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회 목회자들, 차별금지법 고찰 세미나…"성서 근거로 맹목적 반대 말고, 토론 문화 조성해야"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이철 감독회장) 소속 목회자·교인들로 구성된 '차별과혐오에반대하는감리회모임'이 '차별금지법에 대한 헌법과 신학적 고찰'을 주제로 1월 21일 서울 광화문 감리회본부 회의실에서 세미나를 열었다. 감리회 목회자와 교인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배제·처벌 일변도인 교단의 기조에 맞서 차별금지법이 왜 모두에게 필요한지 꼼꼼히 따져 봤다. 세미나는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화상으로 진행됐다. 약 30명이 참석했다.
이날 '헌법의 눈으로 본 차별금지법'을 주제로 발표한 한상희 교수(건국대)는 차별금지법이 지닌 성격, 이 법의 보호 대상, 차별 금지 영역, 차별 금지 사유, 종교 규범과의 충돌 여부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한 교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는 인권적 차원에서 차별금지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수자가 국가의 의사를 결정한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개인의 기본권, 존엄과 가치는 법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 인권 보호를 바탕으로 하는 법치주의를 '입헌적 민주주의'라고 하며, 우리가 광화문에서 그토록 외쳤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말의 핵심 요소"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대학 졸업장 없다고 학력 차별을 받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고, 출신 지역과 성별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차별금지법이 열거하고 있는 차별 금지 사유 하나하나는 모두 국민의 피와 눈물이 스며든 개념"이라며, 하루속히 차별금지법을 제정해 더 이상 이런 사유로 차별받는 이들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 개신교계의 △차별금지법(평등법)이 국가인권위원회를 무소불위 기관으로 만든다 △개별적 차별금지법(장애인차별금지법·남녀고용평등법 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필요하지 않다 △차별의 개념이 모호해 표현의자유·종교의자유 등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 △남녀 양성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성별 구분 법제를 무너뜨릴 것이다 유의 허위·왜곡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한 교수는 "교회에서 목사가 설교하는 것은 차별금지법 규율 대상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이 규율하는 영역은 크게 3~4가지다. 고용 영역, 사회적으로 중요한 재화나 용역을 공급할 때, 행정 서비스를 이용할 때 등이다. 이외 영역은 사회도덕과 시민 도덕 영역이다"고 말했다.
목사가 동성애 혐오 발언을 했다고 수갑 차고 끌려가는 일도 없다고 다시 한번 설명했다. 차별금지법안에 있는 유일한 처벌 조항은 "차별당한 사람이 인권위에 진정했다는 이유로 보복 행위를 할 때"다. 한상희 교수는 "차별을 시정하려는 국가 작용을 방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를 제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구약학자 유연희 교수(미연합감리교회)는 '성서 해석의 빛에서 보는 차별금지법'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이어 나갔다. 유 교수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레위기 구절을 인용하면서 너무 잔혹한 말을 쏟아 내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저주할 때는 지옥 간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문자주의적 해석과 폭력을 경계했다.
유 교수는 출애굽기 20~23장의 노예법과 신명기 15장의 노예법을 예로 들며, 아브라함·야곱의 내러티브와 비교해서 설명했다. '계약 법전'으로 불리는 출애굽기는 남성 노예의 경우 7년째 해방 또는 영구 노예가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성 노예는 주인의 성적 서비스와 자산 증식을 위한 재산으로, 해방될 수 없다. 반면 신명기에 나오는 노예법은 여성 노예도 해방시킬 수 있고, 남성 노예의 처자식을 볼모로 삼지도 않으며, 노예가 떠날 때 넉넉하게 물질을 주라고 당부한다. 같은 성서이지만 법전의 내용이 다르다.
구체적인 상황은 아예 노예법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몸종이던 하갈에게 겨우 반나절 치 빵과 물을 주며 내쫓았다. 이는 신명기 노예법과 배치된다. 또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쉽게 떠나지 못하며 14년을 일한다. 노예법은 7년이 되는 해에 해방될 수 있다고 하지만, 야곱의 내러티브는 이와 다르다.
유연희 교수는 "성서에 나온 법으로 고대 이스라엘 사회를 재구성할 수 없을 뿐더러 실제 사법 체계도 아니었을 것"이라며 성서 속 인물들이 법을 허무는 내러티브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예법만이 아니라 모든 성서 본문에 객관적이고 옳은 해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방법론과 관점, 시대정신, 독자 경험과 관심사에 따라 달리 이해할 수 있다"며 성서 구절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대인들도 이 구절대로 살았다고 여기는 접근 방식은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우리는 성서를 너무나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고 법으로 사용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남을 정죄한다. 그러나 앞서 봤듯이 성서에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논의와 맥락이 담겨 있다. 내가 성서를 대하는 태도만이 절대적으로 옳은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 논찬을 맡은 변영권 목사(예사랑교회)는 "개신교 내에서 목소리 큰 사람들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있고, 여러 사회 이슈에 반동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국가 제도나 법이 피조물의 권리를 확장하려는 방향이라면 협조해야 하고, 현행법이나 제도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비전을 제시하고 대안을 생각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주요 개신교 모습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 같아 안타깝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변 목사는 "차별금지법은 남들이 결혼을 하건 말건, 애를 낳건 말건, 괴롭히거나 혐오하거나 차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 법이 기독교를 존폐 위기에 처하게 한 것처럼 침소봉대하고 있는데, 이 이슈가 오래전부터 진행돼 온 서구 사회에서 망한 나라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변 목사는 "우리가 가진 종교적 기준이 모든 사람에게 강요될 수 없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성서를 시대와 상황, 내러티브에 맞춰 이해해야 한다는 유연희 교수의 말에도 동의했다. 변 목사는 "성서 속 짧은 구절, 지엽적 구절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특히 목회자로서, 신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법이 담은 사회상과 무의식까지도 연구하고 비평하면서 현실과 만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한쪽의 편향된 목소리만 전하거나 성서 구절을 문자적으로만 지키려 한다는 건 직업 정신이 부족한 것"이라며 다양한 담론을 생산하며 고민하고 토론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장혜영 의원(정의당)이 세미나 참석자들에게 인사말을 전하기도 했다. 실시간 화상으로 축사에 참여한 장 의원은 "지난해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고 반년이 지났지만 법사위에만 계류돼 있고 소위원회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한 걸음 내딛기가 참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차별금지법을 헌법적·신학적으로 고찰하는 세미나를 열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법 제정을 반대하는 일부 개신교의 논리와 달리, 종교가 갖고 있는 소중한 사랑과 차별을 철폐하려는 제도적 가치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고견과 지혜를 나누어 주시기 바란다. 오늘 논의를 차별금지법 입법하는 데 큰 에너지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1차 세미나를 마친 '혐오와차별을반대하는감리회모임'은 2월 4일 2차 세미나를 연다. 남재영 목사(빈들교회)가 '혐오와 차별에 저항하는 영성과 목회'를 주제로 발표하고, 박경양 목사(평화의교회)가 '감리회 장정의 혐오와 차별, 왜 문제인가'를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