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개혁신학'을 표방하는 총신대학교(이재서 총장)에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이사가 탄생한다. 지난 120년간 '남성 목사'가 독점해 온 이사회에 여성 3명이 3월부터 이사로 참여하게 된다. 개혁주의가 남성독점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테니, 여성이 들어온다는 소식은 반가워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총신대 구성원과 학교를 설립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소강석 총회장)은 여성 이사를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반대하는 이유를 들어 보니 궁색하기 짝이 없다. 예장합동과 총신대 구성원들은 "타 교단 목사·장로도 아닌 여성을 이사로 뽑았다"며 반발하는데, 앞서 교육부는 예장합동과 총신대에 교단 소속 여성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바 있다. 올해 1월 사학분쟁위원회(사분위)는 예장합동과 총신대 각 후보 추천 주체에 "성비 균형을 고려해서 추천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각각 8명씩 후보를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예장합동 총회(총신대정상화추진위원회)나 총신대 대학평의원회는 여성을 단 한 명도 추천하지 않았다. 스스로 기회를 걷어차 놓고 사분위 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여성 이사를 반대하는 총신대 교수회와 신우회는 '총신대 설립 목적'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학교 정관을 살펴보자. "대한민국의 교육 이념에 의거하여 고등교육 및 신학 교육을 실시하되 예장합동 총회의 지도하에 성경과 개혁신학 및 본 교단의 헌법에 입각하여 인류 사회와 국가 및 교회 지도자를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눈 씻고 봐도 여성은 안 된다는 말은 찾아볼 수가 없다.

총신대 교수회와 신대원 원우회는 "정관에서 이사의 자격을 규정하고 있을 경우 당연히 여기에도 기속된다"는 2013년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근거로, 사분위가 총신대 정관을 따라 남성을 뽑았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결정문을 자세히 보면, 헌법재판소는 "설립 목적을 변경하여 새로운 학교법인을 설립하거나 사학을 공립화하는 것이 아니라, 후견적인 입장에서 위기관리 능력을 상실한 학교법인을 대신하여 설립 목적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인사를 정식이사로 선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정리하면, 교육부와 사분위는 현재 총신대 정관, 즉 남성만 이사가 될 수 있는 규정으로는 남녀공학 종합대학인 총신대의 설립 목적을 온전히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분위의 총신대 여성 이사 선임은, 위헌적·위법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시정해야 할 책무가 있는 국가기관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양성평등을 규정한 헌법 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헌법 11조 1항을 근거로 제정된 양성평등기본법 20조 1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차별로 인하여 특정 성별의 참여가 현저히 부진한 분야에 대하여 합리적인 범위에서 해당 성별의 참여를 촉진하기 위하여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적극적 조치를 취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른 학교 사례를 살펴보자. 똑같이 여성 안수를 주지 않는 예장고신은 형식적으로나마 여성을 이사로 뽑을 수 있다. 학교법인 고려학원(고신대) 정관을 보면 "법인의 이사 및 감사는 총회에 속하는 해당 부문의 전문인과 총회 소속의 목사와 장로 중에서" 선출하게 돼 있다. 이화여자대학교도 마찬가지다. 예장합동 목사, 총신대 교수회·신대원생 논리대로라면 "인류 사회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지도 여성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이화여대 학교법인 이화학당 이사회는 전원 여성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화학당은 여성만 이사가 될 수 있도록 규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사 12명은 남녀 '동수'로 구성돼 있다.

교육부와 사분위는 총신대에 "왜 여성 안수를 주지 않느냐"는 신학적 문제를 제기한 게 아니다. 사회적 공공 기능을 수행해야 할 종합 사립대학교에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매년 수십억 원의 국고보조금을 받는 종합대학에 걸맞은 제도와 환경, 상식을 갖추라는 말이다.

정말로 여성이 이사로 들어오면 개혁신학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돈과 명예보다 신념을 지키면 된다. 종합대학 간판을 떼고 예장합동 목회자만을 양성하는 총회신학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국가로부터 각종 재정·행정 지원과 편의를 다 받으면서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양성평등 원칙은 무시하겠다면 이율배반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의 박해와 간섭에서 벗어나 끝까지 당당하게 신념을 지키고 싶다면, 종합대학 지위를 내려놓고 예장합동 목사만 길러내는 종교 지도자 양성 기관으로 돌아가라고 권하고 싶다. 그 결정에는 누구도 예장합동과 총회신학원을 손가락질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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