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협의회 차기 총회 장소는 대한민국 부산입니다." 조용하던 장내가 일순간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2009년 9월 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CC 중앙위원회에서 우리나라가 시리아를 제치고 제10차 총회 개최국으로 결정됐다. 총회 추진위원회 위원으로 참석한 권오성·박종화·조성기 목사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흔들었다.

세계 기독교인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WCC(세계교회협의회) 총회가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란 주제로 10월 31일부터 11월 8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다. 세계 교회 지도자 5000여 명이 열흘 동안 한자리에 모여 회의·예배·문화 체험 등을 할 예정이다. 한국준비위원회(한준위)가 총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WCC 총회 반대, 분열 트라우마 때문?

WCC 총회 유치 소식은 보수 교계에 강한 반발을 일으켰다. WCC에 유독 거부 반응을 보이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은 2010년 제95회 총회에서 WCC대책위원회(WCC대책위)를 꾸릴 만큼 반대 운동에 적극적이었다.

WCC대책위는 5월 16일 '한국교회 WCC 반대 보수 교단 연합 예배'를 주최했다. 보수 교단 지도자 180여 명이 모인 자리에는 WCC에 대한 성토로 넘쳐났다. 이들은 WCC가 성경의 유오성과 종교 혼합주의를 강조하는 등 기독교의 진리를 퇴색되게 한다고 주장했다. WCC가 세계 교회의 일치 운동을 하는지 몰라도, 적어도 한국교회에는 분열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예장합동이 WCC를 반대하고, 분열의 세력으로 규정한 이유는 한국교회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예장합동과 예장통합은 본래 한 몸이었지만, WCC 가입 문제를 놓고 둘로 나뉘었다. 1959년 대전에서 열린 제44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WCC 가입 문제를 두고 극렬한 논쟁이 일었다. 논쟁은 1958년 박형룡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WCC의 신학적 좌경화 경향에 대한 비판 논문 때문에 촉발했다. 제44회 총회는 WCC 지지 측과 반대 측으로 나뉜 채 정회했다. 그러다가 WCC 지지 측이 9월 29일 서울 연동교회에서 총회를 독자적으로 개최하면서 예장통합이 탄생하게 됐다. 이와 달리 예장합동은 11월 23일 총회를 속회해, 'WCC 영구 탈퇴와 에큐메니컬 운동 반대'를 결의했다.

▲ WCC 총회 유치 소식은 보수 교계에 강한 반발을 일으켰다. 예장합동 WCC대책위는 5월 16일 '한국교회 WCC 반대 보수 교단 연합 예배'를 주최했다. ⓒ마르투스 이명구

한기총 갈지자 행보에 보수 진영 내부 갈등

예장합동·예장고신·예장합신 등 주요 보수 교단이 한목소리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WCC 총회에 대한 한국교회의 입장이 보수와 진보 구도로 확연히 갈렸다. 하지만 갈등은 각 진영 안에서도 일어났다.

보수 진영 갈등의 단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홍재철 대표회장과 전 대표회장 길자연 목사가 제공했다. 두 사람이 지난 1월 13일 WCC 부산 총회를 지지하는 공동선언문을 한준위 김삼환 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김영주 총무와 함께 채택했기 때문이다.

WCC대책위는 1월 30일 성명을 통해 공동선언문은 정치적인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선언문을 채택한 길 목사와 홍 목사는 소속 교단인 예장합동의 결의를 따르라고 했다. 예장합동 내 총회정상화를위한비상대책위원회 역시 1월 23일 성명을 내고, 총회 결의에 반대 결정을 한 두 목사를 교단에서 제명하라고 촉구했다.

논란이 일자 두 목사는 즉각 수습에 나섰다. 홍 대표회장은 2월 4일 한기총 명의의 성명을 통해 WCC 총회 지지를 철회하고, 반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길 목사도 2월 7일 한 출판 기념 예배에서 교단의 성토 여론은 오해이며, 1.13 공동선언문은 교단의 신학적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변호했다.

▲ WCC 총회 반대 운동을 이끌고 있는 한기총 홍재철 대표회장도 WCC 공동선언문의 후폭풍을 피하지 못했다. 사진은 WCC 반대 집회가 열린 5월 11일 부산역 광장에서 설교하는 홍 대표회장의 모습. ⓒ뉴스앤조이 이용필

양측의 신경전은 최근까지 이어졌다. 서기행 목사(WCC대책위 위원장)가 5월 16일 보수 교단 연합회에서 홍 대표회장과 길 목사를 비판하며 재점화했다. 서 목사는 이들이 WCC의 실체를 모르고 공동선언문을 채택했고, 한기총의 경우 다락방을 영입하고 이단을 해제했다고 주장했다. 한기총 전 대표회장을 역임한 길 목사는 다락방을 영입한 장본인이고, 홍 대표회장은 다락방 영입 감사 예배에서 설교하며 다락방을 옹호한 전력이 있다. (관련 기사 : 다락방 영입하고 옹호한 길자연·홍재철 목사)

