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희생자 추념일 / 사 43:16-21, 시 126, 빌 3:4b-14, 요 12:1-8

청어람ARMC가 '세속성자 주일예배'라는 이름으로 매주 예배문을 연재합니다. 청어람ARMC에서 구성한 필진이 교회력에 따라 본문을 선정하고, 묵상을 나누며, 기도 제목을 공유합니다. 연재는 해당 주일 이틀 전인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긴 사순절을 보내고 고난주간을 앞둔 마지막 주간입니다. 이 나라도 긴 시간을 견디고 정의를 바로 세워 가고 있습니다. 단단한 한 걸음뒤에 더욱 단단하고 큰 걸음을 계속 내딛을 수 있기를, 정의와 평화를 향한 순례의 길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본기도

예수님, 값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부어드린 여인의 헌신을 낭비라 꾸짖지 않으시고 칭찬하며 기억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좁은 셈으로 헌신의 정도를 따질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에 합당한 아낌없는 헌신을 바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넓혀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하나님이시고, 모든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

예수 사랑합니다 / 내게 있는 모든 것을(찬 50)

시편 126편 1-6절

1 주님께서 시온에서 잡혀간 포로를 시온으로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을 꾸는 사람들 같았다. 2 그 때에 우리의 입은 웃음으로 가득 찼고, 우리의 혀는 찬양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그 때에 다른 나라 백성들도 말하였다. "주님께서 그들의 편이 되셔서 큰 일을 하셨다." 3 주님께서 우리 편이 되시어 큰 일을 하셨을 때에, 우리는 얼마나 기뻤던가! 4 주님, 네겝의 시내들에 다시 물이 흐르듯이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돌려 보내 주십시오.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으로 거둔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은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온다.

말씀

이사야 43장 16-21절

16 내가 바다 가운데 길을 내고, 거센 물결 위에 통로를 냈다. 17 내가 병거와 말과 병력과 용사들을 모두 이끌어 내어 쓰러뜨려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을 마치 꺼져 가는 등잔 심지같이 꺼버렸다. 나 주가 말한다. 18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19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 20 들짐승들도 나를 공경할 것이다. 이리와 타조도 나를 찬양할 것이다. 내가 택한 내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 물을 대고, 사막에 강을 내었기 때문이다. 21 이 백성은, 나를 위하라고 내가 지은 백성이다. 그들이 나를 찬양할 것이다."

빌립보서 3장 4-14절

4 하기야, 나는 육신에도 신뢰를 둘 만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신에 신뢰를 둘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합니다. 5 나는 난 지 여드레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6 열성으로는 교회를 박해한 사람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7 [그러나]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10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12 나는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이미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13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1-8절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가셨다. 그 곳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에 살리신 나사로가 사는 곳이다.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는데, 마르다는 시중을 들고 있었고, 나사로는 식탁에서 예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 때에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 4 예수의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장차 예수를 넘겨줄 가룟 유다가 말하였다.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는 도둑이어서 돈자루를 맡아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것을 훔쳐내곤 하였기 때문이다.) 7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로 두어라. 그는 나의 장사 날에 쓰려고 간직한 것을 쓴 것이다. 8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적용 질문

- 내 유익을 위해서 보편적이고 괜찮은 명분으로 말했던 나의 모습이 있는지 돌아봅시다.

- 오늘날 맥락적 진실이 존중되지 않고 가룟 유다의 권위적인 목소리만 들려오는 현장이 어디인지 살펴보고, 그곳에 예수님이 한말씀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그를 가만두라

예수님이 있는 곳에 잔치가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의 멍에였던 질병과 귀신으로부터 해방된 자들, 세리와 죄인이라는 명명에서 자유를 얻은 이들의 기쁨은 억누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여 벌어진 잔치는 선취된 하나님나라의 상징과 다르지 않았고,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이 당도한 곳에는 웃음과(시 126:2) 찬송과(사 43:21) 잔치가(요 12:2) 늘 있었습니다. 베다니에도 잔치가 열렸습니다. 온 마을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기쁨에 차 있는데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습니다.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 차올랐고 사람들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넘치는 향에 취해 있습니다. 잔치가 절정에 이르렀는데, 한 사람이 마리아에게 정색하며 찬물을 한 바가지 끼얹습니다. 가룟 유다입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5절)

