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이 한국교회에게] 틀어쥔 이권을 놓지 못하는 교회와 교단의 비극

<뉴스앤조이>는 교계 현안에 대한 20~30대 청년의 이야기를 꾸준히 담아내기 위해 '2030이 한국교회에게'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올해도 예년과 같이 교단 총회가 열렸다. 눈여겨볼 사안 중 하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소강석 총회장) 총회 안건으로 올라온 여성 강도권과 안수 허락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논의도 이루어지지 못한 채 여성 안수를 허용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만 반복했다. 똑같은 입장만 반복할 거면 연구는 왜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하다. 여전히 갈 길이 먼 한국교회다.

다른 교단의 경우에도 남성 성직자와 비교했을 때 발언권이 있는 여성 성직자 숫자는 절대적으로 적고, 심지어 여성에게 안수를 주지 않는 것도 심각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보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직무를 남성의 영역과 여성의 영역으로 구분한다. 자연스럽게 남성의 영역은 주로 바깥에서 하는 일로 규정되고 여성의 영역은 가정에서 하는 일로 규정된다. 이러한 성별 분업이 교회에서도 자연스럽게 통용된다. 이는 곧 남성은 설교와 교회의 재무, 차량 봉사를 하고 여성은 교회의 식사를 도맡아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어느새 이 분업 체계는 보수 교단에서 신성불가침한 것이 되었다. 여성의 강도권과 목사 안수가 지금도 불가능한 이유는 이 구조를 신의 제단 위에 올려놓고 번제를 지내는 목사가 많아서다.

예장합동 총회에서 어김없이 여성 목사 안수의 반대 논거로 바울의 고린도전서 14장 34절1)이 인용되었다. 그러나 로빈 스크록스에 따르면, 이 구절은 후기 바울서신과 목회서신을 편집했던 이들에 의해 삽입된 것이며, 바울이야말로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해방과 평등을 확실하고 일관성 있게 주장한 사람이라고 말한다.2) 오히려 바울은 겐그레아교회의 집사 뵈뵈를 로마교회에 소개하고 천거하면서 합당한 예절로 그녀를 영접하라고 권했다(롬 16:1). 당시 집사 직분은 교회의 핵심 지도자에 해당한다. 교회 재정의 모금과 분배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3)

또한, 로마시 지하에 위치한 기독교 구역에 있는 3733기의 묘실에 관한 쇼의 연구는, 초기 그리스도교가 이교보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훨씬 평등한 권리를 누렸음을 입증해 냈다. "추모 비문에서 남녀 간에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유독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특징이었고, 이 점은 그들을 도시의 비그리스도인들로부터 구별해 주었다."4) 오늘날 한국교회가 여성을 이등 시민으로 간주하지만, 이는 이교의 전통일 뿐 결코 교회의 전통이 아니다.

그러나 예장합동이 온갖 성경 구절을 동원해 여성 안수에 반대하지만 이를 허용하지 않는 진정한 이유는 여성 안수가 가져올 결과가 두려워서가 아닐까. 이들은 여성 안수의 허용이 성경 무오성의 포기, 여성 안수 채택, 동성애 허용으로 이어질 거라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예장통합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여성 안수가 허용됐다고 해서 동성애까지 포용적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예장통합에서 허호익 교수를 면직·출교하고, 장신대에서 성소수자 혐오 반대 퍼포먼스를 한 학생들을 징계 처분한 일이 이를 방증한다. 여성 안수를 동성애 포용까지 연결하는 발상은 역으로 이들의 관심이 진정 다른 데 있음을 보여 준다.

지금까지 동성애는 무너지는 개신교의 위상과 교권을 지키기 위한 좋은 희생양으로 이용되었다. 특히 이들은 동성애를 네오마르크스주의와 연결해, 꺼져 가는 반공의 불씨를 회복하려 애쓰고 있다. 북에서 공산주의가 지배했을 때 교회가 탄압받았고 남에서 반공이 국시였을 때 교회가 양적 성장을 이루어 냈던 기억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차별금지법 제정의 결과를 공산주의자(=동성애자)가 예배당에 마음대로 들어와 교회 재산을 강탈하는 상상과 이어 붙이고 있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이들의 논리 구조에서 여성 안수는 교회의 이권과 연결된다. 교회의 이권이 예장합동에서 성경을 거론하며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궁극적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은 점점 더 한국교회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어느 곳보다 더 보수적인 교회의 인권 의식은 신자들이 실망하여 교회를 떠나는 주된 이유이다. 초기 그리스도교가 많은 이교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천대받는 계층인 여성들을 가장 먼저 돌보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여성들은 헌신적으로 교회의 살림을 책임졌고 묵묵히 많은 역할을 수행해 지금의 교회를 만들어 냈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다름 아닌 여성 신자들의 이탈이다. 이는 교회가 어느 순간부터 약자들을 돌보지 않았고 제 살을 찌우는 데만 열중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교회의 십자가는 점점 느는데 예배당은 비어 있는 이 진풍경은 오늘날 이권을 틀어쥐고서 놓지 못하는 교회와 교단의 결정이 만들어 낸 비극이다.

강군 /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학생

1)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개역개정)
2) Robin Scroggs, "Paul and the Eschatological Woman: Revisited."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Religion, 1972, 283, 로드니 스타크, ⟪기독교 승리의 발자취⟫, 허성식 옮김, (새물결플러스, 2020), 188에서 재인용
3) 로드니 스타크, 위의 책, 189.
4) Brent D. Shaw, "Seasons of death : Aspects of Morality in Imperial Rome.", Journal of Roman Studies, 1996, 110, 로드니 스타크, 위의 책, 187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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