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안수 안 된다'는 예장합동 결의에 대한 성경적·신학적 반박

예장합동 소속 목사는 100% 남성이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예장합동 소속 목사는 100% 남성이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2020년 9월, 제105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소강석 총회장) 총회 신학부는 '여성 안수' 건에 대해 "성경에 안 나온다. 성경 무오성을 포기하는 일이다. 동성애 허용으로 이어질 것이다"라며 '여성 안수 불가'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우선 이번 여성 안수 논의에 단 한 명의 여성 신학자도 참여하지 않고, 철저히 남성 입장에서 성경적·신학적 보고서가 나온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여성 안수의 주체는 여성인데 왜 남성이 결정하는가. 남성이 무슨 권리로 하나님나라 복음을 향한 소명과 은사를 받아 헌신하겠다는 여성을 가로막는가. 왜 남성이 하나님과 여성, 교회와 여성,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모두 독점하는가. 성경의 진리는 남녀 모두가 진리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리인 것이다.

예장합동 총회 신학부 보고서를 접하자마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가 떠올랐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사람 사이즈에 침대를 맞추는 게 아니라, 침대를 만들어 놓은 후에 사람을 눕혀, 그보다 짧으면 당겨 죽이고 그보다 길면 발을 잘라 죽인 사람이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자기 생각에 맞춰 남의 생각을 뜯어고치려는 행위,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횡포'를 뜻하는 말이다.

실제로 예장합동 내 남성들은 신학적 지식과 권력을 독점하면서 복음을 향한 여성들의 소명과 은사를 단칼에 잘라 버리고 있다. 예장합동은 여성 안수 반대 논리를 고수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차별이 없다는 성경 원리(롬 3:22, 갈 3:28)와 하나님나라 보편성에 역행하고 있으며, 문자주의에 갇혀 살아 있는 하나님 말씀의 역동성을 놓치고 있다. 이에 나는 남성 신학자들의 보고 내용을 성경적·신학적으로 반박하고, 예장합동에 속해 있는 여성들에게 한마디 제언을 하고자 한다.

1. '여성 안수 안 된다'에 대한 성경적 반박

본 글에서는 여성 안수 및 여성 강도권에 대해 신학적으로 연구한 학자들 가운데, 구약학자 이희성 교수, 신약학자 조호형 교수, 역사신학자 임종구 교수의 보고에 대한 반박을 다루겠다. 소감부터 말하자면, 예장합동 신학부 보고는 한마디로 교권화한 성경 해석에 기인한 반지성적·비합리적·시대착오적 남성 중심의 아전인수식 결과물일 뿐이다. 아울러 목사를 특권을 갖고 통치·군림하는 직위로 보는 시각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신약성경에는 오늘날 목사 직무에 대한 세속적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다. 어떤 권위·통치·위엄·권력 따위의 신분적 입장은 '디아코니아' 정신과 걸맞지 않았기 때문이다.1) 예장합동 산하 목사들은 교인을 섬기기 위해 절제·인내·책임을 다함에 있어서, 부름 받은 청지기가 되어 겸손히 주님을 따르는 '팔로워'(follower)라는 인식 전환과 회개가 긴급해 보인다.

구약학자 이희성 교수는 "여성 사역자의 은사와 영적 리더십에 따라 담임 목회자와 상호 보완적 파트너십을 인정하자"는 결론을 내놨다. 이 교수가 말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남녀 관계를 해석할 때 예장합동에서 누누이 강조해 온 '존재론적 평등, 기능적 종속'이라는 프레임이 전제돼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는"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남성과 여성은 (중략) 존재와 능력에 있어서는 동등하고 한 본질을 지니고 있다. (중략) 그러나 남성과 여성의 기능에 있어서는 리더십과 팔로우십이라는 서로 다른 구분이 있으며 상호 보완 역할을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교수가 존재론적 평등(남성에겐 '리더십'), 기능적 종속(여성에겐 '팔로우십')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논리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오류다. 논리학에서 '존재적 평등'과 '기능적 불평등'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명제가 산출된다면, "성경은 남녀 관계를 불평등하게 본다"로 귀결된다. 또한 남녀가 모두 하나님 형상을 입었다는 말은, 존재와 기능적 역할 모두를 내포하는 전인적 존재라는 뜻이므로, 기능에 있어 성별 역할에 차등을 둬 구분 짓는 것은 신학적 오류다.

