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컬 단체들, 사순절 릴레이 금식 기도회…4월 11일까지 진행

"극우 개신교계가 보이는 폭력과 혐오에 대해 회개가 필요하다.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때때로 기독교가 아닌 종교로 치부하고 싶을 정도로 혐오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배척할 수는 없기에, 나부터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려 한다."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인 3월 13일, 곽미선 씨가 사무실 바닥에 깔린 얇은 돗자리 위에 앉았다. 그는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사순절 금식 기도회에 나와 하루 종일 금식하며 기도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에 꾸준히 참여해 온 곽 씨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여러 방법을 동원하고, 지속적으로 집회에도 나갔지만, 우리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이제 기도의 힘을 구할 수밖에 없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 탄핵 이후에 펼쳐질 나라는 공평과 정의가 꽃피는 그런 나라이길 꿈꾼다"고 말한 뒤 간절히 기도를 이어 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시국회의·기독교시국행동·윤석열폭정종식그리스도인모임이 사순절 기간을 맞아 3월 10일부터 릴레이 금식을 이어 가고 있다. 한국교회의 극우화를 성찰하고, 내란 이후의 사회 혼란과 무너진 민주주의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취지다. 이들은 10일 금식 기도회 시작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교회가 이 지경에 이른 데에는 물량주의, 교권주의, 우상숭배적 광신주의, 반지성적 문자주의, 몰역사적 개인주의 등 수많은 신앙적 오류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교회 깊은 곳에서 성찰과 회개가 일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사순절 금식 기도 4일차인 3월 13일 오후, 이날의 금식을 마무리하는 기도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사순절 금식 기도 4일차인 3월 13일 오후, 이날의 금식을 마무리하는 기도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한국기독교회관 701호 사무실에서 진행되는 금식 기도회에는 목회자·교인 10여 명 안팎이 참여한다. 금식 4일 차인 13일 오후 5시 30분, 이날의 금식을 마치는 기도회가 열렸다. 작은 공간을 가득 채운 참가자 20여 명은 "극우적 이념과 배타적 태도가 복음보다 앞서게 된 우리의 모습을 회개한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좇기보다 세상의 권력을 탐하고, 우리의 울타리 안에서만 안위를 구하며, 우리와 다른 이들을 정죄하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라는 기도문을 읽어 내려갔다.

황준의 목사(예수살기)는 혐오와 폭력을 조장하는 극우 개신교의 행태를 반성하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설교에서 "윤석열이 석방된 소식에 친구가 '지옥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저 고난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를 준비하고, 시국행동 금식 기도회에 참여하고, 성소수자를 축복하고 출교당하신 분들과 함께 기자회견 하는 데 동참하고 있어.' 예수가 말한 천국은 편안하고 안락한 곳이 아니다. 지금 이곳에서 만들어 가는 투쟁과 씨름이 천국이다"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헌법재판소에 윤석열 대통령을 신속히 파면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을 발표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개신교인으로서, 같은 목회자로서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의 극우화에 대한 회개와 성찰을 선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혐오를 말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이라면 폭력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 곡기를 끊고 드리는 우리의 기도로 개신교의 건강함을 되찾고 대한민국의 혼란 상황이 속히 끝나기를 간절히 바란다"라고 했다.

기도회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종교특위 이용선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기도회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종교특위 이용선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날 기도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종교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 이용선·송기헌 의원도 참여했다. 두 사람 모두 기독교인이다. 이용선 의원은 기도회를 마친 후 "비상계엄이 위헌이라는 증거는 차고 넘치기 때문에 파면 결정이 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회복되도록 기도로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뜻이 모아져서 좋은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송기헌 의원은 "저도 어디 가서 크리스천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민망할 때가 있다. 하지만 여기 금식 기도회를 보니 신앙을 잘 지키는 분이 많이 계신 것 같다. 조속히 이번 사태가 끝나 대한민국이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고, 기독교계도 그래야 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회 극우화에 대한 회개와 성찰' 릴레이 금식 기도는 4월 11일까지 진행된다. 3월 15일에는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향린교회에서 '사순절 시국 집중 예배'가 열린다. 예배를 마친 후에는 광화문까지 행진 후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이 주최하는 범시민대행진에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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