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교회 반동성애 진영이 제작·유포하는 '가짜 뉴스'는 여러 종류가 있다. 전체 내용이 100% 가짜인 경우는 드물다. 어느 한 부분을 왜곡하고 침소봉대하거나, 결론을 정해 놓고 거기에 불리한 정보들은 일부러 누락하는 식이다. 그러고 나서 동성애 때문에 교회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미시간 주지사가 종교 단체에 LGBT에 대한 인정을 강요할 수 있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새해부터 이런 뉴스가 돌았다. 이 문장만 놓고 보면 미국 미시간주 주지사가 종교 단체, 즉 모든 교회에 강제로 LGBT(성소수자)를 인정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는 것처럼 읽힌다.

이 뉴스의 원문은 미국 <크리스천포스트> 기사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는 재림주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 <크리스천투데이> 설립자 장재형이 세운 언론사다. 이 기사를 대표적인 반동성애 강사 이정훈 교수(울산대)가 원장으로 있는 엘정책연구원이 번역·요약했다. 엘정책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첨언했다.

"크레첸 휘트머 주지사는 지난 7일 성차별을 규정하는 차별 금지 행정명령과 관련, 젠더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시켜 서명했다. 앞서 공화당 소속의 릭 스나이더 전 주지사는 정부와 계약을 맺고 일하는 신앙 기반 기독교 단체에 대해선 차별 금지 행정명령에 대해 면제를 주었지만, 새로운 주지사는 이것을 폐지시킨 것. 행정명령에는 미시간주 주민들이 주 헌법에 따라 보장된 예배나 종교적 신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변경하지 않겠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론 기독교인들의 종교와 신념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이다."

<크리스천포스트> 기사 원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의 새로운 주지사가 종교를 기반으로 한 사회단체 중 정부와 계약을 맺은 관계에 있는 단체들에도 차별 금지 원칙을 적용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레첸 위트머  미시간주 주지사는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위트머 홈페이지 갈무리

미국 <크리스천포스트> 기사와 이를 번역한 엘정책연구원 기사에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한 배경과 이 행정명령이 정확하게 무슨 뜻이고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 나오지 않는다. '종교 단체', 'LGBT 인정 강요', '행정명령 서명' 등의 단어만 부각하고 있다.

미시간주 주지사 그레첸 위트머(Gretchen Whitmer)는 지난해 중간 선거에서 당선돼 올해 1월 1일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1월 7일, <크리스천포스트>가 보도한 대로 새로운 행정명령 2019-9에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은 미시간주에서 사업하는 사업체, 정부의 지원을 받아 활동하는 사회단체, 정부 소속 기관·위원회 등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은 사라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행정명령은 위에 언급한 사업체 혹은 단체가 어떤 행동을 하면 안 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동등한 취업 기회 제공 △취업 시 차별 금지 △주 정부 대출 프로그램에서 동등한 기회 보장 △주 제공 서비스에서 차별 금지 등이다.

이 행정명령은 지난해 12월 27일 전 주지사 릭 스나이더가 서명한 행정명령을 보완하는 차원이다. 릭 스나이더 전 주지사는 퇴임을 4일 남겨 두고 미시간주의 사업체·기관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우해야 하며, 그 누구도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으면 안 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다만 신앙을 기반으로 한 단체는 이 같은 차별 금지 원칙에서 면제해 준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는데, 새로운 주지사가 한 서명에는 그 조항이 빠졌다.

하지만 새 행정명령에는 주 헌법이 보장한 예배, 종교적 신념을 이행할 자유는 침해받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결과적으로 이 행정명령은 미시간주 '모든' 종교 단체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주 정부의 지원을 받는' 종교 단체만 해당되는 것이다. LGBT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낸 세금을 지원받으면서 그들만 배제할 수는 없다는 당연한 논리다.

미시간주는 이미 고용·주거·교육 등 공적 서비스 영역에서 누군가를 인종·장애·성별, 성적 지향 등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차별금지법이 적용되는 곳이다. 이번 행정명령은 주 정부가 사업체와 인력을 더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과정에서 LGBT 차별 금지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라 보면 된다.

동성 결혼이 합법화한 미국에서는, 보수 혹은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개신교인들도 취업·고용·교육 분야에서 LGBT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취급받아야 한다는 점에 대부분 동의한다. 다만 결혼과 출산같이 전통적인 결혼의 입장을 견지하는 개신교인들은, 이 부분과 관련한 서비스 자체를 거부하면서 각종 소송의 당사자가 되고 있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와 한국 엘정책연구원은 이 같은 맥락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이를 '종교의자유가 위협받는 사례'라고 한다. 관련 뉴스를 조금만 더 검색해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이런 내용을, 이들이 잘 몰라서 누락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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