한기총으로부터 면죄부를 받은 다락방은 WCC 반대 운동에 적극 임하고 있다. <한국기독공보> 3월 18일자 보도에 따르면 WCC 총회 개최 반대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국민의소리' 임원 전원은 다락방 전도 총회 소속 안디옥교회(서울, 구미) 교인들이다. 한기총이 5월 11일 부산역 광장에서 개최한 '2013 WCC 총회 반대 전국 대회'도 실질적인 행사 준비는 '국민의소리'가 도맡았다. WCC 반대 100만인 서명 가운데 70% 이상은 '국민의소리'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홍 대표회장은 5월 29일 <기독신문>에 성명을 내고, 서 목사가 자신과 한기총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법정 대응을 준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대표회장은 서 목사가 한기총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반대한다면서 "WCC에 반대할 거면 골방에 있지 말고 교계 전면에 나서라"고 했다.

보수 진영 모두가 WCC 부산 총회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WCC의 신학적 교리를 무조건 반대하기보다 열린 자세로 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김명혁 회장)는 지난해 11월 'WCC 부산 총회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복음주의의 제안'이라는 주제로 발표회를 가졌다. 발제자로 나선 이종윤 원장(한국기독교학술원)과 김영한 목사(전 숭실대학원장)는 WCC를 비판하면서도 총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했다. 이들은 WCC 총회에서 한반도 평화와 북한 주민의 인권을 다뤄야 한다고 했다.

▲ WCC 총회 반대 진영의 목소리가 커져 가는 가운데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총회 준비 측에는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다. '국민의소리' 회원들이 기독교회관 앞에서 WCC 총회 개최 반대 시위하는 모습. (사진 제공 <기독교타임즈>)

한국준비위원회, 시작부터 삐끗

WCC 총회 반대 진영의 목소리가 큰 가운데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총회 준비 측에는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다. 2011년 11월 6일 WCC 제10차 부산 총회 준비를 위한 한준위가 공식 출범했다. 교계와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성공적인 총회를 기원하는 등 산뜻한 출발을 알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준비 기간 내내 곳곳에서 갈등이 불거졌다.

WCC 4개 회원 교단 가운데 교세가 가장 큰 예장통합과 나머지 3개 교단(감리회·성공회·기장)이 실무진 구성을 놓고 대립했다. 특히 임원진이 논의 없이 박성원 목사(영남신대 교수)를 한준위 실무 책임자로 선정, WCC 본부에 공문을 보내 논란이 일었다. 이 사실을 안 3개 교단 총무단은 월권이라 주장하면서 급기야 논의 사항을 파기하고 새 '준비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결국 당시 기획위원장이었던 김삼환 목사가 실무 책임자 선정을 취소, 사과하며 일단락됐다.

인사 문제로 곤욕을 치룬 김 목사는 예상치 못한 발언과 거동으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2012년 7월 10일 미주 <아멘뉴스>에 따르면, 미주기독교총연합회 14차 총회에 참석한 한기총 홍 대표회장은 김 목사가 자신에게 "내가 WCC가 무엇인지 알았겠는가. 세계 대회이니 하려고 했는데, 난리가 날 줄 알았느냐" 했다고 전했다. 또 WCC 부산 총회 이후 우파적 선언문을 발표하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김 목사는 같은 해 6월 24일 한기총이 주최한 안보 국민대회 행사에도 참여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용공주의 WCC 반대' 문구가 박힌 애드벌룬이 떠 있었고 (명성교회 측의 항의로 행사 시작 전 철거했다), 순서지에도 WCC를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김 목사의 참석이 옳지 않았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에큐메니컬 진영에서는 김 목사가 WCC 총회를 빌미로 개인 업적을 세우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내외부로부터 비판을 받은 김 목사는 2012년 7월 말경 상임위원장직을 사임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실행위원회와의 '내부 갈등'이었지만, 홍 대표회장에게 건넨 말이 공론화돼 사퇴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김 목사는 상임회장단의 설득 끝에 4개월 만에 복귀했다. 김 목사의 공백이 컸고, 교계에 준비위원장을 대체할 만한 인사가 없었다고 한준위 조성기 사무총장은 주장했다. 그는 "상임회장단 내부에서는 김 목사 없이 가다가는 총회가 엎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공존했다"고 했다.

김 목사가 상임위원장에 복귀한 후 2012년 11월 20일, 제3차 한준위 실행위원회가 열렸다. 실행위원들은 원활한 WCC 부산 총회 준비를 위해 전권을 상임위원회(상임위)에 위임하기로 결의했다. 이후 상임위는 실행위를 폐지하고, 사무국 체제를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사무총장직을 신설하는 등 정관을 개정했다. 사무총장에는 김 목사의 측근인 조성기 목사가 선임돼, 에큐메니컬 진영에서는 또다시 볼멘소리가 나왔다. 김 목사와 같은 예장통합 소속이고, 3개 교단 총무단과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다.

