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기도 한 섬유 공장에서 일하는 네팔인 A는 친구들과 같이 TV에 나온 '맛집'에 찾아갔다. 들뜬 마음으로 문을 열었지만, 가게 주인은 장사가 끝났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나왔는데, 한국인 손님은 가게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A와 친구들은 기분이 나빴지만 딱히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없었다. 그런 경험이 몇 차례 쌓였고, 이제 A와 동료들은 쉬는 날 네팔 출신 노동자가 많이 모이는 곳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다. 다른 곳에도 가 보고 싶지만 거절당한 경험이 불쑥 생각나 마음을 접게 된다.

#2. 경기도 포천 기업형 채소 농장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 B의 하루 일과는 오전 6시에 시작한다. 점심시간에도 1시간 휴식을 보장받지 못한다. 점심만 먹고 바로 일할 때가 대부분이다. 일이 많을 때는 시간 외, 주말 근무는 기본이다. 추가 수당은 없다. B는 비닐하우스를 개조해 만든 기숙사에 산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기숙사비는 수십만 원이다. 올여름 기록적인 장마에 더욱 힘겨웠다. 선풍기 하나를 5~6명이 나눠 쓰는 데다 비닐하우스 천장을 때리는 빗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좀 더 나은 곳으로 이직하고 싶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업장을 옮기려면 농장주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은 '인종차별' 감수성이 낮다. 얼마 전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이 얼굴을 까맣게 칠하고 찍은 졸업 사진이 논란이 됐다. 가나 출신 연예인 샘 오취리가 이를 비판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으나, 외려 "한국 와서 돈 좀 벌더니 건방지다"는 항의 폭탄을 받고 사과했다. 이후 '블랙 페이스'가 왜 문제인지 짚는 뉴스도 나왔지만, 공주고등학교 학생들이 또 얼굴을 까맣게 칠하고 사진을 찍어 인종차별에 대한 낮은 의식을 드러냈다.

김포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 전시된 각 나라 사람들이 직접 꾸민 하회탈. 여러 민족이 어우러져 평화롭게 살자는 염원을 담았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김포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 전시된 각 나라 사람들이 직접 꾸민 하회탈. 여러 민족이 어우러져 평화롭게 살자는 염원을 담았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한국인에게 인종차별은 주로 '백인 대 흑인' 구도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식된다. 하지만 위 사례들이나 블랙 페이스 사건을 보면 한국에서도 인종차별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인권 활동가들은 한국의 인종차별 인식이 처참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최영애 위원장)가 주최한 '2020 인권옹호자 회의'에 참석한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이완 활동가는 "한국에는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정의한 법도, 이를 처벌할 어떤 수단도 없다"고 말했다.

어쩌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가장 필요한 사람은 이주민일 것이다. 이완 활동가는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통해 교육, 노동, 서비스의 이용에서 누군가를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명문화한 사회적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이 차별인지 분명히 하고 인종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는 데 차별금지법 제정은 필수 코스다.

한국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인종차별

인권위는 3월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 실태와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법제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결혼 이주 여성, 이주 노동자, 난민, 중국 동포, 북향민 등 다양한 이주민이 조사에 참여했다. 응답을 보면 이주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차별에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차별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보면, 첫 번째는 서두에 쓴 사례 1번과 같은 '일상생활에서 겪는 차별'이다. 설문 조사 응답자 330명 중 56.1%가 '언어적 비하'를 경험했다고 했다. 43.1%는 '다른 사람이 기분 나쁜 시선으로 봤다'고 응답했다. 약 20%는 상업 시설 입장을 거부당하거나 쫓겨나고, 판매 및 서비스를 받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엄마가 중국인인 아이가 듣는 자리에서, 중국 사람과 놀지 말라고 자기 아이에게 말하는 부모들도 있었다.

두 번째 유형은 '제도적 차별'이다. 현행법이 차별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를 말하는데, '고용허가제'가 대표적이다. 고용허가제는 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한 기업이 정부에 외국인 인력을 신청하면, 정부가 그에 맞게 취업 비자를 발급해 한국에서 일할 수 있도록 외국인을 고용하는 제도다. 이주 노동자의 이탈을 최소화하기 위한 취지로 시작됐지만, 미등록 노동자를 고용해 인권침해를 일삼는 업체에 대한 감독·처벌이 미흡한 탓에 오히려 이주 노동자를 옥죄는 제도가 됐다.

