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5:9-12/시 32/고후 5:16-21/눅 15:1-3, 11b-32

청어람ARMC가 '세속성자 주일예배'라는 이름으로 매주 예배문을 연재합니다. 청어람ARMC에서 구성한 필진이 교회력에 따라 본문을 선정하고, 묵상을 나누며, 기도 제목을 공유합니다. 연재는 해당 주일 이틀 전인 매주 금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사순절의 절반을 넘어서는 넷째 주일입니다. 사회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소식들이 계속 들린 한 주였습니다. 우리의 근심과 염려를 하나님 앞에 탄원하는 주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본기도

죄인을 용서하시는 자비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죄악을 고백하고 통회하는 이들에게 한없는 자비와 용서를 베풀어 주시며 사랑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을 바라볼 때 초라한 것뿐이지만,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며 기도하오니 우리의 초라함을 보듬으시고 새옷을 입혀 주시며 새로운 관계 속에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

저 언덕을 넘어서면(한웅재) / 나 주의 도움 받고자(찬 214)

시편 32편 1-11절

1 복되어라! 거역한 죄 용서받고 허물을 벗은 그 사람! 2 주님께서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시는 그 사람! 마음에 속임수가 없는 그 사람! 그는 복되고 복되다! 3 내가 입을 다물고 죄를 고백하지 않았을 때에는, 온종일 끊임없는 신음으로 내 뼈가 녹아 내렸습니다. 4 주님께서 밤낮 손으로 나를 짓누르셨기에, 나의 혀가 여름 가뭄에 풀 마르듯 말라 버렸습니다. (셀라) 5 드디어 나는 내 죄를 주님께 아뢰며 내 잘못을 덮어두지 않고 털어놓았습니다. "내가 주님께 거역한 나의 죄를 고백합니다" 하였더니, 주님께서는 나의 죄악을 기꺼이 용서하셨습니다. (셀라) 6 경건한 사람이 고난을 받을 때에, 모두 주님께 기도하게 해주십시오. 고난이 홍수처럼 밀어닥쳐도, 그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7 주님은 나의 피난처, 나를 재난에서 지켜 주실 분! 주님께서 나를 보호하시니, 나는 소리 높여 주님의 구원을 노래하렵니다. (셀라) 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너에게 지시하고 가르쳐 주마. 너를 눈여겨 보며 너의 조언자가 되어 주겠다." 9 "너희는 재갈과 굴레를 씌워야만 잡아 둘 수 있는 분별없는 노새나 말처럼 되지 말아라." 10 악한 자에게는 고통이 많으나,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한결같은 사랑이 넘친다. 11 의인들아, 너희는 주님을 생각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정직한 사람들아, 너희는 다 함께 기뻐 환호하여라.

말씀

여호수아 5장 9-12절

9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받은 수치를, 오늘 내가 없애 버렸다." 그리하여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고 한다.

10 이스라엘 자손은 길갈에 진을 치고, 그 달 열나흗날 저녁에 여리고 근방 평야에서 유월절을 지켰다. 11 유월절 다음날, 그들은 그 땅의 소출을 먹었다. 바로 그 날에, 그들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볶은 곡식을 먹었다. 12 그 땅의 소출을 먹은 다음날부터 만나가 그쳐서, 이스라엘 자손은 더 이상 만나를 얻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 해에 가나안 땅에서 나는 것을 먹었다.

고린도후서 5장 16-21절

16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는 아무도 육신의 잣대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육신의 잣대로 그리스도를 알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18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19 곧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2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켜서 여러분에게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간청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나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분에게 우리 대신으로 죄를 씌우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3:1-9, 11b-32절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에게 가까이 몰려들었다. 2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투덜거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3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 1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는데 12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 재산 가운데서 내게 돌아올 몫을 내게 주십시오'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살림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 아들은 제 것을 다 챙겨서 먼 지방으로 가서, 거기서 방탕하게 살면서, 그 재산을 낭비하였다. 14 그가 모든 것을 탕진했을 때에, 그 지방에 크게 흉년이 들어서, 그는 아주 궁핍하게 되었다. 15 그래서 그는 그 지방의 주민 가운데 한 사람을 찾아가서, 몸을 의탁하였다. 그 사람은 그를 들로 보내서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좀 먹고 배를 채우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17 그제서야 그는 제정신이 들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꾼들에게는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 하겠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19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으니,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하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잔치를 벌였다.

25 그런데 큰 아들이 밭에 있다가 돌아오는데, 집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음악 소리와 춤추면서 노는 소리를 듣고, 26 종 하나를 불러서, 무슨 일인지를 물어 보았다. 27 종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돌아온 것을 반겨서, 주인 어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 아들은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와서 그를 달랬다. 29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 버린 이 아들이 오니까,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31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32 그런데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적용 질문

- 오늘의 말씀을 읽으며 서로 의미가 통하거나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단어들을 떠올려봅시다. 가장 크게 떠오른 한 단어, 혹은 한 구절이 있나요?