이 교수는 고대 근동 사회에 만연했던 가부장제로 인해 여성이 문자를 다뤄 기록하거나 리더십을 행할 수 없었던 매우 불리한 사회적 배경을 감안하지 않고, "남성 제사장에 관한 규정들만 있다. (중략) 만약 이를 근거로 여성 사역자의 안수 문제를 논의한다면 여성 안수를 지지하는 구약 성경의 근거는 희박해 보인다"고 해석하고 있다. 성경신학자라면 성경이 쓰인 시대적 배경을 감안함과 동시에, 성경에 미리암·드보라·훌다 같은 여선지자에 대한 기록을 남긴 성경 저자의 의도를 찾아내, 남녀가 평등한 21세기 시대적 지평에 맞게 적실한 해석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 교수가 구약성경 내에서 리더십을 수행한 여성 미리암에 대해 "분수에 넘는 지위에 대한 욕심과 반목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했다"면서 흠집 낸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민수기 본문에서는 미리암뿐 아니라, "우리가 범죄했다"고 아론이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민 12:5-15). 여선지자 훌다를 요시야 왕의 '조력자'로 규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요시야왕 시대에 예레미야·스바냐·하박국 같은 걸출한 남성 선지자들이 있었는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가 참된 왕이시며, 이스라엘이 참된 통치를 받게 된다'는 신학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선지자 훌다를 크게 사용하셨다(대하 34:14-28).2) 남성 신학자들은 예레미야·스바냐·하박국에게는 '조력자'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면서, 유독 여성 선지자에겐 '조력자'라는 단어를 사용해, 어떻게 해서든지 여성을 폄훼하고 깎아내리기에 급급히다.

2020년 예장합동 105회 총회는 새에덴교회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2020년 예장합동 105회 총회는 새에덴교회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신약학자 조호형 교수는 디모데전서 2장 8-15절 해석에 대해 "일인칭 대명사는 절대적인 권위를 내포하는 경향이 있고 보편적인 진술을 만든다. 이렇게 도출된 결과물을 기초로 해서 본문의 보편적인 성격과 함께, 바울의 권면이 영속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처럼 본문의 보편성과 연속성은 여성 안수와 강도권 허락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조 교수는 여성에 대한 바울의 권면은 교회와 가정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진술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독일성서공회 해설(1997)은 "바울은 당시 영지주의에 빠진 이들이 자연적 규정을 거부하는 태도를 교정하려 한 것이지, 교회 내 모든 여성의 역할을 모든 시대에 적용하도록 확정하는 율법은 아니다"고 해설하고 있다. 고 황영자 박사는 바울의 말이 "모계중심사회의 오랜 역사적 모태인 아데미 여신 제의와 영지주의 문화에 길들어 그릇된 구원관에 사로잡힌 에베소의 상황을 파악하고 말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특히, 황 박사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 두 가지를 금하는 것처럼 본문을 해석하는 것은 헬라어 문법상으로 맞지 않고, 오히려 하나의 금지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법적으로 볼 때, 능동적 의미의 '가르치는 것'과 부정적 의미의 '남자를 다스리는 것'을 헬라어 문법인 '우크(ouvk) ~ 우데(ouvde)' 용법으로 연결하여, '남자의 창시자가 된 듯 잘못된 권위 전횡의 태도로 가르치는 것을 여자에게 허락하지 않는다'로 해석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3) 따라서 이 본문은 '이교도에 물든 가르침으로 여자가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지, 아예 가르치지 말라는 게 아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예장합동은 고전 11: 2-16; 14: 33-36, 딤전 2: 8-15 등을 여성 안수 반대 본문으로서 해석해 왔다. 하지만 바울의 여성 관련 본문을 해석할 때는 사회 문화적 정황 속에서 문맥을 살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 복음의 정신과 성경적 여성관에 비추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파트너이자 지도자로 세워 주어야 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는 갈 3:28 말씀은 세 본문(고전 11:2-16; 14:33-36, 딤전 2:8-15)보다 인간관계 및 남녀 관계에 있어서 예수의 정신을 더 잘 표현한 원리이기 때문이다. 바울과 동역한 여성 사도 유니아, 집사 뵈뵈, 브리스길라, 제자 다비다, 빌립의 네 딸 등이 선지자로서 지도력을 발휘한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 '여성 안수 안 된다'에 대한 신학적 반박

역사신학자 임종구 교수는 '여성 목사 안수에 대한 개혁신학의 입장 - 여성 안수 논쟁사를 중심으로'라는 연구 보고서를 냈다. 나는 이에 대해서도 몇 가지를 반박하고자 한다.

