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고인 직업은요?
- 목사입니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3월 12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형사부 법정. 또 한 명의 목회자가 성범죄로 재판정에 섰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김태영 총회장) ㅇ노회 소속 윤 아무개 목사는 지난해 10월, 교인들을 강간 및 강제 추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두 달 후 윤 목사를 기소했다. 윤 목사는 현재 모든 공소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윤 목사는 전라북도 익산시 ㅂ교회에서 약 30년간 목회했다. 한적한 시골 마을 입구에 있는 ㅂ교회는, 설립된 지 100년도 넘은 지역의 모교회다. 마을 주민이라면 ㅂ교회 주일예배에 적어도 한 번은 참석했을 정도다. 윤 목사는 노회 활동도 열심히 해 ㅇ노회 노회장을 역임했다.

출석 인원 60명 남짓한 시골 교회가 언론의 주목을 받은 건 지난해 여름. <연합뉴스>·KBS·JTBC 등 중앙 언론과 전북 지역 일간지들은 윤 목사가 교인 7~9명을 성폭행·추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처음에는 피해자가 한 자릿수였으나,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공소장에는 최종적으로 11명 이름이 올라가 있다. 경찰이 윤 목사를 상대로 수사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또 다른 피해자들이 추가로 고소한 것이다.

윤 목사는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윤 목사는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퇴원 돕는다더니 돌변해 성폭행
저항하니 '이렇게 해야 천국 간다'"
피해자 이야기 들은 교인들
추가 피해자 찾아내 고소장 제출

<뉴스앤조이>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 피해자들을 만나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피해가 발생했는지 들을 수 있었다. 피해자들 증언을 종합해 보니,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윤 목사는 주로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접근했고, 범행 후에는 선물을 줬다.

A는 소일하며 알고 지내던 동네 사람 전도로 2018년 초부터 ㅂ교회에 다니게 됐다. 그해 봄, 교통사고로 팔을 다쳐 도심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윤 목사와 그의 아내, 교회 권사 등이 병문안을 왔다. 그전까지 윤 목사와 개인적으로 대화해 본 적은 없었다. 정기 심방 때 두어 번 만난 게 전부였다.

퇴원하는 날, 갑자기 윤 목사가 도와주겠다며 차를 가지고 나타났다. A는 부담스러웠지만, 윤 목사 차에 탔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윤 목사는 막 퇴원한 A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성폭행했다. 깁스로 한 손을 쓸 수 없었고, 온 힘을 다해 달려드는 윤 목사를 당할 수 없었다. A는 "계속 하지 말라고 했다. 소리도 질렀다. 그랬더니 '이렇게 해야 천국 간다'는 말만 자꾸 하더라. 죽기보다 더 싫었다. 짐승도 그렇게 강제로는 안 한다. 목사라는 자가 짐승만도 못하다"며 가슴을 쳤다.

얼마 후 윤 목사는 A가 병원에 갈 일이 있다는 걸 알고 또 데려다준다고 했다. 피하려 해도 막무가내였다. A의 집 문 앞에 차를 대 놓고 서 있었다. 윤 목사는 A가 통원 치료가 필요한 점, 혼자 사는 여성이라는 점 등을 이용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매트리스, 장판 등을 선물이라며 놓고 가기도 했다.

같은 방식으로 범행이 반복되자 A는 지역을 떠나기로 했다. 그 동네에 사는 한 윤 목사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A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놓고 사라졌다. 교회에 잘 나오던 A가 갑자기 사라지자 교인들은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A는 전기도 물도 안 들어오는 산속 비닐 움막에서 지내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묻는 교회 관계자들에게, A는 윤 목사에게 당한 일을 털어놓았다.

윤 목사의 성범죄 사실을 들은 교회 관계자들은 추가 피해자 파악에 나섰다. 보통 담임목사 성범죄 소식을 들은 교인들은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려워한다. 하지만 ㅂ교회 교인들은 아니었다. 10여 년 전, 윤 목사의 성 문제로 교회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일부 교인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기자와 만난 당회원 B 장로는 "(당시) 윤 목사가 더 이상 같은 일이 없게 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 목사가 안 하겠다고 하니 당회원들도 더 문제 삼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인들은 윤 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들과 추가로 연락이 닿았다. 한 교인은 "갑작스럽게 교회를 옳기거나 지역을 떠난 사람들이 지인들에게 연락해 왔다. 확인해 본 결과, 최소 5명이 윤 목사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다만 본인 사정이 있어 고소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교회는 현재 공식적으로 피해를 증언한 사람 11명 외에도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용했던 시골 교회는 윤 목사의 성폭력 의혹으로 쑥대밭이 됐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조용했던 시골 교회는 윤 목사의 성폭력 의혹으로 쑥대밭이 됐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윤 목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은 더 상습적으로 당했다. 기자와 만난 피해자들은 윤 목사가 혼자 있는 여성 교인 집을 갑자기 찾아와 뒤에서 끌어안거나, 가는 곳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차에 태운 뒤 허벅지를 쓰다듬거나, 인사를 빙자해 강하게 끌어안은 채 놓지 않는 방법으로 교인들을 추행했다고 말했다.