▲ 1.13 WCC 공동선언문은 교계에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직후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왼쪽부터 김영주·김삼환·길자연·홍재철 목사. ⓒ뉴스앤조이 이용필

파국 부른 공동선언문

WCC 총회 논란은 1.13 WCC 공동선언문 전과 후로 나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한국교회 보수와 진보가 손잡고 WCC 총회를 성공적으로 치르자는 취지로 김삼환·김영주 목사가 각각 WCC 한준위 상임위원장과 집행위원장으로 서명했고, 홍재철‧길자연 목사가 한기총 대표회장과 WEA 총회 준비위원장 자격으로 서명했다.

서명까지는 좋았지만 선언문에 담겨있는 내용이 문제가 됐다. 이날 합의된 선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종교 다원주의를 배격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이 없음을 천명한다. 또 초혼제와 같은 비성경적인 종교 혼합주의의 예배 행태와 함께할 수 없음을 천명한다 △공산주의·인본주의·동성연애 등 복음에 반하는 모든 사상을 반대한다 △개종 전도 금지주의를 반대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세대·지역·나라·종교를 막론하고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한다 △성경 66권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로 무오하며,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표준임을 천명한다.

당장 다음 날부터 에큐메니컬 진영은 공동선언문을 파기하라면서 들고 일어났다. 1월 17일 교회협 실행위원회에서는 공동선언문 채택 당사자들을 향한 비난이 빗발쳤다. 한국정교회 조성암 대주교는 공동선언문을 쓰레기로 규정하고 파기를 촉구했다.

공동선언문 채택이 논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강행한 것일까. 이에 대해 배태진 총무는 1월 18일 <뉴스앤조이>와 인터뷰에서 김 목사와 김영주 총무에게 책임이 있다며 쓴소리를 내뱉었다. "김 목사는 공을 세우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이 한국교회 전체를 포괄했다는 것을 보여 주면서 폼 내고, 광내고 싶었던 것 아니겠는가…김 총무는 대책 없이 서명했다. (선언문에 서명할 당시) 압박이 있었겠지만 교회협 총무가 교회협의 정체성과 신학에 위배되는 선언문에 서명하면 안 되는 것이다."

생명평화마당,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 등 20개의 에큐메니컬 단체는 공동선언문에 대한 비판 성명을 연이어 발표했고, 반향은 컸다. 교회협 김근상 회장은 2주 뒤 공동선언문은 교회협 정신과 어긋난다며 수용 불가 입장을 표명했다. 당사자인 김 총무는 공동선언문 파기 선언과 WCC 한준위 집행위원장 사임을 발표하고, 자숙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 김삼환 목사는 WCC 총회 추진위원장, 기획위원장, 준비위원장 등을 고루 맡으며 WCC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러나 에큐메니컬 진영으로부터 독단적인 일 처리를 하는 등 WCC 정신에 맞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진은 4월 25일 확대상임위원회에서 축사를 전하는 김 목사의 모습. ⓒ뉴스앤조이 이용필

소통 없는 진보 진영, 갈등은 필연적

공동선언문 사태 이후 WCC 한준위와 교회협 등 진보 진영의 분위기가 침체된 가운데 책임론도 부상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배태진 총무를 비롯한 에큐메니컬 인사들은 1.13 공동선언문 사태에 대한 원인이 김삼환 목사에게 있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그러나 김 목사는 '유감'만 표명한 채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잠잠하던 교계는 한준위가 WCC 총회 장소 변경을 논의한다는 소식에 다시 한번 발칵 뒤집혔다. 총회 장소를 벡스코에서 명성교회로 이전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기독교사회연대회의와 생명평화마당 등 20여 개의 단체로 구성된 에큐메니컬 연대는 5월 8일 기자 간담회를 열고 한준위가 총회 장소를 명성교회로 바꾸려 한다며 성토했다. 이들은 한준위가 김 목사의 사조직처럼 운영되고, 비민주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며 새롭게 재편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총회 장소를 명성교회로 이전한다는 것은 소문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준위는 인천 송도와 서울 코엑스 등을 알아본 적은 있지만, 명성교회에 대해 논의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논란은 사라졌지만, 에큐메니컬 진영과 한준위 사이에 소통이 없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었다. 만나서 대화할 법도 했지만, 양측은 서로 연락이 없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5월 초까지 엎치락뒤치락하며 갈등을 빚어 온 두 집단은 당분간 큰 마찰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에큐메니컬 연대 조헌정 목사(향린교회)는 총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인에 대한 사퇴와 한준위 개편을 요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조성기 사무총장은 향후 교회협, 교단 총무단과 공조해 총회를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삼환 목사는 WCC 총회 유치를 추진할 당시 "WCC 총회 유치가 한국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하고, 경색된 남북 관계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WCC 총회를 앞둔 한국교회에서 일치와 연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보수와 진보, 보수와 보수, 진보와 진보 안에서 드러난 갈등과 분열의 양상은 한국교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WCC 한준위는 이번 부산 총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모든 교회의 교제의 폭을 넓히고 경제, 생태 , 영적 위기 등 21세기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부름에 귀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이 충만한 문명을 향한 복음적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는 역사적 총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남은 4개월간 한국교회가 직면한 난맥부터 서둘러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 WCC 총회 논란은 1.13 WCC 공동선언문 전과 후로 나뉠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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