첫째, 임 교수는 여성 안수 운동의 방향을 '성경 무오성 포기'와 '동성애 허용'으로 몰기 위해, 미국장로교회(PCUSA)·미국기독개혁교회(CRC)·세계교회협의회(WCC)가 여성 안수를 채택해 동성애를 허용했다는 실례를 들었다. 이는 확증 편향에 따른 '과잉 일반화의 오류'이며, 여성 안수와 동성애를 연결하는 것은 억지 논리다.

이는 총신대학교 총장이었던 고 김의환 박사가 만든 '여성 안수 = 동성애'라는 프레임 때문이다. 김 박사는 여성 안수를 동성애와 함께 엮어, 여성 안수 반대가 곧 보수 신학의 최후의 보루인 것처럼 신학적 분위기를 조장했다.4) 그는 당시 나를 포함한 많은 여학생의 복음을 향한 꿈과 희망을 꺾었으며, 여성 안수에 호의적인 교수를 쳐 내면서 분열과 혼란을 야기했다. 임 교수가 여성 안수를 동성애 허용과 연결한 것은 '여성 안수를 받은 여성 목사 모두가 동성애자인가'라는 반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쯤 되면 여성 목사들이 단체로 명예훼손 소송을 걸 수도 있는 문제다.

나는 임 교수에게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교단(예장합동·합신·고신·대신)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 성차별, 간음, 미성년자 성폭행, 불법 촬영, 세습, 학력 위조, 재정 횡령에 대해서는 왜 함구하는지 묻고 싶다. 임 교수 눈에는 현재 교단에서 발생하는 음란, 부정, 사욕, 탐욕을 부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성경 말씀(골 3:5-10)은 보이지 않는가. 임 교수의 행태는 동성애를 트집 잡아 오로지 '여성 안수를 차단'하려는 '선택적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둘째, 임 교수는 "개혁주의는 실용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개혁주의 신조 어디에 '여성 안수 반대'라고 명시된 내용이 있는지, 그리고 임 교수가 개혁주의와 실용주의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나는 개혁주의를 '중세 교회의 성직자 중심 위계를 벗어나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종교개혁의 '만인제사장설'에 기초하고 있으며, 사제들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는 특권 의식에 저항하고 불의와 부패를 비판하며, '개혁하는' 교회를 만들고자 노력했던 신학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임 교수가 펼치는 논지를 보면, 예장합동의 개혁주의는 고작 여성 안수 반대만 지키면 되는, 편협하고 치졸한 교단 신학으로 전락했다는 의구심이 든다. 여성 안수 허용이 실용주의로 가는 것이라면, 총신대는 왜 여학생을 신대원에 입학시키는지, 그러면서 여학생의 진로는 막아서는 얍삽한 실용주의를 보이는지 묻고 싶다. 앞에서는 여학생을 받아들여 교육인적자원부 지원을 챙기면서도, 뒤로는 '성경적'이니 '개혁주의'니 하는 핑계를 대며, 여성들의 진로를 막아서는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하는 것이야말로 예장합동과 총신대가 실용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셋째, "여성 안수 허용이 교단 100년의 역사성, 전통성, 보수성에서 이탈하는 것이며, 세계개혁교단(WRF)의 연합에서 제명되는 것이며, 목사와 장로의 임직 서약을 파기하는 것이다"는 임 교수의 논지를 보면, 과연 예장합동의 신학자답다. 임 교수는 자신이 남성으로서 혜택을 누리고 있는 교회의 신조·전통을 지키려는 데만 매몰되어 있다. 임 교수에게 한마디 권면하고 싶다. 성경 무오, 동성애, 개혁주의 핑계대지 말고, 그냥 '여성 안수가 싫다'고 말하라. 여성 안수에 애먼 실용주의 갖다 대지 말고, 실용주의가 그렇게 싫으면 교원인적자원부 지원을 당장 끊고, 여학생을 받지 않아도 되는 종교학교로 전향하는 데 힘써라. 예장합동에 소속되고도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들을 더 이상 좌절시키지 말라.

