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누군가를 차별하는 발언에는 대개 혐오하는 감정이 내재돼 있다. 그래서 차별 발언을 '혐오 표현'이라고 부른다. 혐오 표현은 특정 집단 혹은 그 집단에 속하는 개인을 직접 겨냥하기도 하고, 그 집단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말이 칼이 될 때>(어크로스) 저자 홍성수 교수(숙명여대 법학부)는 혐오 표현이 "영혼의 살인", "말의 폭력", "따귀를 때린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말하는 사람이 아무리 남을 혐오하거나 차별할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듣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혐오 표현이 될 수 있다. 일부 보수 개신교인이 성소수자를 향해 외치는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듣는 사람이 사랑이 아니라 혐오를 느낀다면 이 또한 일종의 혐오 발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교계에는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 표현이 난무한다.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혐오감을 부추기는 노골적인 반동성애 메시지가 있는가 하면, '동성애는 죄이지만 동성애자는 사랑한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한다'와 같은 좀 더 점잖은(?) 버전도 있다. 표현 강도의 경중은 있지만,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을 힘들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둘 다 비슷하다.

<뉴스앤조이>는 이런 표현들이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당사자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정훈·영민·지혜(모두 가명) 세 명과 8월 7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세 사람은 스스로 성소수자 크리스천이라고 정체화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그만큼 긴 시간 다양한 혐오 발언을 들어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면서도, 가끔은 그런 말들이 직접적 충격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세 사람과 나눈 이야기를 대화 형식으로 정리했다.

"사랑하니까 반대한다"는 말은 듣는 성소수자가 전혀 사랑을 못 느낀다는 점에서 혐오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사랑하니까 반대한다"는 말은 듣는 성소수자가 전혀 사랑을 못 느낀다는 점에서 혐오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내가 교회를 떠나지 않는 이유

정훈 / 나는 모태신앙이다. 동성을 좋아한다는 걸 인지한 시점은 중학교 3학년쯤이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계속 부정했다. 그때도 교회는 계속 다니고 있었고, 주일학교 회장까지 할 정도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 부모님과 함께 다녔고 보수적 교회여서 목회자들에게 말할 엄두는 못 냈다. 기도도 참 열심히 했는데, 동성애자가 아니라 차라리 양성애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 같다. 그러면 최소한 아닌 척하고 살 수는 있을 테니까. 스무 살 정도에 마지막으로 여자 친구를 사귀었는데 도저히 더는 못 하겠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나 보다' 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지혜 / 나 역시 모태신앙이다. 가족들과 다 함께 교회를 다니다가 지금은 혼자 다른 교회에 다니고 있다. 내가 동성을 좋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 기간이 좀 길다. 양성애자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도 같다. 동성을 좋아하게 되면서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을 때가 오더라. 그래서 나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였다. 그 후로도 교회는 계속 다녔다. 당시 동성애는 교회 설교의 주요 소재도 아니었고, 요즘처럼 자주 오르내리는 주제도 아니었다. 교회 임원도 하고, 대학교 선교 단체에도 들어가고, 정말 열심히 활동하면서도 고민은 계속했다.

영민 / 나는 5살 정도부터 교회에 다녔다. 나 역시 정체성을 의심하는 기간이 정말 길었다. 중학교 3학년 때쯤 처음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막 부정한 건 아니고, 동성애자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혹시?' 하면서 의심의 시간을 정말 오래 보냈던 것 같다. 그 기간만큼 기도도 많이 했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사는 것에 좀 회의적이었다. 뭔가 재미도 없고, 이렇게 계속 살아서 뭐하나 그런 생각을 했다.(웃음) 그래서 "하나님, 이게 죄라면 이 삶이 빨리 끝나게 해 주세요. 이게 죄라면 제가 자각할 수도 없는 사이에 저를 바꿔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죄라면 삶이 빨리 끝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나는 여전히 살아 있고 성적 지향은 그대로니까… 내 나름의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성소수자를 긍정하는 교회가 있다는 것을 신문에서 접하게 됐고, 3년 전부터 출석하고 있다. 정체성을 의심하면서도 교회를 떠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게 교회를 못 다닐 만한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동성애자라고 해서 교인들이 나를 욕하거나, 기독교라는 종교가 그렇게 누군가를 정죄하지는 않을 거라 믿었다. 오히려 내 기준에서는 혐오를 가르치는 목사가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목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정훈 / 나도 정체성 때문에 교회를 떠난다는 건 생각도 해 보지 않았다. 혼자 신앙생활한다는 건 나에게는 아예 없는 선택지였다. 지인들에게 처음 커밍아웃했을 때, 한 분이 "그러니까 더 하나님 앞에 나오려는 마음을 갖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더 교회에 나오고 신앙을 붙든 것 같다.

