 하나 소개합니다. 1888년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작품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 'The Sower'. 사진 출처 wikipedia.org
빈센트 반 고흐, 'The Sower'. 사진 출처 wikipedia.org

빛의 화가로 알려진 고흐는 목사가 되려고 신학을 공부했고, 지금으로 말하면 전도사 실습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끝내 교회를 떠났다고 알려집니다. 목사 후보생으로 겪었던 교회 현실이 절망적이었던 것이지요. 교회라고는 하지만 희망도, 사랑도 발견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큰 실망 가운데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참 역설적이게도 고흐의 그림엔 사랑과 희망을 상징하는 노란색과 파란색이 참 많이 쓰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테라스', '밀밭', '해바라기' 같은 작품을 찾아보면 얼마나 강렬하게 이 두 가지 색채를 사용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고흐의 그림을 볼 때마다 많이 놀랍니다. 교회에 염증을 느껴 교회를 떠났지만, 그의 작품 곳곳엔 여전히 거룩한 사랑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암시로 보이거든요. 심지어 인생 말년의 그림을 보면, 심신의 문제가 생겨 프랑스 남부 아를의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조차 사랑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인물로 보일 정도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라는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밀레의 그림을 모사했다고 알려진 이 그림은 밀레의 것과는 달리 농부 뒤편에 강렬한 태양이 이글거립니다. 태양이 그림 상단 정중앙에 있고, 그 밑엔 수확을 앞둔 누런 밀 이삭이 빛나게 서 있습니다. 시간상으로 석양인지 아니면 동트는 아침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무엇이든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하는 노란빛 태양이 농부의 뒤에 강렬하게 배치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와 더불어 농부가 씨를 뿌리는 땅은 희망의 푸른빛이 여기저기 감돕니다. 

모두가 공존하는 천국

저는 이 그림이 예수님의 천국 비유를 매우 탁월하게 묘사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기도 전에 네 가지 땅이 서로 분리가 되어 있다고 미리부터 생각합니다. 하지만 땅엔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등에 지고 태양에서 걸어 나온 농부는 그 땅을 차별하지 않고 씨를 뿌립니다. 푸른빛 감도는 땅은 희망을 노래합니다. 

만일 이때가 동트는 아침이라면 해가 떠오르는 땅을 찾아온 농부가 돋보일 테고, 석양 무렵이라면 어두운 밤이 도래할 걸 알고도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가 돋보일 겁니다. 어찌 되었건 이 그림은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운 노란빛과 푸른빛이 인상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 땅에 희망으로 가득한 것을 노래하는 것이지요. 그 한가운데 씨앗을 들고 움직이는 농부가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차별하고 구분하지만, 그리스도는 어떤 땅,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길가 토양이든, 자갈밭이든 가시덤불이든 구별하지 않습니다. 오직 씨앗을 뿌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밭으로 발을 내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지요. 우리는 언제나 경계선을 만들어 구별하지만, 하나님은 모두에게 공평하십니다. 그분은 사랑의 태양으로부터 걸어 나와 기쁨의 씨앗을 뿌립니다. 마태복음 13장부터 펼쳐지는 일곱 가지 천국의 이야기가 이 비유로 시작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천국의 첫 번째 의미는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환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의 힘이 우리에게 심겨 삼십 배, 육십 배, 백배로 결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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