윤 목사는 주로 도움을 빙자해 피해자들을 만났다. A처럼 특정 장소에 차로 데려다준다고 하고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한 피해자는 "우리 둘이 만난 건 사모님도, 아무도 알면 안 된다고 얘기하더라. 그게 이상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공통적으로 윤 목사가 억지로 화장품 등 물건을 건넸다고 전했다.

윤 목사, 성폭력 혐의 전면 부인
매 공판 지지자 10여 명 참석
"교인들에게 사랑 표현한 것뿐"

윤 목사는 현재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지검장 출신 변호사가 있는 서울의 로펌, 지역사회에 영향력이 있는 로펌에, 변호사를 추가로 선임해 방어에 나섰다. 재판마다 윤 목사 부인과 그를 지지하는 교인이 10여 명씩 참석한다. 지난해 11월 시작된 공판은 올해 3월 재판부가 변경됐다. 윤 목사는 법정 문에 들어서서 피고석으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객석을 훑어보고 참석자들과 눈인사를 나눴다.

윤 목사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성폭행은 강제성 없는 합의된 관계였고, 성추행도 추행이 아닌 친밀함의 표시였거나 그런 일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재판 후 만난 윤 목사 아내와 그의 지지자들도 윤 목사에게 혐의가 없다고 했다. 이들은 원색적인 욕설을 섞어 가며 고소인들과 윤 목사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교인들을 비난했다. 윤 목사 아내는 "30년을 같이 보낸 사람들이 어쩜 그럴 수가 있느냐. 목사님이 모함에 빠진 것이다"고 말했다.

한 교인은 "목사님은 사랑이 굉장히 많으신 분이다. 주의종으로 교인들에게 사랑을 표현한 것뿐이다. 일부 교인은 주일예배 드리고 나올 때 목사님이 인사하면서 추행했다고 한다. 주변에 보는 사람도 많은데 그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윤 목사 관련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오보가 많다"며 "목사님이 억울한 부분이 너무 많다. 성 문제가 이렇게 오래 지속됐다면 벌써 터졌어야지, 어떻게 이렇게 한꺼번에 나올 수가 있느냐. 누군가 조종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윤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은 반대 측이 '돈' 때문에 이러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다른 교인은 "고소인들이 돈을 받아 낼 목적으로 이러는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교회에 잘 다니던 사람들인데, 돈 아니면 왜 이렇게까지 해서 목사님을 괴롭히겠느냐"고 말했다.

이들은 현재 ㅂ교회가 아닌 다른 교회에서 모인다. 윤 목사는 지난해 5월, 문제가 불거지자 교회를 사임했다. 사임 정황을 놓고 양쪽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장로들은 윤 목사가 경찰이 인지 수사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교회를 떠났다고 주장한다. 윤 목사 쪽은 담임목사를 사임하고 나가면 교회와 마을이 조용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스스로 그만둔 것이라고 했다.

윤 목사가 교회를 떠날 때 그를 지지하는 이들도 함께 ㅂ교회를 나왔다. 이들은 ㅂ교회에서 차로 10분 떨어진 곳에 ㅇ교회를 세웠다. 윤 목사 쪽 권 아무개 집사는 "우리가 나와서 작은 교회를 얻어 모이기 시작했다. 목사님은 어차피 아무 일도 안 하시니까, 와서 예배 인도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 목사는 구속되기 전까지 여기서 목회했다.

윤 목사는 구속되기 전까지 이 교회에서 설교했다. 그를 지지하는 교인들이 마련한 곳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윤 목사는 구속되기 전까지 이 교회에서 설교했다. 그를 지지하는 교인들이 마련한 곳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구속 중에도 여전히 '무임목사'
성폭력 대처 지침안은 '무용지물'
"편들고 두둔하는 것 아냐,
재판이 시작됐으니 기다리는 것"

윤 목사는 여전히 ㅇ노회 소속이다. ㅇ노회는 지난해 윤 목사가 ㅂ교회를 떠나면서 제출한 위임목사 사임서를 수리했다. 윤 목사는 현재 무임목사 신분으로 노회에 남아 있다.

ㅇ노회는 언론 보도로 시끄럽던 지난해 8월, 'ㅇ노회소속목사성폭력사건진상파악위원회'를 결성했다. 재판이나 조사·처리가 아니라, 자꾸 교회 이름이 지역사회에서 오르내리니까 보도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양측을 불러서 들어 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위원회는 의미 있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활동을 마쳤다.