예장합동 105회 총회 중 안내로 봉사한 여성 신자들. 뉴스앤조이 여운송
예장합동 105회 총회 중 안내로 봉사한 여성 신자들. 뉴스앤조이 여운송
3. 예장합동 내 여성들을 위한 한마디

예장합동은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남성 왕국 집단이요, 온갖 부패와 성적 타락의 죄는 삼키고, 오직 '여성 안수 반대'라는 하루살이만 걸러 내는 여리고성이 되어 버렸다. 예장합동은 가부장적 질서를 '성경적'이라고 퉁치면서, 여성의 인격·가치관, 하나님 인식을 왜곡해 왔으며, 하나님나라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자유·정의·사랑·평화라는 소중한 가치를 놓쳐 버렸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열등하고 종속적인 존재로 취급받던 여성들을 가부장 질서와 랍비 전통을 깨면서까지 만나 주시고, 고통을 해결해 주신 급진적이고 전복적인 분이셨다. 나는 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하나님나라 구원은 인격성(평등·진실·정의·평화), 전복성(강자가 약자를 섬기는 성육신적 행위), 현실성(지금 이곳에 임하는 구원)에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예장합동에 속해 있는 여성들에게 성경 말씀을 주체적으로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목회자를 잘 선택하라는 조언도 꼭 하고 싶다. 남을 깔보면서 군림하고 영적 권위를 앞세우는 목사는 거의 '가짜'라고 보면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까이하는 목사일수록 신처럼 군림하지 않고, 예수님처럼 참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성을 갖춘 목사를 기뻐하시고, 스스로 신이 된 목사는 버리신다. 목사를 선택할 때, 무엇보다도 성적으로 깨끗하며, 겸손과 정직, 책임감과 따뜻한 인간성을 지닌 사람인지 살펴보기를 조언한다.

나는 교회 여성들이 가부장적 교회 질서에 도전하며 성차별적 관습에 문제의식을 품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주체자로서의 결단이요, 종교개혁의 후예다운 믿음의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예장합동에 있는 여성들이여,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처럼(민 27: 1-11) 하나님의 딸로서 자기 권리를 당당히 요구하고, 교회의 가부장적 불의와 차별을 고쳐 나가도록 연대하여 나가자. 나는 여성을 만드신 하나님은 '여성의 편'이라고 믿으며, 그분은 여성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신다고 확신한다. 여성을 존중하는 교회, 남녀가 평등한 교회는 여성들의 함성으로부터 이루어지며, 그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평화가 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강호숙 / 총신대학교에서 교회 여성 리더십(Ph. D.)을 전공했다. 보수 교단의 차별적 여성관에 문제의식을 갖고, 한국연구재단 지원을 받아 남녀 파트너십, 성차별적 설교, 교회 리더의 성과 성, 젠더 인식과 젠더 문제를 연구했으며, 기독인문학연구원에서 '여성의 눈으로 성경 읽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여성이 만난 하나님>(넥서스cross), <성경적 페미니즘과 여성 리더십>(새물결플러스)이 있다.

1) Hans Kűng, Women in Christianity, translated by John Bowden(London, New York: Continuum, 2001), 7-8.
2) 훌다에 대해선 엄태항, '역대기에서 훌다의 예언: 대하 34:22-28을 중심으로', <구약논단>, 23/3(2017)을 참조하라.
3) 황영자, '바울의 눈에 비친 아담과 하와: 바울서신의 남녀관', 총신대학교 대학원 박사 학위논문, 2017를 참조하라.
4) 김의환, <도전받는 보수 신학>, (서울: 서광문화사, 1970)을 참조; 김의환 박사가 총신대 총장 재임 시, <신학지남> 1996년 가을호(통권 제248호), 1997년 봄호(통권 제250호)을 통해 안수를 불허한다는 글을 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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