지혜 / 난 성장할 때 교회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정말 컸다. 원래 좀 여린 성격인데, 교회에서 나를 섬세하게 신경 써 주고, 이야기 들어 주고, 사랑 안에서 하나 되자고 이야기하는 게 좋았다. 하나님 사랑 안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말씀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인생의 목표를 주는 것도 좋았고. 교회를 떠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일방적 설교에서 불쑥 나오는 혐오
"머릿속 멍해져…심리적 공격당한 상태"

정훈 / 나는 최대한 주변에 커밍아웃하려는 편이다. 대학교 들어가면서 선교 단체에 가입했고, 거기서는 리더에게 이야기했다. 얘기해도 나를 적대시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리더가 가타부타 말은 없었고, 대신 기도문을 보내 주면서 회개 기도를 하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 지금 생각해 보면 동성애는 죄라고 에둘러 말한 건가 싶다.

보통 상대방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후, 이 사람이라면 말해도 되겠다 싶을 때 이야기한다. 그랬을 때 대놓고 "동성애는 죄야.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 갈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만나 보지 못했다.

"죄에는 경중이 없기 때문에 나도 죄인이고 너도 죄인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었고, "이건 공동체의 죄니까 공동체가 안고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도 봤다. "나 너랑 인연 끊을래"라고 말한 경우는 없었으니까, 나를 용인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신학적 차이는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일대일로 이야기하면 반응을 관찰하거나 서로 대화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일방적 설교를 들을 때다. 얼마 전에도 참석한 집회에서 설교자가 느닷없이 차별금지법을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다니는 교회에서는 그런 발언을 들을 일이 전혀 없어서 오랜만에 혐오 발언을 들은 건데, 머리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지더라. 그전까지는 한국교회가 좀 새로워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갑자기 그런 얘기 들으니까 다음 집회부터는 참석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기성 교회 예배에 참석하면 꼭 한번씩 관련 설교를 듣는다고 했다. 이들은 멀리서 하는 말이라도 꼭 가까이서 직접 얘기하는 것과 같은 타격을 받는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어쩌다 기성 교회 예배에 참석하면 꼭 한번씩 관련 설교를 듣는다고 했다. 이들은 멀리서 하는 말이라도 꼭 가까이서 직접 얘기하는 것과 같은 타격을 받는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지혜 / 어쩔 수 없이 기성 교회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 경우 혐오 발언을 꼭 듣는다. 설교 본문은 전혀 그런 내용이 아닌데 갑자기 '동성애'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면 머릿속이 멍해진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그냥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영민 / 나도 모르게 심리적 공격을 당한 상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정훈 / 멀리서 떨어져서 듣고 있는데도, 꼭 나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것같이 공격당한 느낌을 받았다. 혐오 발언을 계속 들어 왔으면 그냥 '에잇, 또 들었네' 하고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오랜만에 들으니 그 타격감이 지속됐다.

