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강간 및 강제추행죄로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은 윤갑수 목사가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며 항소심에서도 강간 사실을 부인했다. 다만 강제 추행은 인정하고 반성한다고 했다. 그는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피해자들과 합의할 시간을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윤 목사 변호인은 6월 5일 광주고등법원 전주재판부에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서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강간당했다고 주장하는데, 상대방 동의 없이 가능할 수 있었겠냐"며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간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는 이제 막 비동의 간음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강압적인 물리력 행사가 없는 성관계를 강간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다.

1심과 다르게 항소심 공판에는 수십 명이 참석해 재판을 지켜봤다. 윤 목사 가족과 지인들, 처음 사건을 알고 피해자들을 만난 ㅂ교회 교인들은 물론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참석했다. 1심 판결 후 전라북도 지역사회에서는 높은 도덕성을 유지해야 할 목사가 교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가했는데도 검찰 구형 절반도 못 미치는 형을 받았다며 논란이 일었다.

공판을 지켜본 피해자 및 교인들은 분노했다. 한 피해자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지금 ㅂ교회가 있는 동네에서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침묵을 택한 피해자가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윤 목사는 '합의에 의한 관계'라고 주장한다. 어떻게 목사가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기는커녕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교인은 "강간이 아니라면 합의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왜 항소심 며칠 앞두고 윤 목사 아내가 피해자를 불쑥 찾아가 합의해 달라고 했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아무리 감형을 받고 싶어서 그랬다지만 피해자 심정은 고려하지도 않고 정말 너무하다"고 말했다.

예장통합은 104회 총회에서 '총회 교회 성폭력 사건 발생 시 처리 지침'을 채택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는 지침은 현장에서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예장통합은 104회 총회에서 '총회 교회 성폭력 사건 발생 시 처리 지침'을 채택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는 지침은 현장에서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익산노회의 미온적 대응
총회 성폭력 사건 처리 지침도 '무용지물'
"면직이나 마찬가지, 어차피 목회 못 해"

윤갑수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김태영 총회장) 익산노회 소속이다. 노회장까지 역임하는 등 노회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익산노회는 5월 8일 열린 정기노회에서, 윤 목사 사직서를 수리하기로 한 임원회 결정을 그대로 받았다. 성폭력으로 징역 8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은 목회자를 치리 없이 내보낸 것이다.

익산노회는 지난해 8월 '익산노회소속목사성폭력사건진상파악위원회'(위원회)를 구성했으나 중간에 윤 목사가 구속되면서 1심 판결 이후로 판단을 미루기로 했다. 사건이 공론화한 후에도 마지못해 구성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던 위원회는, 1심 판결 후에도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고 그동안 활동 내역도 노회에 보고하지 않은 채 사라졌다.

노회는 판단 대신 윤 목사가 올해 2월 제출한 사직청원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임원회는 윤 목사를 사직 처리하기로 하고 이를 정기노회에 보고했다. 일부 노회원은 중대한 사안을 아무 해명도 없이 임원회에서 결정했다며 그대로 받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실 익산노회 결정은 소속 교단 예장통합의 교회 성폭력 사건 처리 지침과도 어긋난다. 예장통합은 성폭력 가해자가 사직청원할 경우 '선 조사 후 수리' 방침을 정했다. 총회 성폭력대책위원회가 마련해 104회 총회에서 채택한 '총회 교회 성폭력 사건 발생 시 처리 지침'에는 "가해 목사가 '자의 사직서'를 제출한 경우라도 사직서 수리를 보류하고, 조사 후 심의 결과에 따라 치리 후 사직서를 처리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익산노회 박준화 노회장은 6월 5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노회 대응은 적절했다고 설명했다. 박 노회장은 "성폭력 지침안을 보면 재판에 의해 치리하게 돼 있다. 재판하려면 피해자 혹은 교회의 고소가 있어야 하는데 그분들이 고소장을 내지 않았다. 소송을 진행했다면 우리도 치리했을 텐데, 어쩔 수 없이 사직청원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노회장 말처럼 방법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다. 예장통합 서울북노회의 경우 피해자 고소 없이도 성폭력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목회자를 치리한 사례가 있다. 피해자가 직접 고소를 진행할 경우 2차 피해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임원회가 피해자를 대신해 기소위원회에 기소 의뢰했다. 이는 총회 지침안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그러나 박준화 노회장은 "노회는 할 수 있는 한도에서 법대로 진행했다. 사직 처리이긴 하지만, 윤 목사가 나이도 있고 현실적으로 다시 목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면직 처리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당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북 지역 시민사회 단체들은 항소심 공판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범죄에 무감한 재판부와 교단을 규탄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전북 지역 시민사회 단체들은 항소심 공판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범죄에 무감한 재판부와 교단을 규탄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날 공판 전 피해자와 교인들, 전라북도 지역 여성 단체 및 정당들은 '종교계 성폭력 가해자 윤 목사에 대한 엄중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익산여성의전화 윤수진 활동가는 가해자를 옹호하는 문화가 변하지 않는다면 교회 성폭력은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가해자의 앞날, 가해자의 아내와 자녀들을 걱정하거나 교회의 미래를 걱정한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은 용기를 가지고 세상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치고 있다. 이제는 피해자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가해자에게 제대로 된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교단이 치리를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교회 내 성폭력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소속 노회와 가해 목사 사이에 있는 학연·지연과 종교를 확장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에 있다. 가해 목사의 성범죄 행위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 교회 성폭력 근절을 위한 교회의 미온적인 태도가 성폭력 피해자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각 교단이 교회 내 성범죄를 제대로 치리할 수 있도록 교단 헌법에 '성폭력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했다. 성폭력 가해자가 다시는 성직자로 살 수 없도록 하고, 피해자가 안전하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사법부와 종교계가 모든 노력을 기울여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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