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총회와 관련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김영주 총무)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홍재철 대표회장)가 1월 13일 체결한 공동선언문이 논란입니다. △종교 다원주의 반대 △공산주의·동성연애 등 반대 △성경무오설 인정 △개종 전도주의 금지 반대 등을 담고 있는 공동선언문은 그동안 한기총이 주장한 내용을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김영주 총무가 임원회도 거치지 않고, 임의로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사실이 알려지며 교회협은 적잖은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교회협의 대응을 보면 그리 급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교회협은 1월 17일 실행위원회를 열고 공동선언문 처리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1시간이 넘도록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이에 반해 한기총은 공동선언 다음 날인 1월 14일, 실행위원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공동선언문을 통과시켰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교회협 실행위원 중 공동선언문 내용을 아예 모르는 위원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알고 있더라도 적극 발언한 위원은 42명 중 채 10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선언문을 '파기'하자는 '즉각 처리파'와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한 후 처리하자는 '차후 처리파'로 나뉘어 시소게임을 벌였습니다. 이 와중에 김근상 회장은 자신에게 수습 권한을 달라고 건의했습니다. 사실상 '차후 처리파' 입장에 해당했습니다.

회의 말미까지 진전이 없자 조헌정 목사(향린교회)는 공동선언문을 즉각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김 회장은 "다른 사람의 의견도 존중해 달라"며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공동선언문 사태 수습 권한을 달라고 재차 요청했습니다. 결국 교회협은 별다른 입장 없이 김 회장에게 사후 대책 및 수습에 관한 전권을 위임했습니다. 김 회장은 "이른 시일 내에 잘 처리하겠다"고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끝내겠다는 설명은 없었습니다.

교회협 실행위원회가 있던 날, 에큐메니컬 진영 30개 단체는 성명을 내고 공동선언을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특히 공동선언의 4가지 조항이 한국교회 에큐메니컬 진영이 간직해 온 신학적 양심과 신앙고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동안 수구적 자세를 취해 온 한기총과 공동선언문을 합의한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면서 실행위원회가 공동선언문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에큐메니컬 진영이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 이유는 교회협의 발자취만 살펴보더라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교회협은 2010년 일부 보수 기독교인이 조계종 봉은사에서 땅 밟기 할 때 반대 성명도 냈고, 직접 사과까지 했습니다. 교회협에는 한기총이 개종 전도 대상으로 삼은 정교회가 회원 교단으로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공동선언문은 교회협이 여태껏 취해 온 자세와 정체성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행위에서 배태진 총무(기장)는 "공동선언대로라면 개종 전도주의 금지 반대에 우리는 손뼉을 쳐야 할 처지다. 공산주의권 교회들이 정부 눈치를 보지 않고, 공산주의를 반대한다는 모임(WCC)에 참여할 수 있겠느냐"며 비판했습니다.

현재 공동선언문 사태는 '사실'은 없고 소설만 가득합니다. 김근상 회장이 명시적으로 반대했지만 김 총무가 강행했다는 이야기부터 WCC 한국준비위원 간 금품이 오갔다는 억측 등이 난무합니다. 논란의 당사자인 김 총무는 거듭 사과했습니다. 책임지겠다는 말도 두 번이나 했습니다. 그러나 공동선언문 배경에 관한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실행위원 가운데 김 총무에게 자초지종을 캐묻거나 독단적으로 강행 처리한 연유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위원은 없었습니다.

교회협은 스스로 "어떤 특정한 교리나 법규를 고집하지 않으며, 모든 회원 교회들이 간직하고 있는 참된 교회의 경험들을 존중하고 인정하며, 교회 연합 운동의 정신을 구현한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공동선언문' 사태를 대하는 교회협 실행위원들의 태도는 뜨뜻미지근해 보이기만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마저 부정해 가며 상대방 의견을 존중한 교회협에 손뼉을 쳐야 할까요.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