설교도 힘들지만, 종종 마주치는 이들과 겪는 일도 압박감을 준다. 한번은 지인들과 교회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부는 내 성 정체성을 알고 있었고, 일부는 몰랐다. 그런데 한 명이 갑자기 동성애는 반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다. 그때부터 머릿속이 하얘지고 시간이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르게 흘러갔다. '그 사람이 혹시 내 정체성을 알게 된다면 나를 분명히 싫어하겠구나'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반동성애 진영 혐오 표현
"존재 부정당하는 느낌"

정훈 / 반동성애 진영은 차별금지법 제정되면 성소수자가 특권층이 되고 비성소수자가 역차별받는다고 말한다. 이 표현 자체만 보면 동성애를 비난하는 말은 없다. 그럼에도 이런 말을 들으면 내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든다. 제발 말하기 전에 공부를 좀 하면 좋겠다. 공부하려고 하지도 않고 팩트 체크해도 듣지 않는 게 문제다.

지혜 / 반동성애 강사들 강연은 너무 말도 안 되니까 아예 신경을 안 쓰게 됐다. 지금도 태극기 부대가 있지만, 태극기 부대가 뭘 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계속 스트레스받지는 않는다. 그냥 무시하고 말지. 허위 주장을 계속 재생산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 영향받는 건 걱정이 되지만, 이런 것들은 어느 정도 내 선에서 거른다. 일부러 찾아서 듣지 않으니까 피할 수 있다. 관련 뉴스나 차별·혐오 발언이 난무할 것 같은 댓글도 억지로 찾아 읽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청소년은 다르다. 청소년의 경우에는 교회를 선택할 수도 집을 떠날 수도 없다. 그나마 있는 성소수자 친화적 교회는 거의 다 수도권에 몰려 있고 지방에는 별로 없다.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이 다니는 교회에 가야 하는데, 그 교회가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교회면 그냥 앉아서 그 발언을 다 들어야 한다. 피할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반동성애 진영의 강의와 그에 경도되는 교회 모습이 우려스럽기는 하다.

영민 / 나는 이제 반동성애 진영 발언에는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저런 사람들도 있겠거니' 생각하게 됐다. 나도 예전에는 반대한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멍해졌다. 이건 나만의 생각인데, '저 사람들이 반대한다고 해서 성소수자가 없어지나' 생각하니까 그냥 신경을 안 쓰게 되더라. 물론 그들의 증오 선동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가만두면 잘 모르는 사람이 그쪽으로 쏠릴 가능성은 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교회가 망할 거라고 하지만, 나중에 분명 교회가 차별금지법 혜택을 받는 날이 올 것이다. 몇 년만 지나도 교회가 차별받는 날이 온다. 1990년대만 해도 교회 다닌다고 하면 착하게 사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교회 다닌다고 하면 약간 비웃으며 "교회 다녀?"라고 묻는다. 한국교회가 망한다면 반동성애 진영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혜와 정훈은 동성애 반대 집회에 온 이들의 신념에 찬 모습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고 했다. 사진은 2017년 동성애 반대 국민대회 참가자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지혜와 정훈은 동성애 반대 집회에 온 이들의 신념에 찬 모습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고 했다. 사진은 2017년 동성애 반대 국민대회 참가자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신념에 찬 반대 행동,
이해돼서 더 두려워"

지혜 / 나는 퀴어 문화 축제가 이렇게 유명해지기 전부터 축제를 다녔다. 그전에는 전혀 대립 구도가 아니었다. 신촌에서 할 때(2014년)부터 갑자기 기도회를 열고 길에 드러눕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때 비기독교인들은 그냥 그 사람들 보면서 별다른 생각 없이 웃고 끝났지만, 나는 좀 혼란스러웠다. 반대 운동을 하는 기독교인들에게 감정이입하게 되더라. 나도 강한 신념을 갖고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으로서, 그곳에서 자기 신념대로 행동하는 사람들 마음이 공감되는 것도 같았다. 많이 힘들었다.

정훈 / 반대 피켓을 든 사람들과 마주하면 사실 위협감이 든다. '내가 성소수자가 아니었다면 저 무리에 섞여 피켓을 들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들의 행동이 종교적 열심에서 오는 걸 알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더 무서웠다. 사실 그 자리에 있기 힘들 정도로 위협감이 너무 크다.

