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6일 한기총과 교회협이 손잡고 WCC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언론은 진보와 보수의 합작이라며 반겼지만, 교계 분위기는 다르다. 선언문 탓에 오히려 갈등이 불거진 모습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세계교회협의회(WCC) 2013년 부산 총회를 앞두고 지난 1월 6일 WCC 공동선언문이 발표됐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홍재철 대표회장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김영주 총무, 김삼환 WCC 한국준비위원회상임위원장, 세계복음주의연맹(WEA) 길자연 준비위원장이 선언문에 서명했고, 언론은 "WCC를 위한 개신교 진보와 보수의 합작"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교계 속사정을 살피면 WCC 공동선언문이 오히려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WCC 공동선언문은 올해 초 홍재철 한기총 대표회장과 김영주 교회협 총무가 만나 "WCC 부산 총회를 개최할 때 서로 대립각을 세우지 말자"고 뜻을 모으면서 탄생했다. 김 총무가 WCC에 관한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WCC는 혼합주의·종교다원주의·용공주의가 아니라는 내용을 담은 초안을 작성했고, 여기에 홍재철 목사가 "개종 전도 금지주의 반대", "성경 66권이 표준"이라는 등의 다른 문구를 포함했다. 김 총무는 홍 목사가 제시한 선언문에 몇 번 반대 의사를 표하고 일부 문구를 삭제했지만, 결국 서명했다.

WCC 공동선언문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단체는 한기총이다. 한기총은 "WCC 공동선언문은 보수의 승리"라고 선언했다. 한기총이 1월 17일 자 <국민일보>에 내기로 했던 광고에는 "WCC총회준비위원회와 교회협이 2013년 부산 대회를 앞두고 'WCC는 성경을 왜곡하는 종교다원주의로서 비복음적인 단체'라는 공감대를 이루고 한기총에 협의를 요청해 왔다"는 내용이 있다. 한기총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교회협과 WCC한국총회준비위원회가 WCC를 비복음적인 단체로 규정한 셈이다.

WCC 공동선언문을 이용하는 한기총 태도도 문제지만, 선언문 내용에도 문제가 있다. WCC가 받아들일 수 없는 항목들이 포함된 탓이다. 진보 개신교 진영에서 가장 우려는 표하는 대목은 '개종 전도 금지주의 반대'다. 개종 전도 금지주의는 WCC 안에서 합의한 내용인데, 이것을 부정하면 WCC 회원들이 반발한다는 것이다.

진보 개신교계 한 원로는 "WCC·WEA·가톨릭이 2년 전 개종 전도주의 금지를 공식적으로 공동선언했다. 개종주의는 전쟁을 일으키고 평화를 깨뜨린다고 본 것이다. WEA도 WCC가 종교다원주의·용공주의가 아니란 것을 다 안다. WCC 준비를 신학적 토론 없이 교회 연합이라는 큰 차원에서 담합한 셈이다"고 지적했다. 복음주의권의 한 원로 목회자 역시 "개신교가 서로 상대방을 자기 교파에 들어오도록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수는 강제로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감화·감동으로 믿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부인했다. 성급하다"고 말했다.

교회협 소속 교단들은 공식 발언은 삼가면서도 선언문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선언문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으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은 WCC 공동선언문을 교회협 안에서 논의하지 않고 발표한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협 회원 교단들은 1월 17일 열리는 교회협 회의와 실행위원회에서 적극 문제 제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김영주 교회협 총무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 총무는 "WCC에 관한 오해가 많아 부산에 있는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돕자는 생각에서 한 일인데 이렇게 되어 버렸다. 선언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강하게 반대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죄송하다. 내가 죄인"이라고 말했다.

한기총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WCC를 반대하는 보수 교단들이 한기총 행보에 불만을 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기총을 행정 보류한 뒤 탈퇴할지 고민하고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은 공동선언문을 반대한다. 구자우 사무총장은 "WCC를 신학적으로 수용할 수 없으므로 이번에 행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간단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공동선언은 개인적인 몇몇 의견일 뿐이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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