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시절 교회 교사에게 그루밍을 당한 A는 지속적으로 성 착취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A는 중학생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성 착취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아동이나 청소년을 유인해 길들여 성을 착취하는 '그루밍 성폭력'은 교회 안에서도 은밀히 이뤄져 왔다.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자가 신앙 상담 등을 통해 피해자와 신뢰를 쌓은 다음 성을 착취하고 성행위를 정당화한다. 강요와 압박을 받은 피해자는 외부에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자신이 당한 게 폭력이라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다.

그루밍 성폭력이라는 말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제야 과거 겪은 일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이게 된 사람이 많다. <뉴스앤조이>에 제보해 온 A도 그런 경우였다.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교회학교 교사에게 그루밍을 당해 성 착취 피해를 겪었다고 호소했다.

A는 2001년 중학생 때 친구를 따라 처음 교회에 갔다. 자체 건물과 어린이집이 있고, 수백 명이 다니는 규모가 있는 교회였다. 분위기는 좋았다. 친구·교사들과 교제하며 신앙생활을 이어 나갔다. 1년 정도 지났을 때, 찬양팀 예배 인도를 맡던 교사 B가 사적으로 연락해 왔다. 당시 B는 20대였고 목회자를 꿈꿨다. 교회 담임목사 친조카이기도 했다.

B는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교회 생활, 학업, 고민 상담을 해 주겠다며 접근했다. A는 그의 호의에 감사했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A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2002년 8월경이었다. B가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내게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나이 차이도 큰 데다가 나는 남자와의 교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우선 친하게 지냈으면 한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B는 적극적이었다. 신앙 상담을 해 주겠다며 A가 사는 동네에 찾아오기도 했다. A는 B를 자신을 도와주고 가르치는 좋은 선생님으로 생각하며 따르게 됐다. 둘의 만남은 잦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B는 미성년자인 A를 밀폐된 곳으로 이끌었다. A는 "B가 안양과 군포에 있는 DVD방에서 수차례 강제로 스킨십을 시도했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B의 아파트 집과 옥상 등에서도 강제로 유사 성행위를 했다고 말했다.

A는 "(B의) 집 거실 액자에 써 있던 '네 근본을 알라'는 구절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B는 자신이 3대 기독교 집안 출생이며, 집안에 신앙의 전통과 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보다 신앙적으로 뛰어난 B가 하는 (성적)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나를 떠날까 봐 두려웠다. 잘못된 행동이라는 판단이 들어도 B가 소리치면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루밍에 빠진 A는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B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A는 "울고 있는 내게 B가 '연인으로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이라며 (성폭행을) 정당화했다"고 말했다. 이후 B는 수시로 성관계를 요구해 왔다고 했다. 결국 20대 초반에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됐다.

양측 부모가 이 사실을 알게 됐고, 당시 B의 부모는 A 부모에게 임신중절을 요구했다고 했다. A는 "B의 엄마는 아들이 목사를 해야 하는데, 혼전 임신은 걸림돌이 되고 흠이 되니 아기를 지워 달라고 했다. 또 자기가 6일간 밤낮 기도했는데 아이를 낳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라는 응답을 받았다며 낙태를 종용했다"고 말했다. A는 당시 임신 8개월 차였고 아이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거부했다. A와 B는 주변 시선이 부담돼 다른 나라에 가서 아이를 낳았다.

해외로 도피해 아이까지 낳았는데, 두 사람의 관계는 극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A는 "폭언과 폭행을 수시로 당했다. 주위 사람들 앞에서는 남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소리쳐 모욕을 줬다. 그때 나는 살면서 B를 제외하고 다른 남자와 교제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결국 가정은 파탄이 났고, 두 사람은 2년도 안 돼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다.

"딸아이 위해 용기 내 폭로
목사 후보생 자격 박탈해야"
B "법적으로 시시비비 가릴 것"
A는 그루밍 가해자 B가 목회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A는 그루밍 가해자 B가 목회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아이는 A가 혼자 도맡아 키웠다. B는 한동안 양육비를 보내 주다가 돈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지원을 중단했다. A는 임신 당시 받았던 스트레스 탓인지 딸아이가 불안 증세를 겪고 있다고 했다. 매달 병원비 60만 원이 나가는데도 B가 수년간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고 주장했다.

B는 한국에 온 뒤 신학교에 들어갔다. 학교를 졸업한 후 지난해 말까지 수원의 한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했다. 현재는 목사 후보생 과정을 밟고 있다. A는 "평소 B는 목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해 왔다"고 했다.

B의 부모는 합가를 제안했다. A는 B가 양육에 무관심하고, 폭언·폭행을 감당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A는 "B의 엄마가 '세상에 맞고 사는 사모 많다', '사모가 되기로 했으니 참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했다"고 말했다.

A는 한 사람 인생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가정을 파탄 낸 B가 최소한의 책임은 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성년자를 그루밍해 성폭행하고도 반성도 없는 사람이 목회하면 안 된다. 목회자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A는 올해 1월 초부터 자신이 겪은 피해 사실을 B가 속한 교단과 노회에 알리기 시작했다. 1인 시위를 진행하고, 노회 목사·장로들을 만났다. "노회원들이 처음에는 의아해했지만, 다행히 지금은 내 말에도 귀를 기울여 주고 있다. B는 현재 이 노회 목사 후보생인데 자격이 박탈돼야 한다. 노회가 꼭 그렇게 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위하고 언론에 제보하는 등 적극 나선 이유에 대해, A는 "딸을 키우면서 느낀 게 있다. 얼마든지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든 어디든 잘못된 사람을 만나 갑을 관계가 되어 (성적으로) 강압을 받을 수 있다. 내 자식을 위해서라도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B는 A의 행동에 소송으로 대응했다. 올해 2월 수원지검에 A를 허위 사실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그는 3월 31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상대방이 양육비 하나를 바라보고 악의적으로 나오고 있다. 법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 언론과의 인터뷰는 하고 싶지 않다"고 짧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B가 소속된 노회 관계자는 "쌍방의 이야기를 들었고 조사 중이다. 원래 이번 봄 정기회에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로 잠정 연기됐다"며 "개인적으로는 서로 좋게 합의했으면 좋았을 텐데 고소까지 이어져서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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