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이찬민 기자] 한국교회 지형에서 다양한 신학을 접하기란 쉽지 않다. 새로운 신학은 기존 교회 질서를 위협하는 위험한 사상으로 취급받는다. 여성신학은 더욱 설 자리가 없다. 페미니즘은 동성애·이슬람과 더불어 한국교회를 파괴하는 반기독교 사상으로 여겨진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평화교회연구소(황인근 소장)가 페미니즘과 여성신학을 소개하는 강좌를 마련했다. 최순양 박사가 '여성(woman) vs. 여성들(women)'이라는 주제로 2월 3일부터 3월 2일까지 5주간 강의한다. 강의마다 한 키워드를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페미니스트 이론가를 두 명씩 짝지어 다룬다.

캐서린 맥키넌(Catharine Alice MacKinnon),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 엘리자베스 존슨(Elisabeth A. Johnson), 캐서린 켈러(Catherine Keller) 등 기독교계 대중 강연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동시대 페미니스트 학자 10명의 사상을 소개할 예정이다.

최순양 박사는 드류대학교(Drew University)에서 캐서린 켈러 교수에게 수학하며 <알 수 없는 하나님을 닮은 알 수 없는 인간 The Non-Knowing Self and 'The Impossible' Other>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와 협성대에서 조직신학과 여성신학 등을 가르친다. 그는 주로 여성학자 가야트리 스피박, 주디스 버틀러의 사상을 신학적 사고와 연결 지어 소개하고 있다.

최순양 박사는 이번 연속 강의를 통해 신학교와 교회에서는 접하기 힘든 다양한 관점으로 기독교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찬민

최 박사는 이번 강좌가 "신학·철학·여성학을 횡단해 가며 여성이란 어떤 존재인지 탐구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강좌를 듣는 이들이 "신학교에서 접하기 힘든 다양한 학문과 신학으로 기독교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좌 기획 의도를 조금 더 자세히 듣기 위해 강의를 맡은 최 박사를 1월 22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이번 강연 취지와 내용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달라.

지난해 평화교회연구소에서 여성신학 입문 강좌를 열었는데 호응이 좋았다. 시대적으로 사람들이 이런 신학에 목말라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여성학과 아울러 신학을 다뤄 보자고 하셔서 강좌를 마련하게 됐다. 신학·철학·여성학을 아우르는 강좌가 될 것이다.

여성을 뭐라고 이해해야 하는지가 내 연구의 큰 줄기다. 여성학에도 다양한 결이 있다. 나는 해체주의적 입장에 기대어 있다. 최근 새롭게 일어나는 여성론에서는, 생물학적 피해자로서 여성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얘기도 한다. 성폭력·포르노그래피 등 생물학적 여성이 피해자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단결해서 여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여성을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지만, 해체주의적 입장도 현상을 분석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다. 이번 강의에서는 나에게 익숙한 해체적 이론뿐만 아니라 반대 의견도 소개하면서 논쟁을 만들어 보고 싶다. 듣는 사람들이 평가했으면 좋겠다.

- 교회에도 생물학적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피해가 있다. 그러다 보니 여성들을 중심으로 연대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한국교회 현실에서는 '양성평등'만 돼도 다행인 것 같다.

'여성'이라 했을 때 상정되는 이미지가 있다. 그런 이미지 이면에는, 교회 여성에 성소수자를 포함시키기 어렵다거나 페미니스트처럼 기가 센 여성이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자유로운 여성 이미지를 토론하는 장이 아닌, 본인들이 상정해 놓은 여성상만 강요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럴 바에는 다양한 모습이지만 한때 여성이라고 불린, '여성들'의 공통성을 이야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강좌 제목을 '여성 vs. 여성들'이라고 지었다.

'자매애'(sisterhood)를 너무 강조하다 보면 성의 다양성을 포기하게 되는 결과도 가져온다. '양성평등'이라는 말에도 여성을 남성의 반대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당장은 여성 연대를 공고히 하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오늘날 한국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트랜스 여성을 페미니즘 운동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논쟁이 오간다. 한편으로는 이런 주장이 보수 교회가 강조하는 성별 이분법과도 통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비슷한 논의가 미국에서도 있었다. 맥키넌이 피해자 여성만 강조하다보니 그의 주장이 공교롭게도 보수 정부와 맥을 같이한다고 버틀러가 비판했다. 미국 정부가 포르노를 금지할 때도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 성 문화는 다 포르노라고 매도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버틀러는 남녀 구분이 어차피 남성들이 짜 놓은 판이라고 비판한다. '여성이란 없다', '구성된 것이다'는 입장이다. 여성들이 '맞아 우리는 사회에서 피해받아 왔어'라고 자꾸 긍정하니까 피해자로서의 여성에 머물게 된다. 버틀러는 피해자 여성이라는 것도 남성 중심주의 판에서 부여된 역할이기 때문에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구조 자체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주체자 여성 개념을 더 강조한다.