위원이었던 정 아무개 목사는 3월 30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진상파악위원회가 양쪽을 불러 어떻게 된 일인지, 보도 내용이 근거가 있는 것인지 자초지종을 들으려고 했다. 교회 이야기를 먼저 듣고 윤 목사에게도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는데 그사이 구속됐다. 어차피 재판이 시작됐으니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론짓고 노회에 보고를 마쳤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현재 상황과 관련해 노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그는 "피해자들이 노회에 고발장을 낸 게 아니라서 재판국을 꾸릴 수도 없다"고 말했다. 윤 목사를 편들거나 두둔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정 목사는 "윤 목사를 면회해 위로한다든지, 탄원서를 쓴다든지 하는 게 편을 드는 것 아닌가. 노회 목사들 중 그런 사람은 없다. 이미 재판이 시작됐고, 그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예장통합은 총회 차원에서 교회 내 성폭력 대처에 의지를 보여 왔다. 총회 성폭력대책위원회는 지난해 104회 총회에서 '교회 성폭력 사건 발생 시 처리 지침안'(지침안)을 채택했다. 목회 현장에서 성폭력이 발생했을 경우 교회와 노회, 가해자 및 피해자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러 성폭력 전문가에게 자문받아 만든 지침안이다.

교회 성폭력이 발생했을 경우 노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나와 있다. 지침안은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노회 내에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를 둘 것을 권고하고 있다. 만약 노회가 성폭력 사건을 인지하면 이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에서 진상을 조사하고 심의하라고 안내한다. 노회 임원회는 심의 결과를 바탕으로 기소위원회에 기소를 의뢰할 수 있다. 이 지침안이 지난해 9월 통과됐지만, 10월 열린 노회에서 아무런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

윤 목사를 반대하는 교인들은 노회가 목회자 성폭력에 적극 대처하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진상파악위원회가 피해자들을 대신해 자신들을 불러 이야기를 다 들어 놓고는, 가해자가 구속됐다고 재판 후 결정하겠다고 하는 게 이미 목회자 편의를 봐주는 것 아니냐고 했다. 게다가 위원회 결과를 노회에 보고했다고 하지만, 노회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보고한 게 아니라 노회 촬요에만 진행 과정을 적어 놓고 결과는 발표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들은 목사들이 결국 피해자들 입장이 아닌 목회자 입장을 고려하기 때문에 치리에 적극 나서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교인은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는데, 고소하면 노회가 피해자들을 보호할 역량은 있는가. 벌써 경찰 조사에, 재판 증인심문까지 겪으며 힘들어하는 피해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목사들이 너무 피해자들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들 심정을 생각했으면 어떻게 윤 목사가 같은 교단 마크 달고 목회하게 놔 둘 수 있느냐"고 말했다.

피해자 A는 사건 이후로 계속 건강이 안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가 하루에 먹는 약만 해도 수십 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피해자 A는 사건 이후로 계속 건강이 안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가 하루에 먹는 약만 해도 수십 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여전히 불안에 떠는 피해자들,
교인들도 신경안정제, 수면제 달고 살아

노회에서도 사회에서도 여전히 '목사'라 불리는 윤 목사를 보며 피해자들은 치를 떨었다. A는 기자에게 "재판도 언제 끝날지 모르고, 그 사람을 목사라며 따르는 사람들이 교회를 한다고 한다. 나는 그 사람이 설교하는 모습이 떠오르면 가슴이 콱 멘다. 사건 이후로 몸이 안 아픈 곳이 없다. 내 속은 하늘이나 알고 땅이나 알지 아무도 모른다"며 울분을 토했다.

또 다른 강제 추행 피해자는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긴장된다고 했다. 그는 "바로 싫다고 뿌리쳤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나를 계속 자책하게 된다. 그때는 혹시라도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고, 윤 목사가 불쾌해하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에 가만히 있었다. 지금도 그게 한스럽다"고 말했다.

윤 목사 측근들 행동을 보며 분노에 잠들지 못하는 이도 있다. 한 피해자는 "어떻게 가해자 말만 믿고 따라 나가 그 교회에 다닐 수 있느냐. 함께 신앙생활한 세월이 얼마인데. 어떻게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그런 막말을 쏟아 내며 돈 때문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보였다.

피해자들을 돕고 재판을 지원하는 교인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벌써 1년 가까이 사건을 지원하면서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달고 산다. 매번 재판을 방청하며 피해자들을 안심시키는 것도 이들 몫이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다. 한 교인은 "10여 년 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윤 목사 말을 믿고 계속 목회하게 두었기 때문에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한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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