고용허가제로 취업한 이주 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63조에 따라 농어촌 지역 이주 노동자는 제외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발표한 '2020 고용허가제 이주 노동자 노동조건 실태 조사 결과'에는 이런 문제가 고스란히 나와 있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655명 중 59.1%만이 최저임금 이상을 받고 있었다. 사례 2번 B와 같이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일주일에 52시간을 훌쩍 넘기면서 일하는데도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월 170만 원 정도를 받는다고 답했다.

기업형 농장에서 근무하는 이주 노동자의 숙소는 대개 검은 천막을 두른 비닐하우스다. 사진 제공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
기업형 농장에서 근무하는 이주 노동자의 숙소는 대개 검은 천막을 두른 비닐하우스다. 사진 제공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

세 번째 차별 유형은 예고 없이 들려오는 각종 '혐오 표현'이다. 미디어 환경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경로로 혐오 표현이 생성·유통된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확산한 반다문화·반외국인 문화는, 2018년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 신청자 사례를 계기로 폭발했다. 보수 개신교도 당시 반난민 편에서 이슬람과 관련한 허위·왜곡 정보 확산에 주요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 유튜브에는 한국 남성이 동남아시아를 방문해 현지 여성들을 성적으로 희롱하는 영상이 수십만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인권위 발표를 보면, 응답자 310명 중 73.6%는 특정 국가·민족·종교에 대한 편견·고정관념을 생산·전파하는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고 했다. 81.7%는 이주민을 모욕·조롱·비방하여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는 데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이주민에 대한 불쾌감·공포를 일으키는 가짜 뉴스를 생산·전파하는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는 데도 79.4%가 동의했다.

개별적 차별금지법으로 해소 가능?
차별 규정하고 조치하는 조항 없어

출신 국가나 민족을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명제에는 아마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이주민 차별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일부 보수 개신교인은 이미 제정돼 있는 '개별적 차별금지법’으로 이런 차별들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법은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다문화가족지원법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등이다. 그러나 이주민 사역자와 인권 활동가들은 이런 주장이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먼저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과 다문화가족지원법을 보자. 이 법들은 정부 혹은 지방자치단체가 외국인 정책을 수립하거나 다문화 가족 지원 사업을 벌일 때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기본법에 해당한다. 이주민의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바로잡는 법이 아니다. 무엇이 차별이라는 조항도 없고, 그 차별을 어떻게 고쳐야 한다는 내용도 없다.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는 '차별'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제22조는 차별 금지 조항으로 "사용자는 외국인 근로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하여 처우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나와 있다. 이게 차별 금지에 대한 내용의 전부다. 역시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차별이고, 차별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농어업에 종사하는 이주 노동자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기숙사' 문제를 보자. 제22조의 2에는 "사용자가 외국인 근로자에게 기숙사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근로기준법 제100조에서 정하는 기준을 준수하고, 건강과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나온다. 근로기준법 제100조는 "기숙사의 구조와 설비, 설치 장소 등에 있어 근로자의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를 위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이다. 하지만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이주 노동자가 사는 곳은 B의 경우처럼 대부분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등을 개조한 것이다. 이는 차별이 명백하지만 현행법으로는 고쳐지지 않아 이주 노동자들은 계속 방치되고 있다.

보수 교계 주장처럼 이주민 차별을 현행법으로 바로잡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UN인종차별철폐위원회도 한국 정부에 하루빨리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는 인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차별이 드러난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한국 사회에는 인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차별이 드러난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갈수록 후퇴하는 인권 감수성
"인종차별은 폭력, 해소 위해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해야"

"죄송합니다만, 에볼라바이러스 때문에 아프리카인은 출입할 수 없습니다."

2014년 8월, 이태원 한 상점에 이 같은 안내문이 붙었다. 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 등 서아프리카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에볼라바이러스가 퍼져 나가던 시기였다. 국내에 있는 아프리카인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가게 주인이 이런 문구를 붙인 것이다. 아프리카를 대상화하고 인종차별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주인은 다음 날 사과문을 게시했다.

6년 전에는 가게 주인이 사과했지만, 지금은 블랙 페이스 문제를 지적한 샘 오취리가 사과했다. 이런 현상만 보면 한국인의 인종차별에 대한 감수성은 점점 후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인종차별 문제를 고민해 온 아산이주노동자센터 대표 우삼열 목사는 "인종차별은 폭력"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우 목사는 "이 폭력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삼열 목사뿐 아니라 이주 노동계에서 활동하며 이주민 선교에 힘써 온 목회자들 역시 소속 교단을 불문하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장에서 보면 보이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다음 기사에서 자세하게 소개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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