여성신학에서도 버틀러와 비슷한 견해를 가진 이가 있다. 내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던 캐서린 켈러는, 남성 하나님의 대안으로 왜 여성성을 입힌 하나님을 내놓느냐며 이것도 문자주의와 똑같다고 얘기한다. 어떻게 보면 너무 앞서간 사람이다. 버틀러나 켈러나 통이 크다. 남성과 비교 대상으로 여성을 얘기하지 않고, 프레임 자체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최순양 박사는 드류대학교 캐서린 켈러 교수 밑에서 공부했다. 최 박사는 2017년 켈러 교수 방한 당시 '캐서린 켈러의 시각으로 한국 여성신학 돌아보기'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보수 개신교는 '성평등'이 가정을 해체하고 교회를 파괴하려는 것이라 주장하며 '양성평등'을 들고 나왔다. 다양한 성을 부정하면서 양성평등을 강조하는 지점이 흥미롭다. 일단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남성·여성 구별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싶다. 남성은 남성성을 고수하고 싶어하고, 교회는 남녀 질서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지금 교회가 직면한 상황이 바뀌지는 않는다. 젊은 여성들이 결혼하기 싫어하고 아이도 안 낳는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자기들끼리만 모인 방주에 사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강의에서는, 교회에서 주입하는 것이 기독교적 가치관이 아니라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교회 여성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일차 목표다. 교회가 어떤 의도에서 남녀 질서를 강조하게 됐는지 여성들 스스로 파악할 수 있도록 안목을 기르면 좋겠다. 목사님이 성차별적 설교를 할 때도 '목사님이 기독교 가치관이 아닌 자기 가치관에 따라 말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말에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 그동안 스피박과 버틀러 이론을 자주 소개했다. 두 사상가 이론을 어떻게 한국교회 현실에 녹여 냈나.

교회 여성이야말로 스피박이 말한 '서발턴'(Subaltern·정형화한 범주에 들지 못한 주변부 사람들 - 기자 주)이라는 글을 많이 쓰고 강의에서도 종종 이야기했다. 여성들은 교회에 많이 공헌하지만 교회 중심부에서 스스로를 배제하고 가사 노동에 힘쓰도록 주입받는다. 반면, 남성은 설교 등 지식적인 부분을 압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남성·여성 이분법적 구분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스피박 이론은 여성이 그렇게 배제되는 현실을 드러내는 데 유용하다. 내가 계속 강조하는 부분이지만, 스피박도 여성 스스로 내가 누구에게 이렇게 주입됐는지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버틀러의 경우에는 아주 유치한 데서부터 시작한다. "왜 생물학적으로 남자의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남자라고 생각하지?" 이런 당연해 보이는 말을 던지면, 듣는 사람들은 황당해한다. 그런데 "사람의 몸은 모두 다른데, 왜 그런 많은 차이를 하나로만 묶었을까"라고 물어보면, "그러게요"라고 반응하기도 한다. "인류가 한 가장 어리석은 일 중 하나가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단지 남성·여성으로만 나눴다는 것"이라는 버틀러 말로 강의 문을 연다.

버틀러의 젠더, 패러디, 수행성 이론들은 좀 어려워하지만 그만큼 학생들에게 신선함을 안겨 준다. 우리가 남성·여성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얘기하면, 생물학적 성을 선천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던 사람들에게 다른 생각의 여지가 생긴다. 그래서 버틀러를 더 많이 언급했다. 그렇게 조금씩 열려야 신학적으로도 더 깊이 나아갈 수 있으니까.

- 신학적으로 다양한 담론이 있지만, 한국 신학교에서는 이런 이론을 접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특히 여성신학은 더 설 자리가 없는 것 같다.

솔직히 나도 '여성신학'만 가르치라고 하면 별로 안 내킨다. 현대신학을 함께 보면서 포스트모더니즘 신학으로 연결하고, 자연스럽게 그동안 신학적 견해를 재고해 보자는 쪽으로 설명한다. 그런 접근이 나에게는 조금 더 재밌다. 대놓고 여성을 피해자로 묘사하거나 대상화하는 것보다는 "사람들 문제의식이 이렇게 흘러왔는데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이냐"고 묻는 게 자연스럽다. 모든 신학자나 목사가 '정답'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대신, 이런 이야기를 필수로 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좋겠다.

이렇다 보니 때로 양쪽에서 탄압받기도 한다.(웃음) 일반 대학에서 "진화론, 사회생물학 등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하면, 공과대학 학생들이 무슨 근거로 엄격히 고증된 학문을 반박하느냐고 한다. 반면 신학교에서는 여성신학·흑인신학 등을 가르칠 때, "억압받는 자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편협한 하나님을 가르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간혹 가다 잘 모르거나 참관 온 사람들이 서로 싸우기도 한다. 여러 상황에서 능수능란하게 설득하고 소통하려 하지만 쉽지는 않다.(웃음)

- 이번 강연에서 만날 이들에게 특별히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강의에 오는 이들과 질문하고 답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확장하고 싶다. 이런 커리큘럼을 짰다고 해도 듣는 이들은 각자 다른 현실에서 산다. 다양한 환경에 처한 이들이 질문하고 반응하는 데서 새로운 분위기가 생긴다. 그게 강의의 묘미이기도 하다.

강연하다 보면 제도권 틀 안에서는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신앙인을 만날 수 있다. 수강생 중에는 교회를 옮겨 다닌 사람도 있고, 교회에는 안 나가지만 '믿는페미'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교회가 약간의 준비가 됐을 때 교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분들이 소중하다. 수적으로는 소수지만 그분들이 지금과는 조금 다른 교회 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강의는 2월 3일부터 3월 2일까지 5주간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서울 서대문구 이제홀에서 열린다. 수강을 희망하는 사람은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된다. 오프라인 강좌는 25명 선착순 마감이다. 수강료는 오프라인 5만 원, 온라인 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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