여기서 잠시 가룟 유다가 가진 지위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평범한 무리 중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열두 제자의 일원입니다. 열두 제자는 예수님께 귀신을 제어하고 병 고치는 능력을 위임받은(눅 9:1) 이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특별히 대우했고, 위임받은 자들을 향한 마땅한 신뢰를 보냈습니다. 게다가 베다니에서 잔치가 벌어진 이때는, 예수를 향한 메시아적 기대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근거리에서 따르는 열두 제자의 권위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그중에서도 돈궤를 담당하는 특별한 역할을 맡고 있었고, 그의 입지는 마을 잔치의 분위기와 무관하게 자신의 생각을 불쑥 발화할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한 것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은 향유의 값어치는 약 삼백 데나리온이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한 사람의 하루 임금이었으니, 향유는 1년 연봉에 해당하는 큰 가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돈궤를 맡은 자답게 숫자를 제시하며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고 부어 버린 마리아를 비판합니다. 그의 말은 문장 자체로는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말 안에서 마리아가 가진 고유한 삶의 맥락은 배제되고 맙니다. 마리아는 오라버니인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은총을 경험했습니다. 이는 단지 마리아 개인을 위한 것을 넘어 함께 비통했던 베다니 마을 사람들을 예수님이 구원하신 사건이었습니다(요 11:42). 저들은 "광야에서 물을, 사막에서 강"을 내시는 예수님을 보았고, 그 물을 마신 이들이었습니다(사 43:20). 하여 잔치가 베풀어졌고, 그 절정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이런 맥락적 진실에 눈을 감고, 보편적인 말로 마리아를 비난합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지 못하는 안타까움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 배를 불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6절) 성경은 그를 도둑이라고 폭로합니다. 자기 욕망에 취해 있는 도둑에게 마리아가 가진 삶의 맥락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베다니 마을의 공동체적 기쁨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에게 마리아는 꾸짖고 교화해야 하는 존재였고, 기쁨의 잔치도 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멈출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도둑의 발화로 잔칫집이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매끄러운 가룟 유다의 말과 그가 가진 권위 앞에서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마리아는 예수님을 향한 찬송을 멈춥니다. 불쑥 찾아온 가룟 유다의 개입으로 삶은 평정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지난 4월 3일은 제주 4·3사건 77주기 기념일이었습니다. 1948년부터 7년간 미군정 아래서 자행된 이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6·25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많았는데, 희생자가 1만 4442명, 유족은 7만 2845명으로 공인되었습니다.(제주 4·3 진상 조사 보고서) 이 무차별적인 학살이 가능했던 것은, 제주도민이 시위를 하고 총파업을 하는 맥락적 진실에 눈을 감고, 그들을 빨갱이라고 비난하며 토벌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맥락적 진실이 짓밟힌 곳에서 해방의 기쁨은 사라지고 죽음이 난무했으며, 잔칫집은 술렁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2024년 12월 3일 국회를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이라고 규정하며 "일거에 척결"하겠다는 윤석열의 비상계엄과 이후 매끈한 말로 헌정 질서를 교란해 온 이들 속에서, 여전히 맥락적 진실이 짓밟히고 왜곡되는 위태한 현실을 살아왔습니다.

순간이지만 영원처럼 느껴지는 그 술렁임은 얼마나 길고 막연했던가요. 그때 저들 가운데 예수님의 한 말씀이 들려옵니다. "그를 가만두라"(7절). 예수님의 한말씀에 기세 등등하던 가룟 유다가 물러납니다. 마을 사람들은 안정을 되찾고 기쁨을 회복합니다. 마리아도 다시 향유를 붓습니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했던 한말씀입니다. 4월 4일, 윤석열의 파면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한말씀을 들려 주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술렁이던 우리의 모든 삶에 자리에, 다시 잔치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장재령 /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세속성자의 기도

사순절의 기도 5 - 헌신과 제자도

예수님, 당신은 하나님과 동일한 본체이심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고, 그늘지고 소외된 곳을 일부러 찾으시고 위로하셨을 뿐 아니라 침묵 속에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 삶을 통해 정말 귀하고 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어떤 삶인지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늘 주님의 길을 따르겠다고 말하면서도 좁디 좁은 마음으로 우리의 헌신을 제한하고, 희생이 필요할 때는 비겁하게 한발 물러섭니다. 당신이 걸으신 십자가의 길, 그리고 당신을 따랐던 제자 무리가 보여 주었던 그 길을 우리가 본받기를 원합니다. 어떤 순간에도 우리가 사랑을 택하게 하시고, 필요할 때에는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하시고, 고통받는 이들과 연대하기를 습관으로 삼게 하시고, 가진 것을 나누기를 기뻐하고 즐기게 하소서. 진정한 헌신과 제자도의 흔적을 우리 삶에 새기게 하소서.

3사건과 모든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기도합시다

박해받는 자를 위해 눈물 흘리시는 주님께 우리가 기도하오니,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억압과 폭력으로 희생당한 이들을 위로하시고 억울함을 풀어 주소서. 국가가 모든 국민의 안녕을 위해 존재해야 마땅한데 너무 빈번하게 특정 계층이나 다수의 안녕을 위해 소수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억압하곤 합니다. 77년 전 제주 4·3사건에서 희생된 희생자들을 기억하소서.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국가 권력이 국민들을 억압하고 폭력을 자행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더라도 혐오와 차별을 국가가 조장하는 일들도 많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정의를 핑계로 폭력과 불법을 자행하는 국가 권력이 진정한 정의와 겸손, 섬김을 배우게 하시고 저지른 잘못들은 반성하고 회복을 위한 책임을 다하게 하소서. 모든 폭력과 혐오, 차별이 사라지고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이 오게 하소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나님, 지난 겨울부터 저희를 답답하고 근심하게 하던 불법적 계엄 선포와 그로 인한 탄핵의 과정이 드디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단순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많은 시간과 자원, 정성이 필요했지만 우리에게 아직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과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지혜가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단지 불법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드러난 수많은 문제들을 고쳐 나가고, 긴 탄핵의 과정 동안 터져 나온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멈추지 않고 더 커지며 구체화될 수 있도록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 새로운 대한민국에는 윤석열만 없는 것이 아니라, 부당하게 차별받거나 혐오 받는 사람도 없고, 자기 집이나 일터에서 쫓겨나는 사람도 없고, 노동의 대가를 정당히 못 받는 사람도 없고, 아무 수고하지 않고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사람도 없고, 비겁하고 부패한 정치인도 없는 그런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높은 산들이 평평해지고 골짜기가 메워지는 정말로 새로운 나라, 상상만 하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저희의 간절한 소망과 선명한 믿음이 현실이 될 때까지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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