- 나에게 있어 하나님과 화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오늘, 사순절 넷째 주 복음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이야기, 그러나 여전히 우리를 새롭게 일깨우는 이야기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죄인을 맞아들이고 함께 음식을 먹는다'고 예수님을 비난했고, 이에 맞서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자신이 왜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함께 먹고 마시는지를 말씀하신 이야기지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이야기에는 집을 떠나 새로운 것을 찾고 싶었던 둘째 아들과, 아버지 곁 고향집을 지키며 묵묵히 일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던 큰아들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둘째를 그저 방탕한 아들로 생각하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마음속에, 자유에 대한 갈망 같은 게 있었던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분별력과 절제가 없었고, 결국 고립과 굶주림만이 남았습니다. 마침내 아버지께 돌아가겠다고 결심하기는 하지만 그에게는 이미 절망과 자격지심이 깊게 그늘졌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아니라 품꾼으로 돌아가야겠다' 생각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지요.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멀리서부터 달려 나가 목을 끌어안고 다시 아들로 받아들입니다. 집 나갔던 둘째를 맞아들이는 아버지의 모습은 조건 없는 환대와 용서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진하게 새겨 줍니다.

비유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돌아온 둘째 아들, 그러니까 자기 동생을 환영하고 기뻐하는 잔치 자리에 큰아들은 반발합니다. 잔치에 들어가지도 않고, 자신을 달래려는 아버지께 도리어 화를 냅니다. 큰아들의 마음속에도 어떤 거리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몸은 아버지와 함께 있었고, 집안을 지키느라 성실한 듯했지만 정작 아버지의 사랑보다는 일만 생각한 큰아들의 마음은 동생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 아들에게도 아버지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네 것이니' 잃었다 되찾은 동생을 환영해 주자고 다독입니다.

이 비유는 '탕자의 비유' 혹은 '잃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라고 흔히 부릅니다. 그런데 오늘은 '두 아들을 가진 아버지 비유'로 읽어보면 어떨까요? 집을 떠났다가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과, 집에 늘 아버지와 함께 있었지만 마음은 사실 그렇지 않았던 큰아들의 상태도 인상적이지만, 각자의 상처로 인해 마음에 거리감을 갖고 아버지를 대하는 아들을 넓은 품으로 안아 주고 관계를 회복하려는 아버지의 마음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이 이야기를 읽어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고린도후서 말씀에서 이 회복을 바울은 '화해'로 표현합니다. 두 아들의 아버지는 아들과 화해하고, 또한 아들을 화해시키는 아버지입니다. 두 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의심했고 실패했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아버지와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다가가 마음을 위로하고, 간절하고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그들을 다시 품어 관계를 회복합니다. 이야기에 다 담기지는 않았지만, 아마 두 아들도 서로 끌어안고 관계를 회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오늘 복음서의 비유를 '화해하는 가족의 비유'라고 해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도 어쩌면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방식으로 하나님과 거리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고후 5:18). 그 간절한 소망과 무한한 사랑을 헤아려 봅시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화해합시다.

박현철 / 청어람ARMC

 

세속성자의 기도

사순절의 기도 4 - 용서와 화해

사순절 네 번째 주일을 맞으며 우리를 용서하시고 화해로 부르시는 주님의 부르심을 듣습니다. 주님, 우리가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하소서.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자존심과 두려움이 우리를 얼마나 얽어매고 있는지 고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이웃에게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사랑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임을 알게 하소서. 먼저 용서를 구할 용기가 있어야 용서를 받을 은혜를 누릴 수 있지요. 용서를 구할 줄 알아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요. 우리 마음이 굳어지지 않고 먼저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그래서 기꺼이 화해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소서.

산불로 고통받는 모든 존재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나님, 경북 지역에 큰불이 나서 산과 집이 불타고 사람들이 대피하고,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직도 거센 불길이 바람을 타고 무섭게 옮겨붙고 있다고 합니다. 마음이 무겁고 두렵습니다. 이제 막 싹을 틔우고 생명의 기운을 뽐내려던 나무들이 잿더미가 되어버렸습니다. 숲에서 겨울을 잘 견뎌 낸 동물들이 수없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 농사 준비로 분주하던 이들이 집과 밭을 잃어버리고 이재민이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온 문화재들도, 수많은 역사와 추억도 불타버렸습니다. 재해의 원인을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런 끔찍한 재해 앞에서 인간의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개척하고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거대한 재해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또 얼마나 무력한지 깨닫습니다. 창조주이시요 돌보시는 주님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의 집에 사는 모든 존재들을 보호하여 주소서. 간절히 구하오니 바람을 그치시고 비라도 내려 주소서. 산불과 싸우는 모든 이들에게 힘을 주셔서 속히 불길을 잡고, 이재민들이 속히 일상을 회복하게 하소서.

우리나라의 시국을 위해 기도합시다.

정의의 하나님, 날씨에서는 이제 봄기운이 느껴지지만, 이 나라는 아직 지난 겨울의 냉기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내란 우두머리가 석방되고, 탄핵 선고가 빨리 내려지지 않아 불안하고 초조한 저희 마음을 헤아려 주소서.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의 싹이 터오는 지금, 우리가 정의가 바로 서는 현실을 보고 희망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주소서. 겨울을 보내는 동안 우리 사회에는 절망스러운 문제가 많이 드러나 아프기도 했지만,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열망과 에너지도 축적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 이제 드러난 문제들에 대한 판결과 심판이 속히 이루어져 도려내야 할 것들은 도려내고 고쳐야 할 것을 하나씩 고쳐 가는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이 나라가 정의 위에서 새로워질 수 있도록, 생명과 평화로 이어지는 더 나은 내일을 맞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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