영민 / 나는 그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 사람들은 정말 그게 자기들 사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 아닌가. 예전에 레이디 가가가 내한 공연할 때도 기독교인들이 가서 반대 기도회를 열고 그랬다. 그때부터 그런 기독교인들을 보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교회가 이런 건가? 저들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정훈 / 그곳에서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을 보면 내 신앙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신학적으로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는 해석을 듣고 머리로 이해했더라도, 죄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아니야, 이건 죄일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불안함이 밀려온다. 계속 죄라는 얘기만 들었으니까 이 생각을 빼내기가 정말 힘들다.

당신 주변에도 성소수자가 있다

정훈 / 반동성애 진영의 선동이 우려스럽긴 하지만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 건, 그럼에도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건 혐오라고 깨닫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주변에 많은 기독교인과 이야기해 봐도 반동성애 진영처럼 덮어 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경우는 정말 확신에 찬 사람들이니까.

지혜 / 반동성애 진영처럼은 아니지만, 점잖게 싫은 감정을 내비치는 사람들이 나는 더 무섭다. 나는 사람들이 주변에 존재하는 누군가는 퀴어라는 점을 인지하면 좋겠다. 친했던 사람이 "개독들이 헛소리하는 것도 싫지만, 동성애자도 싫다"고 하는 말에 제일 상처받았다. 동성애자가 내 이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 아닌가.

기성 교회 다닐 때나 선교 단체에서 활동할 때 만난 사람들 중에도 소위 '점잖은 혐오'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용기 내서 커밍아웃했을 때, 대놓고 죄인이라고까지는 안 하지만 아예 그 주제 자체를 회피하려고 하더라. 뭔가 자신들은 반동성애 진영과 다른 것처럼 기대하게 하고 다른 답을 줄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을 직접 겪는 입장에서는 너무 힘들었다. 이미 나는 커밍아웃한 상태고, 이 사람이 나를 괜찮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끔 정말 열심히 활동했다. 혹시라도 내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좋은 신앙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게끔 모범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 스트레스가 정말 컸다.

영민 / '내 주변에 혹시 퀴어, 성소수자가 있다면 어떨까'라고 생각하는 게 정말 중요한 포인트다. 친구가 학교에서 겪은 이야기다. 기독교인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기독교 정신에 대해 설명하다가 갑자기 "동성애자는 죽어야 해"라고 말했다. 학생 중 한 명이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더니 선생님이 비웃으며 하는 말이 "너 게이야?"였다. 학생들 중 진짜 동성애자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그 교사의 말은 그 학생 삶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 한 명이라도 동성애자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아무리 죄인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죽어야 해"라는 말은 안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요즘은 '설령 듣는 이 중 동성애자가 있더라도 나는 말하고야 말겠다'는 교사들도 있더라. 자신의 말 때문에 학생이 생사를 고민할 수도 있다는 걸 아는지 궁금하다. 자신이 내뱉은 말 때문에 듣는 사람이 삶과 죽음을 고민할 정도로 괴로워하는 걸 안다면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정훈 / 정말 중요한 이야기다. 나도 학창 시절에 기독교인 선생님이 하시는 혐오 발언에 힘들었다. 그때 다행히 지지해 주는 반 친구가 있어서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다 있는 곳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기에 성인이 된 후에는 좀 더 주위에 커밍아웃해 보려고 시도한다. 기성 그리스도인들에게 나 같은 존재도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더 알려 주고 싶어서. 자기 옆에는 성소수자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다음에 동성애에 대해 말하기 전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지 않을까. 내 나름의 사명감이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는 분이신데 나를 이렇게 만드신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흐름으로 생각하다 보니까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퀴어로 태어난 것은 내 주변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퀴어의 존재를 알게끔 하려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커밍아웃하고 있다.

지혜 / 이렇게 누군가 혐오를 선동할 때 한 명만 나서서 반대 발언을 해 줘도, 당사자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된다. 권력자가 한 방향으로 몰아갈 때 다 같이 침묵하면 모두가 동조하는 게 된다. 하지만 한 명이라도 '아니오'라고 이야기한다면, 그건 결과적으로 당사자를 지지해 주는 게 된다. 당사자가 이런 목소리를 내면 바로 공격이 들어오기 때문에, 앨라이(지지자)